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도의 기원이 과거 유럽이나 일본의 마상 창 시합, 특히 여기사들이 귀족으로서의 기품을 가다듬기 위해 실시한 시합에서 유래하였다는 사실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이후 전차가 발명되고, 전차도가 발생하면서 이러한 전통은 이어져 지금까지도 보편적인 여성 스포츠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전차도를 하는 모습. 사진은 일본의 현립 오이라이 여학원.
한편 한국에서도 서양에서 기사라도 할만한 기병이 존재하긴 했지만 국가적으로 학문을 숭상했고, 점점 시대가 흐르면서 화포와 성 중심의 전투방식이 조선에 자리잡으면서 전차도에 바로 이어질만한 전통이 끊어지게 된다. 현대 대한전차도연맹에서는 신라 화랑이나 고구려의 개마무사 등을 전차도의 기원이라고 소개하지만 사이 시대적 간격이 너무 넓어 직접적인 전차도의 선조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한국 전차도 연맹. 연맹은 정치에 적극적으로 목소리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전차도와 비슷하지만, 다른 여성 스포츠가 있었으니, 비록 지금은 인기가 떨어져 대회의 크기는 작아졌지만 지금까지도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일명 화포술火砲術, 혹은 화포도火砲道라고 불리우는 무예가 바로 그것이다.
화포술은 양편이 각각 화포를 가지고 정해진 지점을 타격함으로서 상대의 진영의 위치를 계산하고 파악하여 먼저 공격하는 것을 규칙으로 삼은 무예이다.
턴제 게임으로 땅을 두 영역으로 나누어 여러 화포와 본진을 배치하게 되는데, 이때 본진은 반드시 화포 사이에 있어야 한다. 각각의 차례에 화포를 쏘게 되면 이를 관측하고 역계산하여 적 화포의 위치를 파악하고, 각 화포 사이의 영역을 계산하여 본진을 치는 것을 목표로 둔다.
이를테면 마치 바둑과 같이 돌을 놓고 땅을 차치하면서 적을 물리치는 것인데, 장기와 같이 쉴세 없이 몰아치는 전차도와 달리 잔잔하게 움직이는 것을 미덕으로 삼은 화포술은 조선 선비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동이라 불릴 정도로 활과 친숙했던 우리 민족은 임금부터 천민까지 활을 다루기를 덕으로 여겼기 때문에, 활과 같은 원거리 타격무기인 총과 화포 역시 백성들 사이에 녹아들었다.
조선의 한 여성이 활을 쏘고 있다.
이중 총과 같은 경우 현대에 이어지는 국궁과 같이 과녘을 놓고 그것을 맞추는 것으로 시합이 발전했다. 반면 화포의 경우에는 초기에는 군사 훈련의 일종으로 활과 같이 과녘을 두고 이를 맞추는 것을 본으로 삼았으나, 당시 명나라에서 화포를 마치 바둑처럼 두는 무예가 들어와 크게 성행하게 되었다.
특히 수군에 화포가 들어서게 되면서 더욱 전략적인 화포술이 가능하게 되었고, 임진년 이전 군사를 조련하기 위해 이순신 제독이 화포술을 정립한 이후 육전화포술과 수전화포술이 나뉘어 이어지게 된다.
당시에는 화포술이 남성만이 향유하던 스포츠였다. 그러나 전쟁 이후 모자라는 인재를 채우기 위해 조정에서 여성들에게 화포술을 가르치게 되었고, 여성 선비들이 나라와 조정에 충성하고 가정을 화목하게 지킬 수 있는 덕목을 기를 수 있는 방법으로 궁술과 화포술을 꼽아 보급하게 되면서 점차 여성의 스포츠로 변하게 된다. 이는 화포가 후방에서 전방에 나서 적을 대면한 이를 지원하기 위해 쓰인다는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당시 나서서 싸우는 남자를 뒤에서 내조하라는 의미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었다.
이렇게 길러진 여성들은 급격하게 보수화된 유학에 맞서 개화된 유학을 주장하게 되었다.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긴 조정에서 탄압하면서 일시적으로 주춤하게 되지만 전국적으로 화포술은 퍼져 각 고을마다 고유의 방법이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보급된 화포술은 국조가 기울어 외세가 침입하자 일어선 의병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의병에 이어 결성된 독립군 내부에 화포를 다루는 이는 여성이 주가 되어 민족 독립을 위해 힘쓰게 되었다.
광복 이후 독립군이 돌아오면서 화포술 역시 돌아오게 되었지만 일본이 도입한 전차도와 경쟁하면서 발전하게 된다.
이후 군사정권 아래에서 예비 군사를 기르기 위한 목적으로 화포술과 전차도는 이용되었으며, 특히 5공 시절 프로 야구, 프로 축구 등과 함께 프로 전차도 시합과 프로 화포술 시합이 발족하면서 최전성기를 이루게 된다.
5공시절 3S정책의 일환으로 프로야구, 축구, 전차도, 화포술 등이 열렸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전차도와 화포술은 군사정권의 잔재로 지목되어 급격하게 쇠퇴하게 된다. 21세기 이후 두 스포츠는 민족 무예와 세계 스포츠 양성이란 목적으로 다시 부활하게 되지만, 세계적인 시장이 있고, 비교적으로 시합의 전개가 빠른 전차도와 달리 중국과 한국을 제외하면 시장이 전무하디시피하고, 상대적으로 잔잔하고 지루한 화포술은 이전과 같은 모습을 갖추지 못하게 되었다.(이때 종종 체스와 바둑이 인용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포술은 자주포를 도입하여 전차도와 같은 규칙을 도입하게 되고, 안전포탄의 발전과, 세계적인 보급 사업 시작, 전자계측기의 도입 등으로 차츰 발전하고 과거와 같은 유명세를 회복하고 있다. 특히 냉전이 끝나고 한중 화포술 대회가 시작하면서 세계 각국이 화포술을 도입하기 시작하였고, 전차도와 같은 여성스포츠로서 많은 학원함과 국가에서 화포술을 배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