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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한달, 아직도 뒤숭숭해요
게시물ID : freeboard_155544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미스도서관
추천 : 1
조회수 : 256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7/05/25 14:10:12
많이 깁니다.
일기장처럼, 회고록처럼 쓰인 글입니다.

제 생애 첫 이사를 한지 한달만에, 옛집에 대한 글을 남겨봅니다.

1996년. 외조부모님 댁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습니다.
단독주택이었고, 맨처음엔 마당위로 포도 덩굴이 자라던 집이었습니다.
작지 않은 동네의 큰 놀이터가 보이는 집입니다.
거실 창이 커서 거실에서 멍때리고 있을때가 많았던 집입니다.
명절 때, 김장할 때 모든 친척들이 모여 함께 할 수 있었던 집입니다.

초등학교부터 모든 학교를 그 집에서 다녔습니다.
지하셋방에 홀로 계셨던 할머님과 잘 놀기도 하고, 
옆 셋방에 이사왔던 동급생과는 친구가 되기도 했죠.
할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친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시장에서 만두가게를 하시던 할머니와 만두피 뽑는 일을 하셨던 할아버지.
두분 다 제가 대학교 재학할 때 돌아가셨습니다.
묘에 모시기 전 집에 들를때의 느낌이 참 어렵더라구요.
나도 이집을 마지막으로 들를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외조부모님께서 많이 아프시다가 가셨어요.
집안 사람들도 많이 힘들어했지만, 어머니께서 제일 힘들어하셨고.
많이 우셨죠.

초등학교 저학년 때 포도 나무때문에 벌레가 많이 생기는 것 같다는 이야기에,
둘째 외삼촌께서 감나무를 가져오셨어요.
납작한 감이 열리는 그 감나무는 작년에도 많은 결실을 맺었습니다.
올해도 많이 열릴텐데.. 그 감을 다시 볼 수 있을지..

10년전, 우리 동네는 재개발 사업에 들어갔어요.
많은 웃돈을 줄테니 본인에게 팔아달라는 부동산 아줌마들도 많았죠.
동네 가운데쯤 위치한 우리집이 유독 그랬구요.
하지만 할머님은 본인이 돈벌어 처음 사셨던 그 집을,
아들들과 딸을 키우고 결혼시켰던 그 집을 팔지 않으셨습니다.
작년말, 10년 이상의 재개발 지연이 문제가 되자
재개발회사에서 갑자기 속도를 내더라구요.
보상금이 적어졌지만, 큰 사업을 막기에 작은 서민들은 역부족이었죠.
할머님 명의로 되어있던 집이 삼촌들과 엄마의 공동명의로 바뀌고
올해 7월까지 이사를 하라는 공문이 집집마다 날라졌습니다.
동네에 매일 이사차들이 다니고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에 우리집도 포함되게 되었죠.
저번달 25일. 처음으로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족에겐 돈이 없어서 보상금이 고스란히 전세자금으로 들어갔거든요.
빚내지 않고 집을 얻은 것만으로도 다행인걸까요.

20년을 넘게 살았던 그 집을 떠나는 날.
이사하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너무 씁쓸했습니다.
저는 우리 동네가 너무 좋았거든요.
집집마다 심어져 있는 온갖 나무들이 계절을 알려줬고,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동심을 다시 깨닫기도 하고,
놀이터에 심어져있는, 제가 동네에 오기 전부터 있던 그 큰 나무들이 아름답기도 했습니다.
놀이터는 모래밭에서 벽돌길로 바뀌었지만,
도둑놀이를 하고 놀던 미끄럼틀도, 둘이 함께 타던 그네도 바뀌었지만,
저는 우리동네가 너무 좋았어요.
라일락 향기가 은은했고, 고양이들이 귀여운 동네.

첫째 동생과 친구여서, 엄마들끼리도 친했던 옆집도 금방 이사를 했다고 합니다.
엄마들이 다시 집에 함께 보여 하하호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요즘 조금 우울합니다.
이사를 그렇게 급하게 하고, 정든 집이 더이상 우리집이 아니게 되었으니..
재개발하는 거 너무 싫습니다.
우리 동네에 살고 계시는 주민분들, 최소 20년은 사신 분들인데..
대기업 브랜드 아파트.
그게 뭐 그리 중요한걸까요.
물론 지역이 발전되는 것은 좋지만, 굳이 사람들이 잘 살고 있는 지역을 해야하는지 의문이에요.

어렵네요.
어른들의 사정이라는 것은..

이사한 집은 2년이라는 기한이 정해져 있어서.. 정이 안갈것같아요.
감나무.. 할머니 할아버지 선산에 심고 싶은데..
재개발이 시작되면, 매일 아침 지저귀던 참새들은,
야옹거리며 재잘거리던 동네 고양이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요.

안녕. 우리집.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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