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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초등교사입니다.
게시물ID : sisa_97372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감기
추천 : 15/31
조회수 : 1914회
댓글수 : 35개
등록시간 : 2017/08/06 02:21:52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서울에서 초등교사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실 제 입장에서 현 사태에 대해 입을 열기란 쉽진 않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되는데

굳이 긁어 부스럼 만들어서 머리에 덮어쓰게 생겼으니 말입니다.

세가족의 가장으로 오늘도 남은 통장잔고를 보면서 한숨을 쉬면서도 어느새 인터넷 기득권이 되어버린 제가 속된말로 웃프면서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네요.

저는 여러분들은 아마도 읽어보지 못했을 댓글에서 썼다시피 교대생의 입장을 지지합니다.

거창한 이유는 없습니다. 열띤 토론을 펼치자면 서로 할 말이 있을 양측이겠지만,

어차피 눈감고 가만히 지나가면 상관 없을 지도 모르는, 먼저 운좋게 교사를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직장의 안정성 만큼이나 취업기회의 안정성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년에 만일 서울시 공무원 선발을 1/8로 줄이고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시위를 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해보았습니다. 

물론 인구가 줄어든다는 단순논리로 그럴 수도 있어라고

가정하기에는 교사라는 상대적으로 작은 집단에 비교하기가 좋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허나 어쨌든 국민들의 반발이 이만큼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일 노량진의 서울임용준비생들이 시위를 한다면 임용준비생들을 향해 돌을 던질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친구나 가족이 응시하기 때문에, 혹은 크게 뒤를 봐줄만한 소위 빽도 없는 사람들이

안정적인 직장을 가질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 때문에 그들의 절박함을 알기 때문에 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공무원 시험은 아무나 볼 수 있지만 임용시험은 교대 졸업생만 볼 수 있으므로 불공정한 비유일 수 있습니다. 

허나 교대생들은 다른 직업을 가질 기회를 교대가 주는 교사가 될 기회와 바꾼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교대입학은 

특정 계층만 할 수 있도록 막아둔 적이 없습니다. 교대 입학은 초등교사가 될 수 있는 일련의 과정과 같은 것입니다.

교대가 뭐 그리 대단하다는 뜻이 아니라 현실이 그렇다는 뜻입니다.

인구는 내년에 1/8로 줄지 않습니다. 초등입학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부가 이런식으로 인력 수급을 조절하는 것이 저는 옳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대생을 줄이는 것 처럼 계속 지속적으로 줄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어느 특정한 집단과 세대에게 그 책임을 몰아서 전가 시키는 것은 

시대를 먼저 살아온 집단으로서의 도리라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압력은 대상이 소수 집단일수록 더욱 가혹하기 쉽습니다.

교대생을 향한 가장 날카롭고 아픈 화살이 이기심이라는 단어 입니다.

교대생은 특별히 이기적이지 않습니다. 절대 탁월하게 도덕적인 것도 물론 아닙니다.

제가 교사 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은 교사들의 도덕성은 딱 보통 사람 수준이라는 점입니다. 유감일 수도 있겠고 다행일 수도 있겠습니다.

도덕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하겠지만 그 평균을 치자면 거기서 거기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도덕적인 교사가 스스로 되도록 노력할 

따름입니다. 

저는 어느 집단에게 평균 이상의 도덕성을 강요하는 것은 매우 가혹하다고 생각합니다.

왜 교대생이라고 해서 가고 싶지 않은 지역의 교사자리를 선뜻 받아들여야 하는지, 그렇지 못하면 사명감 투철한 참교사가 되지 못하는지

본인들도 취업했을 때 쉽사리 감당 못할 일들을 주장하는지 저로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교대생들도 여러분 만큼이나 좋은 직장을 선호하는 보통 사람입니다. 

제가 파악한 여론의 핵심은 취업이 어려운 시대에 교대생들의 자리가 보장된 것도 없는데 말도 안되는 취업보장을 주장하지 말라입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줄여야 하지만 천천히 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대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정부와 여론과 여러분이 모두

돌을 던질거라면 교사만 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특수목적대라는 허울 좋은 굴레를 씌우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만일 국가의 미래가 너무나도 불확실하고 불안하다면 국민의 책임이 없진 않습니다만 

국민만의 책임이라고 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꼬우면 이민가던가 아니면 성공하던가 라고 주장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비난의 화실을 피하긴 역시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미숙한 교대생들의 언행이 도마에 올라 난도질 당하는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교대생들의 잘못된 언행이 있으면 응당 비난받아야 할 것입니다. 허나 지금의 문제가 교대생들의 이기심이 모든 것의 전부인 것 처럼 비춰져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다방면으로 이해해 주시고 격려를 구하긴 어렵겠지만 합리적으로 질타해주신다면 

아마 교대생들에게도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여러분들이 지방교육여건 개선, 교직문화 적폐청산 등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신다면

교대생의 이기심을 비난하는 것 보다 교원수급 불평등 해소에 훨씬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지금의 사태가 단지 저같은 사람이 상대적으로 편하게 취업을 하였음으로 인해 

별상관 없는 후배들이 더 가혹하게 돌을 맞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모쪼록 쉽지 않은 방법으로 긴 대화를 통해 잘 해결되었으면 합니다.

오유에서 글을 이렇게 긴장하면서 올리게 될 줄 몰랐습니다만, 조심스럽게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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