인정투쟁이었습니다. 반성합니다.
지난 사흘간 많은 비판을 들었습니다. 사무실로 직접 전화 주신 분도 계셨고, 댓글로도 많은 말씀들을 주셨습니다. "내가 정권을 바꾸기 위해서 이렇게 노력해왔는데 그냥 나는 이름도 없는 문빠냐? 그렇게 모는 게 정당하다고 생각하냐?"고 울먹이시던 분의 목소리가 잊혀지질 않네요.
어디부터 잘못됐을까, 댓글을 하나 하나 꼼꼼히 다시 읽었습니다. 구좌파, 꼰대, 계몽주의자, 손혜원, 정청래의 명성에 기댄 자, 나대는 보좌관. 하나도 틀린 말씀이 없다는 게 더 놀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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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대학다니던 시절 육군 장성 출신이시던 고모부를 뵐 때마다 "내가 6.25전쟁 때 참전해서 어떻게 일군 나란데 빨갱이에게 넘겨주냐! 데모 하지 마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속으로 "그건 40년 전 일이고 지금와서 어쩌라는 말씀이냐. 그 세대가 고생한 건 알겠는데 지금 이 순간 사회가 잘못되지 않았느냐"라고 항변했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저는 제가 그토록 듣기 싫은 말씀을 하던 고모부의 입장에 제가 서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청년시절부터 무수한 고초를 겪으며 민주화를 위해 애써왔는데 왜 그걸 인정 안해주냐!" 그땐 몰랐으나 안수찬 기자의 '빈곤보고서'를 공유했던 제 마음 속엔 그런 외침이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빈곤보고서'를 읽고 나면 사람들의 마음이 바뀌지 않을까하는 기대. 그게 계몽주의자의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너가 몰라서 그렇지 알면 생각이 바뀔 거야"라는 태도로 사람을 대했던 것입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그 사실이 부끄러워 견디기가 어려울 지경입니다. 제가 이번 정국이 아니라 평상시였다면 "안수찬 기자의 '빈곤보고서'를 한 번 보세요. 청년빈곤의 실체에 대해 잘 밝힌 명문입니다"라고 말 할 수 있었겠지만, 안수찬 기자의 잘못을 감싸는 방식은 아니었던 겁니다.
보좌관의 역할이 어디까지인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보좌관도 정치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의원과 함께 정치를 하는 것이지요. 페이스북도 의정활동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하려 노력했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들은 친구공개로만 묶어서 써왔습니다.
신중하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만 부족했습니다. 물의를 일으킨 그 글도 한 밤 중에 전후사정도 잘 파악하지 않고 썼던 글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반성하며 사과드립니다.
1. 문빠라는 호칭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 자신도 노무현의 지지자였고 문재인의 지지자였습니다. 노사모 시절 우리끼리 모여서 "우리는 어쩔 수 없는 노빠"라고 낄낄댔던 것과 지금 남들이 우리를 문빠라고 부르는 것에는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있습니다. 남들이 문빠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쓸 때, 그 용어가 가진 문제점을 간과했습니다. 그 결과 안수찬 기자가 한 잘못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예전의 그를 들어 현재의 그를 옹호하려 했습니다. 제 잘못입니다. 문빠라는 표현에 상처받으셨을 분들을 생각했다면, 아니 제가 그만큼 격분했다면 그때 그렇게 글을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화나고 상처받으신 분들께 사과 드립니다.
2. 제 지식도 일천하면서 나이를 먹고 경험이 있다고 남을 가르치려 했습니다. 반성하며 사과드립니다. 나는 알고 남은 모른다는 생각, 내가 아는 것을 당신도 알면 바뀔 것이라는 오만함, 마음 속에 있었습니다. 가르치려드는 제 태도에 화나신 모든 분들께 사과드립니다.
3. 제가 살아온 과정에 대해 인정받고 그걸로 남을 훈계하려 했습니다. 사과드립니다. 세대마다 경험이 다르고, 각자 인생마다 그 무게가 엄중한데, 제 인생만 대단했던 양 오만을 떨었습니다. 사과드립니다.
4. 제 담벼락이 그냥 개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치 개인의 것인양 굴며 전체공개로 여과되지 않은 제 생각을 올린 것도 사과드리겠습니다. 앞으로는 전체 공개 글을 쓸 때, 그 글이 미칠 파장과 영향에 대해서 좀 더 신중하게 검토하고 고민한 후 글을 올리겠습니다.
앞으로 SNS활동을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이 깊어집니다. 보좌관으로서 국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소통하고, 의정활동을 소개하고 제 정치적 견해를 나누는 일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러한 제 욕심이 국민여러분들을 불쾌하게 한다면 과연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습니다.
저는 책을 읽어 배우기보다는 현장에서 부딛히는 사람입니다. 주시는 말씀들 곱씹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모르는 건 물어가며 하겠습니다.
제 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려고 기차를 타고 내려가며 이 글을 마무리 짓습니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다시 꾸짖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