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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도 잠시 수그러들고 날씨도 선선하여 낮잠 자기에 매우 좋았다. 하여, 시원한 거실에 자리를 깔고 이불도 없이 누웠더니 몇 분 지날 새 없이 잠이 들었다.
꿈에서 나는 한 마리의 날벌레가 되어 세상을 날아다녔다. 어떤 것으로 내가 분하였던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나는 내 등에 달린 한 쌍의 날개를 힘차게 움직이며 공중을 차고 올랐고, 내 주변의 바람은 내 날개짓에 반응하여 힘차게 요동치고 있었다. 마치 사방이 물로 가득 찬 곳에서 물장구를 칠 때의 기분과 비슷하였으나, 사방으로 날 가두고 있는 물이 없었기 때문에 팔다리를 움직이는데 자유로워 그보다 더욱 신이 났다.
날벌레가 된 나는 거대한 세상을 누비며 이전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최고의 자유를 만끽하였다. 더운 공기가 내 얼굴을 때리자 바람이 손짓하며 날개를 힘껏 들어올렸고 차가운 공기가 몸에 부딪혔을 때는 마치 지면을 박차고 뛰어오르듯 보다 높이 올랐다. 날벌레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더없이 넓고 풍요로웠으며 온갖 느껴보지 못한 자극적인 것들로 만연했다. 그 중에서도 꿈 속의 나를 가장 유혹했던 것은 다름아닌 후각이었다. 여기저기서 풍겨오는 달콤한 향기가 날벌레인 나의 코를 콕콕 찔러대듯 간질였다. 향기의 물줄기가 수십 갈래의 강물처럼 눈앞에 펼쳐진 듯하였다.
나는 그 중에서 가장 크고 진한 향을 풍기는 향기의 줄기를 따라 날았다. 사람의 몸이었을 적에는 이런 향을 맡아본 적이 있기나 하였던가. 향기를 맡으면서 나는 날벌레의 몸이었음에도 어느 샌가 종족 보존의 욕구마저 느끼게 되었다. 식욕인지, 혹은 성욕이었는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흥분한 상태에서 나는 마침내 그 거대한 향기의 물줄기가 어디서 시작되는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어떤 거대하고 투명한 건물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건물은 어찌나 컸던지, 나의 날개로 한참을 올라가야 그 꼭대기에 맞닿을 수 있었다. 향기는 바로 그 꼭대기에 마련되어 있는 하나의 출입문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날벌레인 나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 출입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건물벽에 막혀 새어나오던 향기가 커다란 덩어리가 되어 나에게 다가왔다. 아니, 내가 그 거대한 향기의 포무 속으로 스스로 몸을 내던졌다. 건물 안에서 나는 양껏 향기에 취한 채 공중을 날아다녔다. 이따금 향을 맡는 것에 지쳐 날개를 가누는 것에 힘이 들때면 건물의 투명한 벽에 붙어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건물벽은 매끈하였으나 날벌레의 팔다리로 꽉 잡고 있으면 떨어질 거 같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건물 안을 날다 지치면 건물벽에 붙어 휴식을 취하는 것을 계속 반복했다. 그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이제 충분하다 여기고, 그리고 나중의 만족을 위하여 건물을 나가기로 결심하였다. 그런데 어찌된 것인지, 들어올 때는 그렇게 크게 보였던 출입구가 나가려고 하니 도무지 찾을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아차, 싶었다. 이 투명한 건물에 들어올 때 나는 출입구 사이로 흘러나오는 향기의 줄기를 타고 들어왔다. 그러나 지금 건물 안에 가득찬 향기 속에 들어선 뒤, 나는 어디서 향기의 줄기가 흘러나가는지 도통 알 도리가 없어졌다. 정신 없이 건물 벽에 머리를 부딪히며 출입구를 더듬더듬 거렸지만 온통 투명한 벽이라 진전이 없었다. 이러지리 건물 벽을 뒤지다가, 나는 그제야 건물 아래쪽에 가득 찬 향기의 바다를 발견했다. 그것은 약간 붉은 색이었고 세상에서 내가 맡았던 그 치명적인 향기는 온통 그 바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 바다에 빠지지 않도록 낮게 날며 바다를 살폈다.
거기에는, 건물밖에서 볼 수 없었고 건물 안에서도 바다 가까이 가지 않고서는 볼 수 없는 끔찍한 광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에는 나와 같은, 필시 같은 동족일 것으로 보이는 생명체들이 바다에 빠져 죽어있는 모습이었다. 개중에는 아직 살아서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르고 살려달라 애원하는 동족들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 바다는, 강렬한 향을 뿜어내고 있을 뿐 아니라 동족의 날개와 팔다리를 서서히 녹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점차, 나는 날개가 무거워짐을 느꼈다. 건물벽에 붙어 휴식을 취하는 동안에도 향기의 바다에 빠진 동족들의 죽음에 아연해지려 안간힘 썼다. 그러다, 나는 내 등에 붙어있는 날개에 끈적한 것이 묻어 날개짓하기 더욱 어려워졌음을 깨달았다. 바다다, 향기의 바다에서 뿜어져나온 향기가 날개에 묻어 이토록 날개짓을 어렵게 하는 것이다. 계속된 향기에 취해 몸을 가누기 점점 어려워졌고,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었고 좀전까지만 해도 큰 기쁨이자 쾌락이었던 향기는 이제 더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악취가 되어 머리를 어지럽혔다. 건물벽을 꽉 부여잡은 팔다리에서 힘이 점점 빠짐을 느꼈다. 아아, 큰일이다. 마지막 안간힘을 쓰며 나는 힘껏 날개짓했다.
그러나 분명 세상은 저기 눈앞에 있는데, 더없는 자유를 만끽하게 해 준 넓은 세상은 저기 있는데, 난 눈앞의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혀 그 세상 밖으로 나아가지 못하였다. 들어왔던 출입구는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아아, 절망이다. 나는 온몸에 힘이 빠져나감을 실감했다. 그리고, 최후의 힘을 짜내어 건물벽에 붙었으나, 이전까지는 버틸만 했던 건물벽은 그 이전보다 훨씬 미끄럽게 변해있었다. 어떻게든 팔다리를 부여잡으며 버티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날벌레인 나는 마침내 건물벽에서 떨어져 깊고 깊은 향기의 바다로 빠져버리고 말았다. 향기의 바다에 닿는 순간 온몸이 감전이라도 된 듯 쫄아들었다. 흠뻑 젖어버린 날개는 더 이상 내가 자유를 갈구하도록 도와주는 도구가 아니라 나를 이 지독한 향기의 바다로 끌어들이는 닻에 불과했다. 그리고 동시에 이 향기의 바다는 빠르게 내 날개와 팔다리와 몸을 녹이기 시작했다. 살려달라고, 도와달라고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향기의 바다를 이루고 있는 액체가 입안으로 들어왔다. 상상 이상의 시큼함에 식도마저 녹아버릴 기세였다. 벌써 몸안에 들어온 그 액체는 온몸을 파고들어 안에서 밖으로, 몸밖의 액체는 밖에서 안으로 나를 용해시켰다. 더 이상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죽음, 오로지 절대 피할 수 없는 죽음이 나를 감쌌다. 이것이 죽음인가, 이것이 날벌레가 맞는 죽음이란 말인가, 나는 인간일 적의 주마등을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온몸이 식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본능적으로 내 몸을 팔다리로 더듬거렸다. 두 팔과 두 다리, 나는 인간이었다. 등에 날개따윈 없었고 하늘을 날 수 도 없었다. 그러고 난 뒤 나는 겨드랑이의 냄새를 맡았다. 약간 시큼한 암내가 났다. 그제야 나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깨달은 것이다. 내가 도대체 무슨 날벌레의 꿈을 꾸었고 무슨 날벌레의 죽음을 경험하였던 것인지.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비틀거리며 부엌으로 걸었다.
싱크대 위에는 얼마 전 먹고 난 다음 가져온 투명한 플라스틱 테이크아웃 컵이 있었고
그 안에는 식초와 계면활성제를 섞어 만든
초파리 트랩이 있었고 그 위에는
수십 몇 마리의 초파리 시체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