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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책25 - 당신의 파라다이스 / 임재희 / 나무옆의자
게시물ID : readers_135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좋아헤
추천 : 0
조회수 : 25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6/15 18:45:59

출판일 13.05.30
읽은날 14.06.15

33p.
"정말 원하는 게 뭐니?"
내가 물었다. 내 말에 나영은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였다.
"왜?"
"그냥,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 둘 다 함께 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말꼬리를 흐렸다. 뭔가 순간적으로 내가 책임질 수 없는 말을 던진 기분이 들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나영이 물었다. 나는 잠시 혼란스러워서 대답 대신 침묵했다.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야. 그건 알고 있지?"
나영이 침묵을 깨고 말했다. 나는 얼른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창석에게 물을 수는 없는 것이니까."
나영이 한마디를 덧붙이자 모든 게 분명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그게 무슨 뜻이야?"
"네가, 바로 네 입으로 해야 가장 어울릴 말이야. 우리 네 사람의 운명을 손에 쥐고 있는 사람은 너야."
나영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너무도 당당한 눈빛이었다. 나는 숨이 막혔다.

131p.
"난 정말 행복해, 그리고 감사해, 너한테."
나영은 그 말을 들려주기 위해 내게 온 사람처럼 말했다. 왜 나한테 그런 말을 하냐고 물으려다 말았다. 그녀의 말이 묘하게 불쾌했다. 하지만 그게 내가 예민해서인지, 아니면 정말 누가 들어도 불쾌한 표현이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처음부터 나는 그녀가 자신의 몫으로 정해진 행복을 누린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한 번도 그녀의 행복에 질투를 느껴본 적이 없다고 스스로 위로하고 있었다.

256p.
"마나마나리마."
여자가 자신의 손가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마나, 마나리나..."
여자의 말을 따라하는 것이 힘든지 그가 자꾸 틀렸다. 그런 모습이 우스운지 여자가 다시 해보라고 재촉했다. 창석이 머리를 긁적이며 몇 번 더 따라하더니 마침내 "마나마나리마"라고 크게 말했다. 여자가 그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볼에 키스를 했다. 어린아이처럼 즐거운 표정이었다. 나는 창석의 잡 앞에 앉아 하와이 원주민 여자가 새로운 말을 할 때마다 따라하는 그의 목소리르 들었다. 하나도 변하지 않은 목소리였다.
"마카."
여자가 그의 눈을 가리키며 말했다. 작게 속삭이듯, 그는 너무 쉽다는 듯 큰소리로 "마, 카"라고 말하며 여자의 눈을 손으로 만졌다.
행복에 겨운 여자의 웃음소리가 내 귀를 울렸다.

292p.
"마할로 누이, 마할로 누이..."
창석은 그것이 '매우 고맙다'라는 뜻임을 라니에게 배워 알고 있었다. 고맙다니. 창석은 라니의 말을 묵묵히 되씹었다. 그 말을 해야 할 사람은 나인데... 창석은 라니의 손을 그러쥐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손가락 끝이 뭉툭한, 작은 공 같은 것이 손 안에 꼭 들어찼다. 그녀는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의식을 놓지 않으려 자꾸 눈을 부릅떴다.
"따뜻해."
그는 라니의 식어가는 손을 잡으며 말했다. 살아서 인간의 따스한 체온이 제 살에 닿는 건 이것이 마지막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그녀가 가장 평온해 보이는 눈으로 창석을 바라보더니 이내 영원히 눈을 감았다. 창석은 물소리 가득한 방에서 그녀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318p.
그가 허탈하게 웃으며 털썩 주저앉았다.
"같은 방에서 자다니, 바보 같은 짓이야."
그는 실성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벽에 머리를 툭툭 찧었다.
"이 몹쓸 병에 걸려도, 이 방 안에 홀로 있는 밤이면 당신이 생각나 쩔쩔맸소. 내 몸은 썩어가는데, 당신을 그리는 마음은 아직도 성한 것이 믿어지지 않았지. 당신을 만져보고 싶었고. 아,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내 몸에서 가장 만져보고 싶은 곳이 어디에요?"
강희의 뜬금없는 말에 창석이 허탈하게 웃었다. 그러더니 그는 이내 웃음을 거두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머리카락."
말을 배우는 어린아이처럼, 오래전부터 대답을 준비해온 사람처럼 그가 또박또박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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