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동양인인가 서양인인가?
글 | 홍익희 세종대 교수
‘예수님이 동양인인가 서양인인가?’ 이 질문은 ‘유대인이 동양인인가 서양인인가?’라는 질문과 같다. 예수님이 유대인이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뿌리를 알아보자.
원래의 유대인은 고대로부터 팔레스타인 지역에 살아왔기 때문에 가나안 사람 특유의 외모 곧 오늘 날 중동계 사람들과 비슷한 외모를 지녔다. 예수님 역시 머리가 짧고, 턱수염이 있고, 까무잡잡한 피부의 사람이었다는 게 역사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리처드 니브 전 맨체스터대학 교수가 복원한 예수 당시의 셈족 얼굴
영국의 리처드 니브 전 맨체스터대 교수는 이스라엘 고고학자들이 갈릴리호수 주변에서 발굴한 예수와 같은 시기에 살았던 3개의 셈족 두개골에 컴퓨터 단층촬영과 디지털 3D 기법을 활용해 예수님 당시의 셈족 얼굴을 복원했다.
니브 교수가 재현한 예수님 당시의 셈족 얼굴은 담갈색 눈에 수염을 길렀으며 짧은 곱슬머리와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졌다. 이는 많은 종교적 그림에서 묘사한 긴 갈색머리를 가진 백인으로서의 예수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성경에서조차 바울이 “남자가 머리를 기르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언급했다. "만일 남자가 긴 머리를 하고 있으면 자기에게 욕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여자가 긴 머리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쓰는 것을 대신하여 주신 연고니라"(고전 11:14, 15). 이로 미루어 당시 유대인 남자들은 머리를 짧게 잘랐던 것으로 보인다. 이 그림이 당대 보편적인 유대인의 모습이었다.
로마가톨릭의 월권
그런데 4세기 초에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선포된 이후 가톨릭교회가 앞장서서 예수님을 유대적 바탕으로부터 끊어놓으려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능한 예수님의 모습에서 유대인의 흔적을 지워야 했다.
원래 성경은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했다. 여기에는 조각은 물론 그림도 포함된다. "두렵건대 스스로 부패하여 자기를 위하여 아무 형상대로든지 우상을 새겨 만들지 마라. 남자의 형상이라든지, 여자의 형상이라든지, 땅위에 있는 아무 짐승의 형상이라든지, 하늘에 나는 아무 새의 형상이라든지, 땅위에 기는 아무 곤충의 형상이라든지, 땅 아래 물속에 있는 아무 어족의 형상이라든지 만들지 마라. 또 두렵건대 네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일월성신 하늘 위의 군중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하 만민을 위하여 분정하신 것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며 섬기지 마라."(신명기 4:16~18) 이렇듯 신명기에서는 분명하게 "남자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콕 찍어서 말했다.
그럼에도 로마가톨릭은 예수님을 서양인들에게 친근한 모습으로 신자들에게 각인시킬 필요를 느꼈다. 아니 유혹을 느꼈다. 그래서 교회 화가들에게 예수님을 그리거나 조각하도록 했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다. 우상숭배라고. 특히 당시 가톨릭의 본부격인 콘스탄티노플의 동방정교회가 반대했다. 그 무렵 로마제국의 수도는 콘스탄티노플이었다. 하지만 로마가톨릭은 물러서지 않았다. 미개한 게르만족을 교화시키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라고 우기면서. 사실 로마가톨릭과 동방정교회가 결국 11세기에 갈라선 가장 큰 이유의 하나가 이 문제 때문이었다.
게다가 가톨릭은 백인이 유색인종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그 뒤 교회에 속한 서구 화가들은 예수님이 유대인인 줄 뻔히 알면서도 유대인의 모습과는 완전 동떨어진 장발의 백인으로 예수님을 그리기 시작했다. 예수님을 백인으로 그린 이면에는 밝은 색은 선을 의미하고 어두운 색은 악을 상징한다는 발상이 그들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종교적 연원을 살펴보자.
유대인은 셈족
유대인은 셈족이다. 곧 노아의 큰 아들 셈의 후손들이다. 성경에 의하면 대홍수 이후 살아남은 노아에게 세 아들이 있었다. 셈, 함, 야벳이 그들이다. 이들이 인류의 조상이다. 성경에 보면 둘째 아들 함은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은 채 자는 아버지를 돌보지 않아 노아로부터 저주받는다.
노아의 만취, 미켈란제로, 1509, 바티칸 시스티나 소성당 천장, 세 아들의 피부색이 다르다
그 뒤 큰아들 셈의 후손들은 동쪽으로 가 이들로부터 중동아시아계가 나왔다. 히브리, 시리아, 아시리아, 페르시아, 아라비아 그리고 멀리 극동의 몽골족, 한민족 등이다. 셈족에서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이 나왔다. 이렇듯 원래 유대인은 셈족 곧 아시아계인 것이다. 둘째아들 함은 아프리카 쪽으로 갔고 그에게서 이집트, 이디오피아, 리비아 등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나왔다. 막내 야벳은 유럽으로 가서 그에게서 코카서스인과 아리아인 등 백인이 나왔으며 이들에게서 바다를 끼고 사는 백성들이 갈라져 나왔다. (참고로 영어로 반유대주의를 ‘anti-Semitism'이라 한다. 그만큼 서양인들에게는 유대인이 셈족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 단어는 같은 셈족에 속하는 다른 민족은 제외한 채 유대인만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어 ‘유대인을 향한 반감’의 뜻으로 통용되고 있다.)
이런 인종적 구분은 상당부분 실제적 사실로 규명되었다. 서구의 세계관과 인종 구분은 이것에 근거하고 있다. 현대 진화론자들도 모든 인류가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시작했다는 데에는 창조론자들과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유전자 Y염색체로 본 인류의 이동 경로를 보면 6만 년 전 아프리카를 떠나온 현생인류는 중동에서 나누어졌다.
수메르 말기의 사람, 아브라함
우리는 아브라함이 양을 치고 살았기 때문에 유목민 출신인줄 알고 있다. 아니다. 그는 수메르 문명이 가장 발달했던 우르에서 태어나 자랐다. 도시 출신인 것이다. 그 무렵 아브라함이 살았던 갈대아 우르는 교역이 활발한 국제 항구도시였다. 당시 수메르 문명은 놀랍도록 발달한 고등문명이었다. 너무 물질이 발달하자 부작용도 일어나 사람들이 지나치게 타락하고 우상숭배가 만연했다. 유대민족의 출발점을 이해하기 위해선 아브라함이 살았던 우르의 수메르문명을 알 필요가 있다.
수메르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문명이라는 사실은 수메르 점토판의 문자가 판독된 20세기 전후해서야 밝혀졌다. 수메르 문명은 성서에서 실마리를 찾으려는 고고학자들 덕분에 발견됐다. 더구나 글이 적힌 점토판들이 대량으로 발견되었다. 그 옛날에 글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역사의 기록이 없는 시대를 ‘선사시대’라 부르고 기록이 남겨진 시대를 ‘역사시대’라 부른다. 수메르 문명이 인류 최초의 문명으로 인정받는 것은 바로 이 역사시대를 최초로 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수메르 문명에 대해 잘 알게 된 것은 그들의 문자를 해독함으로써 수메르 문명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게다가 발굴된 문명의 정도가 주변에 비해 너무나 월등해 외지에서 온 이주 고등문명이라는 설까지 나왔다. 이러한 수메르 문명과 문화는 주변과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쳐 히브리 문화와 유대교에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수메르 문명과 문화에 대해 알아보자.
동양과 유사한 풍속들
수메르인은 '검은머리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검은 머리의 사람들", 자신들이 사는 땅을 수메르라 불렀다. 일부 학자들은 수메르인의 편편한 두개골 모양(편두)과 검은 머리 등으로 미루어 동아시아 민족 가운데 하나가 문명을 갖고 갑자기 나타나 세운 것이 수메르 문명이라고 보았다. 그들의 검은 머리와 편두뿐 아니라 수메르 언어가 우리 한글과 어순도 같고 토씨를 같이하는 교착어라는 주장도 있다. (출처; 수메르어와 한국어는 교착어이다, 안창범, 제주대 명예교수)
수메르 학자 고든박사는 ‘수메르인들은 메소포타미아에 정착하기 전에 이미 그들의 고유한 문자인 설형문자를 가지고 왔다’고 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그들이 동양의 도덕주의를 바탕으로 살았다는 점이다. 학교 선생님을 아버지라 불렀고 선생은 제자를 아들이라 했다. 이외에도 신정일치와 제천의식이 동양과 비슷하며, 60진법과 음력을 사용했다. 심지어 결혼 전에 함을 지는 풍습과 순장풍속, 왼씨름 등 우리와 유사한 풍속도 있었다.
음력 사용하는 유대인
고대로부터 동양은 음력을 쓰고 서양은 양력을 사용했다. 우리 민족도 예전에는 음력을 썼다. 그러던 것이 한일 합방 이후 일본이 우리 민족에게 음력을 못 쓰게 하고 지금의 양력을 쓰게 만들었다.
유대인들은 고대로부터 음력을 써왔으며 지금도 음력을 쓴다. 그들의 생활은 고대로부터 달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왔다. 그래서 달이 뜨는 저녁이 하루의 시작이다. 창세기 1장 5절을 보면, “...이렇게 첫날이 밤, 낮 하루가 지났다”로 되어 밤을 낮보다 먼저 적고 있다. 그들의 안식일은 달이 뜨는 금요일 저녁에 시작하여 다음 날 곧 토요일 달이 뜰 때까지이다. 그리고 한 주일은 안식일이 끝나는 토요일 일몰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한 달도 처음 초승달이 보이는 저녁때부터 시작되었다. 해가 바뀌는 정월 초하루는 가을 추분 직후의 초승달부터 시작했다.
“그분께서 달로 절기들을 정하셨으며...”(시 104:19)
달의 삭망주기는 29.5일이다. 그래서 음력 한 달은 29일과 30일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음력에서는 한 달 29일과 30일을 번갈아 쓰다 보니 한 해가 354일이 되어 지구의 태양 공전주기 365일을 기초로 하는 양력 보다 11일이 짧다.
그런데 하느님이 유대인들에게 애굽에서 탈출해 나온 걸 기념하는 유월절의 절기를 지키라 했다. 당시 계절이 봄이었다. 유월절을 봄에 지키려면 음력을 쓰면서도 태양의 절기에 맞추어야 했다. 그래서 유대교는 음력을 쓰면서도 양력 계절에 맞추기 위해 태음태양력을 고안해냈다. 곧 음력과 양력의 11차를 극복하기 위해 음력 19년 사이에 7번의 윤달을 만들어 집어넣음으로써 음력을 태양 절기에 맞추었다. 그래서 윤달이 있는 해는 30일이 더 늘어난다. 이 개정 역법이 소위 태음태양력이다. 음력에 기준을 두면서 계절도 맞춘 역법이다. 유대인들은 지금까지도 이것을 유대력(히브리력)으로 사용하고 있다. 곧 1년 사시사철의 큰 주기는 태양력을 따르지만 일, 월은 그들의 전통대로 음력을 지키는 것이다.
서기 7세기 유대교를 본 따 만든 이슬람도 음력을 쓴다. 그들은 지금도 음력만을 씀으로서 이슬람의 종교적 절기는 매년 11일씩 빨라진다. 그래서 라마단이 3년에 1달 여 씩 앞당겨져 봄에도, 겨울에도, 가을에도, 여름에도 오는 것이다.
유대력과 단군력
유대인들은 하느님이 아담을 기원전 3760년에 창조했다고 믿는다. 그래서 2017년은 유대력으로는 5777년이다. 유대인은 그들의 달력을 ‘현세력’이라 부른다. 천지창조 이후의 일을 기록하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단군이 고조선을 기원전 2333년에 세웠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올해가 우리 민족이 쓰는 단군력 곧 단기로는 4350년이다. 반만년 유구한 역사란 여기서 유래된 말이다. 이렇게 지구상에서 자기들의 민족력을 쓰는 민족은 유대민족과 한민족뿐이다.
유대인의 암송노래, 5음계로 우리 창 가락과 흡사해
유대인들은 그들의 기도를 흡사 우리의 창처럼 암송하곤 한다. 그 노래를 듣다보면 영락없는 우리 창과 가락이 같다. 5음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유대민족은 암송과 노래에 강하다. 그들은 성경 읽을 때 몸을 앞뒤로 흔들면서 읽는다. 아니 노래 부른다. 선율은 낭송 조로 되어있다. 탈무드에도 멜로디를 동반하지 않고 경전 읽는 것을 금하고 있을 정도이다. 우리도 예전 서당공부 시절에는 음률을 집어넣어 글을 배우며 이를 암송했다.
유대인들 사이에는 중매결혼이 많다. 고대로부터 양쪽 집안을 잘 아는 랍비나 공동체 원로들이 중매를 많이 섰다. 그러면서도 이혼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민족이다. 심지어 유대인들은 결혼할 때 궁합을 맞춰보기도 한다. 유대인들에게도 우리와는 좀 다르지만 12간지 동물이 있다. 유대인들은 이걸 갖고 궁합을 보기도 한다.
유대인의 두 줄기; 세파라디와 아쉬케나지
미국 유대인들을 보면 대부분 백인들인데 그들이 동양인 후손 맞아요? 여기에도 유래가 있다. 유대인은 크게 보면 두 줄기가 있다. 하나는 옛날 이베리아 반도의 이슬람 왕국 시대와 스페인 왕국 시절에 살았던 유대인들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라인 강변에 살았던 유대인들이다. 전자를 세파라디 유대인이라 부르며, 후자를 아쉬케나지 유대인이라 부른다. 세파라디(Sepharadi)는 스페인(Sepharad)을, 아쉬케나지(Ashkenazi)는 '독일'(Ashkenaz)을 뜻하는 히브리어이다.
19세기까지 팔레스타인 지방에 살던 유대인 대부분은 세파라디계였다. 그래서 이들을 정통 유대인이라 부른다. 반면 아쉬케나지는 일반적으로 라인 강 유역과 인근 프랑스 지역에 살다가 11~13세기 십자군전쟁 때 러시아 등 동구로 이주한 유대인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중세시대 라인 강은 중요한 상업교통로였다. 당시 마인츠 ·쾰른 등 라인 강 주변 지역에는 유대인 상업 공동체가 있는 마을들이 많이 있었다. 이들이 십자군 전쟁 때 박해와 학살에 시달리다 동구와 러시아로 피난 간 것이다. 그리고 그 뒤 15세기 말 스페인에서의 유대인 추방, 17세기 30년 전쟁으로 독일 지역에서의 유대인 피난 등 많은 유대인이 동구권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이 오랜 세월 게르만과 슬라브 민족들 속에 살다 보니 피가 섞여 백인화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뿌리는 셈족이다.
셈어와 게르만어의 혼용에 뿌리를 둔 그들의 언어 ‘이디쉬’어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반면 세파라디의 전통적 언어는 고대 카스틸랴 어에 기반을 둔 유대즈모(Judezmo) 혹은 라디노(Ladino)어로 알려져 있다. 이 언어는 고대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에 히브리어, 터키어, 그리스어, 아랍어, 프랑스어 요소가 혼합된 언어이다. 라디노어는 오늘날까지도 이스라엘 라디오 방송과 지역신문에 사용되고 있다. 이렇듯 언어가 그들 삶의 발자취를 반영하고 있다. 참고로 현재 미국 유대인의 95%가 동구에서 이민 온 아쉬케나지들이다. 반면 이스라엘의 유대인 구성비중은 세파라디 25%, 아쉬케나지 70% 내외라고 한다.
지금의 유대인은 나라를 잃고 이렇듯 2000년 가까이 갖은 박해와 학살을 피해 다니다 많은 피가 섞였다. 그래서 이제는 유대인을 혈통으로 정의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엄연한 셈의 후손들이다. 그는 우리와 같은 동양계인 것이다.
예수님은 유대인이지만 인종을 초월하신 분이다. ‘정의와 평등’으로 요약되는 율법의 정신에 더해 그 본질인 ‘사랑과 믿음’의 가치를 전파한 분이다. 율법의 형식에 사로잡힌 유대교를 민족종교로 가두지 않고 이방인에게도 개방해 구원의 길을 터놓으신 분이다. 그가 동양인지 서양인인지는 사실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다만 그를 서구 기독교가 그랬던 것처럼 어느 한 틀에 가두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