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가야사’ 발언과 전문가의 오만
기고_ ‘가야사’ 반박, 철학자는 이렇게 본다
2017년 06월 09일 (금) 교수신문
최성호 경희대·철학과
얼마 전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가야사에 대해 발언한 것이 논란이 되고 있는 모양이다. 문 대통령 스스로 “뜬금없다”는 표현을 써가면서 가야사 연구를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국정과제로 포함시키라고 지시했는데, 일부 학계에서 그것을 반박하면서 논란이 불붙었다. 문 대통령의 논리는 그 동안 역사고고학계에서 가야사에 대한 연구가 다소 미비했는데, 사실 가야사를 연구하고 복원하는 것은 “영호남의 벽을 허물 수 있는 좋은 사업”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반박하는 목소리가 곧장 학계에서 터져 나왔다. 예컨대 연세대의 하일식 교수는 한국고대사학회 홈페이지에 올린 글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의 지시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하 교수의 비판의 요지는 역사학자들이 어떤 연구를 수행할지는 역사학자들에게 맡겨야지 대통령이 나서서 학문의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문 대통령의 지시에 대한 하 교수의 비판은 꽤 설득력이 있다. 실제로 하 교수의 글과 인터뷰 이후 몇몇 일간지의 기자들도 하 교수의 비판에 사실상 동조하면서 문 대통령을 꾸짖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럼에도 필자는 철학자의 관점에서 문 대통령에 대한 하 교수의 비판이 다소 공정치 못하다고 본다(하 교수의 <조선일보> 인터뷰와 달리 하 교수가 학회 홈페이지에 게시한 글의 대부분은 사실 문 대통령의 가야사 연구 지시를 비판하는 것보다 역사학계에 대한 도종환 문체부 장관 내정자의 인식을 비판하는데 할애됐다. 문 대통령의 지시에 대한 하 교수의 우려와 달리 도 장관 후보자에 대한 하 교수의 우려는 충분히 공감할만한 것이었다).
하 교수는 대통령이 학계의 특정 연구 주제, 즉 가야사 연구를 육성하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비판하지만 그런 하 교수의 논리를 따른다면 대통령이 뇌 과학 연구를 육성하라고 지시한다든지 혹은 인공지능 연구를 육성하라고 지시하는 것 역시 부적절한 것이 된다. 하 교수는 아마도 학계의 주요 연구 아젠다는 대통령과 같은 권력자가 아니라 오직 해당 학문에 종사하는 전문가 그룹이 자신들의 전문성을 발휘해 결정해야 한다고 보는 듯하다. 하지만 국가의 인적, 물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운용해야 할 위치에 있는 대통령이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갖지 못하는 종합적·거시적 안목에서 특정 연구 아젠다를 제시하는 것은 결코 부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직무태만이 아닐까 한다.
이에 대해 하 교수는 설사 대통령이 가야사 연구의 진흥을 지시할 수 있다 하더라도 문 대통령의 방식이 틀렸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법하다. 그러니까 문 대통령이 진정 가야사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해당 분야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위원회를 구성하고 그 위원회로부터 조언을 들을 것이지 그게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도 필자는 하 교수의 생각에 동의하기 어렵다.
한 가지 비유를 들어 필자의 생각을 설명해 보자. 윤리학 전공자들이 어떤 연구를 수행할지, 가령, 기업윤리를 연구할지 아니면 생명윤리를 연구할지 그도 아니면 성윤리를 연구할지는 오직 윤리학자 자신들만 결정할 수 있는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설사 윤리라는 영역에서 윤리학자들이 전문가라 인정하더라도(이에 대해 심각한 의구심을 지니고 있지만) 그 전문성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성적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성인이라면 누구나 도덕에 대해서 반성적 사고를 통해 윤리에 대한 전문성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 비서관회의에서 기업윤리를 육성하라고 말하든지 혹은 생명윤리를 육성하라고 말한다고 해도 그 자체로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판단한다. 기업의 비윤리적 행태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는 국가에서는 대통령이 기업윤리에 대한 연구를 육성하라고 지시할 수도 있고 전쟁이 빈번한 국가에서는 대통령이 전쟁윤리에 대한 연구를 육성하라고 지시할 수도 있다. 윤리학 전공자들의 조언 없이는 그런 지시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누군가 주장한다면 그것은 먹물의 오만 다름 아니다.
마찬가지 논리가 이번 가야사 연구에 대한 문 대통령의 지시에도 적용된다. 한국 고대사 연구자들이 어떤 연구를 수행할지 오직 고대사 연구자 자신들만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문가의 오만이다. 그런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어느 정도 한국 고대사에 대한 전문성이 요구된다고 고집할 수 있겠지만, 필자는 문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 회의에 참석한 많은 이들이 그 정도의 전문성은 충분히 지니고 있다고 판단한다.
하 교수는 문 대통령의 가야사 연구 지시를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역사교과서 추진과 다를 바가 없다고 비판하는데, 이 역시 매우 그릇된 비판이다. 박 전 대통령의 국정교과서 사업이 문제가 됐던 것은 그것이 바로 교과서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부르디외(P. Bourdieu)와 파서론(J.C. Passeron)이 그들의 저서 『교육, 사회, 그리고 문화에서의 재생산(Reproduction in Education, Society and Culture)』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학교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선생님과 학생들 사이의 의사소통은 보통의 의사소통과 상당히 다르다. 적어도 학교 교실의 공간에서 국사 선생님은 과거에 대해 오직 참된 정보만을 제공하는 진리의 대변인이다. 현행 교육 제도하에서 학교 선생님은 그런 진리의 대변인으로서의 권위를 사회적으로 공인받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교 교실의 공간에서 학생들은 국사 선생님이 제공하는 정보에 대해 어떤 문제 제기도 하지 말 것을 요구 받는다. 그것이 국사선생님과 학생 사이에 발생하는 언어 게임의 규칙이다. 이처럼 적어도 학교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학생들은 국사선생님의 가르침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것을 강요받고 나아가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의무를 진다. 바로 여기에 국정교과서의 위험성이 있다. 학생들이 권력자의 입맛에 맞는 역사를 참된 것으로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면 그것은 비극이기 때문이다.
하 교수는 문 대통령의 가야사 연구 지시를 비판하며 그것을 박 전 대통령의 국정 역사교과서 추진과 연결시키는데, 필자가 보기엔 하 교수가 국정 교과서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꿰뚫어 보지 못했다. 문 대통령이 가야사 연구의 육성을 지시하면서 어떤 역사적 주장을 강요했는가? 그렇지 않다. 아마도 그가 원했던 것은(마치 청와대 회의에서 받아쓰기 없이, 계급장 없이, 그리고 정해진 결론 없이 민주적으로 숙의하자고 말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가야사에 대해서 역사학자들이 좀 더 활발하게 연구하고 토론하고 그리고 민주적으로 숙의해서 참된 지식을 생산하는 것일 것이다. 필자는 이것을 어떻게 국정 역사교과서 사업과 유사한 것으로 여길 수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지난 박근혜 정권 하에서 역사학계가 겪었던 극심한 분열과 갈등을 모르는 바 아니나 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하 교수의 이번 비판은 상당 부분 기우로 여겨진다.
물론 문 대통령의 가야사 지시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 가령, 지자체들의 예산 경쟁, 전시행정, 졸속발굴 등에 대한 하 교수의 우려는 전적으로 옳다. 하지만 그런 부작용에 대한 우려 없는 국가사업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부작용은 가야사 사업을 진행해 가면서 합리적 행정이나 업무의 효율화를 통해 최소화해야 하는 것이지, 그런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이유만으로 마치 문 대통령의 가야사 지시 자체에 뭔가 큰 잘못이 있는 것인양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최성호 경희대·철학과
서울대에서 과학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과학문화연구센터 수도권 전임 연구원, 영국 케임브리지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과 전임강사, 호주 시드니대 시간연구소 연구원, 캐나다 퀸스대 철학과 조교수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