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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만났던 것(안무서움주의)
게시물ID : panic_9401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천
추천 : 20
조회수 : 1968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7/06/19 03: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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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한 밤이 되었습니다. 오늘따라 4-7-8호흡법도 안통하고 해서 갑자기 생각난 옛날이야기를 쓸까 합니다. 

  참고로 저는 회의론자입니다. 과학을 신봉하며 논리적으로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 주장은 믿지 않는 편입니다. 하지만 저희 할머니께서 젊은 시절에 만났던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임팩트가 워낙 강해서 아직도 생각하면 소름이 돋네요. 

 제가 어렸던 어느 명절이었습니다. 온 가족 친지들이 모여 있었고 여느 때 처럼 차례를 올리고 음복하며 친척들과 둘러앉아 옛날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저희 할머니께서 당시 정신이 아무래도 온전치는 못하셨습니다. 그래도 넉살좋은 우리 사촌들은 할머니께 싹싹하게 말도 잘 붙였더랬지요. 어쩌다 그런 대화가 오갔는지 정확한 정황은 기억이 안나지만

 '우리 할머니라면 그 긴 세월동안 귀신을 귀신을 본 적이 있지 않으실까? 

 라는 생각이 들어 귀신이야기로 화제를 몰아 갔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당시 대화 내용을 재구성 해 보겠습니다

나 : 할머니 귀신 본적 있어요?
할머니 : 있지~
나 : (대박!) 어떻게 생겼어요?
할머니 : 색동옷 입고있지
나 : 날아다녀요? 발은 있어요?
할머니 : 발은 치마땜에 못봤다 근데 사람하고 똑~같다

저는 사실 너무너무 신기했지만 머리가 좀 컷던 시기라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진 않았습니다. 할머니께서 가끔 깜빡깜빡 정신을 놓으시던 때이기도 하구요(글 쓰면서 그때 생각이 나 마음이 아프네요)
 
그러다 막내 고모가 대화에 끼어 들었습니다. 

고모 : 엄마 옛날에 산에서 귀신 만났다 아이가? 내가 그 이야기 해 주꾸마.(이야기 해 줄게)

대화체는 모바일로 쓰려니 손가락이 아프네요 지금부터 진짜 이야기입니다. 가독성을 위해 표준어로 조금 각색했습니다.

 할머니가 출가 이후 평생 사셨던 함안시 군북면은 이 글을 쓰는 현재도 논밭 면적이 압도적으로 많은 농업지역입니다. 당시 40대였던 할머니는 그 넓은 밭을 매일 다 돌아다니면서 작물들을 돌보셨다고 합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해가 떨어져 땅거미가 슬금슬금 지는 시각. 할머니는 밭을 가꾸러 가셨습니다. 밭의 위치는 뒷산 중턱. 그리 큰 산은 아니지만 초행자는 길 잃으면 조난당할 정도로 깊은 산이긴 합니다. 할머니는 여느때 처럼 호미로 밭을 다지고 계셨습니다. 고모님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할머니는 밭을 갈다가 갑자기 식은땀과 함께 심한 현기증을 느끼셨다고 합니다. 건강하고 목소리 커서 마을에서 여장부로 유명하시던 할머니가 한국전쟁 피난 이후 그렇게 심한 피로감은 처음 겪어보셨다고 합니다. 지쳐서 그날은 대충 하고 가서 쉬어야겠다 생각하단 찰나..
 
 저 산 꼭대기에서 아주 단아하게 차려입은 처자가 천~천히 내려오더랍니다.  

 할머니 : '누구지? 우리 동네 아가씨가 아닌데?'

차림새를 보아하니 구한 말 느낌이 나는 한복을 단정하게 입고 있었고, 생김새를 보아하니 아주 얼굴이 희끄무리하고 예쁜 처자였다고 합니다. 

? : 어머님~ 제가 도와드릴게요~

  표정에서 웃음기가 넘치더랍니다. 자세히 보니 같은 여자가 봐도 참 고와서 할머니도 그 와중에 며느리 삼고 싶다는 생각도했었다고합니다. 목소리는 어찌나 상냥하던지 마음이 참 동하는 목소리였다고 합니다.

할머니 : 됐네. 새댁도 돌아다니지 말고 가시게!(엣날 분들은 참 겁이 없는것 같습니다)
? : 아니에요 아주머니 이거 언제 다 하시려구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이러면서 옆에있던 호미를 살포시 뺏더니 할머니 하시던 일을 대신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상했습니다. 당연히 이상했죠.
30여 가구가 서로 속속들이 알고 지내는 동네에 처음 보는 젊은 여성, 이유없이 밭일을 해주겠다? 행색도 뭔가 당시 입던 의복하고는 뭔가 달랐다고합니다. 

할머니는 그날따리 흘러내리는 식은 땀을 닦아내시면서 곁눈으로 그 여자를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아는 사람인데 내가 몰라봤나? 

얼굴을 다시한번 보려고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으나 각이(?) 안나와서 자꾸 뒤통수만 보이더랍니다. 그러면서 싹싹하게 말은 붙이는데 대답을 안할 순 없고 말상대 해 주면서 밭일을 잠시 하다보니 다시 컨디션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러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돌연 저희 할머니는 깨달았습니다.....











































 둘이 방금까지 무슨 대화를 했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 여자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전혀 기억이 안났다고 합니다. 

단 한가지 지금 내(할머니) 눈앞에 왠 아낙네가 등을 보이고 쭈그리고 앉아 호미도 없이 맨손으로 바닥을 열심히 후벼파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녀의 치마 아래로 보이는 꼬리털...그것만은 확실했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갑자기 정신이 번뜩 들며 머릿속이 맑아 지더니 아주 저것을 혼쭐을 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오른쪽에 호미를 집어들고 쭈그리고 슬금슬금 가서 


꼬리를 콱!

찍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귀가찢어질 것 같은 비명을 지르더니 

네 발로  타다다다다닥!!  ... 산 꼭대기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었던 당시에 사촌동생들과 얼싸안고 엉엉 ㅠ 했던 기억이 나네요 ㅋㅋ  그것이 구미호였는지 뭐였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당시 고모님의 재연이 너무 실감나서 개인적으로 어마어마하게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래도 어른들이 저 어릴때 해주셨던 이런 이야기들이 지금 메마른 삶에 낭만을 주는 것 같습니다.

이번엔 그냥 구전괴담이지만 
 다음번엔 진짜 제가 귀신만난 이야기 해드릴게요 
그럼 빠이염!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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