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택시 운전사 보고 왔습니다.(어머니가 해주신 5.18 이야기)
게시물ID : sisa_97630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ecca0629
추천 : 26
조회수 : 855회
댓글수 : 11개
등록시간 : 2017/08/16 23:29:40
옵션
  • 창작글
어릴적 5월이 되면 
어머니는 항상 저를 데리고 
망월동 5.18 묘역에 가셨었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둘러보시고 나서야
묘역을 내려오시곤 했습니다.


5.18 당시 저희 어머니는 20살이셨고
광주직업전문학교 교환원이셨답니다.
계림동 광주고 근처에서 이모와 삼촌들을 데리고 
자취를 하고 계셨었는데 
5.18 이 일어났고 어머니도 매일 도청앞에 나가
시위에 참가하셨답니다.

그리고 5월21일 
그날도 역시 교환으로 같이 일하던 언니와 함께 
도청 앞에서 시위 군중사이에 있었고
애국가가 울려퍼지기에 그곳을 향하고 있던 찰나
총소리가 났답니다.
순간 너무 놀라 무작정 반대편으로 뛰기 시작했고
어머니는 전일빌딩 골목(현재의 학원가)으로 
꺾어들어간 뒤 어떤 상회로 무작정 들어가셨답니다.
그리곤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덮어쓴채 벌벌 떨고 있는데
얼마뒤 계엄군들이 상회로 들이닥쳐 아주머니께
시위대들 어디 갔냐고 물었고 아주머니가 무슨 소리냐고
우리딸이 간호산데 어제 날새고 일하고와서 자고 있다고
빨리 나가라고 해서 위기를 모면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다음날 새벽에 아주머니께서 
계림동 집에까지 데려다 주셔서 무사히 
집에 가셨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5월27일 항쟁이 끝나고 
다시 출근을 했는데 시위에 함께 가셨던 언니분이
안보이시더랍니다. 아무리 백방으로 찾고 해봐도 
연락이 안되시더랍니다. 얼마후 외할아버지께서
세상이 하도 흉흉해서 안되겠다고 자식들을 다 데리고
서울로 이사를 하셨고 
어머니는 서울에서 제 아버지를 만나 결혼해 사시다가 
제가 12살때 아버지 고향인 광주로 다시 내려올때까지
그날의 광주를 잊고 사셨다고 했습니다.
아니 잊고 살려고 노력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좀 컸을 무렵엔 더이상 망월동 구 묘역을
찾지 않으셨습니다.
신 묘역으로 이장하면서 국립묘지로 승격도 됐고
그날의 억울함도 비참함도 많이 알려지고 명예회복이
됐으니 그걸로 이제 조금은 마음의 짐을 덜 수 있게 됐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왜 그렇게 구 묘역을 찾으셨었는지 이유도
알려주셨습니다.
혹시 그 언니가 망월동에 묻혀 계실까봐 매번 찾으셨다고
합니다. 
당시만해도 구 묘역에는 5.18 당시 희생하신분들
뿐만아니라 부상 후유증으로 고생하시다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도 매년 늘어나 안장되시고는 했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광주로 돌아온 이후 매년 찾으셨다고.

이게 제가 어머니로부터 들은 5.18 이야기 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제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주말에 어머니 모시고 다시 한번 봐야겠습니다.

(핸드폰 작성이라 행간이 고르지 못한점 죄송합니다)
출처 제 어머니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