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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아라드 괴담 - 略式百物語 #. 여섯 번째 이야기
게시물ID : dungeon_66525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Fathance
추천 : 2
조회수 : 28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8/07 00: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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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권사의 주먹

 교단의 인파이터들은 위장자의 완전한 섬멸을 모토로 행동하는 분들입니다. 위장자도 한때는 사람이었던 만큼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는 크루세이더의 모토와는 반대에 있다고 봐도 좋을 정도예요. 그렇게 과격한 모토를 갖게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겠죠. 물론 이유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에요. 이해 못 할 것도 없잖아요.
 위장자에게 가족을 잃어서, 친구를 잃어서, 위장자가 끼치는 해악이 싫어서, 위장자 자체가 싫어서, 위험하니까, 혹은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위장자를 섬멸하기 위해 붙일 수 있는 이유는 다양해요. 그런 다양한 이유 중 하나, 혹은 몇 가지를 들어서 인파이터들은 행동하는 거죠.
 그리고 제가 할 이야기는, 그 인파이터들 중 어느 한 사람의 이야기에요.

 그 인파이터는 과거 위장자에 의해 가족 전부를 잃었다고 해요. 틀림없이 위장자를 증오하게 되었겠죠. 자신이 위장자에게 내릴 수 있는 최대한의 자비는 죽음뿐이다. 모든 위장자를 끔찍한 고통 속에서 죽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는 신격권을 배웠어요.
 조금이라도 더 강하게, 조금이나마 더 고통스럽게. 증오스러운 그것들에게 최고의 "자비"를 베풀기 위해서 그는 주먹을 휘둘렀어요. 그의 주먹에는 늘 파랗게 피어오르는 신성력과 함께 빨갛게 떨어지는 핏방울이 맺혀 있었대요.
 그리고 그렇게 악착같이 배운 신격권을 악을 제거하는 데 쓰기 시작했을 때, 그는 그 누구보다도 잔혹하게 위장자들을 죽였어요. 어찌나 잔혹했는지, 함께 토벌에 나선 다른 프리스트들이 기겁을 할 정도였다고 해요. 정말 말 그대로 위장자를 두들겨 패서 죽이는데, 그 모습에 기겁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나요.
 …그 사람이 하던 건 자비라는 이름의 복수 혹은 화풀이 같은 거겠지만, 그런 무자비하게 휘두르는 자비 덕분에 상당히 많은 위장자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겠죠. 그만큼 그를 말리는 사람도 없었을 거예요.

 그는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그렇게 무자비하게 주먹을 휘둘렀을 거예요.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자신의 신념을 변함없이 행한다는 게 좋다고 생각하나요? 한 치의 예외 없이 모든 상황에 대해서, 신념을 굽히지 않는 것이? 네, 때에 따라 다를 거에요. 그렇다면 그의 "자비"로운 행동은 그 태도에 적절하다고 생각하나요?
 …그는 다른 프리스트들과 함께 여느 때와 같이 위장자에게 "자비"를 베풀어주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한 프리스트가 위장자의 공격을 받고 쓰러졌죠. 정신을 대체 어디에 두는 것이냐고 그 프리스트를 꾸짖으면서 그는 공격당한 프리스트를 부축해주려고 했다고 해요.
 하지만 그 순간, 자신의 앞에 보이던 프리스트의 얼굴이 뭉개졌어요. 그는 제 주먹의 끝이 얼얼한 게 느껴졌어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물어보려고 했지만, 그걸 물어볼 새도 없이 그의 주먹은 프리스트의 얼굴을, 머리를, 완전히 뭉개버렸죠.
 주변에서도 말릴 틈이 없었어요. 워낙에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었으니까요. 그래서 그 뒤의 일도 대비할 수가 없었죠. 그 역시 위장자에게 공격을 당해버린 거예요.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무리 당황한 상태라 해도, 그의 대처는 빨랐어요.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주먹이 위장자의 머리를 날려버렸죠.
 그는 숨을 고르면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생각하려고 했을 거예요. 영문도 모른 채 나가버린 주먹과 본의가 아니라 해도 자신이 죽여버린 형제. 아마 제 주먹을 평범하게 원망하게 될지도 몰랐겠죠. 만약 거기서 끝났다면 말이에요.
 네. 그런 생각을 할 새도 없이 그의 주먹은 자신의 턱을 날려버렸어요. 너무나도 갑작스런 상황에 고통을 인지하기도 힘들었어요. 아니, 애초에 상황 자체를 인지하기 어렵겠죠. 주변에서는 다급히 그를 붙들었지만, 대체 어디서 나는 힘인 건지 그의 주먹은 멈추질 않았어요. 여태껏 자신이 위장자에게 그래왔듯이, 자신의 주먹이 자신에게 "자비"를 내리고 있었어요.
 그리고 숨이 끊어지기 직전, 그는 이 모든 것의 원인을 깨달았어요. 간단해요. 위장자에게 공격당하면, 위장자가 된다고요. 그리고 그는, 두 주먹으로 위장자에게 무자비한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었고요.
 그걸 깨달은 순간 그에게 보인 것은 제 목숨을 끊으려 달려드는 주먹이었어요.

 그가 완전히 움직이지 않게 된 뒤에, 그의 두 주먹은 그의 몸에서 떨어져나와 그대로 어디론가 향해 사라졌다고 해요. 아마, 지금도 그의 주먹은 위장자에게 "자비"를 베풀고 있지 않을까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사내는 자신의 앞에 있는 촛불을 불어 꺼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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