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한겨레 소액주주운동] 이분을 대표로 모시면 어떨까요?
게시물ID : sisa_9410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우스
추천 : 43
조회수 : 2888회
댓글수 : 30개
등록시간 : 2017/05/19 04:33:55
한겨레 소액주주운동 관련하여 넷상에서 어떠한 의견들이 있나 검색중에 있었는데..

많은 분들의 우려는 실현 가능성은 없지만 그 나름대로 뜻이 있다는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다만 일부 우려를 하며 비관적인 의견을 주시는 분들중 상당수가 이 운동에서의 리더 및 취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것을 보았습니다.



 ㅠ.ㅜ

당연하지요..

저도 다른사람이 이걸 먼저 주장했다면 먼저 이 운동을 시작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성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볼것입니다.

즉.. 주식을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소액주주 대표의 영향력은 엄청납니다.

보통 수십억에서 수백억의 권한을 대행하기에 그 지분을 대행하는 대표에게 사측에서 또는 반대진영에서 몰래 거시기한 룸등에서 먹고 마시며 향응을 제공하여 소액주주단체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자신들쪽으로 밀어주길 회유합니다.

또한 뒷거래를 통해서 수천에서 수억의 뒷돈을 찔러주며 단 한번... 그 권한행사를 하게 되는 주총의 결정시기에 선택을 하게 만들죠.

그리고 소액주주대표는 잠수..

이런것 엄청 많습니다.

그래서 제 글의 맨 첫글부터 보게 되면 이 운동을 시작하게 될시 필히 소신과 신념이 강한 신뢰성이 있는 사람들로 대표와 임원을 구성해야 한다고 계속적인 강조를 한것이구요..

수많은 소액주주운동을 보면서 결실을 맺지 못하는 첫번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때론 프락치가 미리 선수쳐서 소액주주연대를 모집하고 이끌며 소액주주들 모르게 고의적으로 비관적인 상황으로 유도하는 방법..

본래 이것은 상장폐지전문 브로커 또는 인베스트에서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매뉴얼과 같습니다.


여기서 여러분들..

저를 아는 분 있나요?

없지요?


저를 무얼 믿고 이 운동에 참여하는지 제가 보기엔 여러분들도 참 답답합니다....;;


하지만 하나만 믿으시면 됩니다.

전 원래 이 소액주주라는 방법이 있는데 왜 힘들게 한겨레와 계속적인 이전투구를 하는가 답답해서 힌트를 드렸슴에도 나서질 않아서 ....;;

어쩔수 없이 구체적인 움직임까지만 이끌고 그냥 다시 일반 네티즌으로 돌아갈겁니다.

즉.. 여러분들이 이 소액주주운동에 대한 지식들이 없으니 기초적인 부분까지만 안내하면... 

몇분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게 되어 기본적인 주주의 권리를 행사하는 과정에 대해 설명을 드림으로 인해서 모든분들이 바로 이해가 되는 순간이 바로 제가 물러나야 할 순간이죠.

깡통전문이라 제가 이쪽은 좀 기초적인 지식은 가지고 있습니다.. ㅠ.ㅜ


암튼..

도대체 이 소액주주운동에 대해 추진을 하는건 어렵지 않으나 정말 믿고 신뢰할 신념과 소신을 가지고 리딩해줄 어떤 분을 대표로 세울것인가가 고민이었는데..

검색을 하다 다음의 글을 찾았습니다.

이분이라면 믿고 맡길수 있지 않을까 하네요..


한석현 목사님이라고..

창간 주주이면서 전년도에도 주총에 가셔서 한겨레에 쓴소리를 하려다 찬밥신세 되었다는 분입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이분의 글을 정독하셔서 판단해주시기 바라며 가능하면 이분의 연락처를 알아봐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일을 진행하며 만약 여러분의 중지가 모아진다면 이분을 빠른시일내에 소액주주연대의 대표로 모시고, 더불어 소액주주연대의 한겨레에 대한 명분과 방향성은 더욱 뛰어난 상법등에 조예가 깊은 분들을 임원으로 모셔서 그분들이 중지를 모아 이 소액주주운동을 이끌어 나가시는것이 옳지 않나 생각합니다.




----------------------------------------------------------------------


제28회 한겨레 주주총회 참관기!!!!“

한석현 글

<한국 언론의 현주소!!!> 2016. 3. 17


<한국 언론의 현주소!!!> 2016. 3. 17
 
“지난 3, 12, 효창공언 백범기념관에서 제28회 한겨레 주주총회가 열린다!”는 통지문을 받고 인찬에서 휠체어에 몸을 싣고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떠났다. 전철을 세 번 갈아타고 모적지l에 당도했다. 지난 겨울은 우리나라의 정치기상도 만큼이나 유난히 추운 혹한의 날씨가 잇따라 되도록 외출을 삼가해온 터였다. “꼭 참석하여 좋은 덕담을 들려달라!”는 면식 있는 한겨레 중견 간부의 청도 있어 “별 볼일없는 한겨레 창간주주의 하나이긴 하지만 한겨레 토론마당의 논객이요 직언(直言)파이기도 한만큼 노옹의 말을 귀담으려나 보다!” 라는 기대에 부풀어 미리 연설 원고문까지 준비해 갔던 것인데 “혹시나?”라는 기대는 ‘역시나!“로 끝나고 말았다.
 
간드려서는 안되는 아킬레스 건이라 여겨졌던지 어렵사리 마이크를 잡아 필자가 ‘부정선거’ 이야기 끝에 한영수 김필원의 억울한 옥살이 이야기에 이어 ‘조웅 목사 사건의 서두를 꺼내는 순간 “3분이 지났다!“면서 발언중이던 마이크를 빼앗는 무례를 저지르는 것이 아닌가?. ”달면 삼키고 쓰면 배앝는다!“더니 듣기 좋은 달콤한 말에는 시간을 더 많이 할애해 주는가 하면 회의 주재와 사회에 오락가락 행보를 이어가면서 정부 비판이나 질타 등 껄끄러운 주주 발언은 용케 가려내 견제구를 날리는 총회의 운영을 지켜보며 저들의 정서가 머문 곳이 어디인지가 일목요연해졌다. ”시간의 제약 때문에 만부득이 취한 조치라 니세우지만 그 변명을 곧이들을 이가 몇이나 될까? 임원 급여 한도액이 과도하게 채정되지 않았느냐?”는 지적에 대해 '전원이 사퇴할 경우에 대비했디!“는 사장의 답이 나온 것도 무엇인가 구린데가 다눈 언중유골의 말이랴 싶었다. 하는 일에 확신이 있는 사람들이 ”잔원 사퇴!“를 왜 꿈꾼다는 말인가?
 
원형이정으로 말하면 원로의 말이라면 부러 초청하여 소중하게 귀담아들어주어야 예법에 맞지 않을까?. 신앙인으로 하나님께 외람되지만 “조선일보보다 더 나뿐 놈들!” 이라는 고성이 나의 입에서 절로 터져나오고 말았다, 더 그곳에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을 것 같이 짐을 챙기고  자리를 뜨고 말았다 아마도 주주들 중에는 오만원 미만의 소액 주주도 있겠지만 시세 돈으로 환산하여 억대나 수천만원을 투자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반대급부 하나 바라지 않고 한겨레를 위해 봉사한 고마운 이들에게 일년에 한번 여는 주주총회에 점심 식사를 대학 학생식당에서 대접하는 암원진들을 뒤로 하고 총회장을 떠나고 말았다. 우리가 모든 이웃을 사랑하고 깍듯이 예우하는 것은 그것이 스스로를 위하고 대접하는 길이기 때문이 아닐까? 지기를 객관화하는 토대에서 인생을 관조해 볼때 우리가 모든 이웃에 어떻게 맛들여줄 것인지를 고민해야할 터인데 그리 데문데문 돌깍정이 짓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글세?
 
첨부 제28회 한겨레 주주총회에 불여! 연설문(보완)
 
 
28회 한겨레 주주총회에 붙여!!!(보완)“ 한석현 글
<창간정신 살려 민주문화 창달에 기여하라!> 2016. 3. 12
 
오늘 뜻깊은 28회 한겨레 주주총회에 즈음하여 한겨레 신문의 발전을 희구하고 지대한 관심을 가진 창간주주의 한 시람으로 고언을 드리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먼저 자기 소개의 말씀을 올립니다. 한석현입니다. 한겨레신문에 blog. hani. co. kr/ hsh012라는 불러그를 가진 한토마 논객이며 인터넷 신문 시사뷰타임스 오피니온 뉴스 컬럼기자이기도 합니다. 향년 여든 다섯. 신문사에 현재 200주의 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연부역강하여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야할 나이에 제제다사(濟濟多士)와 부레인 트러스트들이 즐비한 가운데 끼어들어 참견하려니 어쩐지 쑥스럽기도 하네요! 독재자의 딸 박근혜가 희대의 사기꾼 이명박의 버튼을 이어 받아 짝통 대통령 행세를 하며 민주주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는데도 한겨레가 사회 공기(公器)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아쉽게 생각하여 이에 채찍을 가하는 의미에서 몇마디 쓴소리를 하려고 합니다.
 
역사적인 주주총회에서 한겨레신문에게 드릴 첫 번째 당부의 말은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조선일보를 필두로 하는 족벌신문과 종편 채널 등이 뜻있는 나라 안맊의 양식인들에게 증오와 수원수구 대상이 돼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성찰하여 수치스러운 실패의 전철로 돌아가지 말라!“는 채근입니다.사람은 누구나 저잘난 맛에 산다지만 저기 필요성이 객관적 타당성을 인증받을 때만이 사람이 공신력과 진가를 인정받는 것이야 말로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진리임을 감안해볼 때 왜 "돈을 잃음은 작은 손실이지만  신용을 잃으면 모두를 잃는다!"고 말하는 이유룰 알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누구나 공감하는 바이려니와, 오늘날 대한민국은 편작의 의술로도 고침받기 어려운 불치 난치병에 걸려 있습니다. 그 원조정은 한국의 박근혜 일당의 정권찬탈로 빚어진 자업자득의 결과이지만 춘추 필봉을 휘둘러 권력 남용을 질타하고 감시 기능을 강하해야할 신문이 수행해야할 ‘제4부’로서의 역할과 언론 본연의 사명을 망각하고 권력이 던져주는 미끼에 코가 꿰어 그 장단에 춤추고 있다함이 많은 이들의 내리고 있는 한결같은 관전평입니다. 그 말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한갓 데마고그이거나 와전(訛傳)이기를 바랍니다.
 
편집 데스크나 경영 진들에게 묻습니다. 나는 한 인터넷 신문 칼럼기자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지난 대선이 박근혜가 이명박과 짜고 저지른 부정선거를 통해 정권을 찬탈한 정황을 포착하고 대선을 치른지 나흘만에 아고라에 ‘충격의 리포트! 박근혜 정권찬탈!’ 이라는 주제의 글을 올린 바 있습니다. 아무리 머리카락 안보이게 꼭꼭 숨기려 했겠지만  이 노기자의 후각에 걸려 마각이 드러나고 말았으니 밤말은 쥐가 듣고 낫말은 새가 듣는다!“는 말은 아주 정곡을 찌르는 화두인 성 싶습니다.
 
한겨레신문에 불러그를 가지고 있으면서  아고라에 글을 올렸던 것은 대선 직후 한토마가 까닭모르게 글을 올리는 절차를 바꿔 혼선이 빚어져서였지요. 후일 한토마 논객 하나가 아고라에 올렸던 필자의 글을  “한석현 목사의 글!“이라 한토마에 퍼나른 것을 재탕으로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 후 잠잠하던 정국이 약 반년만에 부정선거 항의 인파로 청계 광장에 수만명의 인파로 들끓었으니 나의 진단이 맞아떨어진 셈입니다. 하여간 그제까지 한겨레신문에서 부정선거에 관한 기사를 한줄도 읽은 기억이 없습니다. 어찌된 영문입니까?
 
민완 기자 등 수백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언론매체인 한겨레가 부정선거의  낌새를 전연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입니까? 아니면 인지하고서도 입을 닫아야할 어떤 불가항력의 환경적 요인이 제약 사유로 작용했던 것입니까? 부정선거로 이남종 열사가 분신 자살하고 춘몽선생이 목숨을 걸고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을 때, 그리고 검찰권을 바르게 행사하려던 채동욱 검찰총장이 황교안 법무와 부정 당선자 박근혜에게 찍혀 까닭 없이 직을 물러났을 때 한겨레는 무엇을 했으며 얼만큼 국민적 아품에 동참하여 이를 기획 취재하고 심층 보도하여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 주었는지 답변을 구합니다
 
부정선거 백서발간은 주권을 도둑맞은 민주시민이라면 누구나 결코 마다해서도 안되고 유보당할 수 없는 기본권에 속한 사항입니다. 선관위에 의해 집필자인 한영수 김필원 두 사람이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했으나 경찰조사 결과 혐의 없음이 벍혀졌습니다. 행위의 정당성이 입중된 셈이지요!. 그런 두 사람을 검찰이 무단 구속 기소하여 법원과 짜고 4년 징역을 선고한 것은 한국 법조계가 얼마나 자의적이며 썩어문드러졌는지를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여ㅕ지지 않습니까?. 항소심에서 양심적(?)인 판사에 의해 보석으로 풀려난 것을 상고심에서 뒤집으려다가 피고의 항변으로 집행이 유보된 사건은 참으로 큰 아이러니입니다.
 
묻겠습니다.힌영수 김필원 두사람이 박근혜 명예를 훼손한 것인데 슈퍼맨이어서 법의 온정으로 피고인들이 국가로부터 은전을 받고 있는 것입니까? 진실을 알린 한국의 의인들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있는 겨우인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한겨레는 왜 침묵을 지켰던 것입니까? 응당히 말해야할 사람이 침묵을 지키면 권력에 회유 당해 변절된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이치를 몰라서 이를 기획 퓌재 보도하지 않고  수수방관을 했던 것입니까?
 
박근혜가 사생활의 비밀을 폭로헸다는 이유로 조응 목사를 정죄한 사건은 권력이 인면수심의 파락호 정권임을 만천하에 드러내 보여준 상징적 사례라 해야지 않겠습니까?. 아프리카 티비와의 인터뷰 도중  80 고령의 조응 목사에게 두 사람의 수사을 보내어 마치 중죄인이기라도 하듯이 두손에 수갑을 채워 개처럼 끌어다 명예 훼손죄로 구속 기소하여 일년반 동안이나 옥고를 치르게 한 것으로도 모자라 아내와 이혼시키고 자식들과 연을 끊게 한 것은 인륜도덕상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패륜의 극치이며 민주 국가에서는 거의 상상을 초월하는 조폭 수준의 막가파적 행태의 적나라한 표현이였다고 하겠습니다.
 
박근혜의 광태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죄인 아닌 죄인이 돼 복역을 마치고 나온지 2년의 세월의 여과를 거쳤습니다. 현 시점까지도 도청, 미행, 감시, 게좌 추적, 전화 요금 위게 징수, 사업방해, 살인미수 등 말로 다할 수 없는 낭패와 곤혹을 안겨주는 박해가 계속중이라는 전갈입니다. 이것이 국민을 일시동인의 눈으로 바라보고  하늘처럼 받들어 뫼시고 섬겨야할 대통령이 자국민을 상대로 할 수 있는 일이며 응당히 베풀어야할 도리일 수가 있는 것입니까?.
 
“어떻게든 바근혜의 집권만은 막아야 한다!“며 조응 목사가 가다듬어지지 못한 박근혜의 사생활의 비밀을 폭로한 행위는 박근혜 리스크의 함정에 빠져 허우적대는 오늘의 각다분한 정정(政情)에 빗대어 보더라도 우국충정의 발로였음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나라의 주인이 머슴의 사생활의 비밀을 폭로한 것을 정죄하면서 민주주의를 참칭하는 나라라는 사실이 얼마나 오천만을 슬프게 하는 우리의 오늘인지요? 그렇듯 박해를 당하고 있을 때 한겨례는 그 핍박자들을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
 
 이 하나의 단위 사건만으로도 박근혜는 위턱 아래턱도 모르고 항열도 모르는 천방지축인데 아니 중대한 국헌문란 죄로 정죄돼 탄핵소추의 대상이 돼야 마땅하다고 생각됩니다. 민주주의를 어원적으로 헤석해 보더라도 국민은 주권자, 곧 나라의 주인이요 대통령 이하 각급 공무원이 공복자입니다. 그럴진대 황당함을 어찌 말로 다할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날 한국 사회에는 계층간 세대간 격차가 심화일로에 있습니다. 우파 정권이 1 퍼센트에 의한 오로지 1 퍼센트만을 위한 정치에 올인하여 부자(富者)들에게 경도(傾倒)-치우치는 정치를 함으로써 빚어진 현상이지만 “명분이 밥먹여주냐?”며 조선일보 등이 올인해온 정통성 없는 유신정권과의 권언유착의 결과라는데 모두가 공감하는 분위기입니다.
 
이 자리에서 한겨레 가족에게 드릴 당부의 말이 있습니다. 송건호 선생의 창간정신으로 굳건히 무장해 부정한 권력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이를 물리침으로서만이 한국 사회에서 공신력을 확고히 인증받을 것이라는 점인 것입니다. 돈이 죽을 때 가져가는 것입니까?. 한국인들이여! 돈 너무 좋아하지 말고 권력에 너무 취하지 마십시오!.사람은 한번 먹은 마음 변치 않는 민들레 마음으로 살아 갈 때 비로소 생명력을 가지는 법이며 어쩌다 한번 변절한 인간은 살아 있으나 죽은거와 아무 진배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한겨레 가족들이 본받아야 할 덕목은 “유교의 선비 정신”과 기독교의 성결 정신의 접목“이라 생각합니다. 이를 본받아 행하는 일의 중요성은 아무리 되풀이되는 강조로도 도리어 모자라다고 봅니다, 유신과 결착하여 광화문에 고층빌딩을 세운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그렇게 부럽습니까? 독재자 아버지로부터 하늘만큼 땅만큼 많은 장물을 물랴받은 박근혜가 부럽습니까? 내가 만약 전직 데통령이라면 현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겠습니다.
 
서민 아파트에 살면서 모든 국민으로부터 사랑받고 존경받는 전지 대통령으로 남고 싶습니다.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불후의 명작이 누구의 손으로 쓰여진다고 믿으십니까? 헐벗고 굶주리고 죽음의 고비를 수없이 많이 넘긴 사람들의 손으로 쓰여진다는 사실 인식의 바탕위에서 황금 만능과 배금주의에 함몰되지 말고 고차원의 세계을 넘겨다 보도록 권유를 드리면서 저의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한석현 목사의 글




출처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