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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NAVIGATOR<항해자> -Egoist-
게시물ID : readers_2852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르네
추천 : 0
조회수 : 25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5/29 17:3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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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의 외계생명체들로 부터 드디어 연락이 도착한 듯합니다지금부터 페트라 셰이드코랄행성 대()외계문명 통상위원회 위원장 스타로드 공화국 항공부 장관이 직접 회견장으로 온다고 합니다셰이드 위원장은 회견장에서 외계문명의 메시지를 발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무미건조한 눈동자를 굴리며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보던 중 고개를 돌려 창밖의 황량한 대지를 바라봤다.황량하다사막에 가깝다코랄행성은 사막에 먹혀가고 있었다이곳도 불과 몇 년 전엔 번화하진 않았어도 스타로드 수도 외곽의 그럭저럭 살만한 마을이었다.

 창밖으로 바로 보이는 집채만 하고 뾰족하게 솟은 붉은 돌은 관광자원으로써 꽤나 명물이었다일명날지 않는 부유석으로 흔히 이 행성에서 항공기나 비공정 등에 쓰이는 그 부유석이다다만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땅속에 박힌 이 돌을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 엄두가 안 낫기 때문에 현재까지 땅에 처박힌 그대로인 것이다그러다 이 돌을 유인 우주선을 만든다고 셰이드 장관이 발표한 게 이 년 전쯤이던가 일 년 반쯤 전이던가.

 명분은 사막화였다원인을 알 수 없는 사막화로 수십 년 뒤면 인류는 더 에상 이 행성에서 살아가기 힘들 것이다그래서 유인 우주선에 식량과 사람을 실어 가까운 행성으로 이주한다는 계획인 것이다.
 글쎄페트라 셰이드 장관그녀는 딱히 도덕적인 사람이 아니었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 몰라도 스타로드 공화국 국민들 정도라면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때문에 세간에는 그냥 멸망 전에 크게 한탕 해먹으려는 게 아니냐는 소문도 나돌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주로 내보냈던 탐사선에 의해 외계문명이 존재하는 것이 확인됐고 이번엔 그 외계문명으로 부터 메세지가 도착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런 단기간에 탐사선을 확인하고 행성의 위치와 언어까지 파악해서 메시지를 보내온 높은 수준의 외계문명에게 인류는 일말의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멸망직전의 행성을 구해주지 않을까 하고.

 그리고 여기 황량한 마을이제는 마을이라 부를 수도 없지만수도 변두리의 작은 오두막에서 무미건조한 눈으로 텔레비전을 바라보는 남자 또한 같은 마음이었다.

 남자로 말할 것 같으면 전직 대학생 신분으로 외계인 신봉자로 줄 곧 외계인은 있다고 주장했고 외계 탐사용 무인 우주선이 만들어지기 직전 '외계인은 없다쪽 학자와 토론 중에 일관되게 자신을 외계인이나 좋아하는 어린애 취급 하는 상대방에게 주먹을 날린 뒤 퇴학법원에서는 근신 처분을 받아 원래 살던 오두막으로 돌아와 지금까지 처박혀 있었다근신처분은 이미 오래 전에 풀렸지만 다시 학교에 가는 것도 부담이고 진짜 외계인의 등장으로 그가 운영하던 블로그가 순풍을 타서 돈 걱정도 어느 정도 덜었기에 이런 상태인 것이다.
 
 그래서.

 외계 문명은 어떤 메시지를 보내왔을라나.
 행성의 상태가 멀쩡했다면 침략론이 득세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지금 행성의 상황은 그렇지 않기에 딱히 써먹을 것도 없는 행성을 뭣 하러 침략하겠냐는 게 여론 이였다.
합리적이다가만히 냅둬도 망하는 행성.

 혹시 모르지행성 사람들을 노예로 쓰려고 침략할지도항상 세상만사라는 것이 합리적이고 필연적으로 이루어져 왔었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이미 이 행성에서 노예제도 같은 건 역사서에서 조차 한 줄 짤막하게 나오고 마는 수준으로 상식으로 부터 동떨어진 것이지만저 외계문명 또한 같을 거라 생각하긴 어렵다.

 그저사람들은 행성을 구해줄 구세주를 갈망하고 있는 것뿐이다.

 "친애하는 스타로드의 그리고 코랄의 주민 여러분."

 텔레비전에서 남자도 몇 번 들어본 셰이드 장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폐한 사막으로부터 고개를 돌려 텔레비전을 바라봤다.

 "늙지도 않으시는구만."

 페트라 셰이드 장관은 파란색 제복위로 여느 때처럼 약간의 웨이브를 준 오렌지 색 머리를 늘어뜨린 채 무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했다.

 백옥 같은 얼굴에는 주름조차 없었다.

 마흔이 넘은 아줌마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하지만 행성민 들에겐 이런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바로 그녀가 지금부터 말하려는 메시지.
외계문명으로 부터의 메시지였다.

 "지금 부터우리 측이 쏘아 올린 탐사위성을 통해 전달받은 외계문명 측 메시지에 대한 발표가 있겠습니다본래이 메시지는 통상위원회에서 먼저 면밀한 분석을 한 뒤 세간에 공표하려 하였으나 사안의 중차대함이 행성 전체의 전 행성민의 삶에 직접적이고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끼치는 문제여서 이렇게 급히 회견을 갖게 되었습니다이 점 전 행성민 여러분께 양해를 구하는 부분이며 바로 메시지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까지 말한 셰이드는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훔쳤다.

 무슨 일이 일어난다아마 남자뿐만 아니라 이 방송을 시청중인 행성민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것이다그 무표정한 셰이드 장관이 긴장하고 있음을 느낀 것이다.

 "외계문명에서 보내온 메시지에 의하면 내일 오전 11시 경우리 행성을 '처분'할 예정이라고 합니다이유는 메시지에 밝혀져 있지 않으며 대 행성 파괴무기로 신속하게 처리해 행성민들이 고통에 시달리지 않게 해주겠다고 합니다." 셰이드 장관은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외계문명 측의 메시지에 오류가 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혹여메시지의 내용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어째서인지 이유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또한현재 상황을 타개할 방안 역시 없습니다다만행성민 여러분께서는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르는 오늘을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즐겨주시길 바랍니다마지막으로 현시각부로 통사위원회 전 위원들은 사퇴 합니다."

 셰이드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회견장이 술렁였다.

 "저기..."

 모두가 소란스러워져 가는 회견장에서 젊은 기자가 손을 들었다.
 
 "질문하시죠."

 여전히 무표정한 셰이드 장관은 젊은 기자를 바라봤다.

 "혹시현 상황에 대한 정부의 대책을 아시는지 아신다면 어떤 대책이 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리 정부는 내일까지 개그 프로그램을 방영할 예정입니다."

 뭔 소리지이게.

 만약 현장의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게 목표였다면 대성공이었다.

 띵동!

 텔레비전에 집중하던 남자는 곧 띵동 하는 소리가 자신의 집에서 났다는 것을 깨닫고 현관으로 향했다.

 "누구세.."
 "안녕!"
 "페티구나무슨 일이야잘 지냈어?"

 현관 벨을 누른 건 남자의 소꿉친구인 페트리샤 셰이드였다이름에서 알 수 있듯 셰이드 장관의 딸이다.

 강골에 장신이라 잘생겼다는 느낌의 커리어우먼인 페트라 장관과 다르게 좀 여리여리 하고 귀여운 느낌의 단발머리 미소녀였다아니이제 이십대에 들어섰으니 미소녀 보다는 미인이나 미녀라는 표현이 평범하게 어울릴지도 모르겠다다만오렌지색 머리와 뚜렷한 이목구비는 역시 페트라 장관의 그것을 닮았다.

 "페리 오빠야 말로 잘 지냈어?"
 "그럭저럭들어와."

 페리는 방에서 흘러나오는 텔레비전 소리를 듣고 말미에 덧붙였다.

 "마침 아주머니 기자회견을 보고 있었거든."
 "그래나도 엄마가 오빠네 집에 가보라고 해서 온 거거든."

 이미 현관에서부터 은연중에 페트라 장관이 보낸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

 창밖의 부유석을 깨우려는 거다.

 “그렇군저녁 먹었어난 지금 먹으려는 데.”
 “그럼나도!”
 “오케이.”

 원래부터 부유석을 활성화 시키려면 유전적으로 활성인자를 가진 사람의 힘이 필요하다그리고 셰이드 가()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상급 활성인자를 가진 집안이었다

 어쨌거나페티가 왔다는 건 유인우주선의 개발이 완료됐다는 것이고 방금 방송에서 이것에 관한 얘기가 없었다는 건 아마도 유인 우주선을 비밀리에 선택된 사람들만을 태우고 코랄을 떠날 거라는 것이었다.
 
 뭐일단은 선택받은 쪽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하나.

 “자 변변찮은 거지만 맛있게 먹어.”

 페리는 탁자 위에 스프와 빵 그리고 달걀튀김을 차렸다.

 “아냐맛있어 보이는데!”

 페티는 활짝 웃어 보이면서 달걀튀김을 반으로 갈랐다약간 덜 익은 노른자가 흘러내리는 튀김을 그대로 포크로 찍어 스프에 담갔다가 한입 베어 물었다.

 앗뜻드!

 “하하하조심해방금 튀긴 거니까.”
 “빨리 좀 말해주지!”
 “미안해~”

 페리는 사과하면서 스프를 한입 먹었다꽤나 괜찮은 수준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죽든 살든 내일 저녁엔 느낄 수 없는 맛일 것이다.

 “아주머니가 말이야코랄을 뜨려고 하시는 것 같아.”
 “에에?”

 페티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그래서 피리오빠한테 가보라고 한 거구나그럼..”
 “아마도 저걸 쓰려는 거겠지.”

 둘은 창밖의 붉은 돌로 눈길을 돌렸다.

 “어둠()이 오고 있네.”

 페티가 황량한 사막에서 점점 세력을 잃어가는 빛을 바라보며 말했다.

 “따르르릉!”
 “히익깜짝이야.”
 “하하..”

 페리는 텔레비전 옆으로 걸어가서 전화기를 받았다.

 “여보세요.”
 “페티는 도착했니페릭스.”

 페트라 장관이었다.

 “지금 밥 먹고 있어요.”

 페리는 페티를 바라보고 손짓으로 통화상대가 페트라 장관임을 알렸다.

 “내가 왜 그쪽으로 페티를 보냈는지는 알고 있겠지?”
 “우주선이 완성 된 거군요.”
 “맞아. 10명 정도 밖에는 실을 수 없지만.”

 10?!

 “그 부유석을 쓰려는 게 아니었나요?”

 10명이라면 선택이니 운운할 수준이 아니었다장관은 자신의 권한과 정보를 이용해 필요한 인원만을 태우고 행성에서 도주하려는 속셈인 것이다게다가 이미 완성됐다면 거의 설계 단계부터 이런 상황을 염두 해뒀다는 것이 된다

 “맞아그 부유석을 쓸 거야그런데 역시 그 부유석은 너무 크지그래서 나온 게 부유석을 축소시키는 방법정확히는 압축시키는 방법이지뭐 자세한 건 내일 아침 일찍 이쪽으로 와 얘기해주지조바심에 말하는 거지만 늦어선 안 돼어둠이 지나가고 해가 뜰 때쯤엔 코랄 밖으로 나가야 하니까.”

 “알겠습니다저도 조바심에 하나 물어도 될까요?”

 “절 선택하신 이유가 뭐죠?”

 간단한 의문이었다행성 밖으로 우주선을 쏘기 위해선 부유석을 다루는 사람과 뛰어난 조종사 정도만 있어도 된다페르라 장관이 정이 넘치는 사람인 것도 아니니 합리적인 무언가가 아니라면 페릭스를 선택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필요하니까페릭스 너도 알잖아네 토론회 이후에도 이전에도 이 행성에서 외계에 대한 연구는 주류가 아니었어나는 사람이 살 수 있는 행성을 찾을 거야.”

 페릭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블로그에 기고된 글들을 보면 넌 아직도 자체적으로 연구를 하고 있나 보더군이것도 원래는 내일 만나서 얘기하려고 했던 건데 말이지난 자네가 우리 배의 항해사 직을 맡아주길 원해.”
미쳤다미쳤어.

 “그럼 여기까지전화로 중요한 얘기를 하는 건 별로거든 도청당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고어쨌든내일 늦지 않도록.” 

 여기까지 말한 페트라는 전화를 끊었다.

 “뭐래?”

 페릭스가 수화기를 놓자마자 페티가 물어왔다.

 “해가 뜰 때쯤은 출발할거래오늘은 좀 일찍 자야겠는데.”
 “대단하네.”
 “뭐가?”
 “그냥엄마도 페리 오빠도.”

 페티는 약간은 진심이 담긴 우수가 서린 미소를 지어보였다.

 “페티넌 어떻게 생각해아마 내일 코랄을 떠날 인원은 10명 정도라는 것 같은데.”
 “잘 모르겠어.”
 “그래.”

 페릭스는 별다른 표정을 짓지는 않았다더 이상 묻지도 않았다그저 자리로 돌아와 식사를 계속할 따름이었다.
 
 “커피 마실래?”

 식사를 끝마치고 식기를 정리하면서 페릭스가 물었다.
 
 “아니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

 “혼자서 괜찮겠어어둠이 짙을 것 같은데.”

 코랄 행성엔 달이 없다그렇다고 별 빛이 들어오지도 않는다다른 행성을 관찰하는 것도 아침에만 가능할 뿐밤이 되면 하늘 위에는 거대하고 공허하고 깊이조차 알 수 없는 어둠만이 있을 뿐이다
지상도 당연히 빛이 나오는 도시지역을 제외하면 어둠에 휩싸인다이곳 같은 황무지는 말할 것도 없이 컴컴하다때문에 말할 것도 없이 위험하다.

 허리 높이도 안 되는 내천에 빠져 익사하는 경우도 생기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중상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괜찮아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오두막 불빛도 있으니까.”

 페티가 웃으며 대답했다.

 “잠깐만랜턴 찾아줄게.”
 “고마워.”
 “별말씀을.”

 페릭스는 부엌 찬장에서 랜턴을 꺼내서 외투를 걸치고 현관 앞에 있는 페티에게 걸어갔다.

 “여기 랜턴.”

 페티의 넘어 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혼자 가겠다고는 말했지만역시 따라 나서야 할 것 같았다안된다고 하면 뒤라도 밟는 수밖에걱정 되서 가만히 있기는 힘들 것 같다.

 “저기오빠.”
 “.”
 “역시 같이 가줄래?”

 아무래도 뒤를 밟을 필요는 없는 모양이다.

 “물론.”

 이윽고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인 황무지에서 사박사박하고 모래를 밟는 두 사람의 발소리가 울려퍼졌다.

 “가보려는 거지붉은 돌에.”
 “.”

 페릭스는 앞장서서 붉은 돌을 향해 걸었다자신의 등에 바짝 붙어 걷는 페티의 기척을 느끼면서도 순간순간 없어지지 않을까 확인했다.

 솔직히 위험한 건 없다페릭스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길이다.

 하지만 코랄의 밤이란 것은 코랄인 들에겐 마치 살아있는 괴물 같은 느낌이었다스타로드 공화국에는 밤은 사람을 먹고 산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

 페티의 비명소리에 페릭스는 바로 뒤를 돌아봤다.

 "무슨 일이야?!"

 "아니,아니갑자기 바람이 불어서치마가헤헤."

 밤의 바람은 아래에서 위로 부는 경우도 있다그래서 보통 밤에 치마를 입고 외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애초에 밤에 외출하는 사람 자체가 거의 없지만.

 페릭스는 페티의 손을 잡고 다시 걸었다.

 "도착한 것 같네."
 "뭔가 생각 보다 빨리 도착했네오빠네 집 올 때 봤을 땐 거리가 좀 되 보였는데."
 "밤에는 발이 가벼우니까."
 "그렇네히히."

 하늘의 어둠이 중력을 약하게 만든다는 건 우주학 쪽 사람들 사이에선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이야기다.다만이런 현상은 과거부터 있어왔던 것 이였기에 밤에는 발이 빨라진다던 가 운동을 해도 많이 지치지 않는다던가 하는 정도는 우주학자가 아니더라도 흔히들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이게 붉은 돌이구나."

 페티가 돌에 손을 얹자 은은한 붉은 빛이 돌 전체에 퍼져나갔다인자를 가진 사람에게 부유석이 반응하는 것이다.

 다만밤에는 부유석이 뜨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 더 활성화 되도 빛이 나는 것 외에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내일떠나는 거지?"
 "그렇지."

 붉은 빛으로 돌의 주변만 시야가 트인 상태에서 페티가 페릭스를 올려다봤다.

 "괜찮은 걸까우리만 떠나도."

 이것은 페릭스가 페티에게 했던 질문의 연장선이었다.

 "고민 돼?"
 "당연하지~"

 멀리서 부터 바람이 불었다선선한 바람이었다.

 "어쩔 수 없어인생은 동화가 아니니까." 딱히 남는 사람들에게 매정하게 구려는 것이 아니다페트라 장관도 자신도 인류의 존속을 위해 할 일을 하려는 것이다거기에 이기심이 포함되지 않았냐면 그건 또 아니지만이기심만으로 실행된 것은 아니다누군 코랄 인류의 보전을 위해 해야 할 일이다. "그러니까난 네가 살아줬으면 좋겠어페티."

 "역시 모르겠어하지만 고마워."

 공기는 어느새 싸늘해졌다.

 "그래슬슬 들어갈까."
 "...?!"

 페티가 깜짝 놀라며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그렇다.

 지금 페릭스의 눈에는 페티의 손이 보였다페릭스에게 갑자기 어둠속에서 물체를 구분하는 능력이 생긴 것이 아니다생긴 것은 빛이었다바닥에서 솟은 빛은 지면의 곡선을 따라 세력을 넓혀갔다.

 “운이 좋네.”
 “저게 뭔지 알아?”
 “저건 지하수야.” 페릭스가 미소를 지으며 설명을 계속 이었다. “아주 가끔씩 이지만 비가 내리고 난 뒤엔 지하수가 어둠에 이끌려 모래 밖으로 나올 때가 있어그리고 지하수에 사는 우림이라는 미생물이 어둠을 만나게 되면 빛을 낸다나봐자세한건 내가 생물학을 배워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오오...신기하네.”
  


 어둠이 가시기 시작할 시간 햇빛이 대지에서 세력을 넓히려 할 때 쯤 페릭스는 오두막집을 나왔다
해가 얼굴을 내미는 곳으로부터 바람이라고 할까 공기의 파도 같은 것이 밀려왔다이것은 코랄 행성 고유의 현상으로 말로 설명하긴 힘들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물속에서 숨을 쉬면서 약한 유속을 느끼는 것과 같다.

 “지금 가는 거야?”

 집을 나서는 페릭스의 등 뒤에서 페티가 말했다.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 같네오늘은.”
 “그럼나도 슬슬 부유석을 활성화 시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네.”

 페티가 웃으며 말했다컨디션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이 상태라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우주선을 띄울 수 있을 것이다.

 “부탁해라고 말하고 싶지만 오히려 내가 걱정이네잘 해낼 수 있을지...”
 “히히페리 오빠는 하면 되는 사람이니까 다 잘 될 거라고 생각해!”
 “고마워.” 마음 한 쪽이 약간은 편해진 기분이었다페릭스는 숨을 들이쉬며 발걸음을 땠다. “그럼다녀올게.”
 “다녀와!”
 


 잘난 듯이 말하고 집을 나섰지만 앞으로 어떤 전개가 펼쳐질지 머릿속에 그림조차 그려지질 않았다.
 
 뭐어떻게든 되겠지아주머니가 생각한 일이니까.

 항공부 청사는 이름 대로라고 할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우뚝 솟아있었다꼭대기 층이 분명 장관 집무실이었지만

 “도착했군.”

 항공부 청사의 장관 집무실이 아닌 실내 공원에서 페트라와 페릭스가 만났다.

 항공부 장관인 페트라가 청사 밖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도 민간인 신분인 페릭스가 장관을 면담하는 것도 수상쩍기에 청사 내부 민간인 출입이 가능한 구내식당과 공원 두 곳 중 사람이 적은 공원이 접촉 장소로 알맞았다

 “한산하더군요.”
 “당연하겠지당장 오늘 인류가 멸망하니까 말이야.”

 오랜 교육의 성과인지 치안 당국의 적절한 대처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단지 우연인지폭동이나 혼란은 없었다다만행성 전체가 침체된 분위기였다.

 안 믿겨 지는 것일까.

 “안 믿겨 지네요듣지도 보지도 못한 외계 문명이 저 멀리서 하루아침에 우리 행성을 부숴버리겠다느니.그것도 우주 탐사선을 쏘아 올린 지 얼마나 지났다고..”
 “안타깝게도 거짓말이 아냐.” 페트라는 현실을 부정해보려는 페릭스가 귀여워 보였는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번 탐사그리고 외계문명과의 접촉으로 얻은 것도 있어.”
 “?!”
 “첫 번째는 시차야이건 단순히 코랄을 벗어난 이후부터 탐사선이 보내온 시간과 코랄 시간이 점점 벌어지는 걸 보고 어느 정도 알 수 있었어.”
 “하지만 그건,”
 “맞아단순한 탐사선 쪽 오류일 수도 있겠지하지만.”

 페트라는 페릭스의 말을 멈추고 정말로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외계문명의 통신에 있었거든 우리의 시간과 자기들의 시간을 분명히 나누는 부분이그리고 이건 바로 두 번째 발견으로 이어지지바로 어둠이야.”

 어둠밤이 되면 행성의 빛을 삼켜버리는 무언가.

 “어둠이라외계 문명과의 접촉으로 어둠에 대한 정보를 얻다니 신기하군요.”
 “그렇지시간이 없으니 결론만 말하자면부유석이 뜨는 이유알고 있어?”
 “아뇨.”
 “그것도 최근에야 밝혀진 사실이지만부유석은 나나 페티 같은 인자 보유자에 의해 활성화 되면 그 순간부터 마이너스 질량을 갖게 된다는 걸 알게 됐어.”
 “마이너스 질량이라면.”
 “맞아밀면 다가오고 당기면 튕겨져 나가는 거지그렇다면 밤에 부유석이 작동하지 않는 것도 당연히.”
 “어둠 때문이군요.”
 “그 말대로.”

 페릭스는 등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밤에 부유석이 작동하지 않는 게 하늘을 가득 채운 어둠 때문이라면그렇다면.

 “코랄은 정말로 어둠에 먹히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군요.”
 “아니면이미 어둠 속일지도 모르지.”

 페트라는 미소를 지은 채 턱을 매만지며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얘기는 여기까지.”

 페트라가 내민 손에는 열쇠가 있었다.

 “열쇠?”
 “건너편 건물 옆에 공용주차장이 있을 거야그리고 트럭이 한 대 있어그걸 몰고 조종사 둘을 구해서 부유석이 있는 곳으로 가줘그럼 그 다음 일은 부유석이 해결해 줄 거야.”
 “설마조종사가 아직 없는 건가요?!”
 “항해사는 너니까 우주 항해에 괜찮은 조종사를 잘 골라줬으면 해항공부 파일럿 아카이브를 잠금 해제 시켜뒀으니까생각보다 어렵진 않을 거야.”
 “일찍 부르신 이유가 이거였군요.”
 “그렇지그럼 나도 할 일이 있으니 이만페티를 잘 부탁하지.”

 페트라 장관은 원래 가던 길을 가는 것처럼 깔끔한 움직임으로 페릭스를 지나쳐 실내 공원을 나갔다.
청사를 나온 페릭스는 주차장으로 향했다그리고 확실히 페트라의 말대로 공용 주차장에는 거대한 트럭이 하나 있었다

 저기 우주선이 들어 있다는 건가좀 믿기지 않는데..

 굳이 열어보진 않는다.

 페릭스는 그대로 운전대를 잡고 출발했다.

 “클로버항공부 파일럿 아카이브에 접속해줘.”
 “접속 완료했습니다.”

 페릭스의 손목시계에 내장된 인공지능이 원래라면 보안 인증이 필요했을 아카이브에 접속되었음을 알렸다.

 진짜 막 나가시는구만.

 “검색해줘고고도항공기 운용 경험자수도시내 거주자부부나 형제자매 파일럿.”
 “확인 했습니다검색을 시작합니다.”

 모든 보안시스템이 해제된 아카이브를 민간 인공지능이 탐색하기 시작했다페트라로서도 꽤 위험부담이 따르는 일이 아니었을까 하고 페릭스는 생각했다하지만,

 뭐완벽함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니 오히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제대로 된 탈출을 해보겠다는 건가.

 “검색완료요청하신 검색 내용에 완전히 부합하는 대상은 없습니다만 남매 파일럿이라면 한 쌍이 시내에 존재합니다.”
 “좋아네비게이션 가능하지.”
 “대상 위치 탐색 완료위치정보기반 서비스를 시행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있을까 싶었는데 있었다.

 늦진 않겠군.

 페릭스는 목적지에 도착했다평범한 빌라였다차에서 내려 지체 없이 벨을 눌렀다초인종이 경쾌하게 울리고 난 수 초 뒤 벨 옆의 화면에 사람의 얼굴이 나타났다.

 “누구세요~?”

 젊은 여성의 얼굴이었다나이는 이십대 초중반 쯤 일까붉은 단발머리가 인상적이었다.

 그런데붉은 머리라니나제르인 인가나제르인들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던데아니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

 “항공부에서 나왔습니다.” 
 “아하~”
 “누구야?”

 화면 저편에서 제3자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남자의 목소리오빠 쪽일까오빠 쪽 이었으면 좋겠다혹시 모르지 않는가종말의 날에 오빠를 쫓아내고 남자를 불러서 한창 즐기고 있던 중일지도.

 그러면 오빠 쪽은 뭘 하고 있냐고그런 이야긴 일단 접어두자.

 “항공부에서 왔다나봐~”
 “?”

 화면에 남자의 모습이 등장했다.

 어깨를 덮는 장발의 붉은 머리저 정도면 아마도 높은 확률로 이 둘은 남매다.

 “흐음전혀 공무원처럼 생기진 않았는데 말이지.”

 남자가 미심쩍다는 눈치로 말했다.

 “듣고 보니 그러네~”

 여자는 남자의 말에 동조했다.

 “항공부에서 왔지만 일용직 같은 거라.”

 페릭스는 여유로운 미소를 보였다.

 “몇 시간 뒤에 멸망인데 굳이 강도짓을 하자고 초인종을 눌렀을 것 같진 않고굳이 항공부에서 왔다고 한 걸 보면 우리가 누군지 정도는 알고 온 거겠지들어와.”
화면이 꺼지고 수초가 못 지나 찰칵하고 빌라 현관 잠금이 풀렸다.
 “그래서 어쩐 일이신가항공부 일일 알바 씨.”
남자는 거실 카펫에 앉으며 물었다.
 “알바라 좋네요.” 

 카펫 옆에 소파가 있었지만 왜 저기 안 앉는가 하는 사고의 흐름 없이 페릭스도 남자를 마주보고 카펫에 앉았다여자 쪽은 총총 소파로 달려가 푹 하고 앉았다.
 꽤나 쿠션감이 좋은 듯.
 “초면 이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아차...우선 성함을 먼저 확인하도록 하죠.”
 오뭔가 방금 좀 공무원 같은 말투였지 않나.
 “클로버이름 확인해줘.”
 “오빠 쪽이 젠 투동생 쪽이 젠 세이 입니다.”
 “맞으신가요?”
 페릭스는 둘을 번갈아 봐가며 확인했다둘 다 동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어서 말씀드리죠종말에서 도망쳐보실 생각 없으세요?”

 확실히 이 부분에선 놀라는 표정인가.

 “좋아.”

 빨라!
 엄청 빠르네.

 젠투는 조금 놀라는 듯싶더니 바로 제안을 수락을 해버렸다.

 오히려 페릭스가 더 놀랄 지경이었다지금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평범하게 사회생활 중에 이런 상황에 처했다면 바로 거래를 끊고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아마도 저 쪽도 같은 생각이겠지만오래 생각하고 있을 틈 같은 건 없다.
 
 “좋습니다바로 나가시죠.” 페릭스는 카펫에서 바로 일어섰다. “자세한건 가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렇게 페릭스는 집에 들어간 지 약 1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다시 차에 탔다.

 “출발하죠.”
 “.”
 “네네~”
 “그래서이제 안 죽는 방법을 듣고 싶은데.”

 조수석에 탄 젠투가 말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오호~”
 “이 트럭에는 유인 우주선이 실려 있어요그걸 타고 행성을 뜨면 되는 겁니다일단은 사막 지역에서 페트라 장관을 만나야 합니다.”
 “역시 그 아줌만가.”

 젠투는 턱을 매만지며 잠깐 동안 생각에 잠겼다.

 “흐음역시 안 되겠군차를 세워.”

 어느 샌가 젠투는 손에 권총을 쥐고 페릭스를 향해 겨누고 있었다.

 “멈출 수 없다면?”
 “쏜다쏘고 신고 할 거야.”

 역시거래는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이런 영 좋지 못한 상황에 처하게 되니페릭스는 다시는 경솔한 판단을 하지로 않기로 했다.

 다음이 있다면 말이지만.

 “따라 나설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끼나정의감이 샘솟아요?”
 “어서 멈춰.”
 “기다려 봐요뒤에 큰 화물이 실려 있기 때문에 바로 못 멈추니까.”

 말은 이렇게 했지만 실제로 페릭스는 트럭정지에 필요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트럭은 속도를 그대로 유지한 채 도로를 달렸다.

 슬슬 붙지 않으려나.

 페릭스는 사이드 미러를 살폈다.

 “이봐진짜로 쏜다.”

 왔군.

 “당신도 이미 좋은 꼴로 끝나긴 글러먹었어.”
 “무슨...”
 “뒤를 한 번 봐 바.”

 젠투는 총구를 페릭스에게 겨눈 채 곁눈질로 트럭 뒤편을 봤다.

 “경찰이군한 배를 탔다고 하는 거냐.”

 페릭스는 젠투의 말에 웃었다.

 “아니 좀 다를 걸경찰에 신고를 한 건 나거든.”

 젠투는 총을 내리고 의자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양심의 가책은 없나?”
 “어쩔 수 없잖아우리가 남는다고 행성이 멸망하지 않는 게 아니니까그런 문제는 덮어두자고.”
 “덮어두면 괜찮은 거라 생각하는 거야?”
 “물론덮어두면 돼들추지 않는 한 들어나지 않을 거야모두가 외면하면 문제가 되지 않아현실 적으로 생각하자고.”

 페릭스는 이마를 긁적였다.

 “당신은 지키고 싶은 사람이 라던가 없는 거야예를 들어지금 뒤에 타고 있는 여동생이라던가.”

 페릭스의 말에 세이의 시선이 젠투에게로 향했다.

 “지금 자신은 누군갈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거라 말하고 싶은 거야아쉽게도 그건 안 되겠어나야 물론 세이를 지키고 싶지그리고 그게 아마 사실 널 쏘지 못한 가장 큰 이유겠지하지만 말이야명분이 있다고 우리가 인류를 져버린 배신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그건 그렇고. “경찰은 어떻게 따돌릴 생각이야?”

 “아마 시내에서 벗어나면 쫓아오지 않을 거야.”

사막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페릭스는 차의 창문을 닫았다.

 “폭동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장물도둑이 마지막으로 한탕 하는 건데 사막까지 쫓아 나올 것 까지야종말의 날 정도는 한가하게 보내고 싶겠지.”

 그 순간 젠투가 바라본 페릭스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악역의 그것이 아니었다어딘가 포근함 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내가 악역이라는 건 부정하지 않겠어.”

 맞아착한 척 하는 건 곤란하지.
 


 예상했던 대로 사막에 진입하자 경찰들은 떨어져 나갔다.

 “오오~”

 뒷좌석에 앉은 세이가 앞좌석으로 고개를 내밀며 감탄했다세이의 시선의 끝에서는 거대한 부유석이 빛나고 있었다.

 “페리오빠이분들은?”

 차에서 세 사람이 내리자 페티가 페릭스에게 물었다.

 “조종사 분들이야.”
 “아하.”

 페릭스는 두 조종사와 페티를 인사시킨 뒤 트럭 뒷문을 열었다

 금색의 무언가가 쌓여있었다정말로 무언가였다건축 자재 같은 것들이 공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쌓여있었다.
 혹시 우주선 자재 같은 건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더니 자재들이 부유석에 반응한 듯 붉은 빛에 휩싸였다.거기서 또 잠깐 뒤 자재들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린 것 마냥 트럭 밖으로 나와 부유석 꼭대기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이 광경에 놀란 건 페릭스 만이 아니었다.
 젠투와 세이 그리고 페티 까지 우주선이 조립 되는 광경을 바라봤다뼈대가 갖춰지고 이서 형태가 완성되어 간다.
 뭔가 금으로 만들어진 좀 거대한 전투기 같은 모양새였다비공정이라면 몰라도 전투기의 경우엔 부유석은 이착륙에만 쓰이는 지라 설계에 의문이 들었다.
 형태가 완성된 다음에는 거대한 부유석이 점점 압축되더니 엔진이 위치해야 할 곳으로 들어가 버렸다.

 완성인가.

 네 사람은 날개를 타고 기체 내부로 들어갔다

 들어가니 바로 조종실이 나온다아니 정확히는 이 거대한 조종실이 이 기체의 전부인 것만 같았다총 3층 크기의 조종실로 항로와 레이더 정보가 표시되는 맨 윗자리 그리고 2층에는 실질적으로 우주선의 움직임을 조종하는 두개의 조종석 그리고 맨 아래 층에는 부유석의 출력을 컨트롤 하는 자리가 있었다거기에 각층에 의자 개수만큼의 작은 침대가 있었다.

 트럭의 크기를 보던 기체의 크기를 보든 여기 있는 게 이 기체에서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전부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총원 탑승완료모두 자리에 앉아주십시오.]

 갑자기 기체 내 스피커에서 방송이 울려 퍼졌다.

 무슨 소리지탑승하면 출발하게 되어있는 건가총원이라니페트라 장관 쪽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은 페릭스를 바라봤지만 페릭스 로서도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라 딱히 뭐라 말해줄 수 있는 게 없다.

 “클로버전화연결페트라 장관.”
 “확인했습니다.”

 바로 페트라에게 전화해서 현 상황을 물어보는 게 최선일 것이다.

 혹시처음부터.

 “무슨 일이지페릭스.”

 페트라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처음부터 넷만 보내려고 했던 건가.

 “어떻게 된 거죠?”
 “어떻게 되긴말 했지 않나페티를 잘 부탁한다고.”

 이어서 페트라는 일방적으로 통신을 끊어버렸다.

 페릭스를 바라보는 페티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젠투와 세이도 페릭스를 바라볼 따름이었다.

 정말이지나만 나쁜 놈 되게 생겼구만.

 “부탁이 있어.”
 페릭스는 젠투와 세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글쎄 나는 너한테 납치당해서 온 느낌이라세이 말에 따르도록 하지.”
 “흐응~”
 세이는 곁눈질로 페티를 보고 다시 눈동자를 굴려 페릭스를 똑바로 바라보며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좋지 않아?”
 “그래그럼 나도 일단 도와주는 걸로 하지그래서 방법은 있는 거야일일 알바씨.”

 세이의 결정은 안전을 담보로 하는 도박이었다첫 번째 유인 우주선에 우주선을 가지고 대기권을 날아다닌 다니 우주선에 에러가 나면 여기 까지 와서 행성 탈출에 실패할 수도 있는 것이다.

 때문에젠투와 세이에겐 감사할 수밖에 없다.

 “우선 모두 자리에 앉아줘.”
 “오케이~”

 페릭스의 말에 따라 모두는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페티우주선의 발사각도 조절 가능하지?”
 “으응!”

 설마.

 “클로버페트라 장관의 위치를 페티의 자리에 띄워줘.”
 “확인했습니다페트라 장관은 현재 장관 집무실에 있습니다.”
 “페티좌표 방향으로 발진!”

 “!”

 위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우주선은 땅에서 준비과정이랄 것 없이 항공부 청사 꼭대기 층 집무실을 향해 쏘아졌다이어서 소리보다 빠르게 날아간 우주선은 침묵 속에서 항공부 청사 꼭대기 층 창문을 깨부수고 내부로 진입했다다행히도 건물 유리창에 부딪힌 걸로는 실드에 금 같은 건 생기지 않았다
페릭스는 말없이 벨트를 풀고 우주선의 문을 열고 집무실에 껑충 뛰어 내렸다.

 “생각보다 생각 없는 녀석이었구나페릭스나는 페트리샤를 부탁한다고 말했을 텐데!”

 페트라는 상당히 화난 얼굴로 방금 우선에서 내린 페릭를 향해 쏘아붙였다.

 “그건 제가 할 말 같은데요!”

 페릭스는 깨진 창문으로 빨려 나가는 건물 내부의 공기에 저항하면서 페트라를 향해 걸어갔다

 “당신이 없는 세상에서 페티가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살아갈 수 있을 리 없잖습니까때문에 희생자 역을 자처하려는 거예요착한사람인 채로 남고 싶다 뭐 그런 거예요?”

 페릭스는 페트라의 손목을 낚아챘다하지만 여전히 페트라의 발은 완고히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이제 슬슬 정말로 시간이 없어요페티를 행성 폭발에 휘말리게 하고 싶으세요?”

 이 말에페릭스의 손에 페트라는 이끌려 우주선에 올라타고 말았다.

 “엄마!”
 “잠깐페티.”

 페트라를 보고 일어서려는 페티를 페릭스가 제지했다.

 “지금은 행성에서 떠나는 게 먼저야.”
 “다 죽을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세이가 나긋한 말투로 페릭스를 거들었다.

 “으응그럼발진하겠습니다.”

 페트라가 침대 쪽으로 가서 안전벨트를 차고 누운 걸 확인한 페릭스는 자리로 돌아와 벨트를 했다.
우주선은 점점 움직여 이제 머리 부분이 하늘을 향해 우뚝 선 모양새가 되었다.

 “발진 준비 완료.”

 “발진.”
 “발진출력 최대!”

 뇌와 몸이 분리된 것 같이 붕 뜨는 기분순간의 침묵모든 시야가 검게 물들여진다.
 모든 것이 없어져버린 것처럼이 세상에 원래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이 정도 크기의 부유석이라면 아마 어둠이 빨아들이는 힘과 같은 정도의 힘으로 튕겨져 나갔을 것이다.  그대로 실드가 버티지 못하고 기체가 버티지 못하고 부서져 버린 건 아닐까.

 그건 아니겠지.

 사고의 괴리감이 점점 적어지고 시야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무수한 별 무수한 어둠. ‘어둠과 에 가려져 볼 수 없었던 진짜 우주였다.

 탈출한 건가.

 코랄행성을?

 “부유석 출력을 줄였어요코랄에선 불가능 했던 것 같지만 마이너스 수준까지 내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거라면 항해가 더 쉬워진다.

 “신기하네알고 있었어요?”
 페릭스가 침대에서 일어나 옆으로 다가온 페트라에게 말했다.
 “아니나도 놀랍군.”
 “그렇군요이제부터 어떻게 하실 거죠?”

 “그건 항해사인 자네가 결정할 문제지.”

 페트라는 페릭스를 내려다보며 미소 지었다.

 으으.

 “치짉.”
 응?

 “들리는가미확인 기체귀선(貴船)은 지금 우리정부 영역에 진입했다항해자(Navigator)는 소속과 기체이름을 밝혀라.”
 코랄 행성과 같은 언어의 말이 페릭스의 손목시계를 타고 조종실에 울려 퍼졌다.
 혹시 코랄을 멸망시킨 외계문명일까.
 일단 대답을 해주는 게 좋겠지.

 “이쪽은 파괴된 행성에서 탈출한 기체다기체의 이름은..”
 페릭스는 잠깐 숨을 들이쉬고 말을 잇는다.

 “EGOIST(이기주의자).”
출처 http://xkdlfg5216.blog.me/221016813251 (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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