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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개독에 대응하는 춘성스님 또다른 일화
게시물ID : humordata_71296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좋은데이-
추천 : 10
조회수 : 1452회
댓글수 : 12개
등록시간 : 2011/01/15 21:05:48
베오베에 춘성스님 얘기있길래 다른 일화도 올려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스님 괴승이긴 하지만 만해 한용운스님(다 아시죠?) 직계제자임
아무튼 괴승은 괴승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첫번째 사진이 만해 한용운
두번째 사진이 춘성스님임


만해 한용운스님의 제자 춘성 (春城 1891~1977)스님의 일화  





1.  박정희 대통령 재임 시절, 어느 날 춘성 스님은 육영수 여사 생일에 

초대되어 간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불자인 박 대통령과 육 여사가 

법문을 청하자, 춘성 스님은 마이크  앞에 아무런 말도 않고 잠자코 있었다. 

30분이 넘어서 결국 참가자들의 기다림이 한계점에 이르렀을 때 춘성 스님은 

갑자기 법문 한 마디를 하였다.  

   “오늘은 육 영수 보살이 지 애미 보지에서 응아하고 나온 날입니다.”  

듣고 있던 대중들은 영부인의 생일에 한 이 법문에 놀라 서로 얼굴만 

바라보고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러나 스님은 아무 표정 없이 "할"을 할뿐이었고 

육여사 또한 스님의 법력을 아는지라 미소를 보였다.

    또 한번은 어느 때 육여사가 춘성스님이 큰스님임을 깨닫고 뵈러갔었는데, 

"나와 연애 한  번 하자.'고 말을 하니, 육여사가. " 몸과 마음을 바쳐 

불사에 힘쓰겠다,'고 하고는 이 사실을 박대통령에게 알리니

"불교계에 큰스님이 났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역시 도란 평등심에서 나온다. 높은 사람이라고 해서 도가 높은 것도 아니고, 

천한 사람이라 해서 도가 없으라는 법도 없다. 이 세상은 공평하다. 

50이 넘어서 흰머리 안 나는 사람이 없고, 태어날 때 울지 않는 자가없고, 

그리고 똑같이 이 세상을 한 번 왔다가는 것이다. 이만하면 ,그 콧대 높은 

부인네들에게 얼마나 좋은 무상법문을 해준 것인가,

  

 

 

 

 

 

 

 

 

 

 

2.  야간 통금이 있던 시절, 방범순찰을 하던 경찰관이 밤길을 가는 행인을 

보고 누구냐고 묻자 

    "중대장이다"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순경이 풀래시로 얼굴을 비춰보니 중대장이 아닌 어떤 스님이었다.

     "아니, 스님이 아니시오?"하고 묻자, 춘성스님 왈, 

     "그래, 내가 중(僧)의 대장이다"

3.   춘성스님이 금강산 유점사에서 수행하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스님은 정진 중에 사정없이 몰려오는 졸음을 물리치기 위해 비장한 결심을 했다. 

     스님은 법당 뒤 빈터에 구덩이를 파고 그 자리에 큰 항아리를 묻은 다음, 

그 항아리에 냉수를 가득 채웠다. 엄동설한, 자칫하면 항아리에 가득 찬 냉수가 

얼어 항아리가 터질 지경이었는데, 춘성 스님은 참선수행을 하다가 졸음이 

밀려오면 옷을 훌렁훌렁 벗어 던지고 그 찬물 담긴 항아리 속으로 들어가서 

머리만 내밀고 앉아 정진을 했다. 

발가벗고 항아리 속에 들어 앉아 참선하면서 춘성 스님 은 쾌재를 불렀다. 
     “허허! 이제야 졸음한테 항복을 받았다!”




 

수행자로서 춘성 스님은 참으로 무서운 분이었고 서릿발 같은 분이었다. 

도봉산 망월사에서 참선 수행을 할 적에 젊은 수좌들이 담요를 덮고 자다가 

춘성 스님에게 들키면 그 자리에서 벼락이 떨어졌다고 한다.
“수행자가 편하게 따뜻한 잠을 자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야 이 씨부랄 놈아. 그 담요 당장 이리 내놓아라!”  

춘성 스님은 기어이 젊은 수좌로부터 담요를 빼앗아 그 자리에서 불태워 

버렸다고 한다. 그토록 수행에 철저했던 분이 바로 춘성이었는데, 

서울 근교 어느 비구니 사찰 중창불사를 위한 법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파격적인 법문을 남기기도 했다.
“시집 장가가는데는 보지와 자지가 제일이 듯. 중창불사 하는데는 

돈이 제일이니 오늘 이 법회에 온 년들아, 돈 많이 시주하고 가거라!”  





 

 

 

 

 

 

 

4.  하루는 제자가 춘성스님에게 이렇게 질문을 했다.

   “스님 백척간두에서 다시 한발을 더 내디면 그 다음 경계는 어떤 것입니까?” 
   “야 이자슥아, 내가 떨어져 봤어야 알지.


5. 춘성 스님이 입적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후학이 스님에게 물었다.  
열반에 들어 다비를 하고 난 후, 스님의 사리가 안 나오면 

신도들이 실망 할텐데요? 

   "야, 이 시발 놈의 자슥아!  내가 신도 위해 사냐?" 

 

   스님은 입적 후에 절대로 사리를 찾지 말고, 비석과 부도도 세우지 

말 것이며, 오직 수행에만 힘쓰라고 당부했다.  투철한 수행과 일반인의 

눈에 특이하게 보이는 기행으로 한 생을 살다 간 그를 보내는 날 밤, 

후배 선승들은 다비식장에서 그가 생전에 즐겨 불렀던 

  <나그네 설움> 등을 부르며 노래자랑을 벌였다고 한다.  

 

   無碍탕탕한 大 自由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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