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다닌 고등학교는 신생학교에 뭔가 기대도 많고 투자도 많은 학교라서 외부 인사가 강연을 많이 찾아왔었죠.
그 중에는 엄홍길 대장님이나 석해균 선장님 같이 유명인도 오셨고...
당시에는 프로파일러 신분이었지만 표창원 의원님을 포함한 정치인도 몇 분 강연하러 왔었죠...
그 중 제 기억 속에 묻혀있다가 문득 떠오른 강연 하나.
바로 전 문체부 장관이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의 흑막인
조윤선 전 장관의 강연이 떠올랐습니다.
조윤선 장관이 강연하려 왔을 때 학교 분위기는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고
뭐 그럭저럭 괜찮겠다 정도 였습니다.
선생님은 질문 좀 하라고 사전에 그 사람 조사하라고 했는데
저를 포함한 친구들은 그냥저냥 강연 들으러 갔었죠.
강연 내용은 여타 강연하고 같았습니다. 자기 자랑이죠.
자신이 이런 일을 했고, 이런 노력을 해서 이렇게 되었으니 너희들도 이렇게 하라 같은...
조윤선 장관은 그렇게 나쁜 이미지도 없었고,
강연 내용에 위안부 할머니를 다루는 만화를 일본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벌에 올렸다는 내용이 들어 있어서 오히려 우호적이었어요.
그 외에는 503이 영부인이 없으니까 자신이 그 역할을 대신 수행하면서 무슨 조각보로 주머니 만들어서 외국 귀빈에 전달했다는 정도가 기억에 남네요.
그리고 강연이 끝나고 질문 시간.
질문은 대개 강연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떻게 위안부 할머니를 알릴 생각을 했느냐. 앞으로 문화 산업이 어떻게 발전해야 겠느냐...
그러한 질문 가운데 저는 손을 번쩍 들고 지명 받아서 질문을 했습니다.
"지난번에 레진코믹스 사이트가 워닝 표시 뜨면서 문화 예술 탄압에 대해 말이 많다. 이러한 문화예술 탄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직도 저는 제가 왜 이 질문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배경은 물론 추측할만해요.
강연 얼마전에 레진코믹스가 워닝사이트로 연결되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레진코믹스는 메진이란 것이 밝혀지기 전이었고, 오히려 선정적인 만화를 주력으로 민다는 것 빼고는, 네이버-다음의 양각체제를 부술 대항마로 떠오를 만큼 여론도 우호적이었죠.
아니, 선정적인 만화를 무변별하게 게시한다는 문제점도 얼마지나지 않아, 성인 인증을 해야지 화면에 뜨도록 조치를 취해서 해결한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만화를 무료로 본다는 선입견을 과감히 깨면서, 다음이 시작한 만화 선유료 후무료 정책을 시스템적으로 잘 가다듬은 것은 칭찬할만한 것이었습니다. 이 시스템은 네이버 다음을 제외한 다른 웹툰 사이트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할 정도로 성공했고, 네이버 다음은 형식만 다를 뿐 근본적인 방법은 그대로 따라하고 있을 정도죠.
그런 상황에서 레진을 워닝으로 막는다? 문화계에 대한 탄압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노컷 캠페인이 벌어진지 몇 년 지나지 않은 시점이기도 하고....(이렇게나 해줬으면 잘이나 하지 븅신같은 메진...)
이런 상황을 알고 있는 가운데 전 문체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앞에 서 있어서 혈기에 내지른 것 같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얼굴이 후끈후끈 해져서 이불 몇번 걷어찼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 인간의 대답은 좀 묘했던 것 같습니다.
정확히는 기억 안 나는데....
"그건 내가 하지 않았다. 아마도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
보통 같으면 이건 문화예술 탄압으로 생각될 수 있으니 절대 있어선 안된다 같은 식으로 말을 해야 정상인 것 같은데... 뭐가 말을 돌리고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어투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이제 2년은 지난 일이라서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지만, 그래도 수 많은 강연 중에서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기억나는 강연은 몇 없는 것 같습니다.(표창원 의원 강연이라던지...)
그만큼 기시감이 들어서 일까요..
그 강연이 있은 후 1년 뒤 jtbc가 태블릿을 줍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열리고 박근혜가 탄핵되는 상황 속에서 503 치하의 문체부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는 사실이 보도되었습니다.
그 뉴스를 접한 친구들은 저와 잠시 지나가면서 무슨 예언끼라도 있는거 아니냐고 주고 받기도 했지만, 그리 크게 화제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더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어쩌면 이 강연은 제게 복선으로 주어진 사건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글은 시사게에 올릴까 생각해보왔지만, 역시 문화예술에 관련된 것이고, 메진 이야기도 껴있어서 애게에 올렸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삭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