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언론사에 올려져 있던 기사들을 개인 서버로 업로드 하다가 오유에도 하나 올려 봅니다...릭샤가 무엇인지 아는가? 시클로 혹은 트라이시클이라 바꿔 부른다면 아는 이도 있을 거다. 우리말로 인력거라 부를 수 있다. 여행자들에게는 복합적인 감정의 '로망'이라 할 수 있다.
왜 갑자기 릭샤를 들먹이냐고? 한국이나 일본에서야 전설상의 교통수단에 불과하지만, 인도를 선두로 하여 네팔,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남인도만이 아니라 태국, 필리핀, 베트남 등의 광범위한 지역에서는 릭샤가 아직도 중요한 교통수단의 하나로 남아 있다.
이들 지역을 여행하면서 릭샤를 한 번도 안 타보거나, 이들 릭샤왈라(릭샤운전자)와 말싸움 한 번 안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혹시 기계의 힘으로 움직이는 교통수단이 아니라 사람의 힘으로, 특히 늙은 노인이 끄는 릭샤를 타는 것이 죄송스러워서 한 번도 안 탔다고 한다면 조금 이해는 한다.
하지만 이들 릭샤왈라라는 직업은 몸뚱이만 성하다면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업이며, 그 사회의 가장 밑바닥 직업이라 부를 수 있다. 그렇기에 보통의 여행자들은 릭샤를 이용하지 않아 그들의 수입을 작아지게 하는 것이 릭샤왈라에게는 큰 불행이라는 것을 깨닫고 열심히(?) 이용한다.
사실 처음에야 죄송스런 마음에 불편함을 느끼지만, 몇 번 타다 보면 더없이 재미나는 교통수단이다. 릭샤왈라에게 '마차를 막아서는 사마귀의 용기'란 것은 기본 중의 기본으로 몇 십톤 트럭이 와도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앞에서 천천히 달린다.
트럭 운전자도 이들의 그런 행동을 잘 알기에 속도를 줄이지 않고 옆으로 살짝 비켜서 달려간다. 몇 센티미터 옆으로 지나가는 트럭바퀴의 거대한 포스로 인해 느껴지는 스릴은 50미터 번지점프를 할 때의 그것과 비슷한 레벨이다. 92년식 내 차 프라이드로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지나치는 트럭의 포스로 차가 흔들릴 때의 서늘함보다 100배는 아찔하다.
|
▲ 방글라데시 릭샤 마주오는 버스나 트럭이 옆으로 스쳐지나가면... 후덜덜이다. |
특히나 베트남의 릭샤는 이러한 즐거움의 절정이라 할 수 있다. 다른 나라의 릭샤들이야 승객의 좌석이 대개 릭샤왈라의 뒤쪽이나 옆쪽에 위치하기에 그나마 거대차량들과의 거리를 두고 스릴을 즐긴다. 하지만 베트남의 것은 휠체어 뒤쪽에 자전거를 붙여 놓은 형태이기에 승객이 앞쪽에 위치한다. 바로 눈앞에서 휙휙 지나가는 버스나 트럭, 오토바이 등을 보고 있자면 뒷머리가 뻣뻣해질 때도 있다.
|
▲ 베트남 릭샤 저 자리에 앉아서 버스와 오토바이가 질주하는 대로로 나간다. 특히나 신호등도 없는 십자로를 만난다면 뒤골이 땡길 정도로 스릴넘친다. |
릭샤왈라는 '용그림에 눈알을 찍어줄' 최고의 여행가이드이다. 출발지와 목적지를 잇는 최고 짧은 루트를 이용하기 때문에, 웬만해서 볼 수 없는 현지의 으슥한 뒷골목을 마음껏 즐기게 해준다.
택시나 버스야 정해진 도로를 벗어나기 힘들지만, 이들 릭샤야 좁디 좁은 골목 구석구석을 잘도 알고 찾아가기에 현지인들만의 음식점, 찻집, 술집 등을 쉽게 찾아준다. 이런 곳의 현지인 친구들은 여행자의 때가 묻지 않은 현지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며, 이것이야말로 여행의 진정한 즐거움이라 믿는다.
뒷골목 어귀에서 손을 흔들어주는 장난기 많은 어린애들의 미소야말로 '용그림에 눈알넣기' 여행의 참맛이라 할 만하다. 지나가며 말하자면, '여행자의 때' 정말 무섭다. '산업화의 때'는 노르베르 호지 여사의 '오래된 미래'를 보면 잘 나온다. 여행자의 때는 '산업화의 때'의 최신 버전이라 생각한다.
|
▲ 릭샤를 타고 본 거리풍경 릭샤를 타고 본 거리풍경 |
릭샤왈라에게 현란한 바가지 기술이 없다면 '앙꼬없는 팥빵'이다. 이들과 여행자 사이의 밀고 당기는 흥정이야말로 방값과 음식, 버스값 등의 모든 구매에서 벌어지는 흥정의 교과서라 할 만하다.
'릭샤왈라와의 흥정에서 승리하는 자, 여행생활이 자유로우리라.'
릭샤왈라에게 여행자 가격(현지인가격의 1.5배에서 2배)를 지불하는 것이 적절한 것이지만 외국인에 대한 흥정의 첫 시작은 항상 일본인 가격(5배에서 10정도)를 부르기 때문에 여행자 가격까지 내리는 것만도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굳이 현지인 가격으로 내리자고 한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다. 하지만 엄청난 정신력의 소모는 감수해야 한다. 바가지 가격만이 그들의 기술은 아니다. 미리 예약한 여관의 명함을 들려주며 가자고 부탁해도 '그 여관은 망했어' 혹은 '폭동으로 그 지역에는 갈 수가 없어' 등의 핑계를 대며 자신들에게 커미션을 주는 여관으로 데려가는 기술은 애교(?)가 넘친다.
10루피, 혹은 페소(대략 300원)에 합의를 보고도 나중에 10달러(대략 10000원)로 합의봤다고 우기는 기술도 애교스럽다고 치자. 목적지로 가는 도중 억지로 기념품 가게나 여행사를 둘러보게 하여 그들로 부터 커미션을 챙기고, 멀리 돌아왔으니 더 많은 비용을 요구하는 기술은 난이도 있는 인내가 요구된다.
뭐니뭐니 해도 최강의 난이도는 끈덕지게 달라붙어 삐끼짓 하는 거머리 기술일 것이다. 대략 몇 가지 기본적 기술만을 열거했지만, 내가 당한 기술과 그에 따른 해프닝을 한 곳에 모아도 서너날 술안주 걱정할 필요는 없다.
|
▲ 필리핀릭샤 10페소(300원)에 협의보고난 후 도착지에서는 10달러(10000원)에 합의했다고 우기는 기술을 특화한 필리핀 릭샤 |
마지막으로 릭샤왈라는 그들 자체가 현지의 서민이자 친구이며, 스승이자 바로미터이다.한국에서 정치 9단은 누구일까? 나는 택시기사들이라 생각한다. 마찬가지 이유로 릭샤왈라가 그들의 나라에서는 정치9단들이다.
호기심 많은 그들은(한국의 택시기사들도 마찬가지) 잠시도 여행자의 입을 쉬게 하지 않는다. 한때 잘 나가던 사람도, 못 나가던 사람도 릭샤왈라(한국의 택시기사? 대리운전사?)라는 이름으로 통틀어 일컬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새천년의 시작 즈음에 베트남에서 만난 늙은 릭샤왈라를 잊을 수가 없다. 그는 영어와 일어에 능통하고, 베트남의 역사, 문화, 경제, 등의 모든 분야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졌고, 깊은 통찰력으로 많은 것을 내게 가르쳐 줬다.
너무나 현명한 그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 맥주를 대접하였다. 술자리에서 그는 한국과 관련하는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여행 전 한겨레신문은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해 많은 보도를 했다. 기사는 한국군 한 명이 죽으면 그 마을 전체 사람을 몰살시켰다는 소문이 사실이었음을 고발했다. 그 보도를 흥미있게 봤었기에 조심스레 물었다.
"한국군이 민간인을 베트콩으로 오인해서 많은 무고한 사람이 죽였지요?"
"나는 세상에서 가장 독한(severe, 이 단어는 잊을 수가 없다) 민족이 베트남인이라 생각해. 하지만 한국인도 같은 수준이야."
수백만 동족을 죽인 광기의 베트남인이랑 한국인이 비슷하다는 것에 조금 반감이 있었지만, 뭐라 반박할 수는 없었다. 굳이 베트남에서의 행위만이 아니라 한국전쟁 당시의 일들도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는 뒤이어 전쟁의 참혹함과 광기에 대해서 많이 들려주었다. 마지막은 남북으로 갈린 당시의 베트남과 한국을 비교하며 동질감과 함께 이해를 표시했다.
그리고선 패배한 우파(자본주의)나 승리한 좌파(공산주의)나 사회를 지탱하는 양 다리이건만 한쪽 다리가 다른 한쪽 다리를 부러뜨려 버리는 것은 바보같은 일이라고 단정했다. 그로부터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나는 베트남을 사랑한다.
이유가 역사나 문화, 민족성 등이 한국과 너무나 비슷하기 때문이라면 이해할려나. 몇 천년 간의 대중국 항쟁 그리고 그를 통해 지킨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 강대국에 의해 남북으로 갈라지고 그로 인한 내전, 그 전쟁의 기억으로 인한 좌우의 불구대천 증오심까지. 한국의 쌍동이 형제같이 생각한다.
본론으로 드러가서, 그의 정체를 이야기 하자. 과거에 잘나가던 사람도 릭샤왈라가 될 수 있다고 했지? 그런 경우를 베트남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자본주의 월남이 패망하기 전에는 젊고 패기 넘치는 젊은 기자였다.
양익의 중간에서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려 애썼고, 그로 인해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하지만 고향인 남월남의 수도인 사이공에서 축출되어 20년간 집단농장에서 강제노동을 하였 다. 늘그막에 고향인 사이공에 대한 향수(아마도 화려했던 과거)를 이기지 못했다.
그래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법을 어기면서까지 고향인 사이공에 돌아왔다. 그러나 불법체류자인 그에게는 누워쉴 수 있는 한 평의 땅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할 수밖에없는 직업 릭샤왈라. 나도 소문으로는 들어봤기에 크게 놀라지는 않고 되물었다.
"당신같은 분이 이 곳에 많은가요?"
그는 웃으며 같은 테이블에서 술마시던 친구 릭샤왈라들의 전직을 이야기했다.
"저 넘은 의사였고, 저 넘은 변호사. 저넘은 회사 사장, 저 넘은 대학강사."
|
▲ 인도 릭샤 우두커니 혼잡한 거리를 응시하는 릭샤왈라... 무슨 생각을 하고계시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