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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세례명은 병신 새끼
게시물ID : gomin_136143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aWJna
추천 : 12
조회수 : 1046회
댓글수 : 61개
등록시간 : 2015/02/21 04:22:45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다가 고개를 홱 틀고 '헉!'하고 숨넘어 가는 소리를 낸다. 걸어가는 와중에 갑자기 자신의 목에 손을 대어 우악스럽게 조른다. 밥숟가락 앞에 두고 손을 씹는다.

내 버릇이다. 적어둔 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공포영화 본 적 있나?

극 중 인물들이 싸한 기운을 느끼고 놀라는 장면, 환각을 실제로 착각해 주먹을 휘두르는 장면, 몸에 씌인 귀신이 사람의 육신을 장난감처럼 멋대로 다루는 장면. 

그런 것들이 머릿 속에 연상된다면 난 내 상황을 제대로 전달한 것에 성공한 것이다.

잘 안 떠오른다면 난 실패한 것이다. 

아마 전달이 잘 되지 않았을 것이다.

매번 사람들이 내게 하는 말처럼, 난 병신이니까.

과거의 조각이 때때로 선명한 형태로 날 덮치는 걸 보면, 정말 병신이 맞는 것 같다.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랬다. 아직도 기억난다.
왕따 당하던 여자 아이가 있었다. 씻지 않아 땟국물로 얼룩져 까무잡잡한 피부에, 한국인 같지 않은 외모, 똑똑하지 않아 온갖 장난의 대상이 되곤 했던 아이. 

나는 육학년 선배들에게 내 머리를 우악스럽게 잡혀 그 아이와 강제로 입맞춤을 하게 됐다.

지금에 와서도 왜 내가 그렇게 당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아쉬운 건, 그 선배들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공책 종이를 잘게 찢어 입에 넣고 우물거린다. 그리고 혀를 잘 말고, 입술을 오므리고 숨을 뱉는다.  그러면 종이가 뒷통수에 맞는다.   

학교에서 유행하던 장난이었다. 단지 과녁은 나다. 나는 그 장난은 해선 안 된다. 내가 보복하고자 종이를 찢기만 해도 주변 아이들이 재빠르게 일러바친다. 

다른 아이들이 날 과녁으로 쓸 때는 말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자격이 주어지지 않은 사람이었다.
 


음악시간. 음악시간은 아이들이 즐거워한다. 특별히 넓은 음악실이 탁 트인 기분을 주거나, 필기가 없거나 해서가 절대 아니다. 번호순으로 앉는 것이 기분 좋은 것이다.   

참 희한하게도, 그 녀석들은 옛 친구들끼리 번호순으로 뭉쳤다. 

물론 난 예외다. 나는 친구가 없다.  

아이들에게 음악실이 즐거운 두 번째 이유는 교회에서나 쓸 법한 긴 의자가 만들어준다.  내 엉덩이는 이상하게도 컸다. 남자인데도. 눈꺼풀 주름을 진한 화장으로 가리려 무진 애를 쓰던 늙은 가정 과목 교사도 틈만 나면 만져댔다.   

음악 시간에 내 뒷자리 애들도 내 엉덩이를 좋아하긴 마찬가지였다.      

참 얄궃게도, 그 의자는 등받이와 앉는 쿠션을 제하곤 뚫려있어 그 부위가 보호되지 않는다. 아마 그 의자를 설계한 사람은 그 녀석들이랑 같은 부류일 것이다. 

엉덩이를 잘라 버리고 싶었다. 울고 싶었지만 참았다. 선생님이건 누구건 날 구해줬으면 싶었다. 그와 동시에 이 수치스러운 일을 들키지 않았으면 했다. 왜인지, 그 때의 나는 그것이 들키면 녀석들이 더욱 우쭐거리고, 나만 변태로 낙인 찍힐 것 같아 두려웠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말이 있다. 녀석들이 나를 만지면서 서로에게 속삭였던 말.  

"나 발정난 것 같아." 

"뭐?" 

"봐봐, (얘 엉덩이를) 만지면서 섰어. 섰어."  

그러고는 좋다고 킬킬댄다.   

들끓는 음욕에 환희하는 소리. 듣지 않으려 애썼지만 그럴 수록 선명히 들렸고, 잊으려할 수록 더 선명히 내 머릿 속에서 울렸다. 아마 나도 들으라고 한 소리였을 것이다. 굴욕에 타들어가는 내 속을 빤히 들여다보고, 예상하고 한 소리였을 것이다. 

나는 시간이 지나기만을 빌고 또 빌었을 뿐이다.  



한 대. 두 대. 병신 새끼야. 잘 좀 막아 봐.  

내가 주먹세례를 받으며 들어야했던 말이다. 

같은 반 녀석이 장래 유명한 복서가 되는 것이 꿈이라며 나를 틈나면 샌드백으로 썼다. 

거절할 수 없었다. 무서웠다.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 녀석 편은 있어도, 내 편은 없다. 나는 그 와중에도 한 명에게만 맞으면 된다는 것에 위안을 가졌다.  

끝나고 나면 두려움엔지, 고통엔지 다리가 후들거렸고, 맑은 눈물은 뺨을 타고 내려오다 콧물과 침에 섞여 곧 더럽게 됐다. 

몇 개월을 맞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나는 이 때 여름방학을 무척이나 기다렸었다는 것과, 여름방학이 끝나는 것을 두려워하며 개학식 전까지 태양이 터지게 해달라고 빈 것은 기억난다.    

좋은 기억인지 모르겠지만 맞기만 하진 않았다. 

한 번은 틈을 노려 한 방 때렸다. 

가슴에 맞았는데, 난 그 때 그 녀석의 표정이 생생히 기억난다.  

골목길을 지나가다, 갑자기 개가 컹컹 짖어 놀란 사람의 표정을 본 적이 있다. 

그것과 같았다. 황당함이 섞인 놀란 얼굴.

나는 그 날 목욕을 하지 않았다. 가족들 시선이 닿을 수 있는 곳에서 내 알몸을 보이긴 싫었다. 



그러고 얼마 뒤에도 저항한 적이 있었다. 

점심시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때도 맞다가 욱하고 북받쳐오르는 감정이 있어 무작정 달겨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녀석을 눕히고 목을 졸랐다. 최대한 세게. 무릎으로 가슴을 꾹 누르면서.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완벽한 자세였다. 녀석은 자기 목에 걸린 내 손을 떼어내려는데 안간힘을 썼었고, 얼굴 가죽도 피가 몰린 듯 시뻘개졌으니까. 

이러면 반드시 죽는다. 기쁨인지 해방감인지 모를 감정시 섞인 확신이 들었다.  

확신이 든 순간, 내 맘 한 구석에서 '살인은 안 된다.'라는 말이 피어올랐다.  녀석의 목을 쥔 손을 풀었다. 머리도 멍해졌다. 내 시야에 닿는 것들이 그저 텔레비전을 보는 것처럼 어떤 유리벽 너머에 비춰지는 비실재적인 상으로 보일 뿐이었다.  

그 한 순간, 나는 뒤로 떠다밀렸고 곧 숨이 막혀왔다. 녀석이 내 목을 졸랐다. 그제야 제 정신이 든 나는 다시 녀석의 목을 졸랐다. 살고 싶었다. 다시 목을 조르면 놓을 거라 생각했다.   

그 때 내 손이 갑자기 풀어지고, 녀석의 몸이 천장으로 붕 뜨는 듯 했다.   

밥 먹고 돌아온 아이 중 몇 명이 말린 것이다. 

 내 목을 조르던 아이가 눈물 줄줄 흘리며 성난 소리를 냈다. 

"죽여버릴 거야! 죽여버릴 거야!"  

그러면서 자기 필통을 필사적으로 뒤적인다. 그걸 말리는 모습을 나는 지켜만 봤다. 

 나는 말린 아이들의 얼굴을 봤을 때 내심 기뻤다. 내 기억엔 그 애들은 날 괴롭힌 애들이 아니었다. 평소엔 똑같이 겁이 나 못 말렸을 뿐인, 착한 아이였구나. 안도감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녀석이 진정되자, 아이들은 내게 녀석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이럴 땐 그게 옳은 거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 때 나는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몰랐다. 그 아이들의 말이 옳지 않다는 건 대학교에 진학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으니까.  나는 얼결에 사과했다.    

그러자 녀석은 언제 그랬냐는 듯 웃어보이면서 드라마에 나오는 선배가 후배에게 수고했노라며 하는 것처럼 내 어깨를 탁탁 쳤다.   

그 이후엔 전과 다름 없이 계속 맞게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봉사활동을 필사적으로 했던 걸로 기억한다. 고교시절도 녀석들과 함께 보내고 싶진 않았다. 정말 나는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병신이라 공부를 못 했기 때문에 그게 내가 쥘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다행히 시에서 좀 이름 있는 고등학교에 갈 수 있었다.  원래라면 나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 입학생이 적어 내신 커트라인을 낮췄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커트라인이 내 점수와 똑같은 수치로 낮춰졌다. 

그 녀석들과 멀어진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그런 비참한 꼴은 없었다.


 
그러다가 나는 고3이 되었을 무렵. 날 샌드백으로 쓰던 녀석과 만났다. 

정말 우연이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나는 당황과 두려움에 아무 생각도, 행동도 하지 못 했다. 그런데 녀석의 반응은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었다. 

반가움. 

녀석이 내게 가진 감정은 반가움이었다. 

옛 죽마고우를 오랜 만에 만난 듯한 그 태도.   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지금도 모르겠다. 난 얼떨떨해져 멍청히 서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곧 나도 녀석의 말에 화답해주었다. 옛 선생들의 억양과 목소리를 흉내내주면서-기묘하게도 나는 국어 담당의 여선생의 목소리를 완벽히 흉내냈었다!- 즐겁게 얘기했고, 즐거운 기분으로 헤어졌었다. 

집에 돌아 온 나는 내 방에서 내 목을 힘줘 졸랐다. 



뇌리 깊숙한 곳에서 잠들 거라 생각했던 그 장면들이 시시각각 나를 덮친다. 나는 피하려고 애쓴다. 기억이 나를 덮치는 순간에 내가 내 기억을 부정하며 소리지른다. 

나는 그렇게 까만 밤 하얗게 지새웠다.

어머니껜 늘 잠꼬대라고 한다.  

차라리 잠꼬대였으면 한다. 자면서 그러는 사람은 그래도 흔하고, 이해받을 수 있으니까. 정작 난 내 잠꼬대를 모른다. 자고 일어난 직후의 이부자리를 보면 얌전히 자는 쪽은 아니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어머니는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아무 말 없이 스마트폰을 문지른다. 

서툰 타자에도 검색은 잘 됐다.

그러곤 나를 불러 검색한 것을 보여준다. 

어머니가 검색한 것은 군 내 가혹행위 관련 기사다. 부부싸움을 해도 욕을 절대 입에 올리지 않던 어머니는 이 때 만큼은 목청 높여 욕을 하신다.

정부를 욕하고, 장군들을 욕하고, 간부들을 욕한다.

그러면 나는 첫 자대 얘기를 맞장구도 혼잣말도 아닌 음색으로 읊으며 담배를 피우러 대문을 열고 나간다.

임병장, 윤일병 사건이 보도된 뒤로 생긴 어머니의 버릇이자, 이 집의 문화다.

나는 이런 데도 안 죽는다. 아들은 처음부터 정신병이 있던 게 아니었고, 군대에서 가혹행위를 당해 얻어 온 것으로 자기 스스로를 세뇌한다는 건 감이 왔다.

다 알텐데....  

정말 죄송스럽지만 나로선 별 도리가 없었다.



그 불효자인, 병신 새끼가 이번 2학기에 복학한다.  
 
두렵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가길 원하신다. 내가 정상인임을 증명하는 마지막 기회로 여기시는 것 같다.

내게 씌인 귀신이 대학가기 전에 없어졌으면 한다. 

내게 학사모를 씌워주며 웃는 모습도 보고 싶다.

그러나 그 이후를 생각하면 머릿 속 상상의 영상이 픽 꺼진다. 

겁이 난다. 

녀석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 만큼 성공하는 건 이제 바라지도 않는다. 

적어도 어머니 돌볼 수 있을 만큼만 벌 수 있다면 족할 것이다.

허나 이게 내 망상이란 건 내가 잘 안다.  

나는 내 아호가 병신이라 생각한다. 이름보다 그렇게 불린 게 많으니까.

정말 맞는 말이야.

내가 아무런 재능도 없는 텅 빈 쓰레기란 건 내가 잘 알아. 



이제 그만 생각하자. 오늘은 이만 자자. 피곤해. 



아무래도 이게 나란 인간이 사는 법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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