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 학기에 나는 복학생이었다. 그것도 아주 제대로 곰삭은...
물론 친구고 뭐고 있을 턱이 없었지만 애초에 혼자 조용히 지내는 걸 좋아해서 별 문제가 되진 않았다.
(아, 물론 휴학 전에도 아싸였다. 그래도 그땐 미묘하게 유명해서 지낼 만했다.)
그런데 지난 학기에 같은 강의를 듣는 낭자들 중에 기가 막히게 이상형에 부합하는 아가씨가 있었던 거다.
나는 숫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들이대기나 밀당 같은 고급 기술을 시전할 줄 아는 놈도 아닌 순정파인 관계로
한 학기 내내 짝사랑으로 속만 썩히다가 기말고사 때 승부를 봤다.
근데 그게 방법이 그리 좋진 않았다.
어떻게 저지를까 말까 한참 고민하다 그냥 시험지를 제출하고 나가놓고선
다시 시험을 치르고 있는 강의실로 돌아와서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준 거다.
그러나 교수님이 워낙 쿨하고 세련된 분이신데다가 평소 나를 높게 평가하셨기에 딱히 문제가 되진 않았다.
재입장하기 전에 먼저 이러이러한 상황이라고 설명도 했고.
물론 모두가 알다시피 고백은 실패했다.
아싸가 무슨 사전 정보가 있었겠는가? 그 아가씨는 만난지 얼마 안된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러나 거절하는 태도가 매우 정중하고 상냥해서 상처가 크진 않았다.
그리고 새로운 학기.
나는 다시 그 교수님 강의를 듣는다.
개강 첫날부터 교수님은 내게 연속 라이트 훅을 날리신다.
"너 졸업 안하냐?"
"A+ 줬는데 그래도 성적이 모자라냐?"
"너 그때 성공했냐? 아니 시험 말고 고백..."
"그러게 사전 조사를 좀 하지... 애인 있는 여자를...(측은)"
교수님이 말씀하시고 내가 즉흥적인 개드립으로 대답할 때마다 강의실 뒤에서 킥킥대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그래... 너희들 알어... 지난 학기에 강의 같이 들었지...?
오늘은 이불을 베컴만큼 감아찰 수 있을 것 같다.
교수님, 저 정도 멘탈이니까 개드립으로 넘어가는 겁니다. 보통 대학생이라면 이미 사망했어요.
그래도 사랑합니다.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