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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펌][내부자]나는 쿠팡과 작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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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공인인증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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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 110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7/21 01:5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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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그만두겠습니다."


내 입사 동기는 이 말을 하고 나서 울었다 했다. 미운정 고운정 다 든 회사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감정이 북받쳤단다. 그의 퇴사 면담 뒷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과연 어떨지 궁금했다. 이 곳을 떠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그 못지않게 회사를 아끼고 좋아하는 나도 슬프겠지. 나도 그처럼 펑펑 울게 될까. 불과 2년 전, 퇴사가 그저 막연한 남 얘기였던 시절의 기억이다.


"저, 그만두겠습니다."


그로부터 2년쯤 지나, 나도 그와 같은 순간에 놓이게 됐다. 그러나 눈물은 없었다. 떠나는 기분도 상상과는 많이 달랐다. 전혀 슬프지 않았다. 다만, 그토록 사랑했던 곳과의 이별에 아무 슬픔도 느낄 수 없는 내 모습이 씁쓸하고 허무했다. 그리고 한편으로 해방감이 밀려왔다. 드디어 안녕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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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쿠팡과 작별했다. 한때는 반값 소셜커머스로, 요즘은 로켓배송으로 유명한 곳. 이래저래 말도 많고 탈도 많고, 사랑도 미움도 많이 받는 곳. 언젠가부터 쿠팡에 다닌다고 하면 "좋은 회사 다니시네요." 라는 대답을 듣는 일이 많아졌다. 마찬가지로, 그만뒀다고 이야기하면 "그 좋은 회사를 왜 나오느냐" 묻는 이가 많다.


보통 그런 류의 대화에서 좋은 회사 = 유명한 회사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쿠팡은 좋은 회사가 맞다. 대중이 보는 이 곳은 지금까지 잘 커왔고, 앞으로도 어쩌면 잘 커나갈 가능성 있는 회사일 것이다. 소셜커머스 춘추전국 시대에 다른 두 곳과 함께 최후까지 살아남았고, 그 이후엔 로켓배송 런칭으로 큰 변혁을 시도했으며, 빠른 배송과 더불어 감동을 팡팡 뿌리고 다니는 쿠팡맨에 힘입어 독보적인 브랜딩에도 성공했다. 


"혹시 회사가 어려워서 그만두는 거야?"


천문학적 적자에 관한 기사를 보고 조심스레 묻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쿠팡 적자의 역사가 하루이틀 일도 아닐진대, 회사가 재정적으로 어렵다는 이유였다면 나는 진즉 퇴사했을 것이다. 어차피 많은 스타트업에게 적자는 그리 새삼스러운 존재가 아니다. 미결의 과제임은 분명하나, 지금은 답을 찾아가는 과정 중에 있다고 생각한다. 몸집이 커졌을 뿐 쿠팡은 이제 고작 6살짜리 회사다. 위험도 시행착오도 있지만 기회도 많고, 그간의 행보에 비춰 미래를 기대해볼 법 하다. 최근의 숱한 논란에도 매출은 계속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데다, 또 모를 일 아닌가. 다시 한 번 어마어마한 투자 유치로 '쿠팡 위기설'을 쏙 들어가게 할지.

 

그럼 남들이 보기에 좋은 회사, 심지어는 스스로도 '장래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회사를 왜 그만뒀냐고? 

 

웹툰 <송곳> 중엔 이런 대사가 있다.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안타깝게도 내가 선 데는 쿠팡의 빛보다 그림자에 좀 더 가까웠다. 여러 그림자들 중 내가 본 가장 어두운 부분은 '사람에 대한 가치관'이었다. 매년 증가하는 적자로 인한 주변의 우려 때문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회사의 신념 때문에 쿠팡의 미래를 확신할 수 없어진 것이다.


보통 쿠팡하면 직원이 즐거운 회사로 알고 있다(아마 적잖은 IT기업에 대한 이미지가 비슷하겠지만). 처음 합류했던 당시만 해도 쿠팡은 실제로 그런 곳이 맞았다. 회사는 구성원의 목소리를 경청하려 했고, 들은 후에 답할 줄 알았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비전을 공유하며 그 비전을 다같이 이뤄보자고 독려했다. 이런 기조가 채용에도, 교육에도, 평가나 보상에도 비교적 충실히 반영되어 있었다. 내가 아는 한 쿠팡은 '칼퇴근이 가능하거나 복지가 좋기 때문에'가 아니라, '직원과 더불어 나아가려 하기 때문에' 즐거운 회사였다. 쿠팡의 성장을 이끌어온 이들이 타의에 의해 야근을 자처하고 사무실에서 쪽잠을 자가며 열정을 불살랐을까? 뭔가 해내겠다는 각자의 자발적 의지와 치열한 노력이 모여 지금의 쿠팡을 만들었다. 나는 이것이 바로 많은 기업이 바라는 구성원의 오너십이며, 회사와 직원이 함께 성장해가는 선순환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느 시점을 지나면서부터 이런 것들은 전부 쿠팡의 철저한 '과거'가 되었다.


몸집이 커졌을 뿐 쿠팡은 이제 고작 6살짜리 유치원생 나이의 회사다. 아직은 사람의 힘으로 성장해야 하는 회사의 전략에서 사람이 사라졌음을, 그리고 되돌리기 어려움을 깨달았을 때 나는 쿠팡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이 글에서 나를 결심에 이르게 한 세 가지 결정적 장면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S#1. 2015년 쿠팡 기자간담회 


2015년 11월 3일, 웨스틴조선호텔의 쿠팡 기자간담회 현장. 이 자리에서 김범석 대표는 "쿠팡맨 숫자를 2016년까지 1만 명, 2017년까지 1만 5,000명까지 늘리고 이들의 60%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공언했다. 쿠팡은 매년 말도 안 되는 성장을 목표로 정해놓고, 더욱 말도 안 되게 그 목표를 달성해온 이력이 이미 있다. 그 즈음 쿠팡에는 정말로 매주 기백 명의 쿠팡맨이 입사했다. 그 흐름대로라면 1만 5,000명의 쿠팡맨 채용은 가까운 시일 내에 금방 달성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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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목표연도인 2017년 중반을 넘어서는 지금, 쿠팡맨의 수는 목표의 1/3인 5,000명에도 크게 못 미친다. 제일 많았을 때가 3,600여명이었을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더욱 크게 감소했다. 이유는 다양하다. 클라우드(손편지, 파란 리본이 부착된 박스 등 쿠팡을 화제로 만들었던 쿠팡맨의 자발적 고객 감동 서비스)가 아니라 오직 배송량으로 평가 기준이 바뀌며 일반 택배사와 다름없다며 실망해 떠난 이들도 있고, 배송량을 결정하는 다양한 변수(각 지역의 평균물량, 담당 구역의 넓이나 지리적 난이도 등)를 고려하지 않은 새 평가 제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불만으로 떠난 이도 있으며, 들쭉날쭉 대중없는 인력 수급으로 지나치게 과중해지는 배송량을 견디다 못해 떠난 이도 있다. 혹은 계약 기간이 끝나고 정규직 전환에 실패해 불가피하게 떠난 이도 있다. 때맞춰 SR(Safety Reward: 과태료, 사고, 내부 기준에 의한 중과실이 없을 경우 고정적으로 40만원을 보장받는 안전수당)이라는 쿠팡맨의 급여 항목 지급 기준이 상대평가로 바뀌자 '정규직 전환을 어렵게 하려고 한다', '임금을 줄이려 한다'는 논란이 일어 보상 제도를 원상복구하기로 했다.


결국 제도 운영에서 생긴 잡음과 함께 대규모 퇴사(또는 계약만료) 사태가 일어나며, 목표의 반도 달성하지 못한 채 쿠팡은 2017년 하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인력 부족으로 남은 이들의 배송 부담이 심해지자 최근에는 퇴사한 쿠팡맨 재입사 시 우대해준다는 조건을 붙여 적극적으로 쿠팡맨 채용에 나서고 있다. 물론 이 또한 '지난 경력이 인정되지 않으니 전혀 우대가 아니다'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나는 이 모든 사태가 고민 부족에서 기인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쿠팡맨 채용 이전과 이후에 대한 고민 말이다. 김 대표의 공언에는 오직 쿠팡맨 채용 목표 인원만 있었다. 채용을 이야기하면서 숫자만 있고 이들을 어떻게 뽑을지, 또 어떻게 운영할지 등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던 것이다. 간담회뿐만 아니라 회사 내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본 바에 의하면 기자간담회 공언 이후 지난 2년간 쿠팡맨을 채용하는 팀이나 관리하는 팀이나 어마어마한 규모의 인력을 선발해 현장에 투입 시키기 바빴다. 모든 것은 속도 싸움이었고, 결국 쿠팡맨 운영의 근간이 되는 제도들은 일단 인력이 투입된 현장에서 발생하는 상황에 대응하며 하나씩 살을 붙여가는 식으로 만들어졌다. 최근 문제가 된 제도도 그렇게 만들어진 것들 중 하나다.


사실 이것은 매우 쿠팡스러운 발상이기도 했다. 쿠팡은 린스타트업 전략에 충실한 회사다. 린스타트업 전략이란 아이디어가 있으면 단시간 내에 시제품을 만들고 반응을 측정해 개선에 반영하는 과정을 반복하여 실패 확률을 줄이고 효율을 극대화하여 완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쿠팡의 리더십 원칙(일반적인 기업의 핵심가치)에는 빠른 결정과 빠른 실행을 강조하는 항목이 있다. 속도가 경쟁력인 업계에선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신중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HR이 그렇다. 제품과 달리 사람은 부족하다고 일부를 바꾸거나, 기능을 다했다고 새 것으로 교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정책, 제도, 의사결정은 속도에 집착하지 말고 돌다리도 두드리는 심정으로 모든 변수에 사전 대비해야 한다. 그러나 쿠팡은 이 점을 철저히 간과했고, 오늘이 그 결과다.


어찌되었든 이번 쿠팡맨 논란을 통해 결과적으로 제도가 나아진다면 환영할 일이다.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이런 류의 논란이 처음이 아님에도 매년 비슷한 상황이 데자뷰처럼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번 논란 이후에도 쿠팡은 인사제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틈도 없이 부족한 배송인력 메우기에 치중하고 있다. 쿠팡맨 공식 출범 만 3년, 수 천 명의 쿠팡맨을 안고서 앞으로 몇 번의 시행착오를 더 거쳐야 비로소 '완제품'을 만들 수 있을까. 

 

 

S#2. 글로벌 기업 쿠팡


사실 이런 걱정은 최근 쿠팡의 새로운 임원 선임과 맞물려 더 커졌다.


6월 중순 한 언론매체가 "쿠팡이 HR담당 수석 부사장으로 아마존 출신의 외국인을 선임했다."고 보도했다. 최근 언론에까지 보도된 여러 잡음의 원인 제공이 한국 노사문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외국인 경영진이라는 지적이 수차례 나왔음에도 외국인을 인사 담당자로 영입하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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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노컷뉴스>


쿠팡은 언젠가부터 내부적으로 스스로 글로벌 기업임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해외 사업 계획은 없어 보이는데, 해외에 오피스가 있기 때문에 글로벌 기업인 것일까. 다만 한 가지, 인력 구성의 다양함 때문에 글로벌 기업임을 자칭하는 것이라면 수긍할 수 있다. 심지어 임원진만 놓고 보면 외국 기업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다. 현재 쿠팡 최종 의사결정권자의 8할 이상이 외국인이다. 검은 머리 외국인이 아니라 순도 100% 외국인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경력이 화려하며(주로 쿠팡의 롤모델인 아마존 출신) 한국 기업 경험은 전무하다. 사실 한국을 잘 안다고 더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혁신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특히 중책을 맡은 외국인 경영진이 고액의 연봉과 파격적 대우에 필적하는 성과를 냈는지는 의문이다. 많은 직원이 체감할 정도의 성과는 거의 없었다(만일 있다면 적극적으로 대내외 홍보를 했으면 싶다. 그들을 모셔올 때 언론에 냈던 홍보기사의 반만큼이라도).


반면 한국 실정에 대한 고려 없이 본인의 경험에만 의지하여 결정을 관철했다가, 막상 실행과정에서 온갖 문제가 생겨 논란이 된 적은 종종 있었다. 참고로 쿠팡맨 논란 당시 쿠팡의 HR은 공식적으로 수장이 없는 상태였고, 비즈니스를 관장하는 나비드 베이세(Navid Veiseh) 수석 부사장이 HR 수장을 대행하고 있었다. 작년 물류센터에서는 중국인 책임자가 주변 반대를 무릅쓰고 새롭게 바꾼 시스템으로 인해 몇 만 건에 이르는 지연 미출고 사태가 발생한 적이 있다. 고객센터에서는 상품이 도착하지 않는다는 불만 전화 폭주를 감내해야 했고, 본사 직원들은 인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주말에 출고 작업 지원을 나가기도 했다.


대다수 외국인 임원들은 본인이 가진 지식과 경험을 지나치게 과신하는 듯하다. 아무리 전문가라 해도, 이 곳이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미지의 시장이라는 점은 기억해야 하지 않겠나. 외국인이니 한국의 낯선 문화, 시스템, 법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해하려 노력하는 척이라도 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런 그들 뒤에는 금전적 보상은 물론이고 막강한 권한까지 부여하는 더없이 너그러운 쿠팡이 있다.


분명히 하자면, 이들이 외국인이어서 문제인 것이 아니다. 임원이며 고액연봉자인데도 그에 상응하는 성과를 내거나 긍정적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다. 상황이 이러니 직원들 사이에 그들이 단지 '외국인이기 때문에' 임원이 되었다는 편견, 국적이 권력이라는 인식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쿠팡이 외국 투자자에게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해 외국인 임원을 선임한다"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상당히 합리적인 추론이다.


오늘도 쿠팡의 외국인 임원진 영입은 계속되고 있다. 그들로 인한 역기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균형점을 찾으려는 노력도 없이 말이다. 기업의 근간인 HR의 담당자까지 외국인으로 내정된 지금, 신선하고 파격적인 정책이 나오겠다는 기대감보다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노사간 불협화음을 이어질지에 대한 우려가 앞선다. 

 

 

S#3. 이것은 오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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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 6월 초 어느 오후, 수석 부사장인 나비드 베이세(Navid Veiseh)가 직원들에게 메일을 한 통 보냈다. 4월에 연봉이 인상되며 1~3월에 대한 인상 소급분이 지급되지 않았다는 불만이 잇따르고 급기야 언론에까지 보도되자 이를 진화하려는 메일이었다. '사전에 매니저들을 통해 공유했으나 충분치 않았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소급분은 지급했으나 회사가 오해를 불러일으킨 만큼 관련 비용을 추가 지급하겠다. 그리고 앞으로 HR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골자였다.


그가 강화하겠다 한 HR 커뮤니케이션은ㅡ비단 HR뿐만이 아니라 사실 사내커뮤니케이션 자체가ㅡ최근 0에 수렴한다. 임금 체불 논란이 '오해'라고 해명했으나, 오해는 의도가 잘못 해석된 경우에 사용할 수 있는 단어다. 애초에 의도를 알지조차 못했다면 그것은 오해가 아니라, 그냥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절대다수의 직원들이 급여명세서를 보고 나서야 소급분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문의가 쇄도하자 그제서야 "인상된 연봉이 사실은 1~3월의 소급분을 반영한 것"이라며 급조의 티가 물씬 풍기는 대답을 내놓았을 뿐이다.


비단 이번 경우뿐만 아니라 쿠팡은 회사의 정책과 비전, 현황과 변화에 대한 공유가 전반적으로 전무한 수준이다. 조직들은 하루가 다르게 생겨나고 사라지며 이합집산을 거듭하지만, 현업의 변화를 HR에서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다. 제도나 정책이 변하는 것도 널리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는다. 예고되지 않은 변화 앞에서 실무자들은 수시로 혼란스럽다. 이것은 쿠팡이(또한 많은 스타트업이) 얘기하듯 '이 업계는 변화가 많으니 적응력이 필요하다'는 것과 전혀 별개의 문제다. 나 혼자 일을 하는 곳이 아닐진대, 함께 일하는 이들에게 혼선이나 피해가 없도록 정보를 신속하게 공유하는 것은 업무의 기본 아닌가.


소통의 부재는 단지 업무의 혼란뿐 아니라 신뢰의 상실로 이어진다. 얼마 전 쿠팡에서는 급여일 오후에 월급이 입금되는 일이 있었다. 평소에는 오전에 들어오다가 그 날은 조금 늦어졌다. 정오가 지나면서 블라인드(회사별 익명게시판 앱)에는 왜 월급이 들어오지 않느냐는 불만이 속속 올라오기 시작했다. '회사에 돈이 없다더라'는 루머가 잠시 돌기도 했다. 사실 어찌되었든 급여일에 월급이 들어왔으니 문제될 것은 전혀 없다. 직원 중 일부가 '오전 중 월급 수령'에 이상하게 집착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평소에 직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던 회사라면, 그래서 직원들이 회사를 신뢰했더라면 과연 입금 몇 시간 늦어지는 것에 그렇게까지 동요했을까. 


더불어 소통 부족은 '동기의 상실'까지도 확대된다. 언젠가부터 쿠팡은 우리가 얼만큼의 성과를 냈고 앞으로 얼만큼 달성해야 하는지에 대해 공유하지 않기 시작했다. 대외비가 직원의 입을 통해 언론으로 새나가는 게 무서웠던 것일까. 그렇다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판단이다. 가뜩이나 빠르게 변하는 쿠팡과 같은 곳에서는 내가 궁극적으로 어디를 향해 가고 있고, 지금은 어떤 지점에 있는지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나와 회사의 현위치와 목표지점을 정확히 알아야 갑작스러운 변화에도 발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열정을 다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내게 주어진 일만 잘 하면 그만인 것은 시스템이 잘 갖춰진 회사에 해당하는 말이다. 쿠팡은 아직까지 그런 단계가 아닐뿐더러, 리더십원칙을 통해 '내 일을 넘어선 일도 할 줄 아는' 오너십을 강조하면서 직원이 오너십을 가질 환경을 만드는 데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지금까지 쿠팡의 성장을 이끌어온 이들은 타의에 의해 야근을 자처하고 사무실에서 쪽잠을 자가며 열정을 불사른 것이 아니다. 뭔가 해내겠다는 각자의 자발적 의지와 치열한 노력이 모여 지금의 쿠팡을 만들었고, 그것은 직원들에게 비전을 알리고 공감시키려 했던 적극적 소통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공유와 소통은 차라리 지겹다고 느낄 정도까지 하는 편이 낫다. 물론 역기능도 있을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으로 인해 업무 처리 속도가 늦어질 수도 있고,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절차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번거로워도 당연히 해야 하는 일 아닌가. 외국인 채용은 역기능에도 불구하고 강행하는 회사가, 왜 소통만큼은 역기능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 할까. 더욱이 이런 불통에 대해 직원들이 불만을 제기하는 데 대해 '우리는 했는데 오해가 생겼던 듯 하다'는 식의 반응은 참, 쿨하지 못하다. 논란 진화를 위해 꺼내든HR커뮤니케이션 강화 계획은 아직 계획 중인 듯하다. 적어도 최근까지 눈에 띌만한 개선점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혼란은 로켓배송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부터 조금씩 생겨나고 있었다. 쿠팡의 미래를 물류와 배송에 두면서부터 공격적으로 몸집을 불리면서 인프라도, 사람도, 모든 것들이 하루 아침에 몇 배부터 많게는 몇 십 배까지 커졌다. 철저한 성장우선주의였다. 외형 확대에만 몰두하니 당연히 놓치는 것들이 생겼다. 안타깝게도 그것들은 대부분 '사람'에 대한 것이었다. 내가 말한 세 가지 장면도 그렇다. 인사와 소통의 끝엔 결국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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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쿠팡은 이 역시 그들이 숱하게 겪는 '시행착오'들 중 하나라 생각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실패, 즉 내부 신뢰의 붕괴와 직원들의 동기 상실이 가장 위험하고 돌이키기 힘든 시행착오라는 점은 꼭 인지했으면 한다. 작은 규모였다면 모르겠으나 이제 수천 명이 함께하는 대규모 집단이 된 이상, 체질 개선을 통해 기본을 되찾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다. 로켓배송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것만큼, 흑자로 전환하는 것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고, 회사를 무(無)에서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의지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쿠팡은 이제 손에 쥔 것이 많아 잃는 것도 많은 상황이다. 그래서 나는 쿠팡의 체질 개선이 불가능할 것이라 본다.

 

요즘 쿠팡을 보면 어릴 때 했던 꼬리잡기 게임이 떠오른다. 여러 명이 한 팀을 이뤄 일렬로 줄지어 서고, 우리팀 맨 앞에 선 머리가 상대팀 맨 끝에 선 꼬리를 잡아야 이기는 게임.


그 게임에서 지는 이유는 보통 두 가지였다. 하나는 꼬리가 잡혔을 때, 다른 하나는 줄의 중간이 끊겼을 때다. 후자의 경우, 줄 앞편에서 방향이나 속도를 갑자기 바꾸니 뒷편에서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손을 놓쳐 줄이 끊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허무하게 줄이 분해되어 모두가 나동그라지고 나면, 앞편 친구들은 '조금만 더 하면 상대팀 꼬리를 잡을 수 있었다'며 아까워했고 뒷편 친구들은 '갑자기 급하게 따라가다가 놓쳤다'며 아까워했다.


그럼 우리는 천천히 움직여야 했을까? 천만에. 그랬다간 진다. 꼬리잡기에서 이기려면 팀원 모두가 발맞춰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그러자면 반드시 소통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우리는 결국 소통이 부족해서 졌던 것이다.

 

그럼 왜 소통이 부족했을까? 내가 앞편에 섰던 때를 돌이켜보면, 오직 '이기겠다'는 일념으로 내가 판단한 최선의 방향을 향해 이리저리 움직이기에만 바빴다. 뒷편이 어떨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알아서 잘 따라오겠거니 했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뒷편에 섰던 때를 돌이켜보면, 우리팀 머리를 믿지 않고 멋대로 움직이기 바빴다. 상대팀의 머리가 우리팀 꼬리를 잡으러 달려오는데 우리팀 머리는 어디로 가려는지 도통 알 수가 없어, 일단 무작정 도망가다가 꼭 앞편과 스텝이 어긋났던 것이다. 그야말로 완벽한 '불협화음'이었다.


언젠가부터 쿠팡은 그 '꼬리잡기의 실패'를 자꾸 떠오르게 하는 회사가 되었다. 김범석 대표가 맨 앞에 서서 성장과 혁신을 외치며 바로 뒤에 선 소수의 임원들과 함께 이리로 저리로 바삐 움직이면, 그들 뒤에 쭉 이어 선 수많은 직원들은 우리가 어디로, 왜, 어떻게 가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고 일단 앞에서 움직이는 대로 정신 없이 따라가는, 이대로 가다간 곧 줄이 뚝 끊어져서 모두가 나동그라질 그런 형국 말이다.

 


누군가는 '회사는 원래 다 그런 곳'이라며 이런 생각을 한심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원래 그런 것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또한 이런 조직 내부 문제와는 별개로 쿠팡이라는 회사는 앞으로 쭉 잘 나갈 수도 있다. 기실 대한민국에서 돈 잘 버는 대기업들 전부가 좋거나, 건강한 기업은 아니니까.


분명한 것은, 쿠팡은 더 이상 젊은, 새로운 문화를 선도할, 구성원이 자부심을 갖고 다닐 수 있는 회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굳이 정의하자면, 까라면 까고 더러워도 참고 머리로는 이해불가일지라도 몸으로는 실행해야 하는 한국 대기업 특유의 적폐와, 시시각각 변하는 업계의 미친 속도감과, 체계와 기준이 부족한 스타트업의 미숙함을 동시에 겪어야 하는 회사가 되었다.

 

김범석 대표는 "배를 만들고 싶다면 일을 나눠줄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바다에 대한 동경을 가르쳐라"는 생텍쥐베리의 말을 인용하며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했'었'다. 2012년 인터뷰에서였다. 지금 사무실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혹은 전국 곳곳에서 고객을 만나며 '배를 만들고 있는' 쿠팡의 직원들은 과연 바다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을까. 쿠팡의 바다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더 늦기 전에 쿠팡이 직원들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다.


킬리만자로의삵


편집 : 딴지일보 인지니어스



출처 http://www.ddanzi.com/ddanziNews/192723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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