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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나쁨주의]직장 그만뒀습니다. 그 후...
게시물ID : boast_1363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X
추천 : 10
조회수 : 55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5/03/21 05:28:17

작년 3월부터 다녔던 직장을 이제서야 그만뒀습니다.

내 의욕과 긍정적 전망에 대한 희망을 붙잡고 버텼습니다만,
더 이상은 갈수록 늘어만 가는 업무량, 분노조절장애로 구분하는 편이 더 적절할 듯한
고쳐질 기미 따윈 없는 이사의 다혈질적 성격, 언제나 말뿐인 처우 개선 등을 더 이상은
학습된 무저항으로 받아내며 자신의 생기를 깎아먹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사표를 낸 것은 오래 되었지만 경영진 입장에서는 제대로 된 회사 인력이 저 뿐인 것이나
마찬가지다보니 온갖 처우 개선에 대한 약속으로 붙잡으려 했고, 넘어가는 척 보류했지만 
사실 향후 진로를 정하지 못해 미룬 것뿐이었죠. 
그 보류 기간 동안 그 많은 꼬순 내 나는 약속들이 성냥불보다 쉽게 사그라들 
값싼 사탕발림에 불과했단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 어쩌면 월급보다 더 큰 소득이었달까요.
 
결국 재충전이라는 명목으로 한 달간의 장기 휴가를 받아서 다른 진로를 찾아다녔습니다.
그리고 휴가가 끝나는 날, 곧바로 사직 의사 표명하고 그간 은연중에 찬찬히 해 오던 
인수인계를 마무리짓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2주 후, 일손이 심각하게 딸려 잠시 전시 행사 참여를 도와 달라는 요청에 
저번 주말 이틀간 다시 회사를 찾았습니다.

아, 그렇게 나오고도 이사 얼굴을 또 보고 싶냐는 어머니의 역정에 휘둘렸다면
그런 통쾌한 꼴을 볼 수 없었던 것을 저는 두고 두고 후회했을 겁니다.
 
휴가 기간까지 포함하면 제가 회사에 없었던 기간은 총 5주.
그 동안 회사의 사업은 과거, 현재, 미래 모두 다 개판이 나 있었습니다.

영업을 주로 하는 기업에게 있어 컨퍼런스 참여는 신규 거래처 유치와 인지도 확장에 
결정적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아실 분들이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필요한 준비물의 반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다
제품 설명과 안내, 판매를 위해 직접 움직이고 있어야 할 현 사원들이 아무 것도 
못 하고 있더군요.
제품에 대한 기본적 지식조차 숙지되어 있지 않아 뒤에 멀뚱히 서 있고,
인원 배치와 역할 분담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서로를 방해하는 상황만 반복되고 있는 걸 보며
망해 가는 레스토랑을 보고 있는 고든 램지의 심정이 이런 건가 싶었습니다.

결국 사원도 아닌 제가 멍하니 선 사원들을 쫓아내고 부족한 것들을 수습하고 
사원들을 컨트롤하게 됐고,
그런 꼴이 펼쳐지고 있는 걸 보고 있는 이사의 표정은, 아마 예상컨대 제가 앞으로
10년간 먹을 술을 맛있게 만들어 주기에 충분할 겁니다.

 따져물어 들은 말로는, 
영상 촬영, 영상 편집, 자막 작업,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인,  재무재표 관리, 
거래처 히스토리 관리, 외주 진행 관리, 행사 참여 진행, 제품 입출고 관리, 기존 거래처 관리, 
신규 고객 홍보 기획, 사원 교육, 교육 자료 제작, 재무재표 관리 등  제가 해 오던 일들의 
거의 전부가 정지 상태에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사에 대한 악감정을 무마시켜주며 거래를 붙잡고 있던 거래처들은 
제 퇴사와 거의 동시에 거래를 끊어 버렸고, 회사의 2월 수익은 제가 있었을 때의 
30%도 채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국내외를 동시에 확장하려던 사업 계획은 백지화되다 못해 반년 전으로 회귀했고, 
제 퇴사가 알려지자 다른 사원들도 그만두면서 인력이 말 그대로 반동강이 났더군요.

처음부터 준비가 개판이었던 그 날의 행사는, 결국 참가비도 건지지 못하고 마무리하게 됐습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을 극단적으로 체험한 이사는 그 날 밤 술자리에서까지도
저를 다시 꼬셔보려 하더군요.
모든 애매한 표현에"언젠가, 필요하다면" 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대답해 주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1년만에 기분 좋은 꿈을 꿨습니다. 

떠나길 잘했다는 기분은 참 통쾌하네요. 새삼스럽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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