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문부성 유학생 김현구 교수에 대한 단상
글 : 차선생
이제 학문적 가치가 없는 아마츄어 김현구 영감님의 논문을 분석하는 것은 그만두고 김현구라는 인간 그 자체에 대해서 한번 고찰해보자. 김현구 영감님은 6세기의 한일 관계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아래와 같이 이야기 한다.
[ 그런데 대부분의 기본 연구는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보다는 자기 편의에 따라서 인용 해석해왔다. 그래서 극단적으로는 “ 야마토 정권의 한반도남부 경영론” 이 나왔는가 하면 반대로 “ 삼한 삼국의 일본 열도내 분국론이 나온 것이다 ]
마치 팀플레이를 하듯이 앞의 김태식 교수와 입을 맞추어 “ 삼한 삼국의 일본열도내 분국론”를 극단적인 이야기로 규정하고 있다. 사실 역사학자가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데 이런 군더더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 일본 열도내의 분국론이든 무엇이든 간에 역사학자는 역사적 사실과 자료에 근거해서 실제 일어났던 일만 밝히면 되는 것이다. 애초에 역사적 사실이라고 하는 것이 가치 중립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런데 그것에 대해서 근거와 자료를 가지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김현구 교수는 삼한 삼국의 일본 열도내 분국론은 극단적이다라고 하고 있고 김태식 교수의 경우는 지나친 주장이다라는 비학문적인 표현과 방식을 사용해가면서 이 가설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즉 애초에 논의의 범위를 삼한 삼국의 일본 열도내 분국론은 제외하겠다고 선언하고 시작하고 있는 것인데 앞에서 이야기 한 대로 비 학문적인 김현구 영감님의 논문을 봐서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고 실제로도 김현구 영감님과 김태식씨의 경우 자신들의 주장에 대한 근거는 밝히지 않고 있다.
이덕일 소장과 김현구 영감님의 재판 중에 이덕일 소장은 이런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다. “ 총론에서는 임나 일본부설을 부정하고 있는데 결국 각론으로 가면 임나 일본부설을 긍정하고 있다.”
이덕일 소장의 주장이 사실에 가깝다는 것은 김현구의 논문을 통해서도 확인이 되는 사항이지만 흥미있는 부분은 단순히 김현구 교수가 학술논쟁에서만 이런 경향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으로도 이런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하는 것에 있다. 많은 일반 시민들이 김현구 교수의 이덕일 소장 고소에 대해서 분노했고 또한 이덕일 소장의 책에 대한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이 법원으로부터 받아들여져 책을 읽을 권리조차 박탈당하였다. 분노한 시민들 중에서 한 사람이 제보한 내용중에 재미있는 것이 있어서 그것을 소개하고자 한다.
[ 김현구 교수 EBS에서 어린이 대상 일본에 관하여 방송하는 내용 중에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일본은 중국과 아시아에서 대각선을 이루고 있고, 한국은 일본과 같이 가야한다 하는 생각과 일치되는 겁니다...(생략)...얼마 전 수치를 보면 일본이 지금까지 65,000명의 국비를 줘서 유학생을 유치했습니다. 이 무슨 말인고 하니 일본정부에서 매년 아시아 각 나라 중심으로 해서 정부에서 돈을 줘서 유학생을 선발합니다. 저도 마 그런 유학생으로 갔다 온 사람입니다마는 이건 세계에서 가장 좋은 장학금이에요. 한 달에 약 우리 돈 200만원씩 주고 등록금 전액 면제입니다. 이것을 연구생 2년, 석사 2년, 박사 3년까지 줍니다.
여러분들 분발해서 일본 문부성 유학생이 되면 가서, 그 돈 이면은 저는 그 돈 가지고 결혼을 해서 애들 둘하고 네 식구가 생활하면서 박사과정까지 마칠 수 있었어요. ...(생략)... 어떻든 이처럼 이렇게 한 사람들이 65,000명이라고 한 번 상상을 해보세요. 그 사람들이 다 아시아 각국에 돌아가서 지금 회사나 정부에 근무하게 될 때에, 그 사람이 어떤 기계를 사게 될 때, 어떤 기계를 사겠습니까. 자기가 몇 년 동안 실험실에서 만지던 손에 딱 익은, 거기다 성분도 아주 좋은 일제 기계를 사게 되는 겁니다. ...(생략)...
얼마 전에 제가 97년에 일본에 오랜만에 갔습니다. 갔더니 와세다 대학에서 제가 유학할 때 학생들을 학생을 담당하던 사람이 부총장이 돼 있어요. 그 휼륭한 사람이 돼 있는데 저한테 재미있는 얘기를 했어요. 김선생이 와서 유학할 때 같이 유학하던 사람들 중에, 와세다 유학하던 사람 중에 지금 세 사람이 일본에 대사로 와 있습니다.” 김현구 교수의 EBS 발언 내용 ]
EBS에서 어린이 대상으로 일본에 대해서 알리는 방송을 하면서 김현구 교수를 부른 이유는 나름 일본에 대해서 잘 아는 전문가라는 생각에서 불렀을 것이다. 어른인 나도 왜 뜬금없이 일본 덕에 공부 꽁짜로 잘했다는 이야기를 아이들 대상으로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는데 아이들은 어떨까? 아마 아이들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김현구 영감님의 의식세계를 들여다 보면 한일 역사 공동 위원회에서 한 비 학문적인 발언의 배경에 대해서 이해를 하게 된다. 김현구 영감님은 한일 역사 공동 위원회에서 “ 일본 내의 한반도 분국설을 ” 극단적인 설” 로 규정을 한다. 일본 현지에서 오랫동안 공부를 해 온 사람이 저런 발언을 했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특별히 지능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일본 내의 한반도 분국설은 극단적인 설이 아니라 나름대로 여러 합리적인 근거들을 가지고 주장되어져 왔던 것이며 한국인 VS 일본인 이라는 구조하에서 나오는 주장들이 아니라 일본 내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주장해 왔다는 것을 학습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인 설이라고 규정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은 본인이 위에서 이야기 했던 대로 일본인 덕에 일본 돈으로 공부를 한 자신이 일본의 보수층이 끔찍하게 드러내기 싫어하는 진실을 이야기 할 수 없다는 “소인배의 의리” 이런 것이 잠재의식 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 방송에서 김현구 영감님은 백촌강 전투를 언급한다. 일본인들은 일본이 속국 백제를 구원하기 위한 전쟁이라고 하고 한국에서는 당시 일본의 지배층이 백제였기 때문에 본국을 구원하기 위한 전쟁이라고 하지만 본인은 “ 이런 극단적인 주장은 옳지 않다” 라고 이야기 한다. 일본인들에게 지원받아 공부를 한 한국인이라고 하는 입장에서 매우 편리한 주장 일지는 모르겠지만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멀다.
그리고 추가로 한국 쪽에서 이야기 하는 당시 일본 지배층이 한반도 도래인이었다고 하는 설에 대해서 김현구 영감님은 일부 백제인들이 일본 지배층으로 편입을 한 흔적은 있지만 당시 일본 지배층이 백제인들이라고 볼 근거는 없다. 라고 이야기를 한다. 이는 참으로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있는 발언이다. 왜냐하면 1200개가 넘는 성씨록을 정밀하게 분석하여 당시 일본 지배층의 대부분이 한반도 도래인이라고 하는 결론을 도출해 낸 최재석 교수의 연구 결과들을 학술지에 게재하는 것을 거부한 당사자가 김현구 영감님이고 공개토론에서 도망친 당사자 역시 김현구 영감님이기 때문이다.
이제 이런 김현구 영감님의 아마츄어리즘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오는지 이야기 해보자. 일본 열도 내의 한반도 도래인 분국설은 극단적인 설이 아니라 이미 에도 시대 때에 일본 유학자들에 의해서 유교에 바탕을 둔 합리주의적인 사고 방식을 토대로 여러 객관적인 근거들을 토대로 주장되었던 것이고 이것을 국수주의적 신앙에 기초하여 말살하였던 것들이 일본 신도 학자들이다.
에도시대 때의 유학자들이 일본 열도 내의 한반도 분국설을 주장한 것은 이들이 환빠라서가 아니다. 그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는데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런 것이다.
“ 일본이 2600년 전에 건국했다는 허무맹랑한 낭설을 믿으면 애국심은 생길지 모르겠지만 대신에 국민이 어리석어진다 ”
이 에도 시대 때의 유학자들이 자신들의 사후 200년 후에 일어났던 어리석어진 일본 국민 때문에 전 아시아가 불행해지는 사건까지는 예측하지는 못했겠지만 어쨌든 핵심을 찌른 말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 이후에 일본 신도가 합리적으로 역사를 바라보려는 시각들을 탄압함으로써 일본은 일본 서기 신공황후 신라 정벌과 같은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조선을 병합하였다. 그리고 그토록 오랜 세월이 흐르고 엄청난 희생이 뒤따랐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과오가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인데 바뀐 것이 있다면 역사 왜곡의 주체가 일본의 국수주의적 신도학자에서 일본인들 덕에 일본 돈으로 편하게 공부한 한국학자로 바뀌었을 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