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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끝까지 책임지겠다더니… 결국 버렸다[BGM]
게시물ID : sisa_13571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동물의피
추천 : 21
조회수 : 1277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1/11/21 12:57:56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111/h2011112021065221950.htm "영웅이라 하더니… 국가는 내 아들을 버렸다" 연평도 포격 1년… 끝나지 않은 고통 ■ 부상·전역한 박봉현 일병 부모 당시 이대통령도 병원 방문, 끝까지 책임지겠다 했는데… 무릎 연골 절단 크지 않다고 국가유공자 등록 거부당해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다며 본인은 취재 소식에 밖으로 유난히 활달했던 아들은 "진정한 남자가 되겠다"며 해병대를 고집했다. "왜 굳이 힘든 곳에 가느냐"는 의사의 권유를 뿌리치고 빨간 명찰을 달기 위해 늑막염 치료도 받았다. 입대 재수 끝에 연평부대에 배치됐다. 부모는 검게 그을린 아들의 모습이 한없이 자랑스러웠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은 단란했던 한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당시 연평부대 일병이던 박봉현(22)씨는 십자인대와 무릎 연골이 파열돼 지난 2월 의병 전역했다. 한창 나이인데도 뛰지도 못하고 걷는 게 고작이고 무거운 물건을 드는 건 엄두도 못 내지만 정부는 끝내 국가유공자 판정을 거부했다. "나는 골칫거리인가 봐"라는 아들의 말에 부모는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지난 19일 인천 학익동 집에서 만난 박씨의 어머니 하상운(53)씨는 몇 장의 사진을 꺼내 보였다. 아들이 국군수도병원에 입원했을 때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도 있었다. 정부와 정치권 인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병원을 방문해 "나라를 위해 복무하다 다쳤으니 끝까지 책임지겠다. 부모님들은 걱정하실 것 없다"는 말을 했다. 사진을 바라보던 하씨는 나라가 야속한 듯 끝내 눈물을 글썽였다. "책임 진다는 게 결국 이런 거였다. 군 생활을 할 수 없어 집으로 돌아온 아이가 사회에서는 무슨 일을 잘 할 수 있겠나." 박씨는 중장비 운전병이었다. 북한군의 1차 포격으로 연평도 곳곳에 화염이 솟구치자 소대장은 장비를 챙기라고 지시했다. 박씨는 홀로 언덕 위에 있는 굴착기를 향해 뛰었다. 하지만 시동이 걸리지 않았고, 배터리를 점검하는 사이 2차 포격이 시작되면서 그 충격에 장비에서 떨어졌다. 몇 번이나 일어서려 했지만 무릎이 말을 듣지 않았다. 양손으로 땅을 기어 간신히 벙커 쪽으로 와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박씨는 경미한 부상자로 분류돼 포격 다음 날인 24일에야 병원으로 후송됐다. 부모는 아들이 죽을 뻔했다 살아난 사실에 고마워했다. 하지만 고마움은 금세 분노로 바뀌었다. 수술 후 신체검사에서 유공자 기준 미달 판정이 나왔다. 재검도 마찬가지였다. 기준상 잘라낸 무릎 연골이 10㎜가 넘어야 하는데 박씨는 7㎜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억울한 심정을 편지에 담아 청와대와 국민권익위원회에 보냈고, 지역 국회의원도 나섰다. 재검토 지시가 내려와 한 번 더 검사를 받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유공자 판정이 날 테니 걱정 말라"며 부모를 안심시키던 보훈병원 의사들은 "억울하면 재판을 해라. 우리는 잘못이 없다"며 발뺌했다. 박씨의 아버지 박종수(56)씨는 "3㎜가 그렇게 중요한지 몰랐다. 아들의 아픔을 모른 체하고 원칙만 따지는 행정이 답답하다"며 "이런 식이라면 어떤 부모가 마음 놓고 아들을 군대에 보낼 수 있겠느냐"고 한탄했다. 연평도 포격으로 인한 부상자 16명 중 8명은 부대로 복귀했고, 8명은 전역 후 보훈 대상자로 신청했다. 이들 중 1명은 심의 중이고 박씨를 비롯한 3명은 기준 미달로 탈락했다. 유공자 판정을 받으면 정부는 매월 최소 34만2,000원의 위로금, 대학수업료 전액과 연 21만8,000원의 학습보조비, 전역시 장애보상금 800여만원을 지급한다. 하지만 유공자가 아니면 부상 악화 방지와 재활 치료를 위한 보훈병원 무료 진료 혜택이 전부다. 부모는 아들이 요즘도 멍한 상태에서 손가락을 물어뜯고 한밤중에 고함을 지르며 잠이 깨곤 한다고 전했다. 전보다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들이 걸을 때 다리를 저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미어져 분통을 터뜨린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행여 또 다른 상처가 될지 몰라 묵묵히 지켜봐야 하는 부모의 마음은 갈갈이 찢어지고 집안은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다. 하씨는 "국가를 위해 희생했고, 지금도 희생은 계속되는데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부모라는 사실이 너무 미안하다"며 눈물을 훔쳤다. 이날 밖으로 나간 아들은 한참을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았다. 기자가 방문하겠다고 하자 집을 나서면서 "두 번 다시 그때의 일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연평도 포격 희생자와 유공자 등에 대한 수훈은 전사한 고 서정우 하사(당시 22세)와 문광욱 일병(당시 20세) 2명에 대한 훈장 추서가 전부다. 화염 속에서 목숨 걸고 싸운 많은 장병들은 모두 제외됐다. 지난 1월 해군 청해부대의 아덴만 여명 작전 때 12명이 무공훈장을 받은 것과 대조적이다. 상훈법상 무공훈장은 전투에서 뚜렷한 공을 세우거나 우리 군이 작전을 주도한 경우에만 수여된다. 군 관계자는 20일 "해병대는 먼저 기습 도발을 당한 뒤에 부랴부랴 대응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선제공격한 것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mb싫어서 대한민국을 떠난다는 사람...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56867&CMPT_CD=P0000 세금 더 걷으려던 'MB 야심작' 무산에 발칵 http://economy.hankooki.com/lpage/politics/201111/e2011112020523496380.htm [출처]이종격투기 http://cafe.daum.net/ssaumjil/LnOm/920783 글쓴이:없는척사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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