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의 기준이 바뀌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오늘부터 새로운 미의 기준은 바로 나다. 아침에 일어나 습관처럼 컴퓨터 앞에 앉았을 때, 나는 무언가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알 수 없었는데, 컴퓨터를 켜고 SNS에 접속하니 달라진 점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친구 신청이 무려 999개나 와 있었다. 최대로 표시되는 개수가 999개인 것이지 사실상 더 많은 사람이 친구를 신청한 것으로 봐야했다. 나는 사람들이 더는 친구신청을 할 수 없도록 설정한 뒤 SNS와 연계되어있는 메신저를 열었다. 메신저 또한 수많은 사람으로부터 온 메시지로 가득했다. 메시지는 나중에 읽기로 하고 이번에는 타임라인을 살폈다. 타임라인에는 나의 얼굴이 얼마나 완벽한지, 본인들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증명하는 글들로 빼곡했다. 나는 복잡한 마음을 다잡고 나의 계정이 맞는지, 오류가 난 것은 아닌지 꼼꼼하게 살피고 또 살폈다. 갑자기 어떻게 된 일일까. 나는 컴퓨터를 끄고, 모니터에 비친 내 얼굴을 무연히 들여다보았다. 짧게 깎은 머리에는 약간의 피를 머금은 흰 밴드가 붙어 있고, 눈가에는 아직 떼어내지 못한 눈곱과 엉켜있다. 피지로 들어찬 납작한 코와 바싹 마른 입술, 얼굴에 가득 번진 여드름을 보면서 나는 도저히 지금의 상황이 납득가지 않았다. 이게 미의 기준이라니.
나는 태어날 때부터 죄를 달고 태어났다. 못생긴 것도 이곳에서는 아주 큰 죄였다. 어제만 해도 나는 못생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골목을 지나다 머리에 돌을 맞았다. 아직도 역겹다고 소리 지르는 술주정뱅이의 모습이 뇌리에 선명한데 갑자기 내 얼굴이 완벽하다는 사람들에게 나는 무어라 말해야 할까. 이제 원인 모를 멸시와 분노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외모로 노력을 저평가받지 않아도 될까? 모든 것이 현실과 동떨어진 분위기를 풍겼다. 꿈을 꾸고 있거나 돌을 맞은 후유증으로 미쳐버린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나는 꿈이 아니거나 미치지 않았을 경우를 대비해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나는 흔들리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열차 내부 곳곳에 붙은 광고판으로 자연스레 시선이 옮겨붙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못생긴 얼굴이 특기였던 개그맨 아무개가 그럴듯한 정장을 걸친 채 미소 짓고 있었다. 광고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성형외과 광고였다. 나는 이따금 사람들에게서 어떠한 시선을 느꼈다. 그것은 금방이라도 내게 상냥하게 말을 걸어올 것 같은 따듯한 시선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따듯한 시선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늘 부정적인 관심을 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에 도착해 내리면서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지하철 안에 서있는 수십 개의 눈이 나를 향해 있었다. 등 뒤로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나는 걸음의 속도를 높였다. 눈들도 나를 따라 내린 뒤 빠르게 걸었다. 역에서 회사까지는 걸어서 10분도 채 되지 않는데, 그 짧은 거리를 걷는 동안 눈의 숫자는 점차 불어났다. 수군거리는 사람들, 나를 부르는 것 같은 외침, 내게 손을 뻗는 낯선 이들. 그들은 어딘가 미쳐있는 것 같았다. 급기야 회사에 도착하기 5분 전에는 그들을 따돌리기 위해 미친 듯이 내달려야했다.
“이대리, 왜 이렇게 숨을 헉헉거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사무실로 들어서자마자 구리가 내게 건넨 첫마디였다. 구리는 부장님의 구린 성격과 개구리처럼 툭 튀어 나온 눈 때문에 자연스레 만들어진 사원들만의 비밀 호칭이었다. 평소라면 “못생겨가지고.”라는 말을 농담처럼 덧붙였을 텐데 구리는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저번에 제출한 A디자인 보고서, 제법이던데.”
나는 구리에게 제출한 수많은 보고서 중, A디자인 보고서를 떠올렸다.
“아, 그 보고서... 거의 마무리 되어가고 있습니다.”
나의 대답에 그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리야, 아무튼 그대로 진행해도 문제없겠어. 그나저나 오늘따라 더 멋있어 보이는 건 내 착각인가?”
나는 들어본 적 없는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멋쩍게 웃었다. 그가 자리로 돌아간 뒤 나는 서둘러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보고서’라는 이름을 가진 파일을 열자 A디자인 수정안들이 줄지어 펼쳐졌다. 나는 수정안들의 개수를 천천히 헤아렸다. 하나, 둘, 셋, 넷 그리고 다섯. 벌써 다섯 번째 수정한 보고서였다. 몇 번이나 수정해오라던 보고서였는데 이제와 그대로 진행해도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이유가 뭘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 미련 없이 폴더를 닫았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 인쇄기가 작동하는 소리, 직원들끼리 서류를 주고받으며 나누는 대화, 규칙적으로 울리는 전화벨 소리. 지극히도 평범한 일상 속 소음들이 내 불규칙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자리를 정돈하고 막 업무에 집중하려는 그때, 끼익. 하고 사무실 문이 열리며 김대리가 들어왔다. 나는 사무실 벽면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9시 20분이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는 어설픈 웃음을 흘린 뒤 고개를 숙였다.
“김대리, 20분이나 지각하고서 웃음이 나와?”
나는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구리를 보았다. 그의 시선은 내가 아닌 김대리를 향해있었다. 김대리는 당황한 얼굴로 부장님을 보다 황급히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김대리와 나는 같은 잘못을 해도 다른 대우를 받았다. 함께 지적받아야 할 상황에서 그는 늘 잘 빠져나갔고, 홀로 남겨진 나는 사무실 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면박을 당해야했다. 김대리는 180이 넘는 키와 날렵한 콧날, 커다랗고 깊은 눈동자를 가져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샀다. 뿐만 아니라 외향적인 성격으로 분위기를 띄울 줄 알았고, 다른 직원들을 잘 챙겨주어 그의 이름 앞에 매너남이나 볼매남 같은 수식어가 붙곤 했다. 나도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가 하면 관심이 되고 내가 하면 오지랖이 되었다. 그가 하는 작은 실수 정도는 적당히 넘어가 주는 것이 이곳의 암묵적인 흐름이었다. 그랬던 그가 구리에게 지적을 받고, 직원들의 눈초리를 피해 구석으로 숨어들었다. 오늘부로 그는 비호감인 것이다. 미의 기준이 나의 얼굴로 바뀌었다는 것은 기존의 호감형 얼굴이 비호감이 되었다는 것을 뜻했다. 나는 오묘한 기분에 몸을 살짝 떨었다.
일을 하는 동안 책상에 과자와 음료수가 쌓였다. 그것들은 작은 포스트잇을 꼬리처럼 달고 내게 살랑이듯 말을 걸어왔다. 포스트잇은 대부분 친해지자는 내용을 담고 있었고, 조금 더 노골적인 내용이 담긴 것도 있었다. 모두 여자 사원들이 두고 간 것들이었다. 예전에는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었는데... 나는 그것들을 내려다보며 입맛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대리.”
함께 점심을 먹자는 사람들을 모두 보내고 사무실에 홀로 앉아 있는 나를 부른 것은 구리였다.
“오늘 점심은 나랑 먹자. 할 이야기도 있고.”
입맛이 없어 대충 편의점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 하려고 했으나 나는 구리의 말에 반대표를 던질 자격이 없었다. 구리는 회사 근처에 위치한 중국집에 자리를 잡았다. 저렴한 중국집이 아닌 제법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갖춘 중국집이었다. 바닥은 검은색 대리석이 깔려있고, 벽은 빨간색으로 포인트를 넣어 어두운 분위기를 밝혔다. 또 일반적인 직사각형 모양의 식탁이 아닌 둥근 식탁이 가게 내부에 듬성듬성 위치해있었다. 굵고 기다란 실이 촘촘하게 식탁을 둘러싸 비밀스러운 공간을 만들어냈고 주황색 불빛이 가게를 은은하게 물들였다.
“김대리 말야. 난 걔만 보면 아주 승질이나. 그래도 사람처럼은 생겨야 같이 일도하고 밥도 먹고 그러지. 걔랑은 이런 곳도 못 와. 이대리나 되니까 이런 곳에 데리고 와도 내가 부끄럽지가 않지.”
구리가 밑반찬으로 나온 단무지를 우적우적 씹으며 내뱉은 말이었다.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는 만족스러웠는지 흡족한 표정으로 웃었다. 김대리의 보고서를 뺑뺑이 돌리고 있다는 구리의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더 이상 그의 말에 장단을 맞추지 않았다. 구리는 자장면 2개와 탕수육을 시켰고, 나는 하얀 짬뽕을 주문했다. 구리에게 왜 자장면을 두 그릇이나 시켰는지 물으려는데 그가 내 등 뒤로 손을 흔들었다. 또각또각 대리석을 찍어 누르는 구두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한 여자가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반듯하게 다려 반질거리는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그녀가 식탁을 둘러싼 실을 걷어내고 부장님과 내게 인사를 했다. 못생겼다. 그녀의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스친 생각이었다. 커다란 눈에 짙게 진 쌍꺼풀 하며, 하얀 피부며, 반듯한 콧날까지 어디하나 잘난 곳이 없는 여자였다. 물론 미의 기준이 바뀌기 전이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이제는 내 안목도 서서히 바뀐 미의 기준에 적응해가는 모양이었다.
“이대리, 여기는 마케팅부에서 일하는 우연희씨야. 연희씨 여기는 우리 부서 이현승 대리.”
구리의 소개에 그녀와 나는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녀는 우리가 구면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녀가 기억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프로젝트에 내가 꼭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제안에 쉽사리 응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말이 내게는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사자가 채식을 하고, 물고기가 육지를 걷는 어처구니없는 세상의 말처럼 들렸다. 나는 그녀에게 집에 가서 고민해보겠다 말한 뒤 점심식사를 마무리했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해 씻지도 않고 침대 위로 널브러졌다. 눈을 감고 우연희가 내게 한 말을 천천히 되새겼다. 정말 내가 해도 되는 일일까. 생각할수록 불안했다가 기대되었다가 의욕이 꺾였다가 설렜다가 수십 번씩 마음이 바뀌었다.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실시간 검색어에 뜬 ‘도주남’을 누르니 수많은 사람들을 피해 달아나는 내 모습이 담긴 영상이 끝없이 펼쳐졌다. 나는 그 영상을 반복해서 재생했다. 성형을 한 것도 아닌데 아무것도 변한 것 없는 내 얼굴이 잘생겨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나는 서랍에서 작은 손거울을 꺼냈다. 손거울에 묻은 세월의 흔적을 가볍게 털어낸 뒤 얼굴을 비추었다. 저절로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눈동자를 이토록 오래 본 적이 있었나? 나는 지난날을 떠올리려다 이내 그만두었다. 거울을 내려놓고 나는 다시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이미 하루를 보냈지만 여전히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나는 30분 간격으로 알림을 맞추었다. 오늘 밤은 잠들지 않겠다는 의지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나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중국집에서 저장한 우연희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 * *
며칠 뒤 나는 우연희와 함께 회사가 아닌 스튜디오로 출근을 했다. 스튜디오에는 온갖 촬영도구와 소품들이 즐비해있었고 사람들은 저마다 분주한 발걸음으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떨리네요...”
청심환으로도 다잡지 못한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나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회사의 이미지가 달린 광고 촬영이니 메이크업부터 자세, 표정 하나하나 코치해줄 담당자가 붙을 거예요.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니까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그녀가 잔잔하게 건넨 말이 제법 위로가 되었다. 이 세상에 나보다 잘생긴 사람은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잘생긴 사람이 광고하는 제품. 화제성만큼은 확실히 잡고 가는 것이었다. 얼굴은 못생겼지만 우연희 주위에는 항상 사람이 있었다. 그녀의 주위로 모여드는 사람들은 그녀의 못생긴 얼굴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행동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외모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느껴온 나였다. 그런데 외모를 제하고도 저렇게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우연희가 나는 새삼 다른 세상 사람처럼 느껴졌다. 광고촬영은 그녀의 말대로 어려울 것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영리한 여자였다. 자신의 단점을 보완할 줄 알았고, 자신의 장점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그런 여자였다. 사람들이 그녀에게 살갑게 대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녀와 웬만하면 가까워지고 싶지 않았다. 그녀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답답해서 괴로웠다. 이 답답함을 해소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스트레스 또한 상당했다. 촬영이 끝나고 나는 스텝들에게 인사를 했다. 우연희가 내게 다가왔지만 나는 그녀를 피해 뒤풀이도 마다하고 도망치듯 스튜디오를 빠져나왔다.
모두의 예상처럼 광고는 대박이 났다. 매출은 70% 이상 급등 했고 많은 사람들이 나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몰두해 있었다. 회사는 내게 상장과 장려금을 주었다. 회사의 명성을 높였다는 명목으로 주어진 것들이었다. 연예인들처럼 큰 금액은 아니지만 통장으로 광고료도 들어왔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내게 관심을 쏟는 와중에 자꾸만 내게 감사 인사를 하려는 우연희 때문에 나는 어떤 일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차라리 그녀와 밥이나 한 끼 먹고 연결고리를 끊는 편이 앞으로도 좋을 것 같았다.
몇 주 뒤 나는 그녀와 처음 만난 중국집에서 약속을 잡았다. 어쨌거나 그녀 덕분에 광고 촬영을 하고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으니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녀 역시 자신의 프로젝트에 성공할 수 있게 해준 내게 순수한 마음으로 보답을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아 만난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순수함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른 여자들은 나와 밥 한 번 먹으려 온갖 공을 들이는데 우연희는 너무나 담담한 태도였다. 나는 그녀와 밥을 먹고 자연스레 술집으로 향했다. 그녀와 잠자리를 가지면 어떤 여자와도 쉽게 잘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녀는 내게 자신을 쉽게 내주었다. 술의 힘인지 나의 힘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의 가슴에 입을 맞추고 몸을 섞을 때마다 그녀에게서 느꼈던 불편함이 전부는 아니더라도 조금이나마 해소되는 것 같았다. 우연희와의 잠자리 이후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회사에서 상사의 비위를 맞추며 일을 하지 않아도 사진 한 장이면 쉽게 돈을 벌었다. 돈은 쉽게 벌리는 만큼 쉽게 쓰였다. 나는 매일같이 클럽에 드나들었다. 그곳에서 나는 마치 왕이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많은 남자들이 여자와 말 한 번 섞어보려 애를 쓰는 곳에서 나는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여자들과 함께 있을 수 있었다. 외모는 돈을 부르고 돈은 여자를 부르고 여자는 나의 자존감을 불렀다. 단지 미의 기준만 바뀌었을 뿐인데 직장이 바뀌고, 시선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고...나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나는 클럽에서 나와 대리 기사를 불렀다. 잠시 뒤 급하게 뛰어온 대리 기사는 볼매남 김대리였다. 그의 얼굴을 보니 한동안 잊고 지냈던 못생긴 이현승의 삶이 떠올랐다. 김대리는 나를 보고 놀랐는지 멍한 표정을 했다. 그는 안본 사이 많이 수척해진 것 같았다. 그 역시 못생겼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많이 시달렸겠지. 나는 김대리와 근처 술집으로 들어가 술과 안주를 시켰다.
"대리님 이거 다 마실 수 있죠?"
"대리는 무슨...형이라고 불러."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안주 없이 술을 꼴깍였다. 따라주는 술을 곧장 받아먹던 김대리가 취했는지 늘어지는 말투로 말했다.
"이현승이~ 너어무 부럽다. 진짜로."
나는 김대리의 말에 대답 대신 술잔에 술을 따랐다.
"누구는 못생겼다고 무시당하고 사는데 넌 잘생겨서 돈도 벌고 여자도 만나고 진짜 부럽다구요."
그는 술잔에 담긴 술을 단숨에 삼켰다. 술잔을 내려놓는 그의 표정이 싸늘했다.
" 나 그냥 콱 어디 가서 죽어버릴까. 다시 태어날 수 있으면...네 발끝만큼이라도 비슷하게 태어 날 수 있으면 나 그냥 죽을라구. 괜찮은 생각이지?"
못생긴 게 비관적이기까지 하니 더 못나보였다. 미의 기준이 바뀌기 전의 내가 저런 모습이었을까? 김대리가 술상에 쓰러지듯 엎드렸다. 나는 내가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간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불편한 마음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가 지금 느끼고 있을 고통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말끔한 정신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생각이겠지만 새벽까지 목구멍으로 퍼붓듯 마신 술은 나를 한없이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나는 다시 대리 기사를 불러 술에 취해 반쯤 의식을 잃은 김대리와 함께 우리 집으로 향했다.
김대리를 침대에 뉘어 놓고 창밖을 보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못생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시당했던 나의 삶은 이제 끝이 났다. 별다른 행위를 하지 않아도, 존재만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는 삶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김대리를 만난 뒤로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나는 바람에 펄럭이는 커튼을 바라보며 이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을 정의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묘하고도 불편한 이 감정은 나를 자꾸만 생각의 늪에서 서성이게 했다. 어딘가 불편한 행복을 끌어안고 나는 고통에 신음했다. 그러다 문득 이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떠올랐다. 나는 휘청거리는 발걸음으로 핸드폰을 찾아 헤맸다.
나는 늦은 새벽의 부름에도 나와 준 우연희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모텔로 들어가 그녀와 잠을 잤다. 예상과는 달리 어느 정도 해소되어야 할 불편함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원인 모를 분노만 피어올랐다.
"이게 아닌데..."
나는 옷을 여미는 우연희에게 다가가 그녀의 뺨을 힘껏 후려쳤다. 그녀의 뺨에 내 손바닥이 착 소리를 내며 감길 때마다 몸 안에서 무언가 터져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를 때릴 때마다 그녀의 얼굴이 마구 일그러졌고 그녀의 목에서는 신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못생긴 그녀에게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나는 발로 그녀의 배를 찬 후 넘어진 그녀를 한껏 내려다보았다.
"못생긴 주제에 당당하게 굴면 안 되는 거야. 행복한 표정을 지어서도, 남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것도 용서할 수 없어. 네가 그렇게 당연한 일을 당연하다는 듯이 해버리면 나는..."
나는 그녀를 밟고 또 밟았다. 마침내 고통에 몸부림치던 우연희가 움직임을 멈추고 나를 짓눌렀던 불편함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우연희는 정신을 잃었거나...목숨을 잃었거나...둘 중에 하나겠지만 그런 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있는 힘껏 몸을 떨었다. 그녀의 당당함을 짓밟고서야 나는 내가 느꼈던 감정을 정의할 수 있었다. 억울함. 나는 그녀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뿌리 깊은 억울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 역시 못생겼다는 이유로 온갖 멸시를 받아야 마땅했다. 둔탁한 소리에 이상함을 느낀 모텔 직원이 방문을 두드렸다. 나는 순순히 문을 열었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우연희를 본 직원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곧장 경찰을 불렀다. 출동한 경찰은 내게 그녀가 저지경이 된 이유를 물었다. 못생겼기 때문에 때렸다고 대답하자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본 경찰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만 가보세요. 욕보셨습니다."
나는 경찰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 반대편 차선에서 마주 오는 구급차가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사이렌 소리를 내며 달려가는 구급차의 뒷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나는 일부러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내렸다. 막연히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경찰을 떠나보내고 한걸음씩 내딛는데 머리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저 이슬비가 내리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한 나를 비웃듯이 하늘은 거친 비를 쏟아냈다. 미의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에 받는 대우가 이전의 내 상처를 모두 없던 것으로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억울했고 그 억울함을 표출할 분출구가 필요했다. 그 분출구가 우연희가 되어버린 점에 대해서는 딱히 할말이 없다. 못생긴 그녀에게 합당한 대우였다. 나는 그보다 더 지독하게 인격을 살해당해왔는데 그 누가 내게 잘잘못을 따질 수 있을까? 그동안 나는 내 몸에 비해서 너무나도 작은 우산을 쓰고 살았다. 그래서 내 몸을 적시는 비를 피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물건들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함께 쓰고 갈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우산을 갖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경로로 커다란 우산을 갖게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비로소 내게도 비를 피할 수 있는 자격이, 커다란 우산을 쓸 수 있는 권한이 생겼다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흠뻑 젖었지만 정신만은 건조한 상태로 도어락을 열었다. 젖은 손으로 비밀번호를 꾹꾹 누른 뒤 문을 당기자 한쪽만 뒤집어진 채 놓여있는 김대리의 신발이 보였다. 나는 고개를 들어 눈으로 김대리를 찾았다. 침대에 누워서 자고 있어야할 김대리가 현관을 등진 채 창문에 걸터앉아 있었다.
"형...? 위험하게 거기 앉아서 뭐해..."
내가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빗소리에 묻혀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는지 반응이 없는 그에게 나는 다시 한번 창문에 걸터앉아 있는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한참 뒤에 그가 입을 열었다.
"힘들다."
그의 몸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죽고 싶다고 했던 말이 진심이었던 걸까? 죽는 건 크게 상관없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죽는 건 내게 무척 귀찮은 일이었다.
"형, 위험하니까 들어와서 얘기해요."
커튼이 펄럭임과 동시에 천둥번개가 밤하늘을 일순간 밝혔다. 나는 어떻게 하면 그를 집안으로 무사히 들일 수 있을까 고민했으나 마땅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늦기 전에 119에 신고라도 해야 하나 싶은 순간, 화장실에서 들려오는 물 내리는 소리가 적막을 뒤흔들었다. 곧이어 화장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눈을 비비며 나왔다. 누군가는 다름 아닌 김대리였다.
"형....형이 왜 거기에서 나와?"
"아...술을 너무 많이 마셨더니 속이 너무 안 좋다...넌 누구랑 그렇게 말을..."
그와 나의 시선이 동시에 창문을 향했다. 창문에 걸터앉은 정체모를 누군가가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으...으악!"
그것의 얼굴을 확인한 김대리가 소리를 지르며 집밖으로 뛰쳐나갔다. 창문에 앉아 나를 보고 있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
"이게...어떻게 된..."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창문에 걸터앉은 나가 나를 터질 듯한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다른 사람은 날 사랑하지 않을 수 있어. 내가 강요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나는 나한테 만이라도 사랑받고 싶었을 뿐이야. 그래서 미의 기준을 바꿔달라고 평생을 빌었지. 정말로 이루어질 줄은 몰랐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 결과가 날 유일하게 생각했던 여자의 죽음이라니..."
나는 창가에 앉아있는 내가 하는 말에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우연희가 날?"
"그녀가 너에게 관심을 갖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쉽게 내어준 이유가 뭐였다고 생각해? 그녀는 미의 기준이 바뀌기 전에도 널 좋아하고 있었어. 너에게서 느껴지는 우울함을 자신이 해결해줄 수 있다고 믿었겠지. 그녀 역시 상처가 많았으니까 처음에는 연민으로 시작된 마음이었을 거야."
"거짓말 하지 마. 난 미의 기준이 바뀌기 전에는 그녀를 몰랐어. 못생긴 날 좋아할 이유가 없잖아!!"
"넌 늘 못생겼다는 말을 낙인처럼 마음에 새겨두고 끊임없이 자신을 저주했잖아. 그래서 못생겼어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우연희가 마음에 들지 않았겠지. 그녀는 미의 기준이 바뀌기 전에도 후에도 늘 너의 마음을 두드렸어. 네가 스스로를 자책하고 저주하느라 그녀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야. "
"그래서 이제와 어떡하라고. 내가 당한 수모를 너도 잘 알 거 아냐. 김대리와 비교당하며 나는 확신을 가졌어. 내가 불행한 이유는 못생겼기 때문이라고!"
"미의 기준이 바뀐 뒤 못생겨진 우연희는 어땠지? 넌 미의 기준이 바뀌어 잘생겨진 지금도 마음속으로 꾸준히 외모 탓을 하고 있었잖아. 잘생겼다는 이유로 능력 밖의 기대를 받아 괴롭다고, 얼굴만 보고 다가오는 사람들이 널 힘들게 한다고. 나는 이제 깨달았어. 너에겐 외모가 문제가 아니라는 걸. 뭘 어떻게 해달라는 게 아니야. 난 더는 너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고 싶지 않아."
말을 끝마친 창가의 내가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뒤늦게 깨달았다. 아무리 커다란 우산이라도 14층 높이에서 떨어지는 순간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