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오토바이 불법 개조로 수사 중인 최민수가 기고한 글 전문. CALL TO WAR 사람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을 사용한다. 그러므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슬픈 일이다. 더 이상 잃어버릴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그들은 또 무언가를 잃어가며 살아간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텅 빈 가슴을 채우기 위해 고뇌하고 힘들어하며 헛된 시도를 반복한다. 그 상처 속에서 민감하게 반응하며 무언가 의미 없는 보상을 원한다. 치유되지 못한 외로움을 마음 속 깊이 숨겨둔 채...... 어느 순간부터인지 나는 시간이라는 숫자를 영혼의 무게로 저울질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 흉터는 바로 내가 큰 고통을 이겨냈구나라고 나를 다독이던 순간부터 말이다. 그 이후로 얼마나 많이 다치고 아파했었는지 ......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모든 것은, 그것이 고통이든, 기쁨이든 간에 나에게 뭔가를 말해준다. 인생 그 자체가 나에겐 깨달음의 스승 ...... 또한 기다림의 연속이다. 삶이란 수 없는 반복의 연속이다. 호흡과 호흡 사이에 목숨이 있듯이...... 無時路...... 길 위에는 시간이 없다. 외로움이라는 냄새가 고독이라는 향으로 변해가는 것을 알려주던 속삭임이 들린 적이 있었다. 단, 혼자 남겨져 있었을 때, 또는 세상에 하나 뿐인 존재라는 중요한 진실 앞에서 말이다. 거리의 찬바람이 바이크 엔진소리에 뒤섞여 고독한 자유를 일깨운다. 빽빽이 들어차있는 빌딩의 무게에 짓눌려 신음하는 도시를 떠나 無時路에 내 몸과 영혼을 맡긴다. 무수히 떠다니는 상념들이 바람의 펄럭임 속에 흩어진다. 내 몸에 붙어있던 번민의 흔적들이 자유의 입김에 흩어진다. 나를 지배했던 상실이라는 공간 속으로...... 바이크 안장 위에서 나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 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어가거나, 노을진 석양에 나를 물들이기도 하고, 이름 모를 곳에서 찐 옥수수를 먹으며 시냇가에 발을 담궈보기도 한다. 한적한 오솔길에서 낮잠을 청해보기도 한다. 그렇게 자유는 나를 감사의 땅으로 이끈다. 절제와 나를 덜어냄으로서 행복...... 그것이 바이크 안장 위에서의 묵묵한 깨달음이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은 더디긴 해도 산천을 벗 삼은 정겨운 길이다. 빠르다 해서 더욱 조급해진 세상에서 더디긴 해도 결코 느리지 않은 지름길이다. 태어난 것은 내 뜻과는 무관한 것이다. 하지만 내가 눈을 뜨고 세상을 보았기에 세상은 존재하는 것이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내가 없기에 세상도 없는 것. 그러기에 잠시 다녀가는 세상에 내가 얻어갈 그 어떤 것도 없다. 오로지 깨달음만 있을 뿐...... 만일 세상이 나에게 인도하는 그 무엇에 단1초라도 마음을 두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다. 500년 전이나 1000년 전에도 사람이란 다 같다. 부질없는 욕망을 찾아 끝없이 행진하는 무자비한 야만사회의 피조물들. 그러기에 사람은 많지만 사람이 없다. 흔한 일이야. 수없이 찢겨지고 상처 난 가슴에 깊숙이 굳은살이 배어있다. 더 이상 세상에 깜짝 놀라고 당황할 일이 없다. 허망과 절망이라는 낭떠러지에 발을 헛디뎌 그 나락에 떨어져도 해줄 말은 하나다. “흔한 일이야.” 인생의 끝자락에서 오래 전부터 나를 기다리던 죽음이라는 친구와 만나 돌아올 수 없는 망자의 강을 건너더라도 하얗게 뿜어내는 담배 연기 사이로 미소 지으며 해줄 말은 하나다. “흔한 일이야.” 영롱한 영혼만이 내가 가진 전부. 영혼의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렇게도 내가 소유했다고 생각했던 것들, 내 곁에 머물렀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떠나 보낼 수 있다는 집착을 초월한 무소유의 또 다른 성숙함이다. 사육된 표범보다는 길들여지지 않은 들개가 더 행복한 법. LICAON 나의 영혼의 또 다른 이름이다. 형제들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 고난을 이겨내야 할 운명의 핏빛 이름이다. 자연의 일부로써 소중히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일깨워 주는 이름이다. 그릇된 비리에 직면 했을 때 존엄성이라는 처단의 칼을 들어야 할 이름이다. 확고한 의지와 무한한 자비로움의 이름이다. 綠 山 올림. 오토바이불법개조해서 경찰에 고소 당한 주제에...참...말이 길다. 주제가 없어....뭔 소리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