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는 자신의 앞에 한창 심지를 태우고 있는 초 하나를 두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흐르는 숲을 알고 있나요? 역시. 지금 그 숲은 대전이와 함께 전부 사라져버려서 더이상 존재하지 않아요. 네, 모르는 게 당연한 거예요. 그 숲의 이름은 그란 플로리스, 요정들의 언어로 흐르는 숲이라는 의미라고 해요. 예쁜 이름이라고요? 글쎄요, 진짜 그럴까요?
그 숲은 일단 굉장히 컸어요. 숲 자체가 크고 울창한데, 숲의 이름이 괜히 흐르는 숲인 게 아니에요. 정말 그 숲의 이름 그대로 '흐르는' 숲이기에 그런 이름이 붙은 거라고요. 그렇기에 길을 파악하는 것도 힘들고, 길도 쉽게 잃는 그런 곳이었어요.
여럿이서 들어가 길을 파악해도 길을 놓치기 쉬운데, 혼자서 들어가면 알아채지 못하게 흘러버리는 숲 때문에 길을 잃기 십상인 곳이었어요. 그래서 엔간해선 혼자 숲에 들어가선 안 되는 그런 곳이었어요.
그렇게 무서워 할 것은 없어요. 대전이가 일어나기 전, 그 숲을 제집 드나들 듯이,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냥 평범한 숲을 드나들 듯이 다니던 사람도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지금은 아예 사라졌고 말이죠.
흐르는 숲은 그런 기이한 특징이 있는 곳이니만큼 여러 소문이 많았어요. 숲 자체가 살아있다거나, 숲의 안쪽에 실종된 사람이 몇십 년째 멀쩡히 살아있다거나, 그런 종류의 것들이요. 제가 할 얘기는 그런 소문 중 하나에요.
본격적인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미로를 빠져나가는 방법을 알고 있어요? 한쪽 벽을 따라가는 거라, 그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잖아요. 제가 말한 건 빠르게 빠져나가는 방법이에요. 답은, 입구에서부터 실을 늘어뜨려 가며 미로 안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흐르는 숲의 구조를 알고 싶어서 아까 말한 그 방법을 이용해 길을 남겨가며 흐르는 숲을 탐험하려고 한 어느 모험가가 있었어요. 그 사람은 단단히 준비를 하고 당당히 흐르는 숲으로 들어섰죠. 하지만 흐르는 숲을 너무 얕봤던 거에요.
중간에 돌아가려고 매어둔 밧줄을 거슬러 올라갔지만, 밧줄은 중간이 끊어져 있었어요. 아무리 찾아도 끊어진 뒤의 밧줄을 찾을 수도 없었죠. 길을 잃어버린 거예요. 그런 숲 한가운데에서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었고, 결국엔 스스로의 힘으로 빠져나가려 애를 써보는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걸으면 걸을수록 숲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기만 할 뿐이었어요.
흐르는 숲이라더니 이대로 집에 돌아갈 수 없게 되는 걸까 하던 차에 그 사람은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을 보았어요. 멋모르고 흐르는 숲에 들어왔다가 길을 잃었을뿐더러, 다리까지 다쳐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사람이었죠. 그래도 혼자보단 둘이 낫다고, 모험가는 내심 안도했어요.
그 둘은 함께 다니기 시작했어요. 물론 다른 모험가는 다리를 다친 상태였기에 그 사람이 업고 다녀야 했지만, 그래도 그냥 말도 없이 공포에 떨면서 다니는 것보단 뭐라도 말하면서 다니는 게 훨씬 낫잖아요. 때론 누군가가 같이 있는 것만으로 안도하게 될 때가 있으니까요.
…물론 누군가가 같이 있는 것만으로 섬뜩해질 때도 있죠. 그러니까, 대화를 나눌수록 뭔가 조금씩 이상한 느낌을 받기 시작한 거예요. 조금씩, 아주 조금씩 대화가 어긋나는 느낌. 그와 함께 힘이라도 빠지는 건지, 점점 후들거리기 시작하는 다리. 아니, 힘이 빠지는 게 아니었어요. 정말 한 명을 업고 있는 게 맞는 걸까 싶을 정도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었으니까요.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냐고 그 사람은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거였어요. 별일 아니겠거니 했지만, 점점 전신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죠. 그 사람은 그 알 수 없는 기분이 너무 무서워서 필사적으로 말했어요. 대화라도 끊기면 정말 무서워져서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아서.
그런 와중에도 등 뒤에서 느껴지는 무게는 점점 늘어갔어요. 잠깐 쉬었다 가자 말했지만, "안 돼." 라는 답이 돌아왔어요. 정말 아무 일 없는 게 맞느냐 물었을 때는, "멈추면 안 돼." 라고 했죠. 등 뒤에서는 끈적하면서도 축축한 느낌마저 들기 시작했어요.
업혀 있는 것은 계속 그 사람의 귓가에 속삭이고 있었어요. "멈추면 안 돼. 계속 걸어가. 쓰러져 기어가는 한이 있어도 계속 앞으로 가. 멈추면 죽어."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기분에 당장에라도 업혀 있는 걸 버리고 도망가고 싶을 정도였어요.
그런데 갑자기 대뜸 목이 졸리는 느낌이 들었어요. "달려!" 그 머리를 울리는 듯한 소리에, 마치 무언가에 도망이라도 치듯이 그 사람은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어요. 그러는 와중에도 늘어가는 무게와 조여오는 목덜미, 그리고 계속해서 달리라며 재촉하는 목소리. 거기에 섞여 들려오는 절규와도 같은 기괴한 소리들.
어느 순간, 그 사람은 기절해버렸어요.
그 사람이 그란 플로리스로 들어선 지 일주일쯤 지났을 때, 그 사람은 그란 플로리스의 입구에서 완전히 엉망이 되어 기절한 상태로 발견되었다고 해요. 완전히 백골이 된 시체를 등에 업은 채로 말이에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사내는 자신의 앞에 있는 촛불을 불어 꺼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