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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아라드 괴담 - 略式百物語 #. 다섯 번째 이야기
게시물ID : dungeon_66521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Fathance
추천 : 4
조회수 : 29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8/06 00: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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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다크로드의 이야기

 그는 자신의 앞에 한창 심지를 태우고 있는 초 하나를 두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귀수가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선택이 여러 개 있는 건 알지? …아, 정상적인 걸 말해, 이것들아. 멀쩡한 팔을 왜 잘라? 속세와의 인연을 끊어? 너네 내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 있기는 하냐? …그래, 그래. 정상적인 거 말해줘서 고마워.
 할 수 있는 선택들. 그냥 변화 없이 사는 것도 있고. 검 쪽으로 갔다면, 나처럼 순수한 검술을 쓰는 웨펀마스터가 있고. 미친…아니, 그러니까, 카잔 증후군에 걸려서 폭주하는 버서커. 구속구를 풀고 귀신을 부리는 소울브링어. 파동을 쓰는 아수라. 보통 이렇게 있잖아. 그중에서 귀신과 가장 가까운 게 소울브링어인 건 알지?
 일단은 그냥 귀수만 있어도 귀신은 볼 수 있어. 그냥 보는 것을 넘어서 귀신과 소통하고, 부리기까지 하는 게 소울브링어니까, 귀신과 가장 가깝겠지. 그런데 나는 그 길만큼은 절대 가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 그 생각은 지금도 그렇고.
 그럼 지금부터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됐는지, 알려줄게.

 내가 아직 웨펀마스터가 되기 전에 만난 다크로드가 있었어. 뭔가 많이 피곤해 보이고, 그리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그런 사람이었지? 뭐라고 해야 하나, 꼭 걸어 다니는 시체 같은 느낌? 그랬었어.
 어쩌다가 그 녀석이랑 대화를 하게 됐는데, 아마 그 녀석이 먼저 말을 걸어왔던 거 같아. 나야 뭐 가던 길 가고 싶었는데, 다 죽어가는 사람 마지막 말 들어준다는 기분으로 듣고 가라고 하길래 그냥 들어줬거든.
 그 녀석은 소울브링어라는 것에 대해 말해줬어. 그다지 알고 싶진 않았지만, 귀신과 소통하는 법이나 귀신을 부리는 법도 말해주고, 그렇게 귀신을 부리다 보면 귀수에 귀기가 쌓인다는 것도 알려주더라고. 그리고 그렇게 귀기가 쌓이다 보면 엔간한 잡귀는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하게 된다고 했고.
 귀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귀기가 너무 강해서 귀수에 흡수되어 버리니까, 성불을 할 수 없게 된다고 했어. 그런데 그게 절대 그냥 흡수되는 게 아니더라. 그러니까, 그, 사람으로 치자면 엄청나게 비명을 지르는 거라고 해야 하나? 그렇대.
 그야, 그렇게 성불도 못 하고 다른데 흡수되는 게 귀신에게 있어서 원하는 결말은 아니었을 거 아냐. 그래서 엄청 소리를 질러댄대. 뭐, 그런 걸 사념이라고 하나? 그런 걸 귀기에 잠식될 때까지 내뿜는 거야. 당연히 계속 뿜어지면 제정신으로 버티질 못하겠지. 보통은 금방 귀기에 잠식돼서 조용해진댔어.

 그런데 말이야, 그 녀석은 아니더라고. 사실 계속 얘기를 들을 때 좀 많이 이상했거든. 말을 더듬는 건 그렇다고 치더라도, 계속 어디까지 말했는지 묻고, 중간중간 이상한 말도 많이 했었거든. 그래. 그 녀석은 자기가 잡아먹었던 잡귀 때문에 미쳐가고 있었어.
 뭐, 그런 게 잡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 귀신은 귀수에 흡수되면서 비명을 질러댔대. 평소처럼 얼마 안 가서 조용해지겠거니 싶었다는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조용해질 기미가 보이지를 않았댄다. 조용해지긴커녕 점점 더 시끄러워졌고, 더 끔찍해졌대. 아니, 끔찍해지다 못해 온갖 저주의 말들을 퍼부었다고 했어.
 당연히 그런 말들이 밤낮없이 머릿속을 울려대면 제대로 쉴 수조차 없었겠지. 그렇다고 이미 귀수 속으로 흡수된 귀신을 끄집어낼 방법도 없어. 소리를 없앨 방법도 없어. 귀기가 더 짙어지면 괜찮아질까 했지만, 그것도 아니야. 정말이지 아무런 수가 없었다고 해.
 그 녀석이 나한테 얘기를 건 그때는 이미 한계에 달해있었어. 자기 얘기를 하던 도중에 갑자기 눈이 공허해지면서 한참 동안 '어째서' 라거나, '사라져' 라거나, 온갖 말들을 다 말하기도 했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더럽게 무서웠는데 자리를 피했다가 그 귀신이 나한테 붙거나 정신이 훅하고 가버린 그 녀석이 나한테 달려들면 어떡해. 무서워도 그냥 있을 수밖에 없잖아. 아니, 진짜 무서웠다고.
 뭐, 그렇게 한참 동안 중얼거리다가 정신이 돌아오면 고개를 푹 숙이고는 또 한참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그 양반은 이래저래 제정신이 아니었어. 아마 그만큼 정신적으로 몰려 있던 거겠지.

 하여튼, 그 녀석이 내게 해준 이야기는 거기까지야. 이젠 더이상 방법이 없다는 것. 거기까지 말하고 또 뭔갈 말하려던 차에 갑자기 머리에서 피를 뿜어내면서 쓰러졌어. 그 상태로 조금, 몇 번인가 움찔대더니 그대로 바닥에서 올라온 손들에 붙들려 땅속, 그러니까 명계로 끌려갔어.
 그리고 그 녀석의 몸이 완전히 땅속으로 사라지기 전 그 녀석의 상처에서 무언가, 연기처럼 생긴 게 빠져나왔어. 그 무언가는 어마어마한 비명소리를 내지르면서 하늘로 올라가 사라져버렸어.
 그것이 아마, 그 다크로드를 죽을 때까지 정신적으로 몰아붙인 거였겠지.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의 앞에 있는 촛불을 불어 꺼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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