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집은 집에서 차로 2시간 떨어진 곳에 있다. 농가이지만, 뭐랄까 그런 분위기가 나는 좋았기 때문에, 고등학교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혼자서 놀러가는 일도 많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우리 새끼 왔어?"라고 반갑게 맞아주셨기도 했고,,,
하지만 마지막으로 간건..고등학교 3학년 올라가기 직전이었으니까...거의 10년이상 가지 않았다.....
아니다! "가지 않았다"가 아니라 "갈 수 없었다"가 맞는 말이지만...내가 갈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일 때문이다.
봄 방학이 시작되고 바로, 오토바이를 타고 할아버지네 집으로 갔다. 아직 추웠지만 할아버지 집 툇마루가 따스하게 느껴져, 그곳을 잠시동안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포포~포폿포~포~폿~]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기계가 내는 소리가 아니고, 사람이 내는 듯한 그런 소리였다. 탁음과 반탁음이 확실히 귀에 들리는 느낌이라 얼핏 소리나는 쪽을 쳐다봤더니 울타리 위에 올려져 있는게 아닌,옆으로 이동하는 모자를 보았다. 그리곤 그 모자는 담이 갈라지는 지점까지 가더니, 이윽고 한 여성이 보였다. 그 모자는 그 여성이 쓰고 있는 셈이었다. 그리고 여성은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울타리 높이가 2미터 정도인데..그 울타리 위로 머리가 보일 정도면 어느정도 키가 큰 여자야??"라고 놀라고 있는 와중에 그 여성은 다시 이동해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물론 모자와 이상한 소리도 함께...
그 때는 원래 키가 큰 여자가 굽이 높은 부츠를 신은건가? 아니면 키높이를 신은 키큰 남자가 여장을 하고 있는건가? 정도로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중에 거실에서 차를 마시며,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방금 전 이야기를 했다.
"아까 말이야 떡때 좋은 여자를 봤어. 남자가 여장을 한 것 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라고 말했더니 "그러냐?"정도의 반응밖에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울타리보다 키가 컸었어. 모자도 쓰고있었고 더군다나 포포포~같이 이상한 소리를 냈었다니까" 라고 말하자 마자 그 둘의 움직임이 멈췄다. 정말 그 순간 멈춰버렸다.
그리고 바로 "언제 봤는데?" "어디서 봤는데" "울타리보다 얼마나 더 컸는데"라고 할아버지가 화난 얼굴로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기세에 눌려 전부 바른대로 대답했더니,갑자기 아무말도 않은채 복도에 있는 전화기까지 가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문이 닫혀있었기 때문에,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는 잘 알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기분탓인지 떨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할아버지는 전화를 끊고 돌아오자 마자, "오늘은 여기서 묵어야만한다!.. 아니 널 돌려보낼 수가 없게 됐다.."라고 말했다. 뭔가 어처구니 없는 잘못을 저질렀나 필사적으로 생각해봤지만 그럴만한 꺼리가 없었다. 그 여자도 내가 본게 아니라,지가 그곳에 나타난 것 뿐인데..
그리고,할아버지는 "할멈,뒤를 부탁할께. 나는 K상을 데리러 가야겠어"라는 말을 남기고 경트럭을 타고 어딘가로 향했다. 할머니한테 조심스럽게 물어봤는데, "팔척님(八尺様)에게 홀린 것 같아..할이버지가 어떻게든 해주실거야.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렴."이라고 떠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올때까지 천천히 설명해주었다.
이 주변에는 팔척님(八尺様)이라고 하는 위험한 놈이 있다. 팔척님은 커다란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름 그대로 팔척정도의 키의 소유자이고, 포포포포포라고 남자같은 목소리로 웃는다. 사람마다, 장례복을 입고 있는 여자였던가,기모노를 입은 노파였다던가, 농부복 차림의 중년 여인이었다던가, 본 모습들은 달랐지만, 여성이고 이상할 정도로 키가 크고 머리에 뭔가를 놓려놓고 있는 점,게다가 기분 나쁜 웃음소리는 공통적이었다.
그리고 팔척님은 이 지역에 있는 지장보살에 의해서 봉인되어있어서 이 지역 밖으로는 나가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팔척님에게 홀리면 몇일 내에 죽임을 당한다..... 마지막으로 팔척님의 피해자가 나온 것은 십오년정도 전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팔척님을 봉인하기 위해 팔척님이 밖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길이 한정되어 있는데,그 길의 근경 지장보살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팔척님의 이동을 방해 하기 위한 제사 장소는 마을 경계 동서남북 모두 4곳에 있다고 한다.
근데 왜 팔척님을 계속 이곳에 머무르게 하는지 물어봤는데, 주변 마을로부터 몇 가지의 협정이 있었다고 한다. 팔척님을 가둬서 자기 마을에 오게 하지 않는 대신, 물 이용권을 우선시 한다는 등... 게다가 팔척님에 의한 피해는 수년에 한번 꼴이기 때문에, 옛날 사람들은 유리한 협정만 맺을 수 있다면 그 정도 피해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어도, 나에게는 와닿지 않았다, 당연하지만 말이다...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할아버지가 한 노인을 데리고 돌아왔다.
"아주 큰일 났구만,이거나 가지고 있어" K상이라고 하는 노파는 그렇게 말하곤 부적을 주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함께 2층에 올라가, 무언가를 했지만 알 수가 없었다.
나는 할머니와 1층에서 같이 있었고, 화장실 갈때도 따라 오셨다. 화장실 문도 닫게 해주지 않았다. 그때 돼서야 "이거 좀 위험한데..."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2층으로 올라가, 한 방에 억지로 들어갔다. 그곳은 창문이 전부 신문지등으로 덮혀있었고, 그 위에는 부적이 붙어있었다. 방안 네곳 구석에는 수북이 쌓은 소금이 놓여져있었다. 또 나무로 만든 상자가 있었는데, 그 위에 작은 불상이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어디서 갖고 왔는지 모르지만 요강 2개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걸로 용변을 처리하라는 건가.....
"좀 있으면 날이 저물거야.알겠어?내일 아침까지 여기서 나가면 절대로 안돼! 나도 할머니도 니가 부르지 않는 한 너한테 말 거는 일은 없을 거야. 내일 아침 7시까지는 절대로 여기서 나가지마! 7시가되면 니가 나와야한다. 집에는 할애비가 연락해 놓으마." 라고 할아버지가 진지한 얼굴로 말하니 아무말 없이 그개를 끄덕 일 수 밖에 없었다.
"지금 말한 거 꼭 지켜야 한다.부적도 절대 손에 놓지말고. 무슨일이 일어나면 이 불상 앞에서 빌어야해"라고 K상도 같이 말했다.
TV는 봐도 된다고 해서 틀었지만,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침착할 수가 없었다. 방안에 갖힐때, 할머니가 준 주먹밥과 과자를 넣어줬지만 전혀 식욕이 돋지 않아서, 그대로 방치시켜놓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나도 모르게 자버린 것 같았다. 눈을 떴을땐 심야방송을 하고 있는 시간 이었고, 시계를 봤더니 새벽 한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왠지 싫은 시간에 일어났다고 생각하고 있는 찰나,창문을 툭툭 치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돌을 서로 부딪히는 그런 소리가 아니라, 손으로 가볍게 치는 듯한 소리였다. 바람 탓에 그런 소리가 나는지, 아니면 누가 치고 있어서 그런 소리가 나는지 확실하게 알 순 없었지만, 필사적으로 바람 때문에 소리가 나고 있다고 계속 암시를 걸었다.
그래도 진정이 안돼 차를 한입 마셨지만,그래도 무서워 소리를 크게 해 억지로 TV를 봤다.
그때...
갑자기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괜찮아? 무서우면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무 생각없이 문으로 다가갔지만, 할아버지가 말한 것을 바로 생각해냈다.
또 목소리가 들린다....
"괜찮아? 이쪽으로 와도 괜찮으니 어서 오렴"
할아버지의 목소리와 틀림없이 닮았지만, 할아버지 목소리가 아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고, 그렇다고 생각한 동시에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그 순간 문득 구석에 있는 소금을 봤더니, 쌓여있는 윗 부분이 검게 변색되고 있었다.
그걸 본순간 나는 바로 불상앞에 앉아, 부적을 꽉 쥔 채 "살려주세요"라고 필사적으로 빌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포....포폿포...포...포포포포
그 목소리가 또 다시 들렸고, 창문은 통...통...하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창문이 있는 곳 까지 닿을 정도로 키가 큰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놈이 아래서부터 손을 올리고 창문을 두들기는 광경이 떠올라..너무나도 무서웠다. 나는 그대로 아무것도 못 한채 오로지 불상앞에서 빌 수밖에 없었다.
터무니없이 긴 밤처럼 느껴졌지만,아침이 곧 오기 때문에 참고 견뎠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리고 켜져있는 TV를 보니 아침 뉴스를 하고 있었다. 화면 구석에 표시 되어있는 시간은 정확히 7시13분이었다. 창문을 두들기는 소리도, 그 이상한 소리도 어느샌가 멈춰 있었다. 아무래도 그 대로 자버렸는지, 아니면 정신을 잃었던지...둘중 하나겠지.. 쌓여있던 소금은 새벽보다 더욱 더 검게 변색되어 있었다..
혹시 모르니,내 시계로 확인을 해봤다니 TV와 같은 시각이어서,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고, 그곳에는 걱정스런 얼굴로 있는 할머니와 K상이 있었다. 할머니는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래 층으로 내려갔더니 아빠도 와있었다. 할아버지가 밖에서 얼굴을 내밀더니 "빨랑 차에 타!"라고 재촉했다. 정원으로 나가니 박스형 밴 한대가 있었다. 그리고 몇명의 남자들이 있었다.
그 박스형 밴은 9인승이었고, 가운데 줄에서도 한 가운데에 앉았다. 조수석에는 K상이 앉았고, 정원에 있었던 남자들이 나를 둘러싸고 앉았다. 완전히 팔방향으로 둘러싼 느낌이었다.
"큰일이 났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겠지만, 지금부터는 무조건 눈을 감고 고개를 숙여. 우리들한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겠지만, 너에게는 그 놈이 보일 거니까..다 됐다고 할때까지는 절대 눈을 뜨면 안돼!" 라고 오른쪽에 앉아있던 오십세 정도의 아저씨가 말했다.
그리고,할아버지가 운전하는 경트럭이 선두로,다음으로 내가 타고있는 밴, 뒤에는 아빠가 운전하는 승용차가...이 행렬을 유지한채 달리기 시작했다. 차열은 천천히 느린 속도로 달렸다. 아마도 20키로도 안 밟았지 않았을까?
머지않아 K상이 "여기에서 힘을 내야해"라고 중얼거리면서, 뭔자 알 수 없는 염불을 외우기 시작했다.
포....포폿포...포...포포포포
또 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K상이 주었던 부적을 꼭 쥐고, 말한대로 눈을 감고, 아래를 보고 있었지만..나도 모르게 실눈을 뜨고 밖을 쳐다보고 말았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하얀 원피스...그것이 차와 함께 이동하고 있었다... 머리는 창문 위에 있었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차내를 보기 위한 건지 모르겠지만,그 놈이 머리를 숙이기 시작했다.
무의식적으로 "힛"하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보지마!!!"라고 옆의 사람들이 큰 소리를 냈다. 당황해서 눈을 감고, 더욱 더 강하게 부적을 쥐었다.
톡톡톡~창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주변에 타고 있는 사람도 짧게 반응을 나타냈다. 그것은 다른사람에게 보이지도 않고, 목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차내에 소리만큼은 들리기 때문이었다. K상이 염불을 더욱 더 강하게 외우기 시작했다.
이윽고 목소리와 창문 소리가 사라졌다고 생각할 때, K상이 "잘 빠져나왔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아무말도 하지 않았던 주변 사람들도 "잘 됐네"라고 안도의 목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머지 않아 차는 멈췄고, 나는 아빠차로 이동했다. 아빠와 할아버지가 다른 남자들에게 머리를 숙여 인사하고 있었을때, K상이 " 부적을 보여줘"라고 말하면서 다가왔다. 무의식적으로 아직 손에 꽉 쥐고 있었던 부적을 보니, 전체가 새캄하게 변해있었다. K상은 "이제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만일을 위해서 잠시동안은 이걸 몸에 지니고 있어" 라면서 새로운 부적을 주었다.
그 뒤 아빠와 나는 둘이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할아버지 집에 두고 온 오토바이도 근처 사람이 집까지 보내주었다. 아빠도 팔척님에 대한 것을 알고 있었고, 어렸을 때 친구 하나가 팔척님에게 홀려서 명을 달리했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게다가 팔척님에게 홀려 다른 곳으로 이사한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밴에 같이 탔던 남자들 모두 할아버지의 일족 관계가 있는 사람으로, 즉 나와는 먼 친척인 혈연관계에 있던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선두에 있었던 할아버지, 맨 뒤에 있었던 아빠도 당연히 혈연관계에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팔척님의 눈을 속이려, 그러한 행렬도 운전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큰아빠가 그날 바로 올 수 없었던 처지라, 혈연이 조금이나마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왔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를 위해,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기로 약속을 했다.
집에 돌아오고 나서 할아버지와 통화를 했을때, 그 날 밤 나에게 말을 걸었는지에 대해 물어봤지만 그런 적이 없다고 말했다.
역시....그건....... 이라고 생각했더니 다시 온몸에 냉기가 흘렀다.
팔척님의 피해자는 보통 성인이 되기 직전의 젊은 사람인데 그중에는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만약 아이들이나 젊은 사람이 극도의 불안감에 휩쌓인 상태에서 자신과 가까운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면 그만..그 목소리에 넘어가고 말겠지...
그로부터 5년이 지나고, 그 날의 일도 서서히 잊혀 갈때즘, 웃을 수 없는 후일담이 생기고 말았다.
"팔척님을 봉인하고 있던 지장보살을...누군가가 부셔부렸어...게다가 니네 집으로 이어져 있는 길을 봉인한 지장보살을 말이야.." 라는 할머니의 전화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2년전에 돌아가셨는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장례식에도 찾아가지 못 했다. 할아버지가의 병환이 심각해 질때부터 나를 절대로 마을에 들여보내선 안된다고 말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