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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읽은책28 - 내 심장을 쏴라 / 정유정 / 은행나무
게시물ID : readers_1358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좋아헤
추천 : 0
조회수 : 400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4/06/19 16:53:53

출판일 09.05.20
읽은날 14.06.19

17p.
"아무 걱정거리 없는 곳이 있을까요? 그런 곳이 있다면, 당장 달려가고 싶겠죠.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도로시도 그런 생각을 하며 무지개 너머 세상을 꿈꾸었을 텐데요.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눈을 감고 발꿈치로 바닥을 세 번 치는 것만으로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봅니다. 브람스와 함께 <밤과 음악> 3부를 시작하겠습니다. 브람스의 교향곡 1번 1악장 C단조, 운 포코 소스테누토-알레그로(Un Poco Sostenuto-Allegro)."

75p.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쳐 왔을 때, 나는 꼼짝없이 녀석의 눈에 붙들리고 말았다.
땅거미 같은 눈이었다. 야밤의 도로로 튀어나왔다가 자동차 전조등에 갇혀버린 날짐승 같은 눈이었다. 그러나 미친 자의 눈은 아니었다. 그런 걸 어찌 아느냐고 묻는다면, 우리 편이 아닌 놈을 알아보는 동물적 직관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170p.
일주일 전에는 역할극을 했다. 여주인공은 현선 엄마에게 돌아갔다. 나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여 자세를 낮췄으나 독재의 손가락을 벗어날 수 없었다. 현선 엄마의 상대인 현선이 역은 내게 떨어지고 말았다. 그날 일은 돌이켜보고 싶지도 않다. 역할극이 3분 만에 중단됐다는 것과 중단 당시의 상황만 알려드리겠다. 나는 목을 움츠리고, 얼굴을 바닥에 처박고,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식당 귀퉁이에 엎어져 있었다. 현선 엄마는 현선이에게 젖을 물리려 들고 있었다. 승민은 미친듯이 낄낄거리다 의자와 함께 뒤로 넘어갔다. 

199p.
"오빠 왔다."
승민의 입에서 사탕을 열 개쯤 문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모자챙을 내리눌렀다. 미친 새끼... 기다렸던 만큼 반가웠고 반가운 만큼 어색했다.

259p.
점박이는 통화를 하다 말고 버럭 화를 냈다.
"뭘 엿듣고 있어, 등신아. 빨리 나와."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가락 하나가 점박이를 향해 서 있었다. 믿을 수 없게도 내 가운뎃손가락이었다. 점박이는 옴팡눈을 깜박깜박했다. 자기가 뭘 잘못 봤나 의심하는 표정이었다. 속이 울렁거렸지만 내친걸음이었다. 뒤늦게 손가락을 회수해봐야 세웠던 사실이 없어지지는 않는 것이다.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려는 손가락을 힘주어 다시 폈다. 점박이는 휴대전화를 탁 소리 나게 닫았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이렇게 이해력이 달려서야. 내 의사가 점박의의 멍청한 머리에 쑥 박히도록 손가락을 말뚝처럼 세웠다. 엿 먹으라고, 엿. 엿 몰라?

310p.
상념을 깬 것은 고요 속에서 솟구친 '악'하는 소리였다. 승민이 핸들을 틀어쥔 채 앞창을 향해 몸을 내밀며 지르는 소리였다. 목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머리 꼭대기가 폭발하며 터져 나오는 듯한 소리였다. 그 순간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아아, 저 미친 새끼.
봉고가 화살처럼 튕겨 나갔다.

327p.
비행 준비는 다리 벨트를 조절하는 걸로 끝났다. 등 뒤의 캐노피는 바람을 맞아들이며 탄탄한 벽을 세워가고 있었다.
"잘 가라고 안 해?"
승민이 물었다. 나는 조명탄을 꺼내 쥐고 절벽 끝을 가리켰다.
"저기 가서 할게. 불빛을 보고 곧장 달려와."
승민은 손을 내밀었다. 머뭇머뭇 맞잡았다. 손을 떼자 손바닥에 승민의 시계가 놓여 있었다.
"이제 빼앗기지 마."
승민의 눈이 고글 속에서 웃고 있었다.
"네 시간은 네 거야."
시계를 쥐고 돌아섰다. 돌아서서 걸었다. 걷다가 뛰기 시작했다. 절벽 끝까지 단숨에 뛰었다.

337p.
넌 누구냐?
승민이 물었다.
알아맞혀 봐.
내가 대답했다.
새야?
아니.
비행기?
아니.
그럼 누구?
나는 팔을 벌렸다. 총구를 향해 가슴을 열었다. 그리고 언덕 아래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나야. 내 인생을 상대하러 나선 놈, 바로 나.

344p.
'운명이 내 삶을 침몰시킬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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