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 있다.
몸과 마음을 구분하는 선.
나와 당신을 구분하는 선.
.. 구분
선 안 쪽, 당근을 쥐고 있는 아이.
선 바깥 쪽, 지나가던 토끼 한 마리.
"토끼야, 이 당근을 줄 테니 잠깐 이리 와서 내 질문을 들어줘."
망설이던 토끼는 이내 결정하고 가까이 왔어.
"좋아, 무엇인데?"
"선 바깥에는 무엇이 있어?"
"바깥? 네가 있는 그 선 밖을 말하는 거야? 내가 있는 쪽?"
"응. 난 그게 궁금해. "
"네가 나가보면 되잖아?"
"난 나가기 싫어."
"넌 왜 그곳에서 넘어오려 하지 않아?"
머뭇거리며 대답하는 아이.
"그야.. 넘어갔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다치는 건 싫단 말이야."
당근을 갉아먹으면서 토끼가 대답했어.
"그럼 거기 있을거야? 영원히?"
"난 여기 있는 게 싫지 않아. 다치지도 않고.. 따라서 아플 일도 없어."
귀찮아진 토끼였지만 다시 물어봤어.
"다른 이유는 없어?"
"다른 이유? .. 난 그냥 나가기 싫어. 귀찮아. 선을 넘어서 무엇하지? 여기와 다를 것도 없어보이는데.."
"네 눈으로 봐봐, 어디가 다른지. 그리고 난 이제 당근을 다 먹었으니. 다른 녀석 찾아봐."
"토끼야!"
"왜? 난 귀찮다니까."
"그냥 지나가지 마. 내 말상대가 되어줘."
"싫어. 난 네가 가고 싶어하는 이 바깥 쪽에서 해야할 일이 많아."
잠시 입을 오물거리던 토끼가 다시 말했다.
"그리고 그 선이라는 거 대체 무슨 말이야? 내 눈엔 아무 것도 안 보여. 넌 혼자 앉아 있을 뿐이야."
토끼의 말은 옳았어.
아이의 선은 보이지 않는 것이었으니까.
아이가 울먹이며 다시 말했어.
"넌 나쁜 토끼야. 너도 날 이해하지 못해. 너 갈 길 가버려."
"알았으니까 거기 혼자 박혀있으렴. 그 선 안에서."
"..."
아이는 다시 혼자 남겨졌어.
".. 나도 나가고 싶은데. 토끼한테도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었는데."
입술을 달싹거리던 아이는 울면서 중얼거렸어.
"난 왜 나가지 못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