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혔던 날보다 오랜 날들이 지나고 그 얼굴이 생각이 나지 않을 때쯤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 사람은 기억나는데 눈코 입이 어찌 생겼었나 그런 세세한 것들요. 난 그 눈코 입이 참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그런 건 기억이 나요. 그 느낌이요. 그냥, 밋밋했거든요. 하긴 보고 집에 들어오면 생각이 안 나긴 했어요, 그때도.
근데 오랜만에 그 사람 얼굴을 봤는데. 아니 그 사람 통 자기 얼굴은 걸어놓지 않으려는 사람인데 어째 그게 걸렸더라구요 거기. 그래서 봤는데 참. 참 어찌도 그대로던지. 내 보기에 그저 그랬던 맹숭맹숭한 얼굴이랑 대충 묶은 머리랑 자주 입었던 하얀 티셔츠 까지두요. 그 얼굴을 보니까 갑자기 목소리도 생각이 나잖아요. 생긴 것에 비해 너무 낮았던 음성과 또 그에 비해 깃털 같았던 웃음소리라든가. 그런 게 떠오르니까 다시 아, 못났어도 햇빛에 반사되는 붉은 갈색빛 눈동자는 참 좋아했었는데, 웃을 때 더 못생겨지긴 했어도 그래도 장난기 있게 빛나는 그 눈이랑 옆으로 아낌없이 벌어지던 입꼬리 뭐 그런 것들. 자기 전에 괜히 한번 더 생각하고 그랬는데. 우리 또 얘기하자 이런 인사들이요.
우리 마지막 날 그거 입었었거든요, 그 여자가. 그 하얀 티요. 우리 그 날 하루 종일 걸었어요. 그 사람은 우리 이거 하자, 저것도 보러 가자 신을 냈었지요. 좋아하는 게 참 많은 사람이었는데 사실 그 날 따라 이상하게 싫어하는 것도 많이 얘기하긴 했어요. 헤어질 때쯤 걸음이 불편해 보였었는데 신발이 불편했던 거 아닐까요? 그 사람 그런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나는 그녀와 한 번 더 얘기했어야 해요. 여기 비가 많이 와요. 거기도 많이 와요. 나는 그 사람 동네 일기부터 확인해요.
우리 그 날 하루 종일 걸었어요. 그 공원에 피었던 꽃들 다 지고 없어요. 남았던 향기 다 쓸려 가고 흙탕물만 남았어요. 나는 조금 더 생각해봐야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