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왔네요. 그 이유가 지금의 저와는 정 반대로 잠이 무척 많았던 사람 때문이라는 게 참 아이러니하지만.. 하하.
요즘 들어 그 사람과의 관계와 사랑에 대해서 많이 생각을 하게 되네요. 그 사람은 내게 무엇이었고 나는 그에게 무엇이었나.
연인이 되기 전 저희는 아주 친한 친구였어요. 말할 수 있는 한 가장 깊은 곳까지 다 털어 놓는 사이였네요. 둘 다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면이 많고 불우하게 자라온 터라 서로 많이 의지했죠. 저는 그 친구 덕에 죽고 싶은 충동을 꾸역꾸역 참아내곤 했어요. 그 친구도 비슷한 뉘앙스를 풍긴 적이 있었구요. 말하자면 저흰 서로에게 탈출구였던 것 같아요. 가장 힘들 때면 아이가 엄마를 찾듯 서로를 찾았죠.
하지만 그 탈출구에는 본질적인 결함이 있었어요. 억압적인 가정 환경에서 자라오면서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많이 받았던 제게 관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시한폭탄과 같았어요. 따라서 늘 관계로부터 도망치고 했죠. 반대로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해 관계에 마음을 닫은 그는 자신을 떠나지 않을 관계를 찾았어요. 저는 그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였죠. 돌이켜보면 늘 불안정했고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관계였어요. 예민한 사람이었던 그는 아마 처음부터 이걸 알고 있었겠죠. 그랬기에 처음부터, 친구였을 때부터 불안해했단 것일 테구요.
모든 사랑은 결핍을 전제로 한다고 생각해요. 혼자 있을 때 느끼지 못했던 따뜻함. 잠시나마 삶을 살 때 종종 느끼는 고독을 달래줄 포근함 등등. 그러나 저희의 경우엔 서로의 결핍이 우선 생을 온통 뒤흔들 정도로 너무 컸고, 서로를 사랑했지만 그 방식이 결핍을 더 커지게 했기에 함께할 수 없었다고 생각해요. 이별은 언제든 일어날 일이었고, 우린 결국 자신의 결핍을 직접 채워 나가야만 했어요. 애초부터 정해져 있었던 거예요.
그렇게 받아들이고 제 삶을 살기 시작한 지도 꽤 시간이 지났네요.
그동안 전 저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엄마를 찾는 유아기적인 관계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말이죠. 하지만 지금도 순간순간 그가 정말 많이 보고 싶어요. 사소한 순간들. 내가 무얼 했고 뭘 먹었고, 고양이를 들여왔다든지 동아리 엠티를 간다든지 하는 시시콜콜하며 별 것 없는 일상.
그의 냄새가 그립고, 멍청하게 웃던 표정이 그리워요. 커다랗고 통통한 체격 탓에 폭신하게 안겨들 수 있었던 품도 그립고, 낮고 성령이 풍부했던 목소리도, 그 목소리가 담아내던 색깔들도 너무너무 그리워요. 제발 한 번만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첫사랑이라 너무 강렬해서 종종 생각나는 걸까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단순히 첫사랑이라 넘기기엔 지금도 땅이 꺼질 만큼 보고 싶은 이 감정, 미안함과 슬픔과 아픔과 그리움이 온통 뒤섞인 이 감정은 그렇다면 뭘까요. 너무너무 아프고 힘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