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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하면 분륜이고 우리가 하면 로멘스인 게 맞다.
게시물ID : sisa_95339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둥글이8
추천 : 4
조회수 : 77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6/07 13:49:28

[우리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분륜인 게 맞다. 하지만 그건 표면의 문제일 뿐 심연의 문제는 따로 있다.]

- 내가 가끔 어떤 논쟁 꺼리가 되는 사안에 대해서 긴 글을 쓸 때가 있다. 이는 내가 주장하는 바의 외연과 내포를 명확히 하지 않고, 단순히 경구 몇 마디만 썼다가는 비판 글 다는 분들에 의해서 내가 피 떡이 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빠져 나갈 길’을 만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부대 설명이 있는 긴 글을 쓴다는 것이다. 또한 내가 쓴 그 긴 글들은 (면밀히 읽고 이해하신 분들이 댓글 달아주곤 하셨지만) 극단적으로 양분된 이분법 사이를 벌려서 그 안에 틈을 만들어 내 제 3의 길을 만들려는 미묘한 시도이다. 그렇기에 부득불 잡다한 개념들이 사용되었고 분량이 길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글 역시 그렇다. 혜량하시고 읽고 싶으신 분만 읽으시기 바란다. -

최근 문재인에 대한 불만이 많은 분들이 문재인 정부를 질타 하고 있다. 당연한 시민의 권리이다. 하지만 그 한도를 넘어서 문재인과 문재인 지지자 일반에 대한 타도를 외치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다. 나는 나름대로 이재명 지지자이고, 나만의 높은 이상을 꿈꾸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다소 이해가 되지 않는 방식으로 높은 이상을 남에게 강요하고 적대적으로 나서는 분들이 고려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특히나 그분들의 과한 성토는 민주-진보 진영 내의 '풀리지 않을 갈등의 씨앗'이 될 가능성이 다분하기에 '좀 풀릴 수 있는 방식의 갈등'을 만들어 내시라?? 는 의미로 나름의 생각을 밝힌다.

이 분들의 근래 주장의 핵심은 ‘우리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냐?’는 것이다. ‘왜 박근혜 정부의 위장전입 등에 대해서는 그렇게 강렬하게 성토하더니 문재인 정부의 위장전입은 두둔하냐?’며 그렇게 ‘도덕과 가치의 기준이 무너지는 것’에 대해서 맹비난하면서 이를 타도해야할 적폐로 규정하다 시피 한다. 나 역시 일정정도 그 주장에는 동감한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후보를 내세우면 말이 없었을 것을 왜 구설수를 만들어 내고 있는지 말이다. 그런데 그러한 원론적인 주장의 이면에는 우리가 대면해야할 뼈저린 진실이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원래... 우리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분륜이라는 사실이다. 안타깝게도 그게 진리이다. 심지어 그런 비판을 하는 분들 역시 그래왔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과거 박근혜 정권초기 ‘채동욱 총장’이 ‘혼외 정사’ 문제로 잘려 나갔다. 그때 ‘정의의 기준은 늘 변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은 ‘그래 채동욱이 혼외정사 사실이 있었으면 짤라 버려야지’하고 박근혜 정부에 동조 했었나? 아니다. 박근혜 정부가 채동욱을 잘라 내려는 조치가 ‘18대 부정 선거를 덮기 위한 횡포’라며 ‘혼외 정사’ 의혹을 받던 채동욱 총장을 지키기 위해서 똘똘 뭉쳐서 한 목소리를 냈었다.

왜 그랬나? 왜 우리는 채동욱의 비위를 두둔했나? 채동욱의 혼외정사 문제는 현재 문재인 내각 내정자들의 위장전입(부동산 투기가 아닌 애매한 위정전입) 문제보다 결코 중요도가 덜한 문제가 아녔는데, 왜 우리는 채동욱의 비위를 두둔했나? 그것은 이러한 자잘한 비위가 문제가 아니라 사실은 ‘저들이 우리 편인지 아닌지’가 문제이고 판단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그게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저들이 우리 편인지 아닌지’ 그렇기에 채동욱의 혼외정사도 우리는 ‘로맨스’로 여겨서 두둔했던 것이다. 그게 우리가 여태껏 해왔던 바이다.

반대로 우리가 박근혜 정부 내각의 인사들의 ‘자잘한 비위’를 지적하면서 퇴진을 요구했던 것도 사실은 그 ‘자잘한 비위’ 때문이 아니었다. (큰 비리는 문제이지만) 자잘한 비위 자체는 하등의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건 표면적으로 딴지 걸 수단 였을 따름이다. 표면 아래의 중요한 심연의 문제는 그 인사들이 이명박근혜에 충성 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이 힘없는 사람들을 짓밟고 탄압할 인물들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강자를 두둔하고 약자를 짓밟을 사람이기에 안 된다.’는 주장은 해봤자 실효가 없기에 자잘한 비위 사실들을 끄집어내서 두들겨 댔던 것이다. 쉽게 말해서 여론전을 위해 그 ‘자잘한 비위’들을 잡고 늘어졌다는 것이다.

일 예로, 만약 박근혜 정부에서 이재명 시장을 총리로 내정했다면 이재명의 자잘한 비위가 나왔어도 모른척 했을 것이다. 실지로 이재명 시장의 경우 형수에게 욕설했던 사건이 있었다. 이는 박사모 형과 맞서고 싸우는 과정에 빚어진 문제였다. 그런데 일부 여성주의자들의 경우에는 이것은 ‘여성 인권을 짖밟는 행위다’면서 이재명을 보이콧 했다.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말이다. 그러면 그러한 ‘정의관’에 맞춰보자면 이재명은 대통령 후보를 해서는 안 될 사람이다. 그걸 이재명 지지자들이 동의 했는가? ‘정의’는 획일적으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추호의 예외도 없이 적용되어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 이재명 지지자들은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고 않았다. ‘그 정도 일은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논란 거리 자체가 되지 않았다. 홍준표가 그랬다면 개차반을 만들었을 테지만 우리는 모른체 했다. 왜 우리는 이재명 시장의 문제에 대해서 일부 여성주의자들 처럼 ‘투철한 정의관’을 가지지 못하고 내가 하면 로맨스 식의 판단을 했던 것인가? 특별히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고 세상 돌아가는 원리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부정비리 사건이 아닌 이상은 ‘우리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분륜’의 입장을 가지는 것이 우리가 통상적으로 그래왔던 행태라는 것이다.

‘거대한 부정비리’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분륜이다’는 입장을 가진다면 그건 그야말로 [고리타분한 진영논리]겠지만, 어느 정도 허용 가능한 비위에 대해서는 우리는 늘상 그렇게 반응해 왔던 것이다.

그러니 박근혜 정부 인사들의 발바닥 수준의 비위도 아닌 걸로 '내가 하면 불륜 남이 하면 로멘스'라는 문장을 적용하고, 그 문장 자체에 몰입해서 '절대 정의를 수해해야할 사명감'에 불타서 '문재인과 문재인 지지자들은 적폐이니 타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고려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문장 자체의 개념성에 침잠해서 현실 인식을 등한시한 결과이다.

사실 정치인들이 성인 군자 처럼 한결의 흠도 없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정치 판이라는 곳이 인간의 추악한 욕망이 가장 고밀도로 응축된 집적소 이다보니 정치인들에게 ‘절대 순수’를 바라는 것은 무리 일 수 있다. 이 말에 누군가는 ‘당신은 초심을 잃어버렸느냐? 정치인이 더러워도 된다는 말이냐?’고 발끈 해할 사람이 있을 듯 한데, ‘내 스스로가 순수한 도덕성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과 ‘지금 현재 정치판이 순수한 상태가 아님을 인정하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는 다만 현재의 답답한 정치 수준을 직시해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단계적 고양을 이뤄야지, ‘이런 개판은 인정할 수 없어’ ‘이것들은 다 적폐야’라며 ‘절대 순수’의 이상을 부르짖으며 홀로 고결해서는 하등의 성취를 이뤄낼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게 말과 비판으로만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라 치면 우리 사회는 진즉에 유토피아가 되었을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실천하지 않는 불평, 말 뿐인 불평 자체를 싫어해서 ‘일상의 자잘한 실천’을 모토로 활동을 하고 있는 터이기에 특히나 이런 문제는 예민하게 보게 되는 것이다.

거듭 얘기하지만 이 말은, ‘민주 진보 진영의 자잘한 비위는 용인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나야 뭐 ‘부동산 투기’나 ‘위장전입’ 같은 것은 할 일도 없는 개 털이고 이재명 지지자이기에 “문재인 정부 왜 이 모양이냐!”며 맹렬히 까면서 순수하고 고결한 척 하면 더 많은 응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 투기도 아닌 수준의 위장전입까지를 규탄하면서 조중동의 의혹을 그대로 진실인양 떠벌리며 ‘절대 순결주의’를 고수하는 것이 과연 적절하냐는 것이다.

현재 [우리의 정치 수준이 어느 정도 위치에 와 있는 지를 분별]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한 정확한 이해의 기반에서 [그 정치 수준을 끌어 올리기 위한 우리의 실천적 노력]이 빛을 발하는 것이다. ‘우리의 주제를 알고, 우리의 존재를 고양하기 위한 실천력을 갖는 것’ 이 양자는 우리 사는 세상을 성장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두 가지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스스로 여태껏 절대 진리와 순수를 추구 해 왔다’고 착각을 하는 것과, ‘남이 그러하지 못한다’고 맹목적 비난을 하는 것은 하등의 이익이 되지 않는 다는 말이다. 우리는 여태껏 ‘절대 진리와 순수, 정의’를 추구해 온 것이 아니고 상황에 따라 ‘내가 하면 로멘스’ 주의의 추종자들이기에 난데없는 ‘절대 정의’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에너지의 부적절한 발산과 누수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해결되지 않는 불필요한 소란과 갈등, 분열만 빚어진다는 것이다. 너도 나도 박사 수준으로 떠벌리는 ‘대안’들은 세상은 바꾸기 보다는 소란만 가중하는 것이다.

하지만 '남이 하면 분륜 내가 하면 로멘스'라는 말을 두둔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 글이 '도덕성의 기준이 맘대로 변하는 줏대 없는 사람' 으로 살아가자는 말은 아니다. 심연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표면의 문제가 부차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를 바탕으로 연역 해 본다면 현재 '문재인 정부에 대한 도덕성을 비판하며 문재인 적폐 청산'을 외치는 이들의 '표면'적 주장 그 아래 '심연'에는 이재명 등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지 않은 불만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스스로가 어떤 힘에 이끌리는지를 면밀히 통찰하는 것은 세상을 바꾸기 이전에 스스로가 서는 방법이다.

이런 글 한번씩 쓸 때마다 '둥글이가 변심했다.'며 신도들이 막 떨어져 나간다. 그래서 거듭 하는 말하지만, 나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은 필요함을 주장하지만, 문재인 정부와 지지자들을 싸잡아서 청산해야할 적폐로 몰고 가는 것이 과연 뭐에 도움이 되냐는 문제 제기를 한 것 뿐이다. 특히나 그분들이 그간 수구보수에 향하던 손가락질을 문재인 정부에 그대로 돌리는 방식으로 보여 지고 있는 터이고, 그 대표적인 사례가 ‘남이 하면 분륜, 우리가 하면 로멘스’라는 말로 문재인 정부의 도덕성을 꼬집는 현실이기에, 이 말의 표면에 집착해 심연을 못 보는 것이 아닌지의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언어 개념을 면밀히 뜯어보지 않고 그에 침잠 해 버리면, 젖과 꿀이 흐르는 세상을 향하던 우리는 황량한 사막의 중간에 서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것이라는 걱정이기도 하다. 이는 한편으로 이상주의에 대한 우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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