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오는 길이었다. 작년 여름부터 보였던 흰색 숏헤어 냥이를 마주했다. 원래는 남매 숏헤어였는데 혼자였다. 아마도 큰 녀석은 지독한 겨울을 버티지 못한 모양이었다.
처음 둘을 봤을 때는 넉살도 좋았다. 낯선 내게 꼬리를 치켜 세우며 온 몸을 비비고는 냥냥거렸다. 분명, 집고양이 출신이었다. 배고파?라고 물으면 두녀석은 대답하듯이 큰 소리로 애옹애옹 울었다.
종종 마주치면 닭가슴살 캔을 사서 줬고, 몇 번 반복되자 녀석들은 편의점 앞에 자주 출몰했다. 그러다 겨울 초, 갈비뼈가 드러나도록 마른 두 녀석을 본 후로 오랜 기간 보이지 않았다.
집에 오는 길이었다. 작년 여름부터 보였던 흰색 숏 헤어 냥이를 마주했다. 긴 겨울을 버티지 못한 모양이었다. 더 홀쭉했고, 나를 경계했다.
눈동자에 담긴 너의 기억에는 어떤 역사가 있을까.
무척 변해 있었지만, 바닥을 퉁퉁 치는 캔 소리를 녀석은 기억했다. 한쪽 구석에 캔 내용물을 부었을 때, 녀석은 내 다리를 몇 번 쓰윽 비볐다. 엉덩이 끝을 톡톡 두드리니 티나게 움찔했다.
풀잎 소리에도 바짝 몸을 낮추고 전투적으로 냐웅냐웅 먹어댔다. 주변을 경계할 때 '별거 아니야 얼른 먹어'라고 중얼대면 용케 다시 먹었다. 통하는 순간이었다.
멀리서 머리가 벗겨진 한 노인이 걸어왔다. 나도 녀석처럼 바짝 몸을 낮추었다.
녀석은 온 힘을 다해 주변을 살피며 배를 채웠고, 노인은 약 5미터 쯤 되는 거리에서 걸음을 멈추고 우리를 관찰했다.
고양이는 나를 경계했고 나는 노인을 경계했고 노인은 우리를 지켜봤다.
"키우는 집고양이오?"
"아니요. 길고양이에요."
노인은 거리를 좁히며 물었다.
"집고양이 같네? 자주 밥 줘요?"
"가끔 보일 때 줘요. 저도 오랜만에 보는건데 보니까 집 고양이 출신 같아요. "
내가 몸을 움직이자 녀석이 놀라고 노인이 가까이 다가오자 나는 놀라고 노인은 나와 고양이의 관계에 놀랐다.
"그렇구만. 잠이 안 와서 운동하고 오는데, 길에 떡하니 보여서 말이야."
녀석은 나와 노인의 대화에 귀를 쫑긋 쫑긋 거렸다.
이내 꼿꼿하게 선 꼬리를 자랑하며 골목길 쪽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저놈은 인사도 안 하고 가는구만."
목소리가 퍽 매서웠다.
노인의 얼굴을 힐끔 보았다.
꼭 잘못을 들킨 아이의 심정이었다. 약간 남아 흩어진 먹이들을 휴지로 모아 빈캔에 담았다.
"거 치우지 마오. 놔두면 다른 고양이들이 와서 배 채우니까."
고양이는 유유히 사라졌고 나는 얼굴이 뜨거웠고 노인은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귀를 접고 몸을 한껏 낮춘 고양이 같았다. 나의 바짝 선 털은 여린 살을 감추기 급급했다.
다리에 몸을 가볍게 비비듯이, 노인을 보며 싱긋 웃었다.
한쪽에 모아둔 남은 먹이가 촉촉하게 빛났다.
허리를 쭉 펴고 일어났다.
바짝 긴장했던 등이 노곤하게 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