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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면 더 잘 보이는 너
게시물ID : gomin_171192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Rosso
추천 : 1
조회수 : 44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6/26 22:3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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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의 첫 만남은 온라인이었다.
이십대의 막바지에 몰린 같은 나이의 직장인들을 만나고 싶어 내가 먼저 익명방을 만들었고,
바로는 아니고, 조금 늦게 너가 들어 왔다.
서른명이 넘는 친구들 중 네가 유독 빛나는 아이인 걸 그땐 몰랐다.


너와의 두번 째 만남은 가까운 대학교 앞 스타벅스였다.
근처에 주차를 하지 못해 뺑글뺑글 돌다 어렵사리 차를 대고 난 후
느긋하게 카페에 도착 했을 때, 너는 뒤돌아 앉아 있었다.
불러 세웠을 때, 피곤한 표정으로 날 응시하던 첫 모습을 기억한다.
그게 내딴엔 잠시 기분이 상했는지, 심지어 기다리게 만들고도 내가 커피를 사지도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손사래를 치며 내가 냈을 텐데.

처음 보는 사이인데다가, 온라인에서도 거의 말을 나누지 않았기에
그냥 어떻게 생겼는지 얼굴만 보자고 생각하고 나간 자리였지만
앉자 마자 부터 스타벅스의 영업 시간이 끝날 때 까지 단 5초도 쉬지 않고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방금의 피곤한 표정은 온데간데 없고 단 한 순간도 반짝이지 않을 때가 없었다.
핀트가 나가는 대화 주제를 던지더라도 살짝 생각하다 기묘하게 이야기를 이어주는 너를 보며
앞으로 내가 이 아이를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게 되었다.
왜 첫 만남에 너의 가정사를 알게 되었는지, 나의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중요한 건 너와 나의 대화가 잘 맞다는 사실이었으니깐.


한 동안은 그저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꽤 가까이에 사는 데도 불구하고, 너는 바빴고, 나도 약간은 바빴던 것 같아 만나지 않았다.
그리고 너를 좋아하는 것 같은 한 아이가 있어, 내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고 그대로 지내었다.


어느 날, 와글와글한 단톡방에서 놀다 보니
어쩌다 너를 좋아하는 아이와 나, 그리고 너가 심야 영화를 우리 동네에서 보기로 했다.
얼마 전 개봉한 한 사람에 대한 다큐 영화였는데, 되도록이면 이걸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너가 오유를 한다는 사실도 알았고, 나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너가 가운데에 앉았고, 내가 오른쪽에 앉고, 다른 친구는 왼쪽에 앉았는데, 사실 너랑만 같이 있는 것 같아 좋았다.
중간에 귓속말을 하며 들리는 너의 속삭이는 예쁜 목소리도 좋았고,
훌쩍 거리며 영화에 집중하는 너의 모습도 너무나 예뻤다.
내가 더 많이 운 건 물론 비밀이다..


이후에도 너를 만나긴 했지만, 단 둘이 만난 적은 없었다.
방 친구들과 함께 단체로 여행도 가고, 밤새 술을 마시러 가기도 했지만 같이 놀러 가서도 크게 마주칠 일은 없었다.
물론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너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잠깐 너 자랑을 하자면,


너의 직장이나 연봉, 사는 곳, 외국어 실력, 부모형제 관계보다는..
내가 너를 보는 좋은 요소들은 다음과 같았다.

너의 눈은 참 단추처럼 생겼다.
너는 글쎄, 그게 뭐냐고, 단추처럼 생긴게 뭐냐고 물었지만
그냥 단추처럼 눈이 생겼다. 라고 밖엔 얘기하지 않았다.
그 생각은 지금도 똑같다. 너는 참 단추같은 눈을 하고 있다.

너는 약속 장소에 늦은 것 같으면 항상 뛰어 오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앞머리가 날리든 말든 신경쓰지 않고 열심히 뛰어 온다.
지금은 초여름이야. 뛰지 않아도 돼. 그래도 열심히 뛴다.
그 모습이 왜 그렇게 좋았는지 모르겠다.

너는 항상 정성 들여서 카톡을 보내줬다.
단 한 번의 불성실함도 보이지 않고, 예쁘고 고운 말을 썼다.
물론 극한의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나지막히 짧고 거친 말을 내뱉었다지만
그 모습 조차 상상하니 웃음이 나왔다.

맥주 한 잔을 마시면 쫑알쫑알 말이 많아진다. 그리고 어이 없이도 말투로만 살짝 애교를 부렸다.
전혀 생각치도 않아서 적잖이 당황 했던 것도 있다. 근데 그게 싫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이 아이는 나를 정말 자기 사람으로 생각하는구나. 느껴져 너를 배웅하고 돌아가는 길 내내 미소 지었다.

그리고.. 생각이 깊어 매사에 진중하던 너의 모습이 가장 좋았다.


서로 안 지 한 달이 넘은 상태에서 이젠 누구든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너가 전날 단톡에 떡볶이를 먹고 싶다고 쓴 걸 보고 좋아하지도 않는 떡볶이를 함께 먹자는 이유로 너희 회사 앞으로 한 번,
나는 일이 끝났는데 너는 야근을 한다는 이유로 너희 회사 앞으로 또 한 번 갔다.

그리고 각각 열 한시와 열 두시가 꼬박 되어 너는 집에 들어갔다.
아마, 너를 알게 된 두 달 중 가장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주말엔 다른 친구들과 너와 내가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술을 좀 마셨고, 큰 실수는 아니지만 이전의 찝찝했던 문제와 겹쳐 너는 나를 카톡으로 갑작스레 나무랐다.
이미 술이 깼고, 정신 차리고 전화를 했다. 그리고 난 너를 좋아한다고 어려운 말로 고백했다.
그리고 완곡하게 거절 당했다. 너가 싫어하는 담배를 네 대 쯤 연속으로 피고 어지럽게 침대에 몸을 뉘였다.


그 상태로 데면데면하게 이틀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월요일 오후에 너에게 카톡이 왔다.
뭐가 그렇게 미안한지 미안함에 미안함이란 표현과 이모티콘은 모두 담아 저녁에 만나자고 했다.
내 말마따나 다시 보지 않으려면 안 나와도 된다고 했다. 부리나케 상사의 '요즘 애들은~' 비꼼을 들으며 퇴근했다.
그렇게 만난 너는.. 갈 수록 나에게 예쁘게 보여졌다. 싸이메라가 필요 없었다.

첫 번째 문제에 대해 심도 높은 토론이 오갔고, 이내 두 번째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침을 꼴딱 삼켰다.
너는..


이후 너와 나는 매일 같이 많은 연락을 하고, 대화를 나누고, 심지어 하루 종일의 데이트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고,
우린 완전히 남이 되었다.



스물 아홉 살을 먹고 이 옷이 나을지 저 옷이 나을지 삼십분을 고를 줄은 상상도 못했다.
더불어 면접 때 필살기로 샀던 비비크림을 덕지덕지 바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래도 그 날 너가 멋있었다고 했으니 그걸로 괜찮은 것 같다.


스스로 반성하지 않는다. 마지막 카페에서 쓸 데 없이 나의 장래 이야기를 던져 너가 진심어린 조언을 하게 만들어 준 것만 빼면.
그 시간은 더 즐겁고 진지한 이야기를 했을 수 있었을거다. 아참, 그리고 너가 잠깐 들어갔을 때 평소 안먹던 약을 많이 먹어 잠깐 졸았던 걸 걸린 것도.
근데 괜찮은 거 맞냐고 조심스레 백 번은 더 물어봐서 그게 더 미안했다.
나 그렇게 아픈 사람 아닌데, 너가 그렇게 오해 했을까봐 끝나버린 지금도 걱정된다.


사실, 이건 별 다를게 없다. 누구나 하나 쯤은 가지고 있는 사랑 이야기다.
예전의 치열했던 사랑 처럼 눈물이 난 것도 아니고, 잠을 못 잔 것도 아니고, 일을 하지 못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누군가에 대한 글을 쓴 적은 없다.


너의 웃는 얼굴을 다시 보고 싶다.
출처 사랑을 다른 사랑으로 잊지 못하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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