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초등학교(그 당시에는 국민학교) 5학년 때, 저는 친구네 집에 자주 놀러가서 비디오로 에반게리온을 보며, 사각모양 컵라면을 즐겨먹었었죠.
그 친구는 공부도 잘 했거니와, 놀다가도 어느 시간만 되면 반드시 숙제와 공부를 하는 타입의 착실한 초딩이었어요.
하루는, 그 친구가 숙제한다고 방으로 들어가고, 저는 알록달록 사탕을 녹이며 계속 에반게리온을 봤습니다.
그러다가, 왜 그랬었는지 갑자기 TV 아래 선반의 서랍을 자꾸 열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착실하진 않지만 착했던 저는, 서랍좀 열어봐도 되냐고 물어봤어요.
흔쾌히 열어준 친구는, 가족사진 앨범도 꺼내서 보여주고 뭐 이것저것 봤었는데, 5.18 어쩌고 하는 사진집(?) 같은게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같이 봤는데.......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정말이지 정말이지..... 너무도 큰 충격이었어요. 지금도 생생해요.
그 책 안에 있는 사진들은...
일그러지고 눈이 튀어나온 얼굴, 길바닥에 구타당해 쓰러진 몸, 멍투성이 피투성이가 된 얼굴들, 완전히 얼굴이 갈라져있는 얼굴, 가슴을 내놓은 채 총에 맞아 죽어있는 모습, 일렬로 쭉 엎드려있는 시체들, 옷이 벗겨진 채 군인에게 끌려가는 모습...
그야말로 가감없이 모두 드러나있었습니다.
가슴이 두근두근대고 막 열이 올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본 저는, 친구에게 물어봤습니다. 도대체 이거 뭐냐고..
친구가 나름 설명해줬었는데, 듣고 나서 지금까지도 무슨 말을 들었는지는 자세히 기억은 안 납니다.
기억하는 말은 "너무한다 진짜. 어떻게 저랬을까. 그치?" 정도 입니다.
그 날 느꼈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공포와 참혹함, 복잡한 심정들을 기억하며.. 오늘 5월 18일도 전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