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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panic_1358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슬로우푸드★
추천 : 26
조회수 : 4546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1/03/30 03:00:11
안녕하세요 교도소에서 군복무 했던 사람입니다.
이전에 아이디를 파기전 교도소에서 겪었던 무서운 경험을 쓴적이 있습니다.
간만에 또하나 써볼까 하여 기억을 들춰보다가
씁쓸하기도 하고 무서웠기도 했었던... 그냥 근무했던 부대이야기 하나를 써볼까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존대로 쓰려고 했는데 그게 막상 쓰려니 잘안되서 편하게 쓰게되었습니다.
아무쪼록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 그리고 귀신 이야기는 아닙니다. 차라리 귀신 이야기 였으면 좋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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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비교도대로 24개월간 군복무 하였다.
경비교도대는 계급이 이교, 일교, 상교, 수교 순인데
그때의 사건은 아마 내가 상교 4호봉... 정도에 있었던 일인 것으로 기억한다.
상교 4호봉쯤 되면 군생활도 꺾이고 한창 막사의 인력을 돌릴 정도의 짬이었다.
각자 복무한 부대의 분위기에 따라 달라지는 일이지만
당시의 나는 실세 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근무지 빨을 받을수 있는 짬밥이었다.
(그때 당시 내 위의 고참 기수들이 오밀조밀 사람수 적은 기수들만 있었기에
나의 기수에 비하여서는 부대내에서의 서열이 높은 편이었다. 한마디로 좀 풀린 기수였다.)
어느날 나는 순찰 선임으로 야간 4번초(밤 12:00 ~ 새벽 02:00)에 배치 되었다.
그때 난 한창 군생활이 지긋지긋하게 느껴지던 시점이었다.
사실 군생활이 루즈해질 짬밥은 아니었지만
기수가 잘풀려서 짬은 안되는데 서열만 높아지니까 정신상태가 헤이해진 것도 있고
서열은 올라서 할일은 많아지는데 또 짬밥은 안되니까 눈치를 보며 일을 해야 한다.
그건 굉장히 짜증나고 피곤한 일이었다.
난 보안과에서 근무신고를 하고 다시 구외로 빠져나와 소대장이 있는 중대본부를 슬쩍 피해
막사 뒤편에서 후임과 함께 담배를 피웠다. 순찰 근무가 좋은게 하나 있다면 정해진 근무위치가 없다보니
이런식으로 슬쩍 막사에 돌아와서 담배를 태우거나 짱박아둔 간식거리를 몰래 먹는게 가능한 것이다.
어쨌든 시간내에 순찰 도장만 찍으면 그만이니까.
후임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김선윤(가명) 상교님, 이제 순찰 찍으러 가지 말입니다."
그말에 난 담배 꽁초를 손가락 끝으로 탁 튀기며 일어섰다.
"그려... 가자. 차라리 빨리 찍고 쉬자."
근무는 짬밥대로 조가 배정 되어서 순찰로 같은 조가 되는 경우는 짬 차이가 거의 안나는
편한 선후임 사이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이런 저런 뻘짓도 손발에 맞게 잘 했던 것 같다.
아무튼 우리는 조용히 일어나서 담배와 라이터를 짱박고 막사 반대편으로 돌아 중대본부를 피해가려고 했다.
그래서 제1내무반을 크게 돌아 조용히 걸어갔다. 일명 열외라고 불리우는 수교들이 우리의 뻘짓을 보거나 듣기라도 하면
그다음날 아침 점검 시간이 지옥이 될 것이었다.
그때 갑자기 제1내무반의 뒷문이 스르륵- 하고 열리며 키큰 그림자가 훅- 하고 걸어나왔다.
후임과 나는 너무 놀라서 가슴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보통 야간 시간대에 돌아다니는 것은 수교들이나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이제 갓 일교로 진급한 후임이었다.
내 순찰후임이 안도의 숨을 내쉬며 작은 목소리로 으르렁 거렸다.
"이새끼가... 미쳤냐? 안쳐자고 왜 튀어나와?"
"새끼가... 오줌 쌀거면 앞문으로 나가야지 왜 일로 튀어나와."
나도 너무 놀라 짜증이 나있었기에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나 그 키가 큰 일교는 우리의 갈굼을 듣고도 아무 말없이 우두커니 서있었다.
어두운데다 내무반 내부의 빨간색 취침등을 등지고 있었기에 일교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고
그저 키가 큰 그림자가 서있을 뿐이었다.
분명 사람을 잘못 본것도 아니었고 실루엣 만으로 충분히 알아볼 수 있는 거리였다.
"... 미쳤네? 고참이 말하는데 씹냐? 야. 야."
후임이 어이가 없었는지 그 일교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했다.
그 순간 난 뭔가 이상하다는걸 느끼고 순찰 후임의 어깨를 잡으며 말렸다.
"야야. 용석아 기다려."
자세히 볼수는 없었지만 그 키큰 일교의 그림자 진 얼굴에서 우리쪽을 쏘아보는 눈빛이 느껴졌고
호주머니에 들어가 있는 오른손도 신경쓰였다. 갓 일교가 된 후임이 상교꺾인 선임 앞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는 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나는 '아... 지금 하극상을 하려는 건가?' 라는 생각을 하며 내 순찰 후임을 말렸다.
그 일교가 하극상을 벌일 생각이라면 주위 눈치를 볼리도 없고 내무반 뒷문을 연채로 서서 큰소리를 내어 수교들을 깨워봤자
우리에게도 좋을 일이 없었다. 난 어떻게든 이순간을 조용히 무마시키고 내일 아침에 불러서 얘기를 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재준.(일교의 이름) 일단 지금은 조용히 들어가서 자고. 내일 아침에 얘기하자. 빨리 들어가."
내가 그렇게 침착하게 얘기 할수 있었던것은 우습게도 그 일교의 기세에 눌렸기 때문인지도 모를 것이고
너무 당황했기에 어떻게든 그 상황을 모면하려는 필사적인 모습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그 일교는 내 얘기를 듣고도 잘 보이지 않는 표정으로 우리쪽을 응시하다가 천천이 뒤돌아 내무반 안으로 들어갔다.
약 2초간 그걸 멍하니 바라보다 아직도 부글거리고 있는 순찰 후임을 다독였다.
"아 시x 어이가 없네. 저 새끼 내일 진짜 족쳐야지 말입니다."
"그래 족을 치든 뭘하든 일단 지금은 조용히 넘어가자. 수교들 깨고 소대장이 소리듣고 나오면 우리도 골치 아퍼"
나는 후임을 다독이고 뒤돌아 서며 내무반 쪽을 흘깃 보았는데
한재준이 열고 나온 뒷문이 열린 상태 그대로 였다.
나는 아직 열려져있는 내무반 뒷문을 닫기 위해 조용히 뒷문으로 다가갔다.
여름이었기에 다행이었다.
겨울이었다면 찬바람이 들어가 자고있는 수교들을 깨웠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행이라 생각하며 조용히 걸어서 뒷문을 닫기위해 가까이 갔을때
나는 또한번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놀랐다.
한재준... 그 키큰 일교가 여전히 이쪽을 바라보고 문에서 불과 두세걸음 떨어진곳에 우두커니 서있었기 때문이다.
"야... 뭐해. 얼른 가서 누워."
내가 작게 속삭이자 한재준은 그제서야 천천히 몸을 돌려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누웠다.
그때까지도 한손은 여전히 주머니속에 들어간 상태였다.
난 조용히 문을 닫고 순찰 후임과 함께 근무지로 걸어갔다.
순찰을 돌면서도 후임은 여전히 씩씩거리며 한재준을 씹어먹느니 마느니 하고 으르렁 거렸다.
난 그저 말없이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재준은 군입대전 이른 바 명문대 학생이었다. 말랐지만 키가 매우 컸고 약간 어리버리하게 생긴 전형적인 범생이었다.
그 친구는 포악한 우리 부대의 분위기에 잘 적응 하지 못했다.
우리 부대는 정말 구타가 심한 부대였다. 아니... 다른 부대를 경험해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주관적으로 봤을때 굉장히 심했던것 같다.
우리 부대는 무조건 때렸다. 이런데를 맞아도 안죽네? 라는 생각이 들만한 곳도 가차없이 주먹이 날아왔다.
난 백일휴가를 가기도 전부터 '난 전역하기 전에 맞아죽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틀씩 굶기고 잠도 안재우는 일도 있었다. 한번은 내 두달위 고참중 한명이 근무 지적을 심하게 내서
세탁장에 끌려가 맞다맞다 기절한 일도 있었다. 기절한 후에도 찬물을 끼얹는게 그때 당시 고참들의 모든 조치였다.
세탁장에 끌려가면 보통 수건을 하나 던져준다. 그곳에 끌려와 수건을 받은 후임은 허겁지겁 수건을 세로로 세번 접어서
눈을 가리고 부동 자세를 취해야 한다. 그때부터는 '교도봉'(보통 경찰들이나 경비원 아저씨들이 옆구리에 차고 있는 작은 목봉)
이나 발길질이 복부, 허벅지로 날아들어왔다. 눈을 가리고 있으면 언제 어디로 날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계속 긴장한 상태로 복부에 힘을 주고 있어야 한다. 혹시나 힘이 빠져서 복부가 풀려버린 상태로 얻어맞으면
그 다음날은 하루종일 속이 쓰리거나 심하면 대변에 피가섞여 나오기도 했다.
한재준은 불행하게도 이런 분위기의 부대에 전입온 '고문관'이었다.
같은 일을 몇번을 설명해줘도 실수투성이였고 근무를 나갔다하면 지적이 나서, 한재준의 맞선임들이 줄줄이로 끌려가
교육을 제대로 못시킨다는 이유로 얻어터지는 일이 2-3일에 한번 꼴로 있었다.
그 친구가 하루중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아마
"xx대 다니던 새끼가 이걸 못하냐?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한재준은 거의 매일 극심한 폭력과 폭언에 시달렸다.
나와는 짬밥차이가 큰 편이라서 별로 대화를 나눠본적이 없기에 내가 알고 있는 건 그 정도였다.
그 친구가 어떤 성격인지도 알수가 없었고 같은 분대도 아니었기에 내무실이 달라서 딱히 부딪힐 만한 일이 없었다.
그냥 늘 어둡고 말이 없는 키크고 마른 후임일 뿐이었다.
나는 절대 후임들을 구타 하지 않았다. 그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군시절에 대해 가장 강하게 가지고 있는 자부심이었다.
후임시절 숱하게 얻어맞으면서도 이를 악물며 '나는 나중에 고참이 되도 절대 누굴 때리지는 말자'라는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을 전역할때 까지 지켰다. 그리고 그것을 자랑 이라고 생각하며 군생활을 하고 있었다.
물론 전체에 피해를 주는 실수같은걸 한 후임에게는 너무 화가나서 욕설을 할때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한재준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저 막연히 한재준이 그런 더러운 상황 속에서 적응을 못하고 사고를 칠 생각이었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복잡한 심경으로 야간 근무를 마친후 보안과에 들어와서 후임들을 데리고 중대본부로 돌아왔다.
(야간 근무조의 최고참은 중대본부에 대기하기 때문에 사실상 근무인솔은 순찰 선임)
돌아오는 중에 뭔가 중대본부쪽 분위기가 이상했다. 내무반에 불이 켜져있고 왔다갔다 하는 몇몇 수교들이 눈에 띄었다.
나는 후임들을 정렬시키고 근무교대 신고를 하기 위해 중대본부에 들어가려는데 소대장이 몸이 채 들어가지도 않은 나를 보며 말했다.
"수고했어. 특이사항 없으면 신고 생략하고 애들 들여보내."
나는 무슨일인지 물어볼 짬밥도 아니었고 수교들이 돌아다니고 있었기에 눈치를보며 중대본부에서 빠져나와
후임들을 내무반으로 들여보냈다.
안봐도 이건 한재준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재준이 있는 제1내무반과 어느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었던 우리 내무반은 이 상황을 모르는듯 다들 곤히 잠들어 있었다.
다음날 아침 기상하고 나니 부대가 발칵 뒤집혀 있었다. 역시나 한재준 때문이었다.
한재준과 같은 내무반에서 자고있었던 규석이라는 후임에게 얘기를 들은 내용은 이랬다.
잠결에 어디선가 '쿵' '쿵' 하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려왔다고 한다. 그 소리를 듣고 몇명이 잠에서 깼고
그중 짜증이 난 수교 한명이
"시발 어떤 새끼야! 뭐하는거야!" 하고 소리를 쳤다고 한다.
규석이도 살짝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나는 곳을 보니 검은 실루엣 하나가 일어나서 자신의 관물대를 머리로 들이받고 있었다.
그때쯤 수교한명이 지른 소리에 다들 잠에서 깨어 머리로 자신의 관물대를 들이받고 있는 검은그림자를 보고 있었다고 한다.
"야! 어떤 미친새끼야! 불켜!"
수교가 소리치자 전등스위치 가까이 있던 후임이 불을 켜니 한재준이 자신의 자리에 서서 관물대를 머리로 받으며 울고있는 것이었다.
"야! 야!"
수교가 몇번을 불렀지만 한재준은 그 행동을 멈추지 않았고 입고있던 반바지(활동복)는 오줌을 쌌는지 검게 젖어있었다고 한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수교들이 일어나서 한재준을 제지하자 그는 크게 울부짖으며 몸부림을 쳤고, 가까스로 진정시켜서 중대본부에 데려
간것이었다.
그 후 한재준은 중대본부 안에 있는 전입대기실(신병이 전입신고 전에 3일간 머무르는곳)에 머무르며 소대장과 상담을 했지만
곁에서 지켜본 행정병의 말로는 이미 한재준은 상담으로 해결 가능한 정신상태가 아니었다고 한다.
멀쩡해졌다가 이상해졌다가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소대장은 한재준이 연극을 하는게 아니라는 판단을 내리고
외부진료를 내보내기로 했다.
무서운 일은 이 상담과정에서 밝혀진 한재준의 생각이었다.
그는 나와 맞닥드렸던 그 시간에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는 강한 열망에 사로잡혀 자신을 가장 괴롭히던
옆 내무반의 박민수라는 고참에게 가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는 활동복 오른쪽 주머니에 어디서 났는지 모를 작은 과도 하나를
넣어두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나와 내 순찰 후임을 만난 것이다.
한재준은 둘다 죽일 생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하필 그게 나였기에 차마 칼을 꺼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소대장이 왜 김선윤은 죽이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냐고 물어보니.
그 선임은 아무도 괴롭히지 않았다. 막내때 유일하게 웃으면서 자신에게 말을 걸어준적이 있다는 것이다.
난 행정병에게 그 얘기들을 들으며 말문이 막혔다.
난 오로지 내 개인적인 개똥같은 자부심에 쩔어서 아무도 때리지 않았을뿐
누군가 잘못하면 화도 내고 욕도 하는 별로 특별할것 없는 고참이었다.
다만 한재준과 부딪힐 일이 없어서 지금껏 화를 낸적이 없었던 것 뿐이었다.
더군다나 내가 웃으면서 말을 걸었던 일 같은건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 이후 한재준은 한동안 외부병원에 입원해 있다가(국방부 소속이 아니라서 군병원으로 가지 않습니다.)
의가사 전역을 했다. 그는 의가사 전역할 당시 키가 186에 달하면서 몸무데는 50kg이 채 되지 않았다고 한다.
사회에서는 명문대를 다니고 진지하고 예민했던 한 청년이 국방의 의무를 위해 입대하였다가 정신병자가 되어
돌아간 것이다.
그 사건후 소대장이나 중대장도 알고 있었던 부대내 구타문화와 금전각출(전역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걷어줌)
등 온갖 더러운 사건들을 덮을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몇명의 영창대기와 소대장 교체등이 있었다.
그러나 그뿐 이었다. 한재준의 입에서 자주 언급된 7~8명 중 두명이 모조리 뒤집어 쓰고 영창후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갔고,
나머지는 3개월 군장으로 쉬쉬하며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나는 별탈없이 남은 군생활을 복무하고 전역하였다.
나는 누군가를 때리지 않았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위에서도 말했다.
하지만
부조리한 상황에 순응하고 그 상황의 피해자들을 외면해 왔던... 그냥 그런 인간 이었다는 부끄러움은
그 몇백배로 커서 그런 자부심 같은건 사실상 작은 위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시간을 되돌릴수 있다고 해도 그때의 그 부대를 뒤집어 엎을 용기가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그정도의 인간이다.
더군다나 조사과정에서 한재준의 입에서 나왔던... 나를 향한 '좋은 고참'이라는 표현은 나를 몇배더 부끄럽게 만들었다.
모두가 자신을 때리고 괴롭히고. 그저 최소한 자신을 괴롭히지 않는 방관자가 '좋은 사람'으로 보일 정도의 상황에 있었던
한재준은 얼마나 괴로워 했을까.
듣기에 2012년에 경비교도대는 완전 폐지되어 사라진다고 한다.
이 소식이 반갑게 들리는건 한재준에 대한 기억. 일방적인 폭력이 만연했던 그곳에 대한 기억들 보다,
비겁한 내 자신의 기억으로 부터 조금은 멀어지는 듯한 자기만족 적인 안도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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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 전역한지 꽤 오래됐습니다.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렀네요.
처음에는 그냥 즐길거리로 오컬트적인 경험을 써볼까 했었는데
가장 무서웠고 가장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문득 떠올라 주절주절 써보았습니다.
전역후에도 분대 막내들까지 모두 연락하고 지냈는데 먹고 사는게 바빠지다 보니 이젠
연락하는 사람이 없네요. 때되면 전화도 오고 했었는데 말입니다.
재준이도 우리와 다를 바 없었던 평범한 사람이었는데도 왜그렇게 그곳에선
괴롭힘 당하게 되었을까요. 잘 지내면서 전역후에도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가끔 상상합니다. 길을 걸어가다가 재준이가 어엿한 사회인으로 당당하게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는 겁니다. 상상이라기 보다 그랬으면 좋겠다... 라는 것이죠.
이것마저도 비겁하게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일 뿐이겠죠.
전역후에 학교에 복학하여 다니면서 군입대 하는 후배들을 보면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게 되는데
저같은 경우는 막내때 어떻게 해야하는 지 보다 네가 고참이 되었을때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 라는
말들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군입대를 앞둔 어린동생들을 보면 말해주고 싶습니다.
인간으로서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키세요.
위에서 고통을 받았다고 아래에 그대로 갚아주는 것은... 인간이 아닙니다.
저와같이... 비겁했던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사람도 있고 안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느끼게 될겁니다.
난 군대에서 '신'이었어! 보다... 나는 군대에서 좋은 형같은 사람이었어. 라는 쪽이 더욱
군생활을 즐거웠던 추억으로 남게 해주고,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듯이 말할수 있게 합니다.
보장할께요.
글이 길어져서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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