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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해전에 대해서 여러가지 논의가 있는데..
게시물ID : history_1350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생쥐스트
추천 : 10
조회수 : 1152회
댓글수 : 11개
등록시간 : 2014/01/11 14:56:11
 사실 기록에 나와 있는 역사적 사실로만 본다면 우리가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황과 배경이 되었다라고 해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닙니다.
 
 판옥선이 확실히 일본의 세키부네나 아다케에 비해 압도적으로 컸구요. 일본은 당시 화포 운용을 어떻게 해야되는지 개념 자체가 없었죠. 수군도 도선 이후 단병접전을 위주로 했구요. 거기에 불멸의 이순신의 개망 고증 때문에 우리 수군이 포졸 옷에 수자 하나 달랑 붙은 옷만 입고 있는 것으로 나오는데 사실 수군의 장비는 진짜 후덜덜했습니다. 일본에 있는 조전전역해전도(이건 희대의 개병신 원균이 개박살나는 걸 그린 겁니다.)를 보면 이런 사실들이 잘 나오죠.

 그리고 이순신 장군이 승전한 전투를 보면 숫적으로도 우세한 상황에서 싸운 전투가 많습니다.(정확히 다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요..)

 그런데 이걸 단순히 그냥 역사적 사실이라는 관점에서만 보지 않고 전사라는 관점에서 보면 좀 후덜덜하게 느껴질 수가 있는게.....

 사실 모든 전쟁의 기본은 압도적인 다수로 소수의 적을 격파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쉽지가 않죠. 뭐 수당이랑 고구려처럼 시작부터 체급 차이가 있으면 좋은 것이지만 그러기는 쉽지가 않거든요. 그래서 역대의 명장들은 자신들이 숫적으로 열세이거나 적과 비등하더라도 전투의 시점에서는 적보다 우위에 선 병력으로 적을 치려고 했죠. 징기스칸이 그랬고 프리드리히 대왕이 그랬고 나폴레옹이 그랬구요  그래서 '분군 행군 총군 전투'라는 말도 있구요.(아마 몰트케가 한 말일 겁니다.) 

 이순신 장군도 역대 명장처럼 그걸 고스란히 실천하신 거라고 보면 됩니다. 실제 전쟁에 참여한 모든 전선과 병력을 따지면 일본측이 압도적으로 많겠으나 일단 개별 전투에서는 항상 조선 수군이 적들을 압살할 수 있게 만든 거죠. 이길 수 있는 전투만 한다. 예전에 어떤 글인가 인터뷰인가 하여튼 거기서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폄하하면서 이런 말을 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진짜 병신 같은 논리인거죠. 사실 이길 수 있는 전투만 하는 게 맞는 거고 이게 쉬운 거 같지만 그런 상황을 만드는 것이 엄청 어려운 거거든요.

 사실 명량 해전은 이런 상황이 안 되는데 싸운 유일한 전투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여기서 압승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판옥선의 우수함도 물론 있겠지만 지리적 유리함이 컸다고 봅니다. 문제는 손자 병법에도 나오지만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지리적 요인입니다. 내가 싸우고자 하는 곳에서 싸운다. 이게 기본이죠. 사실 손자도 사지에서는 그냥 존나 대가리 터지게 목숨 걸고 싸우는 수밖에는 없쩌요 이런 식으로 말하고 맙니다. 전장을 선택하는 능력 지리를 이용하는 능력이 바로 지휘관의 기본이자 능력치가 되는 거죠. 전사를 보면 수많은 명장들은 전장을 선택하고 또는 전장의 지형적 이점을 이용해서 이기는 전투가 많았습니다. 그걸 해 낸 거니 먼치킨이라는 소리를 듣는 거죠.

 그리고 어떤 분 글에 조선 수군과 일본 수군을 근대 수군과 중세 수군 수준이라 하셨는데 그건 아닙니다. 물론 일본 수군보다 판옥선이 우위에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 정도 차이라고 볼 수는 없구요. 현대전에서 보이는 미국과 이라크의 무기 수준 차이처럼 생각하시면 안 된다고 봅니다. 이지스랑 참수리랑의 차이는 아니라는 거죠. 화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당시 천자총통이나 지자총통이나 이런 것들이 지금의 화포와 같은 정확도와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탄도학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서양에서도 근대전에 이르러서야 화포의 정확도가 높아졌는데 임란 때 화포가 오죽하겠습니까. 그걸 극복하는 방법이 그나마 화망인데요. 화망이라는 개념이 과연 조선 수군에게 그 이전에 있었냐는 거죠. 이런 화망의 개념을 생각한 것도 사실 이순신 장군 덕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명량해전에서는 화포전도 아니었습니다. 화망을 형성할만한 수의 배가 아니었던 거죠. 그래서 앞에서 지리적 요충지에서 접전을 선택한 거라 보여집니다. 쉽게 생각하시면 영화 300에 나오는 테르모필레 전투의 해전판이 된 거죠. 이게 또 중요한 것이 적선 격침이 많지 않다고 혹자들이 폄하하는 거에 대한 반론이 되는 건데요. 좁은 길목을 막고 몰려 오는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이유는 전투 시에는 비슷한 숫자의 적과 싸울 수 밖에 없다는 거죠. 따라서 격침 수가 많을 수가 없는 겁니다. 133척이 몰려 들었다 해도 실제 전투에 참가할 수 있는 적선의 숫자는 제한적이니까요. 그렇다고 전투에 승리했다고 전과 확대를 위해 적을 추격 섬멸하기에는 전투의 피로도가 크고 아군의 숫자도 적을 뿐더러 배의 빠르기도 일본 수군이 더 나았기 때 무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거죠.
 2차 세계 대전에 프랑스랑 독일의 전투를 보면 독일이 낫질 작전을 합니다. 흔히들 전격전이라하는 건데요. 이때 기갑부대 수나 장비의 우월함은 프랑스가 압도적이었습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당시 독일군이 가지고 있는 어떤 대전차포도 프랑스의 전차를 뚫을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운용을 개병신 같이 해서 관광을 당하고 말죠. 이런 걸 생각해 보면 무기의 질이 뛰어나다고 해서 반드시 승리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물론 현대전은 예외지만요. 핵 버튼 하나로 끝나버릴 수 있는..)
 그리고 수군의 운용 개념은 사실 조선 수군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걸 알 수 있는게 몇몇을 제외하거는 고급 지휘관들이 수군의 특성을 잘 몰랐어요. 그게 또 지휘관들의 문제만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당시 체계가 그런 거죠. 수군 지휘관을 특별히 선발해서 키워내는 것도 아니었고 또 별로 대접도 받지 못했습니다. 통제사하고 도원수가 지금으로 따지면 해군 참모총장과 육군 참모총장쯤 되는 건데 계급이 도원수가 더 높았어요. 별 셋과 별 넷 차이였죠. 그래서 권율이 원균 곤장도 때릴 수 있었던 겁니다. 이순신 장군도 초급 지휘관 시절은 육군이었죠. 여진족 잡으러 다녔던 겁니다. 


 끝으로 이순신 장군이 군신 먼치킨 소리를 들으는 이유는 사실 하나하나 개별 전투를 놓고 보면 잘 알 수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임란이 일어나기 전부터 계속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전쟁에 대비해서 준비를 하시고 그 결과로 제승방략 체제 하에서도 일본이 침략했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전라좌수영의 전병력을 소집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전쟁 중에도 아무런 중앙이 도움 없이 스스로 보급 문제를 해결하면서 전투에 임하신 거거든요. 원균이 새끼가 부임한 지 삼 개월 동안 헛짓하면서 있다가 일본이 부산에 상륙하니까 배 다 침몰시키고 튀튀한 거를 생각해 보면 잘 알 수가 있죠.


 여담으로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거는 원균이가 200척 수군을 말아먹은 전투를 칠천량 해전이라고 하는데 사실 원균이는 해전다운 해전을 한 적이 없어요. 그냥 일본 수군 유인책에 끌려서 왔다 갔다 하다가 해안에 상륙한 후 경계도 안 세워 놓고 병신짓하다가 개털린 겁니다. 진짜 희대의 개병신이죠. 그런 놈을 전란 1등 공신으로 인정한 선조도 희대의 개병신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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