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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마디 비명과 함께 거인이 무릎 꿇는다. 녀석은 더 이상 서 있을 힘조차 없는 듯 등을 한껏 구부린 모습이었다. 그 큼지막한 입안에서 진득한 피가 베어나오고 상처입은 녀석의 얼굴이 있는대로 찡그러졌지만, 그 눈만은 성난 짐승같이 무섭게 빛나고 있었다. 무엇이든 찢어발길듯한 기세로 눈 앞에 어른거리는 상대를 향해 매섭게 손을 내뻗는다. 그러나 그 기세에 비해 돌아오는 건 상처 뿐, 거대한 팔을 피해 달아난 상대는 검을 휘둘러 녀석의 팔에 더 큰 상흔을 입혔다.
그는 거인 만큼이나 매서운 눈빛을 아니, 거인과 같은 짐승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사내는 스스로 거인의 품 안으로 뛰쳐들어갔다. 그리고는 그 거대한 검을 녀석의 아랫턱에 쑤셔넣었다. 곧 피가 분수같이 솟구치고 길길이 날뛰던 녀석은 잠시 뒤 사력을 다한 듯 그 거대한 몸을 앞으로 고꾸라트렸다.
그들의 싸움을 앞에서 지켜보았던 농부는 할말은 잃은 표정이었다. 그저 하얗게 질려선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아버렸다. 그는 쓰러진 거인 앞에서 꿈을 꾸는 듯한 표정되어 한참 동안이나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 솜씨가 썩 괜찮군.
양손 검을 등 뒤에 자연스럽게 꽂아 넣은 사내가 나에게 건낸 첫마디였다. 그러나 그의 그런 칭찬에도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없었어도 그들 스스로가 거인을 잘 처리 했을테고 무엇보다 거인과 육탄전을 벌이며 싸우던 그의 모습이 실로 대단했기에 살짝 긴장한 탓도 있었다. 내가 말없이 돌아서려하자 이번엔 뜻밖의 상대가 나를 불러 세웠다.
얼굴에 특이한 문신을 하고 있는 붉은머리 여자, 그녀는 등 뒤에 장궁을 메고 있었다. 거인에 눈을 꿰뚫은 화살의 주인은 아마 그녀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발걸음을 멈춘건 단순히 그녀의 활솜씨를 떠올려서가 아니었다. 그녀가 내게 뭔가 제안하는 듯한 이상한 소릴 내뱉었기 때문이다.
"방패형제?"
그들은 잘 모르겠다는 듯이 되묻자 그들은 전에 레일로프가 그랬던 것 처럼 나를 별천지에서 온 사람 같이 보았다. (특히나 짐승같은 사내는 뭐가 그리 놀라운지 코까지 벌름거리며 나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아무래도 스카이림 내에서 유명한 집단같지만 내 머릿속엔 없는 정보이기에 솔직하게 반응한 것인데 그들이 오히려 이렇게 놀랄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보다 그녀는 사실 내게 다른 의문이 있는 듯 했다.
- 아니, 아니! 컴패니언에 대해서 모른단 말인가……? 그럼 뭣 때문에 이 거인을 상대했지?
낯선 농부가 위험해 보여서……. 라는 말은 조금 이상했을까? 나는 무엇보다 이들이 화이트런의 유명한 용병대이고 방패형제가 거인을 처리하게 위해 고용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화이트런의 영주가 거인의 습격을 듣고 그들에게 거인을 처리하라 지시한 것 같지만 난 그 사례금을 가로채거나 단순한 명성을 위해 덩치 큰 거인에게 화살을 박아 넣은 건 아니었다. 지난 날 만났던 도망 농노였던 산적들이 떠올랐기에, 혹은 겁없이 그 거대한 괴물 앞을 막아선 농부의 두 어깨가 몹시 무겁고 위태로워 보였기 때문에, 결국 도망친 산적들과 달리 포기하지 않는 그를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었다.
- 당신은 이방인인가?
이 사내는 나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많아 보인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조금 전 부터 대답없이 앞만 보고 걷는 내게 사소한 말을 걸어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봤을 때는 입이 무거운 사내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는 내게 묻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지 멀찌감치 앞서 걷는 동료들을 무시하고 내 옆에서 계속 꾸준하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는 처음엔 내가 어디서 왔는지 물었고, 활은 누구에게서 배웠는지, 나중엔 심지어 등 뒤에 병장기(무쇠망치)를 꺼내 휘두르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겠냐고 말해 나를 난감하게 했다.
- 너는 강해, 요르바스크로 와, 그리고 컴패니언이 되라고!
이미 내 얼굴은 있는대로 붉게 달아 올랐다. 사실 내가 칭찬에 약한 편이라는 것도, 쑥쓰러움이 은근 많은 편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지만 이런식으로 옆에 착 달라붙어 칭찬세례 퍼부어대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보이기 싫어 있는대로 고갤 숙이고 앞만 보고 걸었지만 내 뚫린 귀 만은 어떻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참다 못한 끝에 결국 난 그의 입이 열리기 전에 먼저 말을 걸었다.
"당신도! 당신도 잘 싸우더군요. 이제 그만하세요. 그만……."
내 이 한마디에 그의 얼굴이 술이라도 취한 것 처럼 벌겋게 달아오른다. 그리곤 그의 입이 거짓말 처럼 닫혔다. 그 순간 나도 알 수 있었다. 이 사내도 칭찬에 약하다는 것을, 잘 싸운다는 한마디에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선 할말을 잃은 것이다. 나는 순간 장난 가득한 생각이 떠올랐고 복수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정말 날쌔시더군요! 게다가 거인을 향해 용감무쌍하게 대검을 휘두르시던 모습! 농부가 위기에 처하자 불의 참지 못하고 위험에 뛰어들어 그를 구하시는 그 용맹함까지!"
내 말 한마디 한마디가 끝날 때 마다 사내의 발걸음이 빨라졌고 나중에는 거의 달리 듯이 보폭을 빨리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라, 어디 가시나요! 컴패니언의 위대한 전사님!"
방패형제, 호위자매 혹은 컴패니언 이라고 불리는 그들과 화이트런 성문 앞까지 함께 걸었다. 그들은 나에게 화이트런 안의 이런저런 소문들과 필요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상점 위치, 그리고 그들의 자랑이라는 스카이포지에 관해서까지 알려주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계속 하며 성에 입성 할 때 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리고 말았다.
독특한 이방인들 이었다.
칭찬에 약한 사내 파르카스는 그들을 문슈거나 그를 이용해 스쿠마를 만들어 판매하는 마약 밀수꾼이라 조롱했고, 사냥꾼 에일라는 스톰클락 군[軍]과 임페리얼 군[軍]의 전쟁 이용해 돈을 버는 무기 상인이라고 말했다. 내가 보기에도 둘다 틀린 말 같지는 않아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조롱과 괄시에 참여 하지는 않았다. 나는 파르카스와 사냥꾼 에일라에게 물건에 관심이 있어서 둘러보다 가겠다고 말하곤 그들과 헤어졌다. 사실은 다른 이유에서 였지만, 설명하기 어려웠다.
천막 앞에 돗자리를 펴고 앉은 카짓 남성은 나를 보며 손님에게 하는 의례적인 인사를 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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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모든게 다 끝나면 나와 바다에 가자. 어때?
바다라니, 그게 뭐지?
-바다를 모른단 말이야? 죽기 전에 한번 쯤 볼 만한 풍경이지.
뭐, 죽기 전에? 어떻게 생겼는지 말은 해줘야지 가볼 마음이 생기지!
-그래, 좋아! 거대한 물웅덩이를 생각해! 끝 없이 펼쳐진 물 웅덩이를 말이야!
그런게 있단 말이야?
-물론!
거짓말 아니야?
-내가 늘 말했잖아!
- 나를 믿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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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봐, 정신차려.
어지럽다. 카짓 행상인 리'사드와 잠자코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도 모르게 순간 딴 생각을 하고 말았다. 그는 걱정스런 얼굴로 바라보았다. 내 얼굴이 너무나도 창백하다고 이야기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전에 레일로프도 내게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나는 바짝바짝 바르는 입술을 벌리고 그에게 괜찮다고 말하며 조금 전 부터 듣고 있던 이야기를 좀 더 물어보았다.
"……다. 그러니까, 바다가 있다는 말씀이시죠?"
순간, 깊고 아름답게 빛나는 그의 눈이 스카이림의 얼음 산맥을 향했다. 하지만 그의 두 눈은 사실 보다 먼곳을 보고 있는 듯 했다. 그는 내 말에 다시 한번 고갤 끄덕이면서 자신의 머나먼 고향 땅을 소개했다. 카짓의 고향 엘스웨어에 관한 이야길 듣고나니 나도 모르게 깊은 숨이 새어 나온다. 이 카짓 행상인은 내게 바다가 있다고, 정말 반짝이는 그 거대한 웅덩이가 실제 한다고 이야기 한 것이다. 사실, 내가 왜 이 이야기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는지도 어째서 그 바다라는 것에 대해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