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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박정희 정권이 아니었더라도 경제성장이 가능했으리라 보는 이유
게시물ID : sisa_95418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노을빛마음
추천 : 3
조회수 : 62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7/06/09 02:22:43

10월 유신을 단행하고 난 이후 당시 박정희 정권은 경공업 위주의 산업구조를 중화학공업 위주로 재편하기 시작합니다. 중화학공업에의 투자는 결과적으로 한국 산업의 공고한 기반 확립에 기여했고 우리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것까지는 엄연한 하나의 사실로서 바라보는 것이 합당하며 저 역시 이를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많은 보수 진영의 인사들이 박정희만이 당시의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고 주장하는 일종의 영웅화에서 시작됩니다. 이는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파괴한 박정희의 과오를 그의 공적으로 포장함과 동시에 그의 한국 경제에 대한 공로를 절대적이고 침범할 수 없는 영역으로 만들어 박정희를 비판하는 사람들조차도 그의 경제적 업적에 대해서는 건드리지 못하게 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고밖에 볼 수가 없습니다. 공적을 인정함과 별도로 그 공적이 박정희만이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그 의미의 무게가 사뭇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박정희만이 당시 경제 성장의 유일한 적임자였다고 보지 않습니다. 10월 유신을 단행하기 전 치러진 마지막 선거에서 박정희는 김대중과 맞붙었습니다. 7대 대통령 선거가 부정부패로 얼룩진 선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찌 되었건 김대중 후보의 당선은 어려웠겠지만, 만일 당시 독재로 치닫는 정부를 비판하며 민주정부 수립을 주장했던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정말로 한국의 경제발전은 없었을까요? 저는 박정희 지지자들을 포함한 보수진영의 이같은 박정희 신격화 레토릭에 숨겨진 허구를 밝혀내고자 합니다.




1. 박정희는 산업화를 주장했지만 김대중은 농업혁명을 주장했다.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우리는 농경사회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지극히 악의적인 의도가 내재된 주장이지만 아직까지 일간베스트를 위시한 우리나라의 소위 '보수' 사이트들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주장입니다. 또는 그러한 주장을 내세우는 이들을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같이 주장하는 것은 당시 김대중 후보가 주장하던 바를 심각하게 왜곡하는 것입니다. 김대중 후보는 1971년 선거를 앞두고 박정희가 성장과 분배 과정에서의 정의를 외면하고 있다며 농민과 노동자를 위한 정책도 펴야 한다는 본인의 소신을 밝혔고, 그 과정에서 농업 분야를 국가의 근간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농업혁명'이라는 단어를 꺼냈습니다.

그 당시 농업이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되어 정부의 마땅한 지원 없이 어려움을 겪고 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고 따라서 농민들에 대한 정책 마련은 분명 절실했습니다. 김대중의 말 역시 농업을 배제하지 않은 방향으로 산업화를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도였고 그는 다른 연설에서도 광공업 분야에의 투자를 추진하고 공업 분야에서의 균형잡힌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산업화 전반에 대해서 분명한 인식을 보였습니다.

이와 같이 역시나 산업화의 필요성을 공감했지만 다만 방법론에 있어 차이를 보였던 김대중을 소위 농업사회 회귀 같은 말을 늘어놓으며 비하하는 것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악의적 폄하의 의도가 다분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실 이 문제는 논의의 대상이 되는 것 자체가 소위 보수라고 불리는 이들의 지적 수준을 적나라하게 입증하는 것이라 봅니다.

결론 : 김대중도 산업화를 주장했다. 다만 김대중은 광공업과 농업 등 산업 전반에 걸친 발전을 추구함으로써 방법론에 있어 다소 차이를 보였다.



2. 박정희는 중화학공업 투자를 통해 한국 경제의 내실을 다졌다. 다른 이였으면 가능했겠는가?


박정희가 중화학공업 육성 및 투자를 통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제조업의 역량을 구축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박정희만이 이루어낼 수 있었던 성과이고 흠결 없는 정책이었다고 보기에는 다소간 무리가 있습니다. 실제 중화학공업 방면으로 나가야 한다는 주장은 이전 1950년대부터 진보당 계열 정치인들에 의해서도 꾸준히 언급되어 왔던 것이었고 1960년대를 거치면서 중화학공업 담론은 다수에게 설득력을 얻어 시기의 문제일 뿐 중화학공업에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은 충분한 공감대를 얻고 있었습니다.

유신 선포 이후 박정희는 중화학공업 육성을 중점화하는 요지의 경제정책을 수립했습니다. 노동집약적 중공업의 수출이 확대되던 당시 한국은 가격경쟁력을 비롯해 다양한 이점을 누려 중화학공업 육성에 유리한 여건이 조성됩니다. 이에 1975년 중동 특수가 겹치면서 기업들의 투자가 폭주했고 중화학공업의 위력을 체감한 박정희는 중화학공업에 대한 기업들의 무리한 투자를 허용하고 맙니다. 그런데 1979년 석유파동이 터지고 더구나 통화팽창에 이은 인플레이션으로 물가가 상승하며 한국은 80년대 중반까지 외환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박정희 집권기 동안 연간 경제성장률은 9.3%였으나 물가상승률은 16% 내외였습니다. 최대 22~23%를 기록하기도 했죠.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분명 득이 되는 투자였으나 이와 같이 과도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투자를 감행함으로써 우리 경제는 상당한 타격을 입어야 했습니다.

김대중 역시 중공업에 대한 투자 주장에 공감했으나 그는 무엇보다 분배 과정에서의 정의, 균형잡힌 발전을 강조했습니다. 중화학공업 분야에 대한 일방적인 투자를 반기는 입장은 아니었죠. 물론 그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서 중화학공업 붐에 휩쓸리지 않았으리라는 법은 없습니다만 적어도 그의 균형적 산업화의 방법론이 후의 2차 석유파동과 외환위기 등을 감안했을 때 더 효과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진보 경제학계의 주장도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중화학공업에 대한 투자라는 아이디어가 비단 박정희만이 구상하고 있던 것이 아님을 고려할 때 애당초 박정희만이 산업화, 특히 중화학공업 육성을 위시한 산업구조 개편을 주도할 유일한 적임자라는 주장은 분명한 허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론 : 중화학공업 육성은 박정희 혼자만의 아이디어가 아니다. 더구나 박정희의 중화학공업 육성에는 외환위기와 인플레이션이라는 어두운 면도 있었다.



3. 박정희는 권위주의 정권을 통해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김대중이 말하는 설익은 민주주의 하에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가장 답답한 류의 주장입니다. 박정희의 유신 선포는 명백히 자신의 영달을 위한 것이었고, 집권의 영구화를 위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우롱하고 유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냈습니다. 심지어는 이것 때문에 미국 등 서방과의 관계도 좋지 못했습니다. 사실 베트남전 이전까지 박정희는 계속해서 친미, 친서방 기조를 유지했으나 유신체제를 계기로 입장 변화를 거듭하게 됩니다. 1975년 이후에는 정부 주도 하에 주요 신문에 반미 경향의 사설을 싣는가 하면 정부 차원에서 반미 시위를 지원하기도 합니다. 이는 지미 카터 행정부가 등장하면서 더욱 뚜렷해졌고 프랑스, 독일 등의 민주정부가 수립된 유럽 국가들과도 외교적 마찰을 빚었습니다.

이같이 외교적 관계에서 상당한 손실을 감수해야 했던 권위주의 정권의 존속으로 과연 우리가 경제적 실익을 얻을 수 있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김대중 역시도 박정희와 마찬가지로 북괴의 공산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사상적 수단으로 자본주의를 강조했고, 그 자신도 공산주의를 혐오했기에 더더욱 자본주의를 통한 경제 발전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민주정권 하에서도 역시나 산업화는 추진되었을 것이고 박정희의 권위주의 독재정권과 비교해 달라진 점은 서방과의 우호적 관계 확립과 미국과의 교류 증진이 수반되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실제로 박정희 옹호론자들의 주장과 달리 많은 진보 성향 경제학자들은 민주정권이 집권했을 때의 시나리오를 상정할 경우 박정희의 그것과 비교해 호의적으로 평가합니다. 서구권과의 교류 확대와 우호선린이 가져다주는 유/무형적인 이득이 상당할 뿐더러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의 불확실성이 제거되어 경제성장에도 득이 될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이며 시대상황을 고려했을 때 한미동맹의 공고화를 통해 얻게 되는 안보적 이득 역시 상당했을 것입니다.

결론 : 권위주의 정권으로 정체화되는 유신정권의 정체성이 경제성장을 이끌었다고 보기는 힘들며, 외려 민주정부의 수립이 서구권과의 교류 확대 측면에서 더 나았으리라고도 볼 수 있다.




지금까지 크게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박정희 지지 세력들의 주장을 살펴보았습니다. 애당초 이 글을 쓴 이유는 박정희 정권의 경제적 성과를 부정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박정희가 경제성장을 이끌 수 있었던 유일한 인물이고 최적임자였다는 근거없는 가정을 혁파하고 그의 공로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가능해질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박정희는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는 긍정적 평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독재가 경제 발전을 위한 것이었으니, 경제 발전에 대한 공로만큼은 비교불가라느니 하는 주장에 대한 반박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신화를 만들어내는 이들 대부분에는 그의 공적을 성역화함으로써 과오를 포장하고 감추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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