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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게시물ID : phil_1364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고려
추천 : 0
조회수 : 193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6/03/26 09:40:11
(※ 주의: 글이 길고 두서가 없습니다. 글을 잘 쓸 줄 몰라서 읽기 힘드실수도 ㅜㅜ )
 
...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이걸 사람들이 남녀 차별이라고 여깁니다.
 
-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 남자는 높고, 여자는 낮다
 
여기서 갑자기
 
- 남자는 귀하고, 여자는 천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우리나라 전통이 남녀 차별이라는 것입니다.
 
전혀 아닙니다.
 
-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 음양에 빗대어 비교한 것 뿐입니다. 말 그대로 하늘과 땅
- 남자는 높고, 여자는 낮다 : 위치만 말한 겁니다. 자연적으로 봤을 때, 높고 낮음. 비유의 연장입니다.
 
그런데
- 남자는 귀하고, 여자는 천하다 : 웬 착각? 웬 귀신씨나락 까먹는 소리??
전통사회는 신분사회였던 맞습니다. 귀천이 있었죠.
하지만 그것은 신분의 귀천이지 남녀의 귀천이 아닙니다.
 
빛과 빗물과 바람,공기를 주는 하늘도 있어야 하고
발 디디고 곡식을 주고 생명을 잉태하는 땅도 있어야 합니다.
 
어찌 귀천이 있을 수 있나요??
 
이는 후대인들이 남녀에 대한 철학적 비유를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여자가 어디 바깥 일에 끼어드나"
이것은 차별이 아니라 남녀 특성을 고려하여 분업을 한 것입니다. 
 
여자 안일 채집과 양육 - 남자 바깥일 사냥,
여자 안일 재산관리와 양육 - 남자 바깥일 중노동 또는 정치,학문
 
옛날에는 바깥일 못지 않게 안일이 많았습니다.
안일을 맡은 여자가 바깥일까지 하면 그것은 업무과중이었죠.
남자가 안일에 끼어드는 것 또한 역할의 침범이었구요.
과거에는 합리적인 분업에서 출발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현대에는 일에 남녀 구분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깥일 안일 나눌 필요가 없죠.
육체노동의 량도 줄어들었고, 문명의 이기로 남녀 상관없이 서로 대체할 수 있으니까요.
 
"남자가 귀하다",
과거에는 군역과 노역이 있었습니다.
생애에 걸친 부담이었죠. 또한, 전쟁이 나면 남성들은 전쟁에 나가서 많이 죽었습니다.
단지, 남자의 인구수가 대체로 모자랐던 시기입니다.
그래서 희소성이 있다는 말이지,
그것을 귀천으로 여겨서 인간존업 자체에 잣대를 들이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현대는 (비록 지구촌 어느곳들은 아직 전쟁 중인 곳도 있지만) 2차세계대전과 냉전 이후
유래없는 평화시기입니다.
우리나라 역사만 봐도 조선시대 전성기 안정기를 제외하고는
해를 걸러(두서너해에 한번꼴로) 전쟁이 발생했었습니다.
고대로 갈 수록 외부의 위협은 공동체 운명과 구성원의 삶에 큰 부분을 차지했죠.
 
발해와 고려시대의 여성 위상에 대해서는 익히 아실 겁니다.
조선 전기만 해도 여성의 위상은 좋았습니다.
그런데 양란(왜란과 호란)으로 나라가 거덜난 상황에서
(인구도 동강나고, 식량 생산할 전답도 1/3로 줄어들고...)
조선은 국가 체제 유지를 위해 유교라는 이데올로기를 강화했죠.
권위를 잃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랄까,
열녀문?
나라에서 장려하니까 마을마다 없는 열녀도 꾸며내거나 작위적으로 만들어서
열녀를 배출하고 열녀문 세우고 포상(?)을 받는 겁니다. (현재의 전시행정과 닮았죠?)
 
재산배분?
고려시대에는 남녀 차별없이 배분했고, 조선전기에는 장자 차자 삼자 간의 배분 차이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유교가 강화되면서 원리원칙, 경전의 문구 하나에 집착하게 되면서
장남에게 많은 의무들이 생깁니다.
제사비용, 문중의 많은 손님들 대접, 그것을 수행하기 위한 재산을 물려주는 것이죠.
(이전시대만 하더라도 딸들도 제사를 주관하기도 하고 했는데 말이죠.)
 
또한, 신분 문제도 붉어졌습니다. 양반들이 경제적으로 몰락하는 것이죠.,
족보를 매매하기도 하고...
평민들이 양반족보를 사들이거나 양반들이 돈이 없어 족보를 팔고 평민이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당시는 신분제 사회.. 돈으로 사고 팔 수 있게 된 신분을 지키기 위해 장남에게 몰빵합니다.
종가가 가난해져서 족보를 팔아버리면 안되고,
종가가 가난해져서 손님대접도 못 하고 제사도 시원찮게 치르면 집안의 전체 신분에 흠집이 생기니까
장남들에게 지분이 더 많이 가는 거죠...
남의 집 제사, 즉, 시집의 제사를 받드는 며느리가 될 딸들은 점차 배제되어 갑니다.
(며느리 어원이 제사밥인 멧밥을 나르는.. 메나리죠.. 즉, 제사의 큰 역할을 하는 중요한 위치)
 
신분고하는 철폐되었습니다.
남녀의 귀천은 원래 없던 것이었는데,
 
양란이후에 조선사회가 경직되면서 개개인에게 제약을 많이 걸었고, 
 
근대에 들어서면서 겪은
일제시대, 군사독재시대의 폭압적이고 억압적인 사회분위기 속에
 
일제가 식민지 위에 군림했듯이
국가가 국민 위에 군림했듯이
남성들이 가정에서 군림한 것입니다.
 
변화한 시대를 받아들이지 못한 이들은
전통이란 것을 곧 잘 왜곡하여 아전인수격으로 변명거리로 사용합니다.
과거와 현대는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유교는 원래 그렇지 않으니 유교를 들먹이지 말고 (서양에서는 기독교가 그렇겠죠)
개뿔 사람 차별하고 군림하려고 하는 것에 전통 들먹이지 말라, 이말이 하고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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