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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던져진 삶. 앎. 죽음
게시물ID : phil_1562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pinoche
추천 : 0
조회수 : 299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7/08/02 03:04:20
목적에 의한 탄생 -> 목적에 맞게 쓰임 -> 죽음 (폐기, 재활용).

인간이 만든 것의 대부분이 위의 과정을 거친다.

의, 식, 주, 문화.. 최초의 생산자의 목적과는 다른 변수가 생겨 다른 목적에 쓰임이 생길 지언정 (특히 문화부문) 위의 커다란 틀은 지켜진다.

입으라고 만든 옷을 장식하거나, 먹으라고 만든 음식을 가지고 연료를 만든다거나, 살라고 만든 집을 가지고 재산으로 소유만하거나, 

읽으라고 만든 책을 라면 받이로 쓴다거나..etc..<--변수들..


중요한 것은, 쓰임당하는 것의 의지와 관계없이 쓸 수 있는 유일한 예외는 인간밖에 없다는 것이다. (좀더 솔직하게 이야기 하자면 '나'이다)

삶의 비극은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거나 자각하더라도 절망할때 발생한다.

즉, 나라는 존재는 애초에 목적없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다른 인간의 목적에 의해서만 쓰임을 받는 존재로 전락)

나라는 존재는 애초에 목적없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지만, 유일한 예외에 대한 두려움에 의한 절망감을 갖는것. (타인의 생각에 매몰됨
여기서 타인의 생각에는 관습, 문화, 철학, 종교, 사상,,등 사유에 의해 발명할 수 있는 모든것을 말한다)

나는 위의 두가지 상태가 '비극'이라고 느낀다. 만약 '희극'이거나 '그게뭐?' 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음...모르겠다.. 


그러면, 내던져진 삶을 인정한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먼저, 한계 시간을 자각한다. (대략 내 수명을 70 ~ 90 사이라고 본다)
둘, 한계 공간을 자각한다. (무한한 우주->여러은하->태양계->지구->대한민국->서울, 최대 범위를 지구로 한정 짓는다)
셋, 알아서 산다.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나를 포함한 인간으로 태어난 동료들이여)

나는 셋을 위하여 자유에 대한 의지와 앎을 추구하는 태도를 지향한다.

그중에서 앎을 추구하는 좋은 태도는 '세상에 고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타자의 목적이 아니다.'라고 기본 설정을 하고..

4개의 기준 혹은 방법을 따르는 것이다.

1. 내생각에 고정 되었다고 느껴지는 것 (이것이 답이다.)이 현재 나의 앎의 범위.(한계)

2. 아예 모르겠다고 느껴지는 것 혹은 알았다고 생각되지만 바꿀 매력을 느꼈거나, 바꿔야 한다고 절박해 지는 것이 앎에 대한 가능성.

3. 더 나아갈 동력이 없거나 생각할 수록 머리만 아픈 것을 체념(미뤄두거나 의식에서 멀게 만들기)

4. 가끔 의식적으로 흐트리지 못하는, 놓지 못하는 생각들을 랜덤화 시켜주기 위한 음주.


끝으로,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거대한 우주속에 먼지와 같은 나. 백 몇십억년의 우주시간 속의 찰나 같은 나.

수천억개의 세포와 원자로 이루어진 뭔가 경이로운 나.

즉, 거대하다면 거대한 작다면 작디 작은 이 세상에서 나는. 어디까지 인지 할 수 있는가, 어떤 것에 집중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절망과 고통은 가급적 피하거나 짧았으면 싶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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