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하게 요약해서 말하자면,
about. Bully Herrington
빌리의 생, 빌리의 자식, 빌리의 철학과 가치관, 관념, 신념,
빌리 인터뷰, 빌리를 이용한 각종 음악, 게임 그 외 컨텐츠, 기타등등.
빌리 헤링턴 (Billy Herrington) 에 대하여.
이리저리 정보를 수집해와서 하나로 만들어 보았어요.
아직 정보가 부족하지만 최대한 모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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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빌리 헤링턴
출생:1969년 7월 14일(40세) 롱아일랜드 섬 출생
직업:포르노 배우
생애
1969년 7월 14일에 뉴욕 주의 롱아일랜드 섬에서 태어났다. 헤링턴은 아버지에게 가라데를 배우며 성장하였고, 복싱이나 레슬링, 무술등에 관심을 보였다. 그 후, 24세에 뉴욕 도심으로 이사하면서 보디빌딩을 시작하였다.
빌리 헤링턴의 성인물 경력은 그의 친구가 헤링턴의 누드 사진을 Playgirl 잡지에 올리자고 제안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사진은 "Real Men of the Month" 컨테스트에서 우승하여 $500의 상금을 받게되었고, 이 잡지에서의 그의 출연은 유명한 사진작가 Jim French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곧 그는 All Worlds Video에서 하드코어 게이 포르노를 찍게 되었으며, 90년대말 유명한 게이 스타로 성장하게 되어 TV 프로그램 "Love Connection" 와 토크쇼 "Ricki Lake"에 출연하게 되었다. 그는 이 때, 게이 포르노가 자신의 양성애적 성향을 대처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양성애자이지만 주로 게이 포르노에 출연하였으며, 2001년 《에로틱 게이 비디오 어워드》에서 〈베스트 그룹 섹스상〉을 받았다. 그가 출연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HotMen CoolBoyz 등이 있다. 현재는 포르노 배우계에서 은퇴한 상태이며,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미국 내 게이클럽에서 스트립쇼를 한다고 알려져있다.
빌리 헤링턴의 첫째 아들은 2002년 가을에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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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헤링턴(Billy Herrington / 米倉 京太郎(요네쿠라 쿄타로), 1969년 - )은 왜국 동경 마라카와 구(真良河区) 신닛포리(新日暮里)에 거주하고 있는 건설업자 겸 조연 배우이다. 한때 19금 비디오에서 레슬러 및 계몽 사상가, 철학자, '숲의 요정'으로 활동하였으나, 현재는 자식을 낳고 나서부터 그 세계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어쨌든 그는 19금 세계(신닛포리의 세계)에서 오늘날까지도 유명한 철학을 전파함으로써 많은 이들을 신자로 만들려고 애쓰고 있다. 인터웹에서 동성애(=게이)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한 활동을 실시하고 있지만, 그가 실제로 양성애자인 사실은 며느리도 모른다. 어쨌든 이성이건 양성이건 간에 동성애자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활동에 애쓰는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민족, 성별, 취향, 문화 등의 차이에 대해 만인이 평등하게 살 수 있는 '모순 없는 세계'를 제창, 그 실현을 위해 분투하고 있는 박애주의자이기도 하다.
한때 유력한 경쟁자였던 게이 아베 타카카즈와 맡붙었지만, 오히려 인터웹에서 빌리 헤링턴의 인기나 평판이 더 좋았다. 아무래도 그의 미소에서 뿜어 나오는 사상 내지는 철학의 기운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왜놈들의 말을 믿지 않아도, 외관상 근육이 붙은 빌리 헤링턴이 낫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 해 12월 1일인 세계 에이즈의 날에 에이즈 방지를 호소하는 운동을 아베 타카카즈와 함께 계획하고 있다는 소문이 카더라 통신에 돌긴 하지만 거짓이고, 대신 매 해 12월 31일에 그를 기리는 축제인 쿠소미소카(糞晦日)가 싱글벙글 동화에서 유행하고 있다.
태생은 본래 쌀국 뉴욕 주의 숏 아일랜드였으나, 자라면서 왜국의 병법가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蔵)의 오륜서(五輪書)에 빠지고 나서부터 왜국에 대한 동경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왜국에 가기 위한 수단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였는데, 평소 몸이 좋은 것을 이용하여 19금 비디오의 세계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이 때 만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그의 동료(지만 극중에서는 당하는 사람)가 되었다.
어쨌거나 그 활동으로 돈을 많이 벌어들인 빌리 헤링턴은 동경에 정착하고 나서부터 수많은 문화 충격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이 현상을 왜곡(歪み)이라고 보고, 이를 없애기 위한 슬로건인 왜곡 없는(歪みねぇな) 자신을 만들기로 노력한다. 이에 동경 도청에 항의하여 새로운 햏정 구역을 만들어 내 달라고 요청하였고, 그의 웃음에서 나오는 알 수 없는 아우라의 영향으로 당시 도지사였던(현재까지도 도지사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 慎太郎)가 기존에 있던 23구에 새 구를 만들도록 추진하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새 구의 이름은 마라카와 구로 지정했는데, 뜻은 왜놈들한테 함부로 물어 봤다가는 맞아서 뒤질랜드로 갈 수 있으므로 주의하여야 한다. 마라카와 구는 햏정 구역 상 하위 구역이 오로지 신닛포리 하나로만 이루어져 있으며, 빌리 헤링턴은 신닛포리의 주민 1호가 되었다. 신닛포리에 새 거처를 틀기 시작한 빌리 헤링턴은 이를 발판 삼아서 자신의 '왜곡 없는' 사상을 널리 퍼트리기 위해 주변에 있는 어느 바(Bar)를 찾았는데, 술을 마시는 대신 바의 주인한테 그의 사상을 주입시켰다. 다음은 처음에 바 주인을 설득하려던 빌리 헤링턴의 대화 내용이다.
빌리 헤링턴: 最近どうなん? (최근 어떠한가?)바 주인: ・・・・・・・ (…….)
이후 그 바는 청소년에게는 상당히 유해한 이름의 '게이 바 오나하우스'(GAY♂BAR「オナハウス」)로 잘못 알려져 훗날 빌리 헤링턴의 철학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찾는 명승지로 발돋움하였으나, 정작 바 주인은 급성 림프종으로 2006년에 사망하였다(이는 사실이다).
이후 빌리 헤링턴은 예전에 19금 비디오를 찍을 때 알기 시작했던 동료들을 차례대로 부르기 시작하여, 점차 신닛포리의 인구를 늘이는 데 기여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신닛포리 자체는 빌리 헤링턴이 '왜곡 없는' 사상을 전파하기 위한 베이스 캠프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일단은 여성을 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인구가 급증하다 보니 남성들만의 고유의 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하였고, 그러다 보니 어느 새 금녀(禁女)의 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이후의 역사는 다음을 참조하기 바란다.
철학.
요정 철학(Fairy Philosophy)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빌리 헤링턴의 철학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항을 기본 이념으로 하고 있다.
이 철학의 이념은 빌리 헤링턴이 어릴 적 오륜서를 본 것과, 신닛포리에서 몇 년 동안 거주하면서 신닛포리 소재의 숲에서 반나체 상태로 도(道)를 터득한 것이 어우러져 생겨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당시 반나체인 빌리 헤링턴의 모습을 일컬어 오늘날까지 숲의 요정(Forest Fairy / 森の妖精)으로 불리고 있다.
한편 이 무렵의 신닛포리는 '왜국의 캘리포니아 주'로 취급 받을 정도로 개김교 원리주의자가 눈독을 들이는 지역으로, 동성애는 사회 필요악인 야쿠자보다도 못한 절대악으로 금기시되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그는 동성애 차별과 편견을 동반한 박해를 묵인하는 세상에 대한 의문을 끌어 안게 되었다. 이후 지인이 구석에서 찾아 낸 빌리 헤링턴의 자서전 초안에 따르면 '같은 성별을 가진 자를 서로 사랑한다... 무슨 문제일까?', '자비심이 깊은 인간이 소외된다는 건 어떤 것인가'라는 문장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연구자 및 철학자들은 이 때부터 사상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논하곤 한다.
차별적이면서 비생산적인 왜국의 교육 체계에 불만이 생긴 빌리 헤링턴은 구립(尻立) 신닛포리 대학(新日暮里大学 / Shin Nippori University)을 얼마 안 되는 돈(단돈 810 달러였다고 한다)으로 창립, 동성애자 차별 금지를 모토로 학생들을 모집하였다. 이 활동 중에 수많은 민족, 인종, 성별 등에 부당한 차별을 받은 동료가 민족을 이유로 남을 차별하는 현장을 목격했고, 기나긴 갈등 끝에 그는 '모든 차별과 편견은 남과의 차이점을 알지 못하는 형편 없는(だらしねぇ) 마음이 나온 일종의 왜곡에서 생기며, 훈계하는 자도 또 어쩔 수 없는(仕方ないねぇ) 자비로써 대치하여야 한다'라는 결론을 이끌어 내었다. 그 때까지 받아들일 수 없는 사상(포스트모더니즘, 다원주의, 고자라니 등등)은 회피 또는 배제하는 게 일반적이었던 철학계에, 이같은 박애주의적 사상이 출현한 것은 철학사 전체를 뒤흔드는 일대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에 자극을 받아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차별과 편견을 없애기 위해 뜻 있는 동지들과 함께 위 3개의 철학을 모토로, 재야 계몽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 철학은 TV 신닛포리에서 2008년 7월 14일 밤 11시 무렵에 방송된 '정열 대륙'라는 프로그램에서 요정 철학이라고 명명된 이후, 지금까지 신닛포리를 포함한 왜국 전역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그 후 신닛포리 소방서에서 일시적으로 활동하는 동안, 신닛포리를 뒤흔든 '4시 5분부터 45차례에 걸친' 연속 방화 사건에 휘말려 부하를 죽게 하였다. 또 이 사건의 용의자로 그의 친동생이 체포되자 충격을 받아 그 때부터 신의 존재에 의문을 폼게 되었다. '만약 신이라는 존재가 우리들한테 공평하게 웃어 주거나 사랑해 주는 존재라면, 왜 이런데도 왜곡 있는 세계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이 마음 속에서 나날이 커져, 종교관을 변화시켰다. 그는 오랜 연구와 육체 개조? 끝에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매듭짓고, '인류는 인류만이 구원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우리들의 선조는 수백만년전에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숲의 요정에 불과하다'라는 말을 했다(어찌 보면 리처드 도킨스가 바라는 반종교적인 행동과 들어 맞는다).
이러한 활동을 통하여 그는 매스 미디어를 혐오하게 되었다. 또 여러 망언을 흘려 보내고 스캔들로 구독 부수나 시청률을 올리려는 신문사와 방송사, 인터웹 등 기존의 미디어 전반을 해악으로 규탄하고, 이들에 대해 우리가 사는 사회는 왜곡되고 여러 편견으로 사람들의 눈이 필터링되어 왜곡 있는 세계가 되었다고 역설하였다.
또한 근대 문명과 근대 사회 자체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아직 인류가 누더기 한 조각만 걸친 상태에서 생활할 무렵, 사람들 사이에서는 아무 편견도 없었다. 편견은 문명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태어난 악의 부산물로, 오늘날의 인간의 생활이나 패션 센스, 여가 활동조차도 차별 대상이라고 비분강개하고 있다. 즉 몸에 걸치는 의복도, 사회적 계급도, 정체성도 모두 버리고 말 그대로 알몸이 되는 것이 낫다'라고 피력하였다. 이러한 사상의 변화 중 생겨난 것이 일대 걸작인 UCC 가치무치(울끈불끈) 팬티레슬링(ガチムチパンツレスリング)이다.
이 작품에는 빌리 헤링턴(사진 아래)과 동료인 캐나다 출신이자 다국적 기업인 츠요시 공업(ツヨシ工業)의 CEO 키요시 카즈야(木吉 カズヤ)?가 레슬링을 하면서 엉덩이를 때리다가 팬티를 서로 벗긴다고 하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어찌 보면 '이거 뭥미?'같은 행동으로, 처음 선을 보였을 당시 '돌아이가 만든 작품', '게이를 위한 AV'라는 등의 혹평을 받았다. 그러나 이 어처구니 없는 작품에 담겨진 예술성과 메시지성(몬드그린)을 지식인들이 읽어 내어 점차 높은 가치를 얻게 되었다. 혹자는 이 영상 자체도 철학으로 간주하여 가치무치주의(我知無知主義) 혹은 가치무치즘(ガチムチズ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최근에는 일반 레슬링 측에서 이미지를 훼손시켰다며 크게 반발하자, 겉으로 드러난 행위를 자숙하고 일상에서 차별 및 편견의 근절을 목적으로 교육적이자 사상적인 활동으로 전향하였다. 한편 그를 교주로 섬기는 모 종교 단체 신자가 빌리 헤링턴의 존재 및 활동을 널리 알리기 위해, 유튜브를 중심으로 그의 활동을 담은 영상과 그것을 패러디한 매드비디오를 인터웹에 대량으로 업로드했다. 이 영상들의 대부분은 무의미한 동영상들이지만, 그 중에 상상 그 이상으로 가치가 높은 작품들이 여럿 존재하여 언제 어디서나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헤링턴에 대한 철학 마인드와 사상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쌀나라의 대통령 빌 클린턴은 빌리 헤링턴의 팬이며, 빌리 헤링턴의 발자취는 그의 정치생활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빌리 클링턴(Billy Clington)으로 바꿀 정도로 빌리 헤링턴을 열렬하게 지지했지만 정작 빌리 헤링턴은 자신을 빌 클린턴이 3번이나 백악관에 초빙했으나 모두 거절했다. 그리고 그 순간 닭이 활개를 쳤다.
빌리 헤링턴이 신닛포리에 거주하는 동안, 당시 19금 비디오를 찍었을 때 만난 사람들을 신닛포리로 불러오기 시작하였다. 이 중 대다수는 왜국에서 귀화명을 쓰고 있다.
젊을 적에는 손재주가 뛰어나서 여러 가지 특허 상품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지금까지 신닛포리에 전해지는 것으로는 Ang? 부일구와 원Ang? 금침이 유명하며, 신닛포리를 찾는 관광객들의 성지순례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사업을 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닌텐도에 반기를 들어 만든 게임 회사 Hattendo와 보컬로이드를 기반으로 한 유가미네 에나(歪音 エナ)라는 음성 합성 소프트웨어이다. 하지만 마츠오카 슈조가 업화로이드(業火ロイド)를 내놓으면서 하락세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빚을 지게 된 빌리 헤링턴은 최근에 TV 드라마 등에 조연 배우로 데뷔하면서 빚을 갚고 나가고 있다고 전해진다.
출연 작품
드라마
야인시대 - 고자라니의 상대 역 (SBS, 2003)
애니메이션
게이온 - 기타 역 (TBS, 2010)
예능
설 특집 우리 결혼했어요 특별 출연 - 정형돈의 뒷바라지 역 (MBC, 2009)
분류하기 애매한 장르
오 마이 숄더 - 빌리 역 (Cam-Ang?, 1998 ~ 1999)
인터넷에서의 유행
일본의 동영상 사이트인 니코니코 동화나 대한민국의 커뮤니티 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를 중심으로 그가 출연한 포르노 비디오를 이용한 합성 게시물이 유행하였다. 특히 니코니코 동화에서는 빌리 헤링턴의 생일에 그를 소재로 한 유머 동영상들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러한 인기에 의해 니코니코 동화의 운영자 측에서는 빌리 헤링턴과 직접 접촉[1]하여, 2009년 밸런타인데이에 그는 일본을 방문하였다.[2] 그 이후 니코니코 동화에 본인이 찍은 동영상을 스스로 올리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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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계를 은퇴 후, 결혼했고,
그 아이는 참 잘 자라주었네요.
아들과 딸이라니 ` ` ... 음...
뭐... 자세한 정보는 오는대로 올려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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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헤링턴과의 인터뷰.
하지만 그런 더위를 날려 버릴 수 있는 열풍이 미국에서 왔다!
그것은 바로 니코니코동화로 친숙한 빌리 헤링턴 형님의 기적의 3번째 일본 방문.
거기서 우리 가젯 통신이 독점 인터뷰를 했다.
평소의 느긋한 가젯 통신의 텐션으로 임하려고 계획한 우리들 이였지만 직접 형을 만나고나니, 그 오라에 압도되어 어쩐지 인터뷰는 다양한 이야기로 발전하게 되었다.
1. 컴퓨터를 배웠던 학생시절
가젯기자(편의상 '가'라고 부름) : 일요일의 니코니코 공식 생방송(남혼생주입! 빌리 헤링턴의 삐뚤어지지 않은 프리미엄이벤트) 몹시 재미있었습니다! 또한 현지의 열기도 굉장했는데, 형으로서는 어떻게 느꼈습니까?
빌리 헤링턴(편의상 '형'이라고 부름 읭?) : 마치 집에 돌아간 것 같고, 가족으로 맞이할 수 있던 것 같았습니다.
가 : 형 자신도 즐겨 줄 수 있어 기쁩니다. 또한 격투가의 아오키 신야 선수, 나가시마 지엔오쓰 유이치로 선수와 만나셨더군요. 이분들은 어땠습니까?
형 : 타격계와 관절계의 서로 다른 파이터로, 두 사람 모두 훌륭한 선수였습니다. 반대로 두분은 어땠는지가 신경이 쓰입니다.
가 : 팬을 가족이라고 부를수 있어 기쁩니다만 가족에 대해서도 가르쳐 주세요.
형 : 가족하고 사촌과 함께 살고 있는 굉장한 대가족의 생활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살고 있는 여동생도 있습니다. 그녀에게 피그마를 주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엄격한 지역이라서 문제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가 : 어릴적은 어떤 아이였습니까?
형 :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를 지키거나 하고 있었습니다. SNS의 Facebook으로 알아보니 지금은 일본에서 공군에 소속했다고 합니다. 어릴적에는 근육질은 아니고 가는 몸이였습니다. 하지만 대학다닐 때부터 보디 빌딩으로 빌드업 했습니다.
가 : 대학 시절이라고 하면 컴퓨터를 전공하고 있었군요?
형 : 네네, 대학에서는 컴퓨터를 전공하고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국제 비즈니스도 전공하고 있기도 했고 흥미가 있던 심리학도 배우고 있었습니다.
가 : 그렇습니까?! 컴퓨터도 심리학도 둘 다 몸을 단련하지 않은 사람이 많은 곳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만, 보디 빌딩으로 단련한 형은 그렇게 말한 장소에서는 꽤 눈에 띄는 존재가 아닙니까? 그리고 형이라고 하면 모델이 유명했지만, 그 이전에 프로그래머로 일한 적이 있는지요?
형 : 확실히 빌드업 한 모습은 다른 학생과는 완전한 차이가 났지만, 공통의 화제(C++이나 COBOL등을 배우고 있었다)가 있었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일에 관해서지만, 재학중에도 모델로 일하고 있고 그 잡지가 서점에서도 줄지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깐 프로그래머로 일한 적은 없었다는 것이지요. 다만, 프로그래밍은 모델과도 공통되는 부분이 있고 그것은 모델을 할때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가 프로그래머로 일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손가락이 너무 굵어 져서 키보드를 칠 수 없게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ㅋㅋㅋㅋㅋㅋㅋ (웃음).
2. 그녀가 보낸 사진으로 모델 데뷔
가 : 아메리카 조크 왔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형의 손을 보면 반드시 거짓말이라고도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싱글벙글 동영상에서도 브레이크의 계기가 된 모델 시대의 이야기를 들려 주세요. 원래 모델의 세계에는 어떻게 들어갔습니까?
형 : 당시 사귀고 있던 여자 친구와 바다에 갔을 때 "매우 근사해!"라고 칭찬 받고 사진을 찍혔습니다. 거기다 그녀는 그 사진을 몰래 잡지 'PlayGirl!'에 응모했고, 제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콘테스트에 합격하여 보내진 상금 500$를 받았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이 결과는 제 자신에게 자신감을 주었지요.
가 : 상금은 어떤 일로 사용했는지 기억하고 있습니까?
형 : 그녀는 제가 제 사진을 마음대로 보냈던 것에 화가 났을꺼라고 생각한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었고 답례로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였습니다. 거기에 상금을 사용했지요.
가 : 오오~ 정말 상냥하군요. 그 덕분에 짐 프렌치(http://en.wikipedia.org/wiki/Jim_French_%28photographer%29)씨에게 눈에 띄여 잡지 '콜트'로 데뷔했다고 하지요? 그럼 거기서 질문입니다만, 짐 프렌치씨와 또 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는 디렉터인 치 치 라르(http://en.wikipedia.org/wiki/Chi_Chi_LaRue)감독, 이 두 분에 대해서도 가르쳐 주세요.
형 : 짐 프렌치는 굉장한 분입니다. 50년에 걸쳐 활약하고 있는 예술적으로 전설적인 존재입니다. 포스트 카드나 캘린더 제작도 했지만,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과 같은 예술적으로 훌륭한 사진을 찍는 세계에서도 톱 레벨의 인물이지요. 치치라르는 성인물 세계에서는 유명한 감독으로, 여러 가지 영향을 주었습니다. 또한 그녀와는 지금도 사이좋게 지내고 있지요.
가 : 감사합니다. 계속 해서 출연자에 대해서도 들려주세요. 니코니코동화에서는 '키요시 카즈야'라고 불리는 '대니 리씨'와 '비오란테'라고 불리는 '마크 울프씨'에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형 : 마크 울프는 비지니스맨으로서도 매우 우수한 남자입니다. 정말로 베리 나이스 가이입니다. 대니 리는 그렇습니다. 크레이지이지요ㅋㅋㅋ (웃음).
가 : 크레이지ㅋㅋㅋㅋ (웃음). 치 치 라르 감독에 관해서 조금 묻고 싶습니다만, 이전에 치 치 라르 감독과 일을 한 것으로 영상 제작에도 흥미가 생겼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 관해 지금도 변하지 않았습니까?
형 : 카메라로 찍히는 것만 생각했던 것이, 항상 어떻게 찍는가 라고 카메라를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없으면 모델의 세계에서 활약할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 차별이나 편견은 없었다.
가 : 감사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더욱 심도 있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만, 동성애에 다한 차별이나 편견에 대해 들려주세요. 미국에서는 그런 것에 대한 차별이나 편견이 있었습니까?
형 : 제가 살고 있던 미국은, 인종의 도가니와 같은 곳으로, 그런것들을 받아 들이는 건 지방풍습이기 때문에 전혀 차별적인 것은 없었습니다.
가 : 작품에 출연한 것으로, 이상한 눈으로 볼 수 있던 것도 없습니까?
형 : 타인이 어떤 식으로 보고 있을까도 관계 없습니다. 그저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살까?'가 중요하지요. 사람이 모이면 여러 가지 생각이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타인에게 지시를 하여 살아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살고 싶은대로 삽니다.
가 : 그러한 식으로 최초부터 생각하였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무엇인가 계기가 있었던 것입니까?
형 : 사람을 결정하는 것은 좋지 않던 너그럽던 있는 그대로를 받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가설이지만, 그러한 식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은 세계를 다양하게 여행해서 여러가지 문화를 알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중국 사람이 아프리카에 가서 문명화 되지 않았다고 해도 그건 실수이며, 유럽에서 올바른 것이 이집트에서 올바르다고 할 수 없지요.
가 : 여러가지 가치관을 접하는 것으로, 너그러운 기분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겠군요?
형 : 뉴욕에는 토양이 있습니다. 동성애자가 큰 사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자끼리, 남자끼리의 커플이 있고 당연한 일이지요. 그럼 전 반대로 묻고 싶은데, 사람을 그렇게 판단하다니 그런 권리를 누가 가지고 있는 겁니까?
가 : 음..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단지 일본에서는 거기까지 오픈 마인드 할수 없는 환경이고, 그에따라 고민하거나 하는 사람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들에게 어드바이스를 한다고 하면, 어떤 이야기를 말하시겠습니까?
형 : 지가 신도 아니면서 사람을 단정짓거나, 판단한다라.. 함부로 단정짓는건 염치없는 것입니다. '신이 그러한 식으로 했어' 라고 생각 하는 것은 있어도, 하여튼 사람은 신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판단이나 가치관, 취향 등은 신경쓰지 마세요. 그러한 편견을 가지는 사람은 그야말로 삐뚤어진 가치관을 가졌다고 전 생각합니다.
4. 스타일리쉬한 것도 보고 싶다.
가 : 근사하다! 음.. 왠지 무거운 이야기가 되어 미안합니다. 그럼 조금 화제를 바꿔서, 니코니코동화에 대한 감상을 부탁합니다.
형 : 조금 전에도 동영상(동방고명볶음밥 東方餡掛炒飯)을 즐겨 보고 있었습니다. 50명의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가 작품을 만들어 가는 것이란 내용도 즐거웠지만 그 전에 '그 만큼의 사람이 관련된' 이라고 하는 무브먼트 자체가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케이크를 만들었다고 해서 포인트는 맛보다도 만들어 준 것 자체가, 그 행위가 제일 소중하다는 것이지요.
가 : 형에게 그렇게 들을 수 있으면 모티베이션도 오르는군요. 작품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그럼 형은 어떤 작품을 좋아합니까? 만들면 좋습니까?
형 : '다크나이트'나 'X-MEN'과 같이 스타일리쉬로 쿨하고 다크인 물건이 좋습니다. 경박한 물건도 좋아하지만, 그러한 작품도 만들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면 그림자와 햇빛을 모티브로 해 보거나..
가 : 그럼 좋아하는것 관련으로 더욱 평범한 질문을 (웃음), 좋아하는 음식을 물어보아도 좋습니까?
형 : 피자입니다! 피자가 싫은 놈이 있나요? 그렇다고 할 정도로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번 이벤트를 위해 지금은 안먹고 있었습니다. 현재는 피자나 마요네즈를 사용한 요리를 먹을 수 없기 때문에 더욱 더 먹고 싶습니다다.
가 : 아~ 식사도 절제 되고 있다고 하지요? 그럼 트레이닝에 대해서도 들려주세요. 그러고 보면 오늘은, 전에 니코니코동화에서 형이 말한 것을 들어 아침 6시에 일어나고 스트레치를 해봤습니다. 평상시의 트레이닝을 물어 보고 싶습니다.
형 : 저는 오늘도 4시에 일어났습니다 (웃음). 트레이닝은 아침 5시에 일어나 LA에 있는 라니욘 캐넌의 언덕을 조깅하는걸로 일과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초록이 있고, 작은 새가 울고, 굉장히 기분이 좋습니다. 그 다음은 일하러 나가 끝나면 근육 트레이닝을 합니다. 근력 트레이닝은 쉬게 하는 것도 소중하기 때문에, 매일마다 다른 부위를 단련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평균 하면 1주일 동안 모든 부위를 단련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빌리 형님의 버릇을 발견! 생각할 때는 새끼손가락을 무는 버릇이!
5. 인생은 '형식이 없는 것'과 '모험을 무서워 하지 않는 것'
가 : (실은 이미 인터뷰 시간을 오버 하고 있습니다.) 질문이 날아가 버려 죄송합니다. 그러면 지금은 모델을 은퇴해서 건설업을 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만, 매일을 어떻게 보내시고 있습니까?
형 : 아침은 조깅을 하면서 개와 놀거나 일(건설업), 예를 들면 타일을 붙이거나 하는 것이라던가 말이지요.. 뭐, 빨리 끝날때도 있고 늦게 끝날때도 있습니다. 그 다음은 직장의 사람과 나가기도 하고, 물론 보디 빌딩 동료와 트레이닝에도 힘씁니다. 뭐, 매일을 똑같이는 보내지 않지만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여러가지 장소에서 여러가지 사람과 관련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 : 감사합니다. 시간을 큰 폭으로 오버해 버려 정말로 미안합니다. 마지막으로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메세지를!
형 : 니코니코의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다른 사람이나 자신을 단정 짓지 않는 것. 그리고 모험을 무서워 하지 않는 것. 찬스가 오게되면 신념을 가지고, 그리고 그 신념에 대해서 노력하는 것. 우물쭈물 하지 말고 인생을 기리어 노래하는 것.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트랜스젠더든 남자든 여자든 관계 없습니다. 즐기자구요! 그것이 인생이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삐뚤어지지 않은 인생을 삽시다!
가 : 오늘 전 형에게 이 시간을 통해서 '삐뚤어지지 않은 인생'을 받았습니다. 오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