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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이 도종환 의원을 비판하는 이유
게시물ID : freeboard_156574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크리삼
추천 : 0
조회수 : 48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6/05 10:49:28

도종환 문체부 장관 지명자에 대한 역사학계(주로 이병도의 후예들인 강단학계조)들의 비판이 많습니다.

고대사를 강조한다고 파시즘이니 유사사학이니 라는 극언도 하더군요.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하는 인사들 중에 고대사를 전공한 분은 별로 없는 것으로 압니다. 대한민국에서 고대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는 적어도 젊은 사람들(40대 이하) 중에는 거의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식민사관이나 기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합리화하는 것에 많은 지원을 한다고 하죠.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에 대한 지원이 바로 그 대표적이죠.

더구나, 이들이 도종환 의원의 문체부 장관 인사를 비판하며 내놓은 근거인 동북아 재단의 동북아 역사지도 그리고 수십억원을 들여서 한글로 자료를 만들어 하버드 대학에 영어로의 번역을 의뢰한 우리나라 역사자료에 대한 영어로의 번역 프로젝트를 중단-폐기시킨 정책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당연히 중단시키고 비판했어야 하는 프로젝트들이었습니다.

동북아재단에 하버드에 영어로의 번역을 의뢰한 자료의 내용을 보면, 고조선과 고구려 등에 대해서는 중국의 동북공정을 그대로 옹호하는 내용이 포함되어있습니다. 이것을 위해서 중국에서도 학계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자료를 그 근거로 삼는 동시에, 정작 우리나라의 역사서인 삼국사기를 비롯한 각종 사료들은 아무런 합리적 이유없이 배척하였습니다. 중국쪽 사료 중에서도 중국의 역사왜곡 작업인 동북공정에 반대되는 근거 사료들은 그 권위나 학계의 인정여부에 관계없이 배척되었고요.

또 이미 일본에서도 엉터리 주장이라는 것이 입증된 임나 일본부설을 이 동북아 재단의 동북아 지도+자료에서는 마치 그것을 진실인 듯 합리화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 지도에서 독도도 없애버렸죠.

국사라는 것은 적어도 대외관계에 있어서는 우리의 시각에서 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일본이나 중국 등 외세의 침략에 대해서 그것을 침략이라고 우리 국사에 기록해야지, 뉴라이트 등 친일세력이 주장하는 것처럼 진출이라는 용어로 쓰려면 그건 우리의 역사가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의 역사서입니다.

소위 말하는 국뽕이 아니라 최소한의 주체적인 의식의 발현입니다.

최소한 그 근거나 서술을 객관적인 내용으로 담아야 합니다. 무조건 우리 역사가 최고~라는 식도 문제이지만, 무조건 우리 역사를 축소하고-그것도 근거도 희박하고 이미 거짓으로 판명난 자료를 가지고 우리 역사를 축소하고 폄훼하는 것은 제2의 매국행위나 다름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행위를 한 동북아재단의 역사왜곡시도(철저하게 일본이나 중국의 침략을 미화하는 것으로 해석되는)를 무산시킨 도종환 의원의 과거 행적은 칭찬의 대상이지 비판이나 비난의 대상이 아닙니다.

아래는 몇몇 언론과 소위 강단사학계(이병도의 후예들)와 근현대사 전공자들이 주축으로 알고 있는 소위 젊은 사학도들이 도종환 의원을 비판하는 근거인 동북아재단의 역사왜곡시도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국회속기록입니다.

이 속기록을 읽어본다면 도종환 의원에 대해서 고대사를 강조하는 파시즘이니 유사사학이니 하는 주장이 얼마나 어이없는 주장인지 알수 있을 겁니다.



2015년 4월17일(금) 8시 부터 있었던 '제332회 국회(임시회) 제32차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 의 국회 속기록입니다. 대한민국 주류역사학과 재야 비주류역사학의 현 주소를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2시간 30분 정도로 번개불에 콩 궈먹듯 해 치운 토론이지만 할 말과 들을 말은 다 있는 거 같네요. 이런 문제로 공중파에서 실시간 생방송으로 끝장토론을 해야 속이 후련할 것 같습니다.
이 회의에 참석한 의원과 학계 학자와 이덕일 소장님은 나중에 역사가 이들을 기억하고 판단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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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2회-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제32차(2015년4월17일)
332회국회 (임시회)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회의록 (임 시 회 의 록 ) 제 32 호
국 회 사 무 처
일 시 2015년4월17일(금)
장 소 제5회의장(220호)
의사일정


1. 동북아 역사지도 편찬사업 관련 논의
심사된 안건


1. 동북아 역사지도 편찬사업 관련 논의
(08시12분 개의)


◯委員長職務代理 金世淵
좌석을 정돈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원이 되었으므로 제332회 국회(임시회) 제32차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를 개의하겠습니다. 오늘 의사일정은 동북아 역사지도 편찬사업에 관한 논의를 하는 것입니다.


1. 동북아 역사지도 편찬사업 관련 논의
◯委員長職務代理 金世淵
그러면 의사일정 제1항 동북아 역사지도 편찬사업에 관한 논의를 상정합니다.
먼저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상일 위원
의사진행발언을 잠깐 짧게……


◯委員長職務代理 金世淵
이상일 위원님 말씀해 주십시오.
◯이상일 위원
제가 지난번에도 이야기를 했는데 자료제출 문제인데, 미리미리 주시면 저희들이 읽어 보고 또 질의 준비를 해야 되겠다 이랬는데, 어제의 경우에…… 우리 임기환 교수님 자료는 오늘 오전에 우리가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사실은 동북아 역사지도 문제를 가지고 서로 토론을 하는 상황인데 저희들이 좀 알아봤더니 임기환 교수님은 이덕일 소장님 자료를 받고 나서 그 내용을 반박하는 차원에서 자료를 만들다 보니까 오늘 오전에 자료가 도착을 했다는 것인데, 그러니까 토론 자료인데 상대방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미리 받고 그것을 반박하는 자료를 만들어서 오늘 오셨다는 게 잘 이해가 안 되는 게, 지금 동북아……


실제로 그렇게 되어 있네요. ‘동북아 역사지도의 문제점 발표에 대한 편찬위원회의 입장’ 이러셨는데, 제가 보기에는 이 편찬위원회가 어떤 취지에서 이 역사지도를 만들었고 어떤 내용을 담았고 이렇게 충분히 설명을 하면서 이덕일 소장님이 주장하시는 것에 대해서 여기에 나오셔서 입장을 내시고 또 반박하시고 이게 맞지, 상대방이 준비한 자료를 다 받고 나서 그것을 반박하는 형식으로 자료를 만들어서 오늘 오전에야 우리한테 배포를 하고…… 그렇게 되면 문제지를 보고 본인이 답을 만든 상황인데 이것에 대해서는 저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임기환 교수님 입장을 한번 들어 보고 시작을 하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委員長職務代理 金世淵
자료제출을 사전에 충분히 검토할 수 있도록 행정실에 준비를 해 달라고 했었는데 그 과정에 대해서 잠시 설명해 주시지요.


한 한 달은 더 되었습니다만 우리 특위 회의 중에 위원님들이 충분한 검토시간을 가지고 회의에 참석하실 수 있도록 가급적 일주일, 적어도 삼사일 전에는 각 의원실에 회의자료가 제출이 되어서 사전에 심도 있는 검토를 할 수 있도록 일정 관리를 해 달라고 했던 바가 있는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왜 이렇게 늦어졌지요?


(입법조사관, 위원장석으로 가서 개별 답변)
지금 경과를 파악을 해 보니까 다른 주제들은, 공청회 형태로 진술인이 나오실 때나 정부부처에서 또는 소속기관에서 업무보고를 할 때는 그런 방식을 따르고 있는데, 오늘은 실질적인 토론의 형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아마 섭외 과정에서 문제 제기를 하는 이덕일 소장님 측 자료를 보고 임기환 교수 측에서 준비하는 것으로 당초에 그렇게 논의가 되어 있었다고 하는 점 양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무튼……


◯이상일 위원
그러면 이덕일 소장님도 사전에 아셨고 양해를 하셨나요?


◯참고인 이덕일
아니요, 저희는 절대 자료 유출을 막아 달라고 당부하면서 사실 드렸는데요. 그런데 지금 자리가 중요하니까 일단 그것은 차후에 하시고, 미리 알았어도 이 지도가 얼마나 문제 많은 지도인가는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 생각에는 일단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단, 저희가 주로 이 자료 유출은 막아 달라고 몇 번 당부는 했습니다.


◯이상일 위원
그런데 왜 그것을 안 지켜 주셨어요?


◯委員長職務代理 金世淵
그래서 그 부분은 좀 특수성이 있었다는 점 양해 부탁드린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먼저 이덕일 소장님, 자리에서 내용을 발표해 주시기 바랍니다.
시간은 일단 20분 범위 안에서 요약해서 말씀해 주시고, 나중에 질의응답 과정에서 필요한 부분은 더 상세하게 말씀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참고인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의 이덕일입니다.
일단 동북아 역사지도의 문제점을 갖고 계신 자료로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2쪽을 보면 총론이 나오는데요.
일단 전반적인 문제점을 보면, 일단 관점의 문제에서 철저하게 일제 식민사관하고 중국 동북공정을 추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식민사관과 동북공정을 극복할 수 있는 여러 논리가 있는데 이런 논리는 전혀 채택을 안 하고 있다는 점이지요.


두 번째로 역사학이라는 것은 1차 사료를 해석하고, 1차 사료에 대한 해석이 우선이 되는데 이 지도에서 보면, 나중에 한사군 위치 비정한 자료를 주로 제작 측에서 보내 왔는데, 64번 중에서 한서지리지가 39번, 그다음에 이병도 씨 설을 33번이나 해 왔는데 한서지리지에는 낙랑군이나 한사군을 한반도 내로 비정할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어요. 위원님들 원하시면 제가 컴퓨터 가지고 왔는데 한서지리지 원문을 직접 보여 드리면서 제가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한서지리지에는 단 하나도…… 한서지리지 자체는 한반도에 관한 지식 자체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전부 다 이것을 갖다 여기에…… 다 해석해 드리면 아시겠지만 다 자의적으로 한 것이지 일체 그러한 근거가 전혀 없는 소설이라는 이야기지요.


그리고 중국 사료에 보면, 한사군이 지금의 하북성 일대 또는 요동 일대에 있었다라는 중국 고대 사료가 대단히 많아요. 이런 것은 일체 배제하고 전부 다 일제 식민사관하고 중국 동북공정을 그대로 추종했다 하는 이야기인데요.


3쪽을 한번 봐 주시면, 왼쪽이 동북아 역사지도에서 그린 한사군, 낙랑군 위치들이고 오른쪽이 중국에서 동북공정 차원에서 그린 담기양의 중국역사지도집인데 두 지도는 같은 지도입니다. 그러니까 중국에서 지금 이 지도를 가지고 북한강역을 자기네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인데 이 논리를 그대로, 동북아 역사지도 제작 측에서 담기양의 이것을 그대로 따랐어요.


위에 보시면 패수를 청천강으로 같이 규정했고 열수를 대동강으로 같이 규정했습니다. 그런데 열수는 후한서군국지에 보면 ‘열수재요동(冽水在遼東)’, 열수는 요동에 있다 이렇게 다 원문에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을 일체 배제하고 열수는 대동강이라고 해 놓았고, 그다음에 낙랑군에서 조선․패수․증지․점제․열구․누방․사망․둔유․대방․해명․제해 이것을 전부 다 똑같이 위치를 그려 놓았습니다. 그래서 이 지도들은 중국에서 동북공정 차원에서 그린 담기양의 중국역사지도집을 그대로 베낀 겁니다.


그리고 4번 지도를 보시면―위․촉․오 221년~265년까지―경기도까지 조조의 위나라가 한반도를 다 지배한 것으로 되어 있어요.


여러분, 조조가 한반도 경기도까지 왔다는 말 들어 보셨습니까? 이것도 그대로 중국역사지도집을, 담기양의 지도집을 그대로 베낀 겁니다. 그다음에 나오지요. 중국역사지도집에 조조의 위나라 유주가 여기까지 차지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갖다 그렸지요, 5쪽에 보시면.


그다음에 관점의 문제로 보면요 6쪽을 한번 이렇게 보시면, ‘고구려의 성장 120년~300년’이라는 지도인데, 고구려와 한나라의 국경선이 세로로 갈라져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고대 국경선은 항상 산이나 강으로 막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국경선이 유지되려면 바로 압록강이 있고 압록강 북쪽에 장백산맥이 흐릅니다, 백두산에서 발원하는. 그리고 그 조금 위에 천산산맥이 또 흘러요. 그다음에 그 위에는 훈허가 있습니다.


그런데 전 세계 인류 역사상 이렇게 큰 산맥을 두 개나 세로로 자르고 큰 강을 두 개나 세로로 자르고 이렇게 만들어지는 국경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국경선이 뭐냐 하면 중국에서 주장하는 만리장성선을 그대로 그려 놓은 겁니다.


왜 이런 지도를 그렸느냐, 고구려가 당시 요동반도를 다 차지했다라고 보면 한반도 내에 낙랑군을 비롯한 한사군이 존재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한사군을 한반도 내에 두어야 되다 보니까 한나라와 한반도 북부에 교통로를 만들어야 되는 겁니다.
교통로 만들려고 하다 보니까 산맥을, 장백산맥 천산산맥을 두 개나 자르고 압록강과 훈허를 또 잘라 가지고 어거지로 국경선을 만든 것이지요.


그리고 이게 300년이니까 4세기 초인데, 한반도 남쪽을 보시면 신라도 없고 백제도 없고 가야도 없습니다. 이것은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가 창안한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을 그대로 따른 것이지요.


쓰다 소키치가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왜 만드느냐 하면 한반도 남부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하다 보니까, 한반도 남부에 임나일본부가 있어야 되는데 삼국사기에서 말하는 대로 백제와 신라가 강력한 고대국가면 도저히 임나일본부라는 게 존속할 수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쓰다 소키치라는 인물이 삼국사기 초기 기록은 다 가짜다, 그러면서 논문에서 뭐라고 그랬냐 하면 이걸 지금 현재 입증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 차차 입증해 보이겠다 이런 식으로 쓴 게 현재 한국 식민사학계의 정설이 돼 가지고 그대로 그려져 있는 거고요.


7번 지도는 조금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에 다음 질의응답 시간에 하겠습니다.


8번 지도를 보면 위만조선과 진국 기원전 194에서 기원전 109년을 표시한 것 같은데요. 여기에도 마찬가지로 세로로 그린 것은 동북공정의 연․진 장성선인데요. 연나라가 이 당시 여기까지…… 연나라는 북경 일대에 있던 작은 소국입니다. 여기까지 만리장성을 쌓았으면 군사가 몇 명이 필요하겠습니까? 수백만 명이 필요한데 그 군사가 있으면 연나라가 오히려 중원을 통일했지 진나라한테 망하지는 않았지요.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고구려를 갖다 놨지 않습니까? 이 고구려는 우리가 생각하는 추모왕이 세운 고구려가 아니에요. 중국에서 주장하는 한나라의 군현이라는 고구려현을 그려 놓은 겁니다. 이게 중국 동북공정에서 고구려는 바로 자기네 한나라 현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고구려사는 중국사다라고 말하는 걸 그대로 갖다 그려 놓은 겁니다.
여기 9번에 보시다시피 또 똑같이 담기양의 지도를 갖다 베낀 거고요.


그다음에 11쪽을 한번 보시면 이게 거의 고구려의 전성기 때 강역인데 고구려 전성기 때 강역을 지금의 요하까지 축소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삼국사기 및 후한서에 보면, 두 번째에 썼듯이 고구려 모본왕 2년에 한나라의 북평, 어양, 상곡, 태원(지금의 하북성 및 산서성 일대)를 공격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런 기록은 일체 배제했지요.


그리고 또 삼국사기 태조왕 3년조에 보면 태조대왕이 요서에 10개 성을 쌓아서 한나라 군사를 방비했다. 성을 쌓아서 군사를 방비했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자기네 눌러 앉아서 정착하겠다 하는 이야기지요. 중국 기록에도 나오고 우리 기록에도 나오는 이러한 모든 사료들을 일체 배제하고 철저하게 공북공정과 일제식민사관 논리만 따르는 거지요.


그다음에 12번 지도를 보시면 동북공정과 쌍둥이 지도인데요. A가 동북아역사지도고 B가 중국역사지도집, 담기양이 그린 지도집인데 똑같지요. 패수를 청천강으로 그려 놨는데 아무런 1차 사료적 근거가 없습니다.


단지 패수가 청천강일 것이다, 그러니까 패수를 이나바 이와키치는 대동강이라고 주장했고 이병도 씨는 청천강이라고 주장했고 쓰다 소키치는 압록강이라고 주장하고, 자기네 마음대로 갖다 붙이는 거예요.


그래서 패수를 어느 강으로 갖다 놓느냐에 따라서 위치가 다 달라지는데 이 패수의 위치에 대해서 난하라는 이야기도 있고 대릉하라는 이야기도 있고 여러 이야기가 있지요. 이런 설들은 다 배제하고 대한민국 입장에서 가장 불리한 사료만 갖다가 채택을 했고 그 채택한 사료들이 중국 동북공정 지도하고 완전히 일치한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또 이병도 설을 서른네 번이나 갖다가 해 놨는데 14쪽을 한번 보시겠습니다.


낙랑군 패수현을 평남 영변으로 해 놨는데 이게 동북아역사지도하고 중국 동북공정 지도하고 일치합니다. 그 근거로 여기 보시면 동북아역사지도 측에서는 한서지리지를 갖다 놨는데 한서지리지는 그 아래 원문으로 썼다시피 물이 서쪽으로 증지현에 이르러 가지고 바다로 들어간다 이게 다예요.


이 짤막한 이야기를 가지고 이병도 씨가 해석한 걸 옆에 한번 보십시오. 이병도 씨가 한국고대사연구에서 “패수현은 사상(史上)에 저명한 패수 유역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그 이름을 취하게 된 것이다. 한서지리지 패수현조를 보면 패수가 패수의 상류처에 위치한 것을 말하여 주거니와 그러면 본류의 상류처냐 또는 북지류의 그것이냐가 문제인데 고래로 교통상 요지요, 또 웅주로 이름난 곳을 든다면 북지류의 영변을 꼽지 아니할 수 없다. 영변이라 하면 유명한 묘향산의 보현사와 낙산의 철옹성을 연상케 한다” 이게 무슨, 낙랑군 패수현과 지금 이병도 씨가 주장하는 이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계속 끝까지 읽어 보면 “이곳이 평북의 태천, 귀성 등지와 연결되고 평남의 개천 또는 안주와 연결되는 요지인 만큼 고려 성종 때에는 방어사가 되고 근조선 세종 때에는 대도호부로 승격되어 내려오던 곳이다. 그래서 나는 패수현의 위치를 영변 일대로 비정하여 왔다.” 이거는 그냥 이병도 씨가 소설 쓴 것이지, 역사 사료라는 것은 낙랑군 패수현을 평안남도 영변으로 위치를 비정하고 싶으면 근거 사료 1․2․3․4 해서 이렇게 비정해야 되는데, 아니, 세종 때 뭐가 있고 묘향산에 보현사가 있고 낙산에 철옹성이 있고, 이게 낙랑군 패수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는 이야기지요.


이병도 씨가 말하는 근거가 다 이런 건데 16쪽을 한번 보시겠습니다.


낙랑군 둔유현을 황해도 황주라고 해 놨는데 이것도 동북아역사지도하고 중국 동북공정 지도하고 같습니다. 보면 1차 사료라고는 고려사지리지의 황주목조, ‘황주목은 본래 고구려 동홀이다’ 황주목이 고구려 동홀인 것하고 낙랑군 둔유현이 황주인 것하고 무슨 상관 있느냐 하는 이야기지요.


여기에 또 삼국지를 갖다 댔는데 삼국지에 “후한 환제․영제 말년에 한․예가 강성해서 군현이 통제할 수 없자 백성들이 다수 한국으로 유입되었다. 건안 연간에 공손강이 둔유현 남쪽지역 황지를 대방군으로 삼고 공손모와 장창 등을 파견해 유민들을 수습하고 군사를 일으켜 한과 예를 정벌하니 옛 백성들이 점차 나타났다” 옛 백성들이 점차 나타난 것하고 낙랑군 둔유가 황해도 황주인 것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는 겁니다.


이병도 씨가 무슨 근거로 이렇게 그려 놨느냐 하면, 옆에 이병도의 한국고대사연구를 보면 “고려사지리지 황주목조를 보면 ‘황주목, 본 고구려 동홀’이라고 하고 그 밑의 분주에 ‘일운(一云) 우동어홀(于冬於忽)’이라고 하였다. 여기 ‘우동어홀’의 ‘동어’와 ‘둔유’의 음이 서로 근사한데 우리의 주의를 끈다. 속히 말하면 ‘둔유’와 ‘동어’는 즉 같은 말의 이사가 아닌가 생각된다…… 하여튼 둔유현이 지금의 황주에 해당하리라고 생각되는 점은 비단 지명상으로뿐만 아니라 또한 (아래에 말할) 실제 지리상으로 보더라도 적중하다고 믿는 바이다”


근거라고는 고려사 황주목조의, 황주목은 본래는 고구려의 동홀인데 그 밑의 분주에 우동어홀이라고 했는데 이병도 씨가 마음대로 ‘우’ 자하고 ‘홀’ 자는 빼 버리고 ‘동어’라고 쓴 게 ‘둔유’하고 음이 같기 때문에 황해도 황주가 낙랑군 둔유라는 겁니다. 이건 SF소설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지 역사에서는 다른 나라 같으면 이런 이야기 하면 벌써 옛날에 다 매장되고 끝났는데 동북아역사지도 수십 분의 분들이 이걸 그대로 추종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


그다음에 24쪽을 한번 보시면 신라의 팽창 551년~600년에, 여기에도 독도를 안 그려 놨어요. 그러니까 지금 독도 문제 가지고 우리가 일본하고 그렇게 오랫동안 문제가 됐고 논쟁이 되고 있는데 대한민국 국민 입장에서 지도를 그리면 당연히 독도를 표기해야지요. 그런데 독도를 표기 안 했습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지증왕 13년에 다 장악했다라고 나왔는데 안 해 놨지요.


마지막으로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을 보시면 쓰다 소키치가 아까 말씀드린 대로 삼국사기 초기기록…… 25쪽입니다. 25쪽에 보시면 쓰다소키치가 처음에 시작했는데 예를 들어서 실제 건국과 백제본기의 건국과는 340~350년 차이가 난다. 그러면 차이가 난다고 봤으면 근거를 대야 될 것 아닙니까, 다른 어떤 사료에 백제가 몇 년도에 건국했다고 했는데 삼국사기는 340년 끌어올려서 했다든지. 아무 근거 없이 자기가 그렇게 한 건데요.


여기에 보시면 한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이라는 것은 쓰다 소키치가 창안해 가지고 이마니시 류라는 조선총독부 직속의 조선사편수회 산하 학자가, 간사가 만든 건데 여기 한번 보십시오. 나이토 코지로(나이토 코난)에 쓴 이마니시 류 책의 서문을 보면 ‘원래 아방(일본)의 고대사 연구가는 일본서기의 기년에 의심을 품은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유력한 방증으로 조선고사의 기년을 참고하고 더욱이 그 기사의 내용까지도 조선고사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일본서기 자체가 원래 문제가 많은 책입니다. 그래서 연대도 주갑제라고 해 가지고 보통 120년을 끌어올려서 해석해야 맞기도 하고 어떤 건 완전 창작이고 어떤 건 거짓말이고, 연대 자체가 안 맞기 때문에 이 일제식민사학자들이 등장하기 전에는 일본 내에서도 일본서기의 내용이 사실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조선고사―삼국사기나 삼국유사―하고 비교해 봐 가지고 이게 맞으면 사실로 인정하고 아니면 사실로 인정 안 하고, 때로는 연대를 삼국사기에 맞춰 가지고, 예를 들어서 신공왕후 55년이 서기 255년입니다.


이때 백제의 초고왕이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일본서기에 기록돼 있는데, 삼국사기 백제본기를 보면 이때는 고이왕 때예요. 그런데 120년을 끌어올리면 375년이 되는데 이때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보면 근초고왕이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되니까 일본서기는 120년 끌어올렸구나, 삼국사기 기준으로 봐야 되는구나 이렇게 해석해 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25쪽의 옆 부분을 보면, ‘그러나 이마니시 류 박사가 양국 고사를 근본적으로 연구해서 삼국사기가 이용한 중국 사적 등의 연구로부터 종래의 연구법을 일변하여 일본고사에 실려 있는 사실(史實)에 무게를 두게 되었다’ 그래서 이마니시 류가 이걸 완전히 뒤집고 일본서기가 맞고 삼국사기는 틀렸다라고 어거지로 하기 시작하면서 삼국사기가 틀렸다는 경향이 생겼다 하는 이야기지요. 그러니까 일제식민사학자들이 등장하면서 수천 년 동안 내려왔던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의 해석 방법을 거꾸로 한 건데 거기에서 나온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을 그대로 인용했다는 겁니다.


26쪽을 보시면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 불신론하고 평생을 싸워 오셨던 최재석 교수님이 일본인 연구자가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조작으로 본 이유를 써 놓으셨어요. 뭐냐 하면 처음부터 근거 제시 없이 삼국사기는 조작이라고 단정한 것, 두 번째로 자신들이 허구의 증거를 조작해 놓고 삼국사기는 조작되었다고 한 것, 세 번째로 근거의 제시 없이 수백 년 동안 전설시대라고 한 것, 네 번째로 자신들이 삼국사기와 상이한 말을 하여 놓고 삼국사기가 조작되었다고 한 것, 5번 자신들이 설정한 기준을 자신들이 뒤엎고 삼국사기가 조작되었다고 한 것, 중국 기록에 없으면 조작이라고 한 것, 중국 기록과 같으면 조작이라고 한 것, 중국 기록과 차이가 있으면 조작이라고 한 것, 일본서기에 없으면 조작이라고 한 것, 그러니까 일일이 말할 것도 없이 한마디로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은 소설이지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27쪽, 다음을 보시면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라고 이 연구위원회가 대한민국 국민세금으로 유지됐는데요. 문제 엄청 많은데 백제만 하나, 한국 사람이 쓴 거예요. 백제를 뭐라고 썼느냐 하면 ‘한강유역 백제의 정세는 어떠하였을까?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의하면 고이왕 27년조에 6좌평 및 16관등제 등의 중앙집권적 관료제를 완비했다고 나오나 이는 후세 백제인들의 고이왕 중시 관념에 의하여 조작된 것이다. 이 시기 백제의 발전 정도는 좀 더 낮추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분도 동북아역사지도 고대사 전문위원인데요. 삼국사기에서 BC 18년에 백제가 건국됐다라고 했습니다. 이걸 갖다가 고이왕 3세기 후반에 건국됐다고 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얘기인데 이것도 조작됐다는 거예요. 이런 사람들이 참여해 가지고 만든 지도가 동북아역사지도인 겁니다.


제일 마지막 29쪽에, 동북아역사지도를 그대로 간행하게 되면 어떤 문제가 생기냐면 중국에서 북한 유사시에 북한지역에 대한 영유권 주장해도 우리는 대응논리가 없습니다. 대한민국이 대한민국 국민세금 가지고, 대한민국 국가기관이 우리 땅이라고 했지 않느냐라고 하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리고 임나일본부를 차마 그리지 못했지만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은 임나일본부의 존속을 전제로 지금까지 유지되는 학설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요즘은 임나를 가야라고 주장하면서 심지어, 옛날 쓰다 소키치가 주장했던 임나는 김해 일대인데 지금은 한국 학자들이 전라남도 전부 그리고 충청북도, 충청남도 그리고 경상남․북도 반 이상을 집어넣고 임나, 가야라고 표기하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 우리가 중국이나 일본에서, 중국에서는 지금 동북공정 더 이상 도발 잘 안 하지 않습니까? 이 양반들이 알고 보니까 한국에서 다 해 주는 거예요, 한국의 학자들이, 식민사학자들이. 자기네 할 일을 다 해 주니까 중국에서는 더 이상 안 하는 거고, 지금 일본 아베정권에서 웃고 있는 겁니다, 여기에서 독도도 바라고 뭐하고 하면. 한국 정부에서 대응하는 듯하는데 이 내부를 모르겠습니까, 이 사람들이?


일본에서는 해방 이후에도 식민사학을 지속적으로 관리해서, 일본에 있는 조선학회라고 있습니다. 그 조선학회에서 공적으로 관리하고, 사적으로 하는 부분도 제가 알고 있습니다마는 이 자리는 공적 자리이기 때문에, 제가 명백한 물증까지는 없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어쨌든 이 지도를 제작하면 대한민국은, 이런 지도가 나오면 과연 대한민국이 독립국가라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심각한 의문을 갖게 되고 전 국민적인 상당한 저항에 부딪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상 간략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委員長職務代理 金世淵
수고하셨습니다.


진행 중에 이런 말씀을 드려서 그렇지만, 2008년부터 올해까지 총 47억 2160만 원의 국가 재정이 투입되었고 2018년까지 검수 등을 진행하면 총 50억 원이 넘는 국민 혈세로 조성된 재정이 투입되어서 만들어지고 있는 동북아역사지도에 이렇게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점을 듣고 나니 좀 참담한 그런 생각이 듭니다.


다음은 동북아역사재단 편찬위원인 임기환 서울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님 자리에서 발표해 주십시오.


◯참고인 임기환
동북아역사지도 편찬위원이며 서울교육대학교 교수인 임기환입니다.
앉아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오늘 이덕일 소장의 발표에 대해서 토론할 기회를 주신 김세연 위원장님과 여러 특위 위원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애초에 제게 토론의 기회가 있다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실제 소장님의 발표문은 어제 밤 7시가 넘어서 제가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충분히 검토할 시간도 없었고 거기에 대한 저의, 편찬위원의 입장을 정리할 수 있는 토론문도 제대로 작성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혹시 토론문이 부족하거나 또 오자가 있어도 위원 여러분님의 양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 동북아역사지도 편찬위원회는 지도를 완성하면 학계와 사회에 공개를 해서 많은 의견을 수렴해 가지고 올바르고 정당한 지도를 만들기 위해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덕일 소장께서 저희 지도를 비판적으로 검토해 주신다고 해서 저희 지도 만드는 데 큰 보탬이 되리라 기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발표 PPT를 보고 이덕일 소장께서 좀 편견을 갖고 저희 지도를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8쪽에, 아까 말씀하신 바 있는 지도입니다. 장성선이다라고…… 저는 장성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경계선으로 그린 거고요.


그다음에 이 지도에서, 저희는 고구려를 위만조선 안에 있는 그런 존재로 그렸습니다, 위만조선 영역 안에 있는 존재. 그런데 이 지도를, 이 고구려를 고구려현이라고 갑자기 바꾸어 오시면서 이게 동북공정의 논리를 주장했다라고 이렇게 지적하시는 것을 보고 저희 지도를 제대로 보고 있지 않으시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까 마지막에도 말씀하셨다시피 저희 지도가 임나일본부를 차마 그리지 못했다라고 지적을 하셨습니다. 저희는 임나일본부를 그릴 생각이 추호도 없고 이 부분에 대해서 냉정하게 비판을 하는 지도를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도 않고 그리지도 않은 지도를 이덕일 소장께서 주관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은 이것은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라고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아까 24쪽의 독도 지도 말씀하셨습니다. 지적한 대로 이 지도에서 독도가 누락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저희의 실수입니다. 저희 지도는 GIS 프로그램, 디지털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만들기 때문에 매 지도의 출력 범위를 정하게 됩니다. 저희 지도가 완성된 게 아니고 수정․보완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 지도를 할 때 아마 이 부분이 잘못 잘린 것 같습니다. 이덕일 소장께서 이 부분을 앞으로 지도를 만들 때 이런 부분을 깊이 유의해 달라고 말씀하셨으면 저희가 충언으로 받아드리고자 합니다. 그런데 이 지도 한 장으로 일본과의 영토분쟁에 빌미를 주고 있다라는 지적은 좀 지나친 비약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좀 더 많은 지적을 해 주셨습니다마는 요약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발표문이 있으니까 발표문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덕일 소장님 발표문의 중심 내용은 동북아역사지도의 문제점을 크게 다음 두 가지로 지적하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첫째는 고조선 및 중국 군현의 한반도설, 둘째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불신하고 있다, 이 두 가지 문제점과 도엽편성의 자의성으로 동북아역사지도는 일제 식민사관과 중국의 동북공정을 추종하고 있다라고 주장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이덕일 소장님의 주장에 대해서 결코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동북아역사지도의 문제점으로 구체적인 논증을 결여한 채 일부 이병도의 주장과 동일하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인 평가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 세밀한 분석이나 객관적인 평가가 배제된 상태에서 동북아역사지도의 내용이 중국 혹은 일본주장과 유사하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식민사관과 동북공정에 추종하는 것으로 매도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낙랑 등 한군현의 위치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한 주장은 1차 사료에 대한 이해와 분석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 문제를 가지고 간단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고조선 및 낙랑군의 위치에 관한 문제입니다.


저희 동북아역사지도 편찬 과정과 내용을 말씀드리면 고대사의 위치 규정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한국고대사 역사지리 전문위원회를 구성하고 이와 관련된 자문회의를 13차 진행을 했습니다. 그중에서 2차에 걸쳐서 후기 고조선의 중심지와 낙랑군의 위치에 관한 기왕의 견해를 충분히 검토하고 종합적이고 객관적인 결론을 도출하였습니다.


아까 말씀하셨다시피 기본적으로 낙랑군의 위치에 대해서는 대동강설, 요동설, 난하 및 대릉하 인근설 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문헌사료와 고고자료, 논리적인 정합성들을 세밀히 검토하여 현재 지도와 같이 대동강 일대에 후기 고조선과 낙랑군을 위치시키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결론이라고 판단을 했습니다. 이는 많은 고고자료와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또 최근에는 정백동 364호 목곽묘에서 초원 4년의 낙랑 25개 현 호구부가 출토되었고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부분들도 낙랑군의 위치에 대한 분명한 물적 자료라고 생각을 합니다.


두 번째, 이덕일 소장께서 독사방여기요에 근거한 낙랑군 조선현=하북성 노룡현 주장을 하고 계십니다.


독사방여기요는 사실은 1차 자료라기보다는 청대에 저술한 역사지리적 연구서의 성격이 굉장히 큰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자료보다는 1차 자료를, 아까 이덕일 소장께서 1차 자료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는데 1차 자료에 의거해서 논리를 전개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독사방여기요가 2차 자료라고 하더라도 발표문을 보면 그중의 일부 자료만 따서 문제를 제기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 부분에 대한 전문을 지금 제시해 드렸고 그다음에 번역문까지 제시해 드렸습니다.


그중에서 일부만 꺼냈는데 사실은 거기 보시면, 3쪽입니다. ‘한대 낙랑군 속현인데 지금 조선의 경내에 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독사방여기요에서 낙랑군 속현, 이것이 지금의 조선이지요, 이 책을 만들 당시, 한반도에 있다는 얘기를 한 것이고요. 그 뒤에 여러 가지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한대 비려현이 설치된 곳이라는 점을 알 수가 있고요.


이것은 분문에서 분명히 얘기하듯이 교군입니다. 교군과 교현은 중국 남북조시대 영역이 다른 국가에 넘어갔을 때 그곳의 지방기구를 다른 내지에 임시로 존속케 하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독사방여기요에서 얘기하듯이 여기의, 북위시대의 조선현은 교현으로서 이것이 본래 조선현의 자리가 아님을 보여 주는 자료입니다. 그런데 이덕일 소장께서는 이것을 반대로 사용하고 계십니다. 즉 사료비판을 제대로 하고 계시지 않다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낙랑군 수성현 기사 관련 문제입니다.
4쪽이 되겠습니다.


낙랑 수성현과 장성을 연결시키는 것은 태강지리지 자료입니다. 이 자료에 의해서 여러 진서자료나 통전자료들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태강지리지가 보여 주고 있는 수성현에서 장성이 시작됐다라는 자료는 엄밀한 사료 비판을 거쳐서 문제가 많다라는 것이 이미 학계에서 충분히 논의가 되었습니다. 그 논증 과정은 굉장히 길기 때문에 제가 이 자리에서 다 말씀드리기도 어렵습니다. 그것은 이미 학계에 발표되어 있는 논문을 충분히 참고하시면 됩니다. 이 자료를 비판하시기 위해서는 태강지리지, 수성현과 관련된 자료, 논문들을 또 재비판하셔야지 이 자료를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특히 사기 하본기에 나오는 사기색은 주어에 보면, 이것도 2차 자료입니다. 그렇지만 거기도 보면 낙랑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다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래서 장성이 소기(所起)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갈석이 두 개가 있다고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요서에 있는 갈석산 그것은 북평에 있는 그것이다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갈석이 여러 개가 있는 것이고 이 여러 개 있는 갈석의 오해 과정에서 장성이 수성현에 있다라는 그런 잘못된 기록이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이런 사료 비판의 과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 지도를 보면, 이덕일 소장님께서 걱정하시는 바와 같이 중국 지도를 보면 장성이 한반도의 낙랑 수성현까지 이어지게 그려져 있습니다. 중국 지도가 장성을 한반도 내까지 잇게 그리는 가장 결정적인 근거가 바로 태강지리지의 바로 이 문장입니다. 따라서 이 문장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게 되면 중국 측의 논리를 추종하게 되는 결과가 됩니다. 오히려 이덕일 소장님께서 걱정하는 것을 따라가게 되는 겁니다.


사실 낙랑이 어디 있느냐, 낙랑 수성현이 어디 있느냐의 문제는 이 하나의 문장을 가지고 따지는 것이 아니라 많은 문헌자료, 고고자료를 통해서 종합적으로 검증해야 될 문제입니다. 단지 낙랑 수성현에 갈석이 있고 여기서 장성이 소기한다라는 이 문장 하나 가지고 낙랑군 수성현의 위치를 규정하는 것은 옳지 않은 방법입니다.


또 패수의 실체와 관련된 수경주의 해석의 문제도 있습니다.


수경은 맞고 수경주는 옳지 않다라는 지적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만 수경보다는 수경주가 오히려 내용상으로 볼 때, 당시 수경에 의문을 품고―거기 저희가 번역을 해 놓았습니다마는―실제적인 조선현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추적하는 역도원의 자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 수경주입니다. 따라서 수경과 수경주의 사료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학계에서 검토가 되어 있고 이 부분에 대한 논문도 제출되어 있습니다.


또 과거에 정약용 같은 경우에는 수경의 문장, 5쪽 맨 위의 문장입니다. 이것을 역도원은 임패현에서 끊고, 그래서 동남으로 임패현을 지나, 패수는 낙랑 누방향에서 나와 동남으로 임패현을 지나 동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이것을 동으로 흐른다고 해석을 했기 때문에 의문을 품고 수경주를 작성하게 됩니다.


정약용 선생은 이 자체를 비판을 합니다. 임패현은 동쪽을 지난다, 이것은 쓸데없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이 문제도 충분히 같이 검토되지 않고 일방적으로 수경의 문장은 맞고 뒤의 수경주의 문장은 틀리다는 것도 잘못되어 있습니다.


물론 저나 저희 학계에서는 패수의 문제를 또는 낙랑 조선현의 문제를 수경주에 의존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아까도 이덕일 소장께서 지적하셨듯이 진짜 1차 사료는 한서지리지에 있습니다. 한서지리지에 보면 패수와 대수와 열수에 대한 기사가 나와 있습니다. 이 기사는 번역을 해 놨습니다만 ‘패수가 서쪽으로 증지현에 이르러 바다에 들어간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서쪽으로 흐르는 강임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까 수경주하고는 좀 다른 내용들이지요. 이런 1차적인 자료, 이 자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자료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이와 관련된 낭랑군의 위치 그다음에 위만조선의 왕검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학계에 그동안 많은 논문들이 나와 있습니다. 이 많은 논문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문제를 제기해야 옳은데 무조건 잘못되었다, 결론이 식민사학자하고 같다라고 해서 그것을 식민사관으로 보는 것은 올바른 학술적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위만조선의 후기 중심지와 낙랑군의 위치에 대해서는 실학자들이 문헌적 검토를 충분히 했던 것이고 사실 문헌 자료에서 제기드릴 수 있는 많은 문제들은 실학시대에 이미 다 제기되었던 것이고 그때 평양을 중심으로 위치하고 있다는 결론도 다수로서 연구가 나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긴 연구사를 다 배제하고 오로지 결론 하나 가지고 옳지도 않은, 일제 식민지사학과 연결시킨다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두 번째로 지적하신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에 대한 입장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삼국사기 초기 기록이라고 하는 것은 중앙집권적 국가체제의 토대가 구축되기 이전의 기록으로서 삼국사기 초기 기록에 대해서는 아까 이덕일 소장께서 지적하셨듯이 불신론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믿자라는 신빙론도 있고, 이런 것들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해야 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불신론은 식민지 사학에 의해서 제기되었던 것은 맞습니다. 그것은 이미 한국 학계에서 폐기되어 있습니다.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믿지 않는다, 아무도 없습니다. 저 역시 삼국사기 초기 기록에 의존해서 역사를 구성하고 논문을 쓰고, 많은 학자들이 있습니다. 지금 출간되어 있는 한국 고대사의 많은 논문들을 보면 삼국사기 초기 기록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런데 불신하고 있다라는 지적은 현재 학계의 움직임을 전혀 보지 않은, 이해하지 못하는 말씀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단, 한국 학계에서는 이것을 무조건 믿을 것이냐 아니면 이것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것이냐라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삼국사기 초기 기록은 삼국의 역사만을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부여, 가야, 발해에 대한 본기는 설정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또 백제와 신라국 중심으로써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 시기에 존재했던 삼한의 다양한 국가들의 존재를 사장시키고 있습니다.


역사의 역동성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나중에 통합을 했던 백제와 신라만으로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방과 관련되어서 그 시기의 역사를 풍부하게 구성하는 것이 올바른 역사적 태도라고 생각을 합니다.


삼국사기 초기 기록에 대한 맹목적인 신빙론은 삼국 중심으로만 파악하게 되고 삼국사기 초기 기록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그 자료가 어떻게 되었는지, 자료적 검토를 하지 않은 지적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저희 학계에서는 삼국사기 초기 기록에 대한 원전 자료의 검토, 자료적 검토들이 아주 풍부하게 진행되고 있고, 그런 자료적 성격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하는 이유는 삼국사기 기록을 최대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적극적인 의지의 결과입니다. 안 그렇다 그러면 삼국사기 기록이 어느 것이 옳고 타당한지를 다 따져보겠습니까?


예를 들어 백제본기에 보면 온조왕조에 온조가 백제의 경역을 순시한 기사가 있습니다. 그때 큰 영역국가를 구축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 뒤에 나오는 많은 백제본기의 초기 기록은 그 기사와 충돌을 하게 됩니다. 삼국사기 본기 내에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은 많은 충돌적인 내용들이 있습니다. 이 충돌을 해명하면서 어떤 것이 합리적인 것인가라고 추적하는 것이 바로 초기 기록에 대한 비판적인 검토, 재구성입니다.


저희 학계의 대부분 다수 학자들은 바로 이런 입장에서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수용하고 여기에 기초해서 삼국사기 초기 역사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위원님이나 학계 많은 분들이 한국 고대사 연구의 결과를 조금이라도 들여다보시면 이 부분에 대한 의심을 결코 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에 따라서 본 역사 지도는 삼국의 성장 과정을 삼국과 삼한 소국의 존재를 중심으로 구성하고자 합니다.


다만 텍스트와 달리 지도를 구성하는 과정에서는 지도의 지리 비정이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많은 명칭들이 있지만 어디다가 점을 찍어서 위치를 잡을 것인가 굉장히 어려운 문제들이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은 앞으로 연구를 통해서 해결해 가면서 지도가 점점 풍부해지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일본서기의 기사 역시 마찬가지로, 삼국사기만 비판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일본서기도 비판적으로 보고, 임나일본부설은 이미 한국 학계에서는 폐기했다고 합니다. 오히려 이덕일 소장께서 이 얘기를 현재 부활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구체적으로 도엽 편성과 표기에 대한 세부 사항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적하셨던 위․촉․오의 도엽은, 사실은 저희 지도가 아직 완성된 게 아니라 계속 검토하고 진행되어 가는 과정이고 한국사 지도와 중국사 지도, 이런 지도를 따로 따로 만들다가 결합시키는과정인데 지도의 이 부분들은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부분들이라서…… 4쪽의 지도 같은 경우에는 중국사 지도와 한국사 지도가 제대로 결합되지 않은 부분들입니다. 이 부분은 앞으로 충분히 잘 결합시켜 가지고 하나의 온전한 지도로 만들 생각이고 그렇게 되면 상황이 좀 바뀌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특히 이 지도에서도 아까 경기도까지 지적했다라고 하는 말씀은 맞지 않다고 생각이 됩니다. 한국의 위치에 대해 이미 말씀드렸던 그 범위 내에서 그려져 있습니다. 중국 군현에 대한 위치 문제이지, 경기도까지 위에 그것을 한다거나 이 지도에 의해서 중국의 역사 지도를 모방하거나 베꼈다거나 복제했다라든가 이런 주장은 성립할 수 없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다음에 전기 고조선 도엽과 고조선의 범위에 관한 문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지적하신 바와 같이 붉은 경계선과 흑색 경계선에 대한 지적이 있으셨습니다. 이 부분은 저희도 지금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고조선과 관련된 연구는 문헌 자료만이 아니라 특히 초기 고조선과 관련된 문제는 많은 고고학적 자료가 굉장히 중요한 자료로 등장을 합니다. 그리고 그 고고학적 자료는 현재 중국의 고고학계의 성과에 따라서 나타나게 됩니다. 이 부분 역시 우리 고고학계, 역사학계가 비판적으로 검토를 하고 있습니다.


◯委員長職務代理 金世淵
시간을 같이 배정해 드리기 위해서 2분 내로 마무리해 주십시오.


◯참고인 임기환
알겠습니다.


따라서 현재 지도가 이렇게 된 것은 이 부분에 대한 학계의 논란이 아직 충분히 끝나지 않았고 지금 접점을 만들어 가는 과정 속에 있기 때문에 지도가 이렇게 구분되어서 그려지게 됐습니다.


그리고 저희 지도가 중국 역사 지도와 동일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 부분은 첨부자료 맨 뒤에 보면 지도를 겹쳐 놓은 게 있습니다. 참고하시면 결코 동일한 지도가 아니라는 것을 아실 수가 있습니다. 단지 낙랑군이 한반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동일하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낙랑군이 어디 있느냐는 것은 역사적 사실의 문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종합적으로 말씀드릴 때 한국 고대사에 관한 역사 지리 문제는 사료상의 한계로 쉽게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이 부분도 한국 역사학계에서 앞으로 좀 더 많은 연구를 진행해야 될 과제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 소장 발표에서는 한군현의 위치에 대해서 대안으로 제시한 주장을 제외하면 모두 선입견에 근거해서 저희 지도를 비판하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또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런 주장의 근거로 제시됐던 독사방여기요에 대한 사료의 해독도 일부 사료만 따서 말씀드리는 오류와 왜곡이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문헌과 고고 자료에 대한 최소한의 객관적인 검토하에 제시될 때 저희 지도에 학술적인 발전이 추가될 수 있다라고생각이 됩니다.


다양한 의견이 제출되는 것은 긍정적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저희 역시 마찬가지로 학술적인 비판은 수용을 하고 기꺼이 검토하고 거기에 따라서 수정할 예정에 있습니다.
다만 결론의 유사성만으로 식민사관과 동북공정을 추종한 것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기본적인 학문적 자세가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대한민국의 역사학자로서 식민사학을 추종한다 또는 중국의 동북공정을 추종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지도 않습니다. 저 역시 40년 가까이 한국사를 연구해 왔고 우리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긍지를 갖고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식민사학관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은 선입견이 먼저 작동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역사는 사실에 근거해서 해석할 때 감동하는 것이지 왜곡된 내용으로 자기만족을 꾀할 경우에는 오히려 지금 일본에서 역사 왜곡하는 그런 부분과 마찬가지로 양심적인 국민과 국제사회에서 외면당할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역사는 진실을 가지고 사실을 가지고 진실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제기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그 부분이 학술적으로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근거 없이 편견을 갖고 비학술적으로 주장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이 됩니다.


◯委員長職務代理 金世淵
시간을 많이 초과했습니다. 마무리해 주십시오.


◯참고인 임기환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편찬위에서는 앞으로 역사학계의 모든 견해들을 균형 있게 수렴하는 데 최대한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현재도 많은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노력을 다하고 있으며 이 부분에 대해서 앞으로 건설적인 지적에 대해서는 깊이 경청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委員長職務代理 金世淵
진행상 위원님들 의견을 구하면서 잠시 정리를 하겠습니다.


지금 최봉홍․이상일 위원님이 질의를 신청해 주셨고요.
방금 임기환 교수님, 학술적인 비판에 대해서 충분히 수용하시겠다고 또 이 사업에 있어서 건설적인 비판을 수용해서 진행하시겠다고 하셨는데, 국회에서 이런 토론의 자리를 만들면 앞으로 적극 참여를 해 주시겠습니까?


◯참고인 임기환
예,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학술적인 많은 논의와 논란과 자료들이 검토되어야 되는 부분들입니다. 저희도 그것을 제시하지 못했고, 이런 부분들은 반드시 학술적으로 하나하나 짚어 줘야 되는 부분들이고, 그 부분에 대해서 저희 역사편찬팀은 언제라도 학술적인 논의의 장에 참여할 계획을 갖고 있고 학술적으로 진행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委員長職務代理 金世淵
두 분의 토론을 들었습니다.
질의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간략하게 이덕일 소장님께 반론 시간을 5분 정도 드리고, 거기에 대해서 임기환 교수님에게 3분 정도 재반론의 시간을 드리는 방식으로 진행을 했으면 좋겠는데, 위원님들 괜찮으시겠습니까?


(「예」 하는 위원 있음)
그러면 이덕일 소장님, 5분 범위 안에서 반론을 해 주십시오.


◯참고인 이덕일
이 지도에 보면 위만조선의 왕험성을 대동강 부근으로 그려 놓으셨지요? 그런데 이 지도를 작성할 때 가장 많이 인용한 것이 바로 한서지리지인데 한서지리지의 왕험성 자리에 세웠다는 험독현이 어느 군에 소속되어 있는지 아십니까? 요동군에 소속되어 있어요, 요동군 험독현. 그리고 주석에 옛 위만의 왕검성 자리다, 한서지리지에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유리한 자료는 일체 사용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불리한 자료만…… 불리한 자료도 없어요, 자기네가 다 창작한 자료이지. 그런 자료만 갖다가 대동강설이 가장 합리적인 결과라고 최종 판단을 하셨고요.


그다음에 독사방여기요도 말씀하셨는데, 독사방여기요가 청나라 때 나왔다 그래서 청나라 때만 쓴 게 아니라 한서를 비롯한 온갖 지리 지식을 다 갖고 쓴 겁니다. 중국은 원래 대원일통지, 대명일통지, 대청일통지 해 가지고 지리지 작성이 아주 발달한 나라예요.


이것을 작성한 고조라는 분은 할아버지 대부터 일통지를 계속 작성한 집안이고 이분이 대청일통지 작성에 직접 참여했던 분입니다. 이분이 만든 사료에 노룡현 그쪽에 조선성이 있다라고 했지만, 조선성이 있고 거기가 한나라 낙랑군 조선현이다라고 했으면 우리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믿으면 되는 거지요. 우리가 중국인입니까, 일본인입니까?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믿으면 되는데 여기에 교군, 교현, 복잡한 이야기, 이게 해석도 안 돼요. 교치라는 것은 그런 뜻이 아니라 잠시 이전했다라는 뜻이에요. 한문 공부를 어디서 하셨는지 모르겠는데요.


또 이제 4쪽을 보시면 ‘태강지리지의 내용은 오류임이 학계에서 검토되었음’, 누가 검토했어요? 이게 왜 이 이야기가 나오느냐 하면 태강지리지에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고 장성이 시작된다’라고 나오지 않습니까? 이 3개를 다 입증하는 곳은 지금 하북성 창려현입니다. 그 하북성 창려현에 거기가 옛날 수성현이다라고 수서에 나와 있고, 그다음에 그 근처에 만리장성 동쪽 끝인 지금의 산해관이 있고 그다음에 갈석산이 바로 거기에 있고, 다 그렇게 되어 있는데…… 그러다 보니까 지금까지 식민사학계에서 낙랑군 수성현을 황해도 수안으로 주장해 왔어요. 그런데 안 맞는단 말이지요.


그러니까 안 맞으니까 태강지리지 자체를 가짜로 몰아야 되는데, 태강지리지가 뭐냐 하면 3국을 통일한 서진의 사마의, 사마의 쪽에 사마염이 있는데 이분 사마염이 서기 280년에 마지막 남아 있던 위․촉․오 중에 오나라를 물리치고 천하를 통일합니다. 그래서 통일한 기념으로 연호를 태강으로 바꾸고, 자기가 통일했으니까 태강이란 연호로 바꾸고 다시 거기에서 지리지로 종합한 거예요.


여기에 나와 있는데, 태강이라는 연호는 280년에서 289년인데 이 연대는 뭐냐 하면, 식민사학계에서는 뭐라고 주장하느냐 하면 ‘313년에 평양에 있던 낙랑군이 고구려에 무너졌고 314년에 그 아래에 있던 대방군이 무너졌다’라고 했는데 280년 내지 289년에 만든 태강지리지에 바로 ‘낙랑군 수성현이 지금의 하북성 창려에 있다’라고 나온단 말이지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 하던 수법대로 ‘아, 이 사료가 잘못됐다’ ‘태강지리지가 잘못됐다’…… 태강지리지 틀렸다는 얘기를 다른 나라 가서 해 보세요, 통하나? 이 태강지리지는 여기에만 나오는 게 아니라 사기 주석에 보면 수십 번 나옵니다, ‘태강지리지에 의하면’ ‘태강지리지에 의하면’…… 이런 것은 다 이제 부인하고 있는 거고요.


여기에 또 갈석산이 여러 개 있다 그랬는데, 여러 개 있습니다. 지금 하북성 갈석산도 있고, 여기 북평은 지금의 북경 부분이니까 거기로 따지면 낙랑군 수성현이 더 북쪽으로 가야지요. 그런데 어디에 갈석산이 황해도 수안에 있어 가지고 황해도 수안에 있다라고 그려 놨느냐 하는 이야기지요.


그리고 수경도 마찬가지로, 이 수경 써놓은 것은 뭐냐 하면 수경은…… 시간이 다 됐으니까 그러면 수경은 다음에 하기로 하고요.


여기에 위․촉․오 지도에 ‘이것은 중국 사료로 했기 때문에 한국 입장이 반영 안 됐다’…… 아니, 지도를 만들 때 종합적인 자기 관점을 가지고, 동북아 역사지도 만들 때, 중국 지도 만들 때도 우리 관점을 가지고 하는 거고 일본 지도 만들 때도 우리 관점을 갖고 하는 거지…… 이 말은 뭐냐 하면 중국의 담기양이 만든 동북아 역사지도를 그대로 표절했다 하는 자기고백이에요. 그러고 나서 이제 와서 문제가 되니까 다시 검토하겠다 이렇게 말한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하나같이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이야기들이고, 이것은 중국 동북공정에서 돈을 받고 일본에서 돈 받아 갖고 제작했다 그러면 맞지만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지도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委員長職務代理 金世淵
임기환 교수님, 3분 안에 재반론 해 주십시오.


◯참고인 임기환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료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까 잠깐 말씀드렸는데 이덕일 교수님께서는 전혀 받아들이시지 않습니다. 사료 비판에 대한 문제는 굉장히 중요하고 장황한 문제이고 학술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위원장님께서 말씀하셨다시피 이 부분은 제가 여기에서 짧게 말씀드릴 것이 아니라 정말 학술토론회장에서 어느 주장이, 어떤 입장이 정당한 것인지 학술적으로 규명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지금 계속 말씀하셨다시피 저희 지도가 식민사관, 이 지도에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내용적으로 지적하지 않고 ‘식민사학이다’ ‘동북공정을 따랐다’ 이런 식의 주장은 옳지 않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지금 저희가 만들어 낸 것은, 아까 ‘유리’와 ‘불리’를 말씀하셨는데 저희는 학술적으로 역사적 진실을 지도 속에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그 지도를 통해서 우리 역사를 해석하고 구성하는 것입니다. 유리하고 불리하다는 게 어떤 기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역사적 사실, 팩트에 대한 접근이라는 것이 모든 학문의 가장 기초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 점에서 사료에 대한 학술적 검토 역시 마찬가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委員長職務代理 金世淵
다음은 위원님들 질의순서입니다.
먼저 존경하는 최봉홍 위원님 질의해 주십시오.


◯최봉홍 위원
임 교수님께 여쭈어 보겠습니다.


지금 배부해 드린 중국의 변경 연구현황이라 하는 거 보시기 바랍니다.
이게 중국이 동북공정을 하면서 중국의 역사를 정리하기 위해 가지고 전국을 6개 강역으로 갈라서 연구한 자료입니다.


그 중에 동북공정 하나만 보겠습니다.


다음 페이지에 있는 겁니다.
중국이 자기 나라 땅 동북공정을 실현하기 위해서 고구려, 발해, 조선, 조선족, 조선반도, 동북편 이미 이렇게 맞추어 가지고 여러 연구과제를 가지고 연구를 해서 지금 동북공정을 거의 완료하려고 하고 있는 그런 단계에 들어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내용들을 볼 때 동북아역사재단도 우리 역사를 정리하기 위해서 만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에 해 놓은 것이 우리 역사가 틀렸다 하는 것은 거의 다 국민들이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선사편수회가 만들어진 것이 식민사관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 맞지요? 그것은 인정하십니까?


◯참고인 임기환
예, 조선사편수회는 그렇습니다.


◯최봉홍 위원
그렇지요?
그렇다면 그 중에 가장 결정적인 사항이 한사군 비적 문제인데 한사군 문제에 있어 가지고 거기서 얘기가 나오는 결정적인 자료는 이마니시류가 발굴했다 하는 점제현신사비 그다음 봉니 그것을 가지고 마지막 마무리를 했지요? 사료 다 빼놓고 고고학적으로는 그것으로 마무리한 것 아닙니까?


◯참고인 임기환
그런 고고학자료들이 제시되었습니다.


◯최봉홍 위원
있지요?
그 고고학자료가 지금도 인정되는 자료입니까?


◯참고인 임기환
예, 말씀드리겠습니다.
봉니에 대해서는 그 당시에 정인보 선생이나, ‘봉니가 위조되었을 거다’라고 지적이 된 바 있습니다.


◯최봉홍 위원
신사비는요?


◯참고인 임기환
신사비도 위조되었을 거라고 지적된 바가 있습니다, 당시에.


◯최봉홍 위원
그렇다면 그거 자체가……


◯참고인 임기환
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봉니에 대한 연구는 그 뒤에, 지금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한 200여 점이 넘는 봉니가 있고 이 봉니가 진짜인가 아닌가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그 결과 일부 봉니는 위조되었지만 대부분의 봉니는 진품으로 판명이 되었습니다. 연구결과입니다.


◯최봉홍 위원
신사비는 어떻게 돼요?


◯참고인 임기환
신사비에 대해서 그 진위 여부가 현재 연구가 진행되지는 않았습니다.


◯최봉홍 위원
그런데 그게 실제로 보면 밑을 시멘트로 썼다 하는 것은, 2000년 전에 시멘트를 썼고 돌 자체도 그 지역 돌이 아니고…… 위조가 된 것은 사실 아닙니까?


◯참고인 임기환
점제현신사비 위조 여부는 제가 현재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저희가 점제현신사비와 봉니만 가지고 낙랑군의 위치를 규정하는 게 아니라 그 뒤에 일제시기 이후에……


◯최봉홍 위원
앞에 주장은 여태까지 죽 나왔던 그런 주장으로 해 왔고 마지막으로 정리할 때 그렇게 하면서 이마니시 류를 그 당시에 신의 손이라고 불렀습니다. 저는 그렇게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얼마 전에 일본에서 신의 손이라 해 가지고 구석기시대 유물로 했다가 그거 바꾸는 데 한 20년 이상 걸렸습니다.
이러한 사항을 볼 때 일본의 우리나라 역사를 왜곡하는 문제는 보통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PPT 한번 봐 주시기 바랍니다.
(영상자료를 보며)
이게 랴오닝성에 있는 박물관에 나와 있는 사진입니다. 이거 고구려 벽화입니다. 똑같지요?


그다음 또 봅시다.
이게 용성이라 하는 지역의 발굴지를 조감도로 떠 놓은 거고.
그다음 또 보시지요.
귀걸이하고 장신구류입니다.
청동검입니다.


지금 지도에 나왔던 저런 사항들이, 저기에 발굴된 저 지역이 완전히 중국으로 되어 있습니다. 저거 전부 고조선 것하고 안 똑같습니까?
우리나라 총영사가 중국에 근무를 오래 하신 분입니다. 자기가 거주하는 곳에 있는 저 물건을 전부 찍어 가지고 저한테 보내 준 겁니다.


그런데 우리 역사학자들은 저런 사료들을 전부 중국 거라고, 저기 나와도 그 땅을 중국 거랍니다. 저게 낙랑 땅이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 얘기에 의하면.


중국학계는 고구려사의 중국사 귀속 주장을 바탕으로 고조선, 발해, 고구려 관련된 역사적 맥락에서 재구성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런 연구를 하고 있는데 우리 동북아역사재단은 이런 것을 안 하고 강변 연구하고 또 바잉턴이 쓴 그런 책이나 만들어 내고 여태까지 해 놓은 결과가 뭐 있습니까? 거기에 대해서 교수님 하실 말씀 있습니까?


◯참고인 임기환
예, 말씀드리겠습니다.
위원님께서 보여 주셨던 저 유적은 제가 가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잠깐 사진으로 볼 때 아마 비파형동검과 관련된 문화권인 것 같습니다. 비파형동검 문화가 고조선과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가, 학계에 여러 차례 검토가 되어 있습니다. 그 검토의 범위에 대해서 저희 지도가 그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비파형동검이라고 해서 다 고조선으로 보지 않는 그런 견해도 있습니다. 하나의 문화권을 가지고 우리 민족사의 가장 중요한 고조선 부분을 구성하는 부분 학술적으로 검토가 되고 있습니다. 위원님께서 말씀하셨던 저 부분은 제가 다시 한번 확인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최봉홍 위원
그리고 보십시오.
지금 랴오닝성의 차오양시는 고구려시대의 영주입니다. 이 지역 소속 베이피아오시 박물관 전시물은 우리나라 유물과 같이 저런 내용들이고요.


그다음 평양이라는 지명에 대해서도 이 외교관은 ‘평양은 일정 고유명사가 아니고 서울이라고 불리는 그 당시의 이름이다’ 그래 가지고 그 평양이라는 이름이 요하지방에 많이 있다는 것을 자기가 듣고 해 가지고 얘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다음에 중국의 학자들이……


(발언시간 초과로 마이크 중단)
(마이크 중단 이후 계속 발언한 부분)


우리나라 사람을 동이족이라고 부른 것처럼 상나라 사람들도 동이라고 부른다고 저한테 전달해 주었습니다.


이러한 사항이, 저는 역사에 문외한입니다마는 우리 사학자들이 동북아역사재단이 생겼다면 그동안 연구를 해 가지고 저런 것을 틀렸다, 맞다 하든지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 역사책이나 모든 것을 보면 전부 다 옛날에 식민사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그것을 가지고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를 모르는 사람들은 식민사학을 가지고 주장하고 있다 하고 있습니다.


고려 태조가 고려를 건립을 하고 역대 왕들이 죽 지나오면서 목표가 뭐였습니까? 철령 이북 쪽을 수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철령 이북 쪽이 우리 조선 땅이라 하는 것을 그때부터 하고 있는데, 지금도 우리는 평양이 그거다…… 북한이 지금 평양 중심으로 모든 것을 하다 보니까 그런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마는 우리도 평양이 중심이 아니고 중심지가 다른 데 있었다 하는 것을 밝혀야 긍지가 살리라고 봅니다.


그리고 ‘2333년 전’ 하는 그 문제는 지금 아무도 인정해 주고 있지 않습니다. 이런 사항들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는 삼국사기․삼국유사에 나오는 그런 사항들은 교수님도 좀 연구를 해 가지고 뒷받침을 해서 국민들이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해 주셔야 되는 것 아닙니까?


◯참고인 임기환
위원님 말씀 알겠습니다.


지금 말씀하셨던 해방 이후의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해서도 충분히 저희 학계에서는 비판하고 문제점을 거론하고 있다고 알고 있고 저도 그 부분에 일부 참여를 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런 부분들이 위원님께 충분히 알려드리지 못한 점, 앞으로 역사에서 국민과 그다음에 위원님들과 우리 역사에 대한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갖는 분께 그동안 한국 역사학계가 성취했던 부분들을 충분히 교육시키고 알려드릴 수 있는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최봉홍 위원
그런데 학계에서도,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역사가 단군 이래로 죽 있었는데 왜 그것은 아무도 밝히거나 주장을 하거나 아니, 정사로 삽입하는 그런 작업을 안 해 주십니까?


◯참고인 임기환
그런 한국 민족사의 체계화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고 지금까지도 해 왔고 앞으로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최봉홍 위원
일본은 없는 것까지 만들어 가지고, 임나일본부까지 만들고 또 앞에서 말씀드렸던 구석기시대까지 가짜로 만들어 낸 그런 사람들인데 왜 우리는 사실이 있는 것도 밝히지 못하고 다른 나라 눈치나 보고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그거 역사학자들이 책임져야 될 문제 아닙니까?


◯참고인 임기환
역사연구에서 눈치를 보거나 그렇게 하지 않고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당당하게 우리 민족사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 부분은 위원님께서……


◯최봉홍 위원
예, 알겠습니다.
위원장님께 건의드리겠습니다.


이 문제는 동북아역사재단이 생기고 난 후에 아마 10여 년이 넘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 역사에 대해서 식민사학자라 하는 사람들이나 당당한 사학자라는 사람들끼리 공식적인 토론이 안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주관이 되어 가지고 큰 홀을 빌리든지 해서 국민 앞에서 끝장토론을 한번 하는 식으로 토론회를 개최할 것을 우리가 결의를 해 가지고 교육부에 제시해 주실 것을 건의드립니다.


◯委員長職務代理 金世淵
예, 간사 간에 협의를 거쳐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은 존경하는 이상일 위원님 질의 순서이고요. 지금 신청하신 위원님은 도종환 위원님 계십니다.
이상일 위원님, 질의해 주십시오.


◯이상일 위원
임기환 교수님께 여쭤 보겠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지금 동북공정이나 식민사학에 동조하는 우리 역사학자들이 있을 수도 없고 있지도 않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는데, 지금 팩트확인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거기에도 동의를 합니다.


그다음에 저는 역사학자가 아니지만 팩트의 철저한 확인 또 그에 대한 해석이 중요하겠지요.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지금 식민사학자나 동북공정이 주장하는 것하고 일치하는 결과가 나왔다, 전부는 아니지만 상당수가 나왔다면 그 식민사학자나 동북공정을 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맞다는 것인가요?


◯참고인 임기환
말씀드리겠습니다.


역사는 해석과 사관의 문제와 그다음에 말씀하셨던 역사적 사실의 문제가 있습니다. 사실에 기초해서 해석을 하는 것이지요. 식민사관은 해석을 잘못하고 있습니다. 낙랑군을 계기로 해서 우리 역사를 타율적으로 본다거나 또는 정체적으로 본다거나 그게 식민사학입니다. 동북공정은 고구려의 역사 또는 고조선의 역사를 매개로 해서 그걸 중국사로 치환시키고 환원시키는 왜곡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저희……


◯이상일 위원
지금 만드는 지도가 아직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교수님 말씀에 따르면 독도를 누락한 것은 실수이고 또 일부 위나라 문제인가요, 그것에 대해서는 중국 측의 지도를 반영하다 보니까 아직 제대로 만들지는 못했다…… 그러니까 일종의 지금 우리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실수로 치부를 하셨고요. 그 나머지는 그러면 대체로 완벽하다는 주장을 하신 것 같은데, 물론 만드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그렇다면 왜 김학준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님 같은 경우는 이걸 폐기를 하시겠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고, 그다음에 교육부는 3년간 앞으로 검수를 하겠다고 하나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역사학계에서 지금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 학계가 충분한 검토를 했고 여기 과정에 보면 몇 차례 회의를 거쳐서 그 학계의 입장을 가능한 한 많이 반영한 지도를 현재까지는 만들었다는 취지로 이야기를 하셨잖아요? 그런데 왜 지금 이게 문제가 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참고인 임기환
저희는 학술적으로 학계의 많은 의견을 들어서 지도를 만들었습니다. 저희도 만들어진 이 지도가, 저희가 일단 그것을 완료를 하면 이 부분은 향후에 다양한 형태의 검수 과정을 거쳐서 보다 완벽한 지도로 만들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시점에서 왜 이 지도가 폐기되어야 한다라는 이런 얘기가 나왔는지 저희도 굉장히 당혹스럽습니다. 학계의 많은 이런 의견들이 모아져서 혹시 부족한 점이 있다고 한다면 보완을 해 나가야 되는데 왜 이 부분이 현재 폐기되어야 되는지 그 부분은 저도 사실 납득하기 어렵고, 또 이 부분은 이제까지 만들어 왔던 이런 부분들에 대한 신뢰를 갖고 보완을 통해서 계속 작업이 진전되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게 편찬위원회의 한 사람으로서의 생각입니다.


◯이상일 위원
그 학계가 어떤 학계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생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소위 우리가 말하는 주류 사학계 또 좀 더 광범위하게 하면 식민사관이 이어져 왔다는 그런 주류 사학계, 이런 지적이 나올 것 같은데 지금 시간이 없어서 그러는데요, 동북아역사지도 편찬과 관련해서 2011년 7월에 한국고대역사지리 7차 토론회가 열렸지요?


◯참고인 임기환
예.


◯이상일 위원
교수님, 계셨나요?


◯참고인 임기환
예, 있었습니다.


◯이상일 위원
그때 회의록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고조선, 중국 군현, 부여 읍루 옥저 동예의 역사지리에 관한 회의였지요?


◯참고인 임기환
예, 그렇습니다.


◯이상일 위원
거기서 ‘동아시아문화지도를 제시해서 고조선의 특별성을 약화시키자’, 이건 무슨 뜻입니까?


◯참고인 임기환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회의에서 저는 고조선이 동아시아 전체의 문화 속에서 객관적으로 보편적으로 파악되어야 된다는 취지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고조선만 따로 떼어서 고조선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저희 지도가 동북아역사지도입니다. ‘동아시아 전체 속에서 고조선의 위상이 평가되어야지 그것이 객관적이다. 그리고 고조선의 위상이 높아질 수 있다’, 그런 취지를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상일 위원
그것을 개연설명으로 분명히 하셨습니까? 아니면 제가 질문을 드리니까 지금 말씀하시는 겁니까?


◯참고인 임기환
아닙니다.


◯이상일 위원
듣기에 따라서는 아까 말씀하신 대로……
(발언시간 초과로 마이크 중단)


1분만 더 주십시오.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유지하면서 지금 역사 연구를 하고 계신다고 했는데 듣기에 따라서는 지금 배치되는 그 의도성이 보여지는 것 같아서……


◯참고인 임기환
아닙니다. 그건 분명히 제가 양심껏 말씀드리고 아마 그때 서기가 정리하는 과정에 길게 말씀, 그런 취지로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상일 위원
그런데 이런 말씀을 해 놓고 나서 이런 지도가 나오니까 당연히 문제가 되는 거지요.
그다음에 하나 더 여쭤 보겠습니다.


이덕일 소장님이 지적하신 것과 관련해서 김태식 교수님의 백제관에 대한 역사 서술이 있잖아요. 백제에 대한 이야기?


◯참고인 임기환
발표 중에 있던 것 말씀하시는 거지요?


◯이상일 위원
지도 27페이지를 보십시오.
그것에 대해서 동의를 하십니까?


◯참고인 임기환
왼쪽 편 글 말씀하십니까?


◯이상일 위원
27쪽에 김태식 교수님이지요, 지금 역사지도 전문위원이신데……


◯참고인 임기환
예, 그렇습니다.


◯이상일 위원
이분의……
(발언시간 초과로 마이크 중단)
(마이크 중단 이후 계속 발언한 부분)
백제에 대한 서술에 대해서 동의를 하시나요?


◯참고인 임기환
6좌평과 16관등은 백제의 중앙집권적 체제의 하나의 정치 제도의 문제입니다. 이 제도는 백제 후기에 만들어졌다고 보입니다. 그때 고이왕조 삼국사기 기사에 이 기사가 나와 있기 때문에 이 기사는 후대의 상황이 고이왕조에 반영된 것으로 사료비판으로 검토를 하고 있습니다. 김태식 교수의 이 얘기가 학계의 견해에 위배되는 부분은 아닙니다.


◯이상일 위원
아니다 이거지요?


◯참고인 임기환
예.


◯이상일 위원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제대로 토론이 이루어졌는지 잠깐 얘기해 주시고 하나만 더 여쭤 볼게요.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불신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반영한 지도를 만드신 게 있습니까, 이 안에서?


◯참고인 임기환
삼국사기 초기 기록이요?


◯이상일 위원
예.


◯참고인 임기환
삼국사기 초기 기록 외에 여러 가지 지명들이 나와 있습니다. 삼국사기 초기 기록에도 소국들의 지명들이 나와 있습니다. 이 소국들의 지명들을 저희가 지도에 반영을 하고 있습니다.


◯참고인 이덕일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삼국사기 초기 기록이 이 지도에 단 한 장도 나온 게 없어요. 그러면 몇 쪽에 나왔다라고 하면 됩니다. 삼국사기에는 BC 57년에 신라가 건국됐고 BC 37년에 고구려 건국됐고 그다음에 BC 18년에 백제 건국됐고, 그런데 여기는 아까 저희가 이 지도에서 보셨다시피 서기 300년에도 고구려, 신라하고 백제가 없어요. 이게 제가 이 지도만 갖고 왔는데 다른 지도 보면 일관되게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추정하고 있습니다. 있으면, 그걸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인정하고 그렸으면 지금 제출한 그 지도 중에 몇 쪽에서 인정해서 그렸는지 간단하게 말씀하시면 되지요, 복잡하게 이렇게 설명하실 필요 없이.


◯참고인 임기환
말씀드리겠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3세기까지의 기록은 삼한으로 표현된 중국 삼국지 동이전의 기록이 있고 삼국사기 초기 기록이 있습니다. 삼국사기 초기 기록은 오직 백제와 신라만이 표현돼 있는 것이고 삼국지 동이전 기록은 이 안에 많은 속국과 정치체의 움직임이 드러나 있습니다.


저희는 이 두 기록을 합쳐서 그렸고 그래서 백제국과 사로국, 신라는 백제와 신라로 쓰지 않고 백제국과 사로국으로 표현을 했습니다.


◯참고인 이덕일
만주원류고에 보면 삼한을 요동반도로 그려 놓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 그리고 지금 말씀하신 삼국지위서동이전 한조에 보면 삼한의 그 크기를 사방 사천 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지금 한반도 남북, 사방 사천 리가 됩니까?


그러니까 모든 중국 사료들은 우리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전부 다 대단히, 중국 동북공정을 한방에 다 끝낼 수 있고 일본 극우파의 역사 침략을 다 막을 수 있는데 이리저리 말장난해 가면서 무슨 삼국지, 한조는 삼한도 간략하게 있고 나라가 마한은 54개, 진한․변한은 12개, 78개 속국이 있었다. 이 내용이 간단합니다.


삼국사기는 사실상 편년체 아닙니까? 어느 왕 몇 년에 무슨 일이 있었고 어느 왕 몇 년에 무슨일이 있었고. 그러면 이것을 부인하려면, 수사하는 것하고 똑같잖아요, 이게 거짓이라고 말하려면 이게 거짓임을 입증하는 또 다른 사료를 갖다 대면서 이런 여러 사료들을 보니까 삼국사기 초기 기록이 틀렸다라고 하면 역사학적 방법론에 맞습니다.


편년체로 돼 있는 모든 사료를 삼사백 년 뭉텅이로 가짜라고 그러고 그걸 삼국지위서동이전 한조에 나와 있는 삼한은 어쩌고저쩌고 하는, 그러면서도 가장 중요한 삼한의 광역은 사방 사천 리다, 그러면 사방 사천 리 되는 데가 한반도 전체를 따져도 남북으로 삼천 리밖에 안 되는데 사천 리가 어떻게 나옵니까?


◯이상일 위원
제가 하나만 더……
우리 재단에서 말이지요, 검증을 앞으로 3년 동안 재단이 합니까, 교육부가 합니까? 그런데 이 검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실 계획입니까?
보고 좀 하시지요.


◯동북아역사재단운영관리실장 편경범
동북아역사재단 운영관리실장 편경범입니다.
4월 2일 날 제가 역사실장 그다음에 홍보실장을 데리고 이사님 방에 들어가서 동북아역사지도 향후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한 원칙을 확실히 정해서 그때 언론계하고 교육부하고 전부 다 보고를 했습니다.


그 원칙은 첫 번째, 서강대학교 지도편찬위가 제작 중인 지도집은 발간하지 않음. 2. 재단은 프로그램을 포함한 용역 결과물을 11월 말까지 이관 접수함. 3. 재단은 검수단을 구성, 경과물을 철저하고도 정치하게 검증함. 4. 이를 바탕으로 각계의 전문가들과 함께 우리나라 역사지도를 완성함, 이렇게 결정을 했습니다.


◯이상일 위원
그래서 앞으로 검수 과정에 말이지요, 지금 한쪽에 치우친 분들이 들어가서 만들어서 문제가 생겼다고 볼 수도 있는데 이덕일 소장님 또 다른 견해를 가지신 분들이 좀 반영이 돼야 제대로 될 것 같아요.


그다음에 47억 원을 들여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만약에 문제가 생긴 걸로 됐을 때는 책임을 져야 될 것 아니에요?


◯동북아역사재단운영관리실장 편경범
그래서 이것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현재 동북아역사지도를 고조선 때 위치 비정한 논문에 의하면 평양설을 주축으로 해서 수경주를 제일 중요한 사료로 잡았습니다. 그런데 일본 학자하고 리지린 북한 학자들하고 한 바에 의하면 이 수경주에서부터 역사왜곡이 일어납니다. 역도원이 의도하지 않은 걸로는 봐져요. 왜냐하면 고구려 사신한테 패수가 어디가 있냐니까 자기네들 평양성 남쪽에 있다고, 패수 위쪽에 평양성이 있다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역도원이 현재의 대동강을 패수라고 비정을 하면서 역사왜곡이 시작됩니다.


그 이전에 사마천의 사기가 BC 90년에 이루어졌고, 그다음에 반고의 한서가 한나라 때 이루어졌는데 그때하고 태강지리지가 한 280~290년대에 나오지 않습니까? 그때까지는 역사왜곡이 안 된 걸로 봐집니다. 정확히 나오는데 역도원이 512년경에 만든 수경주서부터 이게 왜곡이 되니까 그 이후에 수나라 당나라 때부터 전부 다 왜곡이 일어나고 고려시대 조선시대까지 이렇게 이어지는 걸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수경주가 정확하다고 그런다면 질문이 나오는 것이 일단 위만이라든가 왕검성을 갈 때 패수를 건너서 가야 됩니다. 그러면 평양성 남쪽에 패수가 있기 때문에 먼저 건널 수가 없어요, 중국 쪽에 패수가 가까워야 돼요. 그러니까 일본 학자는 그걸 알고 압록강으로 패수를 비정했고 이병도 교수는 청천강으로 비정을 한 겁니다. 그에 대한 해명이 있어야 될 것 같고요.


그다음에 두 번째는 갈석산과 연계돼 있습니다. 갈석산은 중국 담기양지도라든가, 중국 지도에서 굉장히 유명하고 한무제라든가 진시황이라든가 조조라든가 유명한 사람들이 다 올라갔어요. 지금도 북경 동쪽에 가서 보면 확인이 됩니다.


그 갈석산을 어떻게, 그러면 못 믿을 거냐? 낙랑군 수성현을 수안이라고 비정했으면 거기에 갈석산이 있어야 되고 거기서 진나라 연나라의 장성이 시작됐다라고 봐야 됩니다. 그러면 만리장성이 거기서부터 시작된 겁니다. 그러면 일단 담기양이 만리장성을 그래서 그렇게 그리는데 자기도 이상하잖아요. 그러니까 실선으로 못 그리고 점선으로 그려놨어요, 담기양의 책에는. 그래서 그것도 해명이 돼야 되고 만리장성 그을 때 요하의 늪지대하고 천산산맥 이런 걸 건너려면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에 대한 해명이 정확히 있어야 되고 토목공학적으로도 어렵고 그다음에 군사학적으로도 방어할 그런 효과를 보지 못하는 성입니다.


그다음에 이 소스데이터를 우리가 독자적으로 중국이라든가 이런 것을 강창일 위원님이 저번에 질의하셨던데요, 우리가 보니까 독자적으로 연구를 해 가지고 연구 결과가 나와야 그걸 결과물로 표시하는 게 지도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한 독자적인 능력이 아직 안 된 상태에서 지도를 그리다 보니까 중국 쪽 소스데이터를 활용할 수밖에 없는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걸 충분히 우리 식으로 연구를 해 가지고 결과물이 지도로 나타난 거지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이상일 위원
저 말씀에 대해서 임 교수님이 하실 말씀……


◯참고인 임기환
예, 지금 편 실장님께서 말씀하셨던 위치 비정의 문제, 사료의 문제를 또 제기를 하셨습니다.


아까도 제가 말씀드렸다시피 낙랑국 위치에 대한 사료 문제, 왕검성 위치에 대한 사료 문제는 많은 사료와 많은 사료에 대한 검토들이 학계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제가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 학술적 토론의 자리가 있으면 그 자리에서 정말 그 사료에 대한 본격적인 토론들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이상일 위원
그런데 아까 수경에 대한 말씀이나 갈석산에 대한 말씀은 지금 저 말씀하고 다르지 않습니까? 이미 그거를 맞다고 전제하고 그리신 거 아니에요?


◯참고인 임기환
예, 수경 같은 경우도 맞습니다.


◯이상일 위원
그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거 아닙니까?


◯委員長職務代理 金世淵
정리해 주십시오.


◯참고인 이덕일
수경 자꾸 이야기 나오기 때문에 제가 잠깐 보충말씀 드리겠습니다.


수경은 원문이 있고 수경 주석이 있는데, 원문은 패수는 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나바 이와기치나 이병도나 식민사학자들 머릿속에 이 패수를 대동강이나 청천강, 압록강 이렇게 그려 놓으니까 다 서쪽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게 말이 안 맞네 해 가지고…… 서쪽으로 흘러야 되는데 이게 동쪽으로 흐른다. 왜 동쪽으로 흐르냐면 중국 갈석산 근처 가 보면 연산산맥 있지 않습니까? 그 연산산맥 이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동쪽으로 흐르는 거예요, 이 패수가. 그런데 패수 원문이 틀렸다고 생각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왜 그러냐 하면……


역도원이라는 사람은 6세기 때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고구려 평양 천도사를 좀 인식하셔야 되는데,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한 게 427년이지 않습니까? 역도원은 그 후 100여 년 뒤의 사람이에요. 그런데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하기 약 200여 년 전에, 180년 전에 동천왕 21년, 247년에 동천왕이 평양으로 천도합니다. 그런데 삼국사기에 뭐라고 돼 있냐면 그때의 평양을 ‘선인 왕검의 고택이다. 단군왕검의 고택, 단군왕검의 집이다’ 그리고 또 하나 뭐냐고 써놨냐면 ‘혹 왕험성이다’ 그러니까 동천왕 21년에 천도한 평양은 지금 저희가 이야기하는 하북성이나 이 일대에 있는 평양이에요. 이거는 247년이지요. 그러니까 역도원 이 사람은 6세기 때 사람이니까 100년 전에 장수왕이 천도한 평양을 그 평양으로 알고……


역도원이라는 사람이 고구려사에 대해서 얼마나 정통하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오인해 가지고 질문하니까 고구려 사신이 서쪽으로 흐른다라고 한 걸 갖다가 식민사학자들이 ‘아, 됐다. 이 사료 하나면 다 뒤엎을 수 있다’라고 해 가지고 서쪽으로 흐른다라고 했는데, 연암 박지원하고 김경선이라는 분이 이미 다 이야기했어요. ‘후대 학자들이 패수를 갖다 구구하게 압록강이네 청천강이네 대동강이네 끌어 들여 가지고 우리 선조들의 강역을 전쟁하지도 않고 다 빼앗겼으니 얼마나 통탄할 노릇이냐’


박지원 선생이나 성호 이익 선생이 지금 자리에 와 계시면 진짜 통탄할 겁니다. 21세기에 우리가 식민지도 아니고 벌써 독립국가 됐고 OECD 국가가 됐는데 아직도 머릿속은 다 식민사학으로 이렇게 지도 그려 놓고 있고.


논리를 따져 보면 맞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대동강설은 1차 사료도 하나도 없고. 유물이라는 건 말이 없어요. 말이 없는 유물 몇 개 갖다 놓고, 다 조작된 유물들, 그것 갖다 놓고……


세끼노 타다시 도쿄공대 교수가 여기에서 이거 발견했고 여기에서 이거 다 발견했는데 이분이 뭐라고 써놨냐면 ‘우연히 발견했다’ 이것도 우연히 발견하고 이것도 우연히 발견하고 이것도 우연히 발견하고 여섯 번이나 우연히 발견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해석하기에는 이 세끼노 타다시라는 사람이 조금은 양심이 있어 가지고 후대인들에  수수께끼 코드를 준 게 아니냐. 그렇지않으면 2000년 동안 아무도 발견 못한 걸 갖다가 어떻게 하루 이틀 만에 우연히 발견하고 우연히 발견하고 하느냐 하는 이야기……


◯委員長職務代理 金世淵
정리해 주십시오.
지금 사실 논의가 아주 열띠게 돌아가고 있어서 제가 시간을 엄격하게 적용하진 않았습니다마는, 위원님들 이후 일정을 고려할 때 시간을 잘 지켜 주시기를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지금 도종환 위원님, 이명수 위원님, 김제식 위원님 순서로 신청을 하셨고요.
다음은 존경하는 도종환 위원님 질의해 주십시오.


◯도종환 위원
도종환 위원입니다.
지금 동북아역사지도를 원래 5년으로 만들려고 했다가 3년 더 연장해서 2008년부터 2015년까지 8년간 작업을 해 왔어요. 예산 46억 8000이 들었네요.
이렇게 오랫동안 많은 예산을 들여서 한 작업인데, 임기환 교수님께서 좀 전에 위나라가 경기도까지 차지한 것으로 표현된 부분에 대한 지적에 대해서 완성된 것이 아니라 계속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참고인 임기환
예.


◯도종환 위원
그리고 상대 국가나 민족의 상황과 대비해서 최종 정리할 것이다, 이렇게도 말씀하셨네요?


◯참고인 임기환
예.


◯도종환 위원
그리고 전기 고조선 도엽과 고조선의 범위 문제에 관한 논란에 대해서는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렇게 아까 답변을 하셨어요?


◯참고인 임기환
예, 그렇습니다.


◯도종환 위원
또 독도 안 그린 거에 대해서는 실수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참고인 임기환
예.


◯도종환 위원
8년 동안, 5년 작업으로 끝날 것을 3년 더 연장해서 여기까지 이렇게 많은 예산을 들여서 만들고 난 뒤에 지금도 아직도 이렇게 실수라든가 또는 계속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라고 말씀을 하시는 걸 들으면서 국가 예산을 이렇게 많이 투자했는데 아직도 계속 이렇게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면 어디까지를 신뢰해야 되는가 하는 생각을 저희들은 하게 되는 거예요.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 가는 과정이 될 거면 앞으로도 계속 예산을 우리가 세워야 할 것인지 여러 가지를 우리들은 고민을 해야 되는 거지요.


또 4세기에 신라 백제가 없는 것에 대해서 쓰다 소키치 등이 삼국사기 불신론을, 수정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그건 아니다, 우리도 임나일본부는 인정 안 한다, 아까 이렇게 또 말씀을 말씀하셨어요. 그러면서 민족사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올바르고 정당한 지도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는데, 이게 말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신뢰할 수 있게 또 국민들이 봐도 인정할 수 있게 학계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인정할 수 있게 이렇게 돼야지만 또 교육적으로 학교에서 가르칠 수도 있고 이렇게 되지 않겠습니까? 여러 가지 측면에서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몇 가지만 여쭤볼게요.


아까 말씀하신 대로 그거 한번 우선 첫 번째.
신라 백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임나일본부 인정 안 한다고 그랬는데, “지도 몇 쪽에 있느냐? 그러면 그것 말씀해 보십시오.”라고 아까 질문을 하시던데, 지도 몇 쪽에 이게 있습니까?


◯참고인 임기환
저희 지도요?


◯도종환 위원
예.


◯참고인 임기환
저희 지도에서는 임나일본부를 그려본 적이 없기 때문에 몇 쪽에 있다라는 말씀을 드릴 수는 없고요.


◯도종환 위원
아니, 임나일본부 그렸다는 게 아니라 신라 백제가 없는 부분에 대해서……


◯참고인 임기환
신라 백제가 없는 부분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겁니까?


◯도종환 위원
예.


◯참고인 임기환
신라 백제를 그렸는데요. 그리고 3세기 이전에는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백제국과 사로국으로 표시를 했습니다. ‘삼한 소국의 분포 151~251’ 안 지도를 보시면 되겠습니다.


◯도종환 위원
고구려의 성장 120년부터 300년까지 그 부분에 4세기에도 신라 백제가 없고 서기 300년에도 신라 백제 가야가 존재하지 않는 부분,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참고인 임기환
이 부분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지도 마한에서 백제의 성장 251년도의 백제 영역이 그려져 있습니다. 고구려 성장 지도 부분에서, 이 부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지도를 그릴 때 경계와 영역을……


도종환 위원
잠깐만, 시간 관계상……
위원장님!


◯委員長職務代理 金世淵
예.


◯도종환 위원
우리가 지도를 연도별로 볼 수 있고 우리도 확인할 수 있게 그렇게 조치를 좀 취해 주셔야 될 것 같아요.


◯委員長職務代理 金世淵
예, 그러면 지도를 정리해서 각 위원실에 제출해 주십시오.


◯참고인 임기환
예.


◯도종환 위원
그리고……


◯참고인 임기환
답변을 드리……


◯도종환 위원
잠깐만요. 조금만 더 질문을 하고, 지금 시간이 1분도 아직 안 남아서 몇 개 더 질문하고 한꺼번에 답변할 시간을 드릴게요.


아까 5세기 초의 고구려의 팽창과 관련해서 이덕일 교수님이 고구려 모본왕 2년에 한나라 북평, 어양, 상곡, 태원을 공격했다는 중국 후한서에 나오는 것하고 그다음에 태조대왕이 요서에 10개성을 쌓아서 한나라 군사를 방비했다 이런 부분들이 만약에 지도로 표시되면 고구려 영역이 훨씬 더 서쪽으로 간다, 이런 주장을 하고 계시거든요.
그리고 지난번에 말씀 들어 보니까 디지털화 하면서 구체적으로 점을 찍으면, 연도별 지도까지……


(발언시간 초과로 마이크 중단)
다 만들어질 수 있는 정도로 작업을 했다, 이런 말씀을 들었는데요.
(자료를 들어 보이며)


그렇다면 이런 것들이 반영된 지도는 5세기 초 고구려의 지금 있는 이 지도보다 훨씬 더 서쪽으로 갈 지도가 만들어질 텐데, 이 부분에 대해서도 좀 이따 답변을 해 주시고.
갈석산 문제를 계속 이덕일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걸 들으면서 교수님께 여쭙고 싶은 것은 이 갈석산이 황해도에 있습니까? 갈석산이라고 하는 것은 중국의 워낙 유명한 산이라서 우리나라 금강산처럼 ‘갈석산’ 하면 중국 사람들이 다 아는 산이라서 어디 있는지 다 아는데, 정확하게 교수님은 갈석산이 어디 있다고 지금 판단하시는지 그것까지 합해서 답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참고인 임기환
예, 말씀드리겠습니다.


많은 질문을 해 주셔 가지고 혹시 제가 빠뜨려도 나중에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고구려 성장 부분에서, 아까 말씀드렸던 강역 부분에서 저희가 그린 지도는 경계와 영역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년 지도가 표현될 수 있을 정도로라고 하는 것은 저희가 이 데이터들의 연결성들을 죽 고려해 가지고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 범위에 맞춰서 만들고.


저희가 지도를 표현할 때 경계와 영역이 많이 바뀌는 연도를 기준연도로 삼아서 300~400 사이의 도엽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그걸 기준으로 해서 지도를 제작했습니다. 따라서 이 지도 안에 모든 상황이 다 들어가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경계와 영역을 기준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아까 말씀드렸던 모본왕 기사 같은 경우는 공격 기사입니다. 그 공격 기사가 영역의 확보를 확정하는 기사도 아니기 때문에 그 부분은 지도에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발언시간 초과로 마이크 중단)
(마이크 중단 이후 계속 발언한 부분)


◯도종환 위원
성을 쌓았다고 그랬잖아요?


◯참고인 임기환
태조왕 때 요서 10성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요서 10성을 쌓았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이 기사가 그 이후에 다른 자료들을 다 파악해 보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실현되는지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기사 역시 저희 지도에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도종환 위원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씀이세요?


◯참고인 임기환
검토돼야 될 기사, 현재로서는 이 기사대로 이 기사에 맞춰서 지도를 그릴 수 있는 근거가 확보되지 않았습니다.


◯도종환 위원
삼국사기에 나오는 기록 아니에요?


◯참고인 임기환
예, 맞습니다.


◯도종환 위원
그런데 왜 그걸 인정을 안 해요?


◯참고인 임기환
삼국사기 기사만이 아니라 모든 기사를 다 합쳐서 관련 상황에서 합리적인 조항을 추정하는 것이 기본적인 태도라고 생각을 합니다.


◯도종환 위원
우리 거는 인정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을 수 있는 다른 것들까지 고려해서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런 말씀이신가요?


◯참고인 임기환
아니지요. 우리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사료 비판을 통해서 삼국사기 기록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 하나를 가지고 저희가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도종환 위원
이해할 수가 없네요.


◯委員長職務代理 金世淵
지금 시간들이 다 바쁘시지만 좀 앞뒤가 안 맞는 부분들이……


지금 방금 도종환 위원님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도 이해가 잘 안 가고 또 아까 처음에 발제하신 자료 6페이지에 보니까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은 폐기되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또 아까 이상일 위원님 질문에 대한 답변 중에는 김태식 교수의 자료 관련해서 백제 관련 내용이 조작되었다는 견해가 학계와 배치되지 않는다 또 이런 말씀도 하시고 해서 사실 좀 이해가 잘 안 가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이 부분들은 나중에 학술적인 토론에서 별도로 우리가 다시 살펴봐야 될 여지들이 많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다음은 존경하는 이명수 위원님 질의해 주십시오.


◯이명수 위원
저는 임기환 교수님께 질문을 좀 드려 보겠습니다.
교수님이 동북아역사지도편찬사업에 참여하게 된 거는 자의인가요, 다른 학계의 추천이나 이런 것 때문에 들어왔나요?


◯참고인 임기환
예?


◯이명수 위원
자의로 오셨냐, 자발적으로 여기에 오셨냐 그렇지 않으면 어떤 학계의 추천에 의해서 이렇게 오셨냐 그 말씀입니다.


◯참고인 임기환
자의로 왔습니다.


◯이명수 위원
자의로 오셨습니까?


◯참고인 임기환
예.


◯이명수 위원
죄송하지만 세부 전공은 뭐지요?


◯참고인 임기환
고구려사입니다.


◯이명수 위원
고구려사?


◯참고인 임기환
예.


◯이명수 위원
어떤 분보다 이 내용을 잘 아실 텐데.
우선 저걸 좀 여쭙고 싶어요.
지금 우리 역사 전쟁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국회뿐만 아니라 정치권, 다른 학계……


많은 국민들이 역사에 관한 왜곡이나 이런 것에 걱정도 많이 하고 논란도 많은데 정작 역사학계에서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굉장히 너무 조용하고 어떻게 보면 소극적이고 침묵을 많이 하고 있다, 이런 비판들을 하고 있는데 막상 역사를 전공하고 또 이런 중요한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학자 입장으로서 그런 의견에 대해서 어떤 말씀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참고인 임기환
예를 들어 동북공정 이후에 동북공정에 대한 비판 이런 부분에 대해서 학계가 활발하게 연구와 이런 것들을 통해서 비판을 했고 저 역시 그 부분에서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명수 위원
개별적으로 그런 움직임이 있는가는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국민들이 느끼기에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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