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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옴]사회가만들어낸괴물
게시물ID : panic_1078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쿵픽
추천 : 0
조회수 : 205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1/01/19 04:47:10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

뿌옇게 안개가 짙게 깔린 탓에 세상이 온통 흐릿하게만 보인다. 그런데 갑자기 고요하던 머리에서 지끈하고 두통이 일어난다. 그 덕분에 안 그래도 겨누기 어렵던 몸이 크게 휘청거린다. 넘어지려는 몸을 지탱하기 위해 오른쪽으로 힘없는 다리를 들고 걸음을 옮겨 간신히 상해를 면한다.


‘대체 여기가 어디야……’


나는 짙게 내린 안개를 헤치며 앞으로 걸음을 천천히 옮겨간다. 그러나 뿌연 안개는 갈수록 더욱더 그 농도를 더해갈 뿐,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자리에 서서 몸을 돌려 뒤를 바라본다. 그런데 내가 걸어온 길마저 그새 안개가 삼켜버렸는지 앞의 시야와 뒤의 시야가 똑같다.

나는 더 이상 움직이는 것을 포기한다. 더 몸을 움직였다간 보이지 않는 끝을 찾아내기 전에 내가 먼저 쓰러져 죽을 것만 같다. 나는 천천히 서 있던 자리에서 그대로 주저앉는다. 현재로서 알 수 있는 사실은 그저 사방이 온통 안개에 휩싸여 있다는 사실뿐이다.

나는 눈을 감고 숨 가쁘게 빠른 호흡을 진정시켜간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기 시작한다. 분명히, 처음부터 내가 있던 장소가 이 알 수 없는 공간은 아니었으리라. 그런데 의식 속으로 제법 깊숙이 빠져들자 갑자기 귓가에 자동차의 엔진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 갑작스러운 소리에 놀라 눈을 번쩍 뜬다. 그런데 내 눈에 보이는 장면에 나는 순간적으로 숨이 막히고 기겁해버렸다. 내가 자동차의 운전석에 앉아 운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왼쪽에 보이는 백미러로 수많은 나무가 빠르게 지나가고 있고 앞으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도로가 어둠을 내포한 채 길게 뻗어 있다.

내가 타고 있는 자동차의 전조등이 도로 위에 깔린 그 어둠을 두 줄로 가르고, 나는 그 줄을 지표 삼아 적당한 속도를 유지한 채 도로를 달린다. 나는 시선을 약간 돌려 라디오 카세트 밑에 부착된 전자시계를 바라본다.

시계는 정확히 새벽 2시를 표시하고 있다. 나는 자동차를 멈추기 위해 브레이크를 밟아본다. 그러나 자동차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설마?’


나는 그제야 깨달아버린다.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모든 장면과 상황은 그저 머릿속에 남아 있는 뚜렷한 기억의 일부란 사실을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 장면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결코 수정할 수도 없다.

나는 몸을 뒤로 돌린다는 느낌으로 시선을 돌려본다. 그러자 순식간에 기억 속의 나의 얼굴이 좁은 시야에 가득하게 나타난다. 반쯤 풀려 감겨 있는 두 눈, 낮지도 높지도 않은 콧대, 날마다 면도는 반드시 챙겨서 하기에 깔끔한 콧수염, 두툼한 입술, 분명히 ‘나’이다.

그런데 기억 속의 나의 상태가 조금 이상하게 보인다.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이다가 두 눈을 부릅뜨고 다시 제 위치를 찾는가 싶더니 이내 또다시 기울이기 시작한다. 그러한 행동을 반복해서 하고 있다.


‘완전히 취했군. 그런데도 운전을 하고 있다니……”


그런데 나의 속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자동차의 밑바닥 타이어에서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끼익! 끼긱!”


자동차가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도로 어디에도 회전하라는 표시 따윈 보이지 않는다. 그저 내가 핸들을 잡고 있는 힘이 허술해지기 시작한 탓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사고가 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다시 시야를 돌려 자동차의 정면 유리창을 바라본다. 도로가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이따금 바퀴 한쪽이 약간 도로의 경계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는다.


“으, 으아악!”


그런데 갑자기 기억 속의 내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고, 핸들을 요란하게 돌리기 시작한다. 나는 눈을 번쩍 뜨고 앞을 바라본다. 도로의 저 멀리 중간에 사람이 서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마치 치이기 위해 그 자리에 서 있는 듯 꿈쩍하질 않는다.

나는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아 보지만, 자동차는 내가 밟았을 때와 같이 반응하지 않는다. 그러자 기억 속의 내가 더더욱 겁을 먹었는지 소리를 더더욱 크게 지르며 핸들을 앞뒤로 빠지라 흔든다. 그런데 그 사람과 거리가 차차 가까워지자 기억 속의 내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취하기 시작했다.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고 핸들을 놓아버린 것이다. 기억 속 나의 두 팔은 허공을 힘없이 앞뒤로 진자질하고 자동차는 방향을 잃고 요란하게 흔들거리며 앞으로 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자동차에 그가 치이기 직전까지 오자 기억 속의 나는 눈을 감아버린다. 나도 기억 속의 나를 따라 눈을 감는다.


“…”


그런데 이상하게 조용하다. 뻥하고 치는 소리도, 그 때문에 갈기갈기 찢긴 육체가 힘없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나와 기억 속의 나는 동시에 감겨 있던 눈을 살며시 뜨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본다.

그리고 기억 속의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반쯤 감겨 있던 눈이 최대한으로 뜨이고 어디를 바라봐야 할지 모르는 동공은 하염없이 덜덜 떨리고만 있다. 나는 기억 속의 내가 대체 무얼 보는 건지 궁금한 마음에 나의 얼굴에서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린다.

그런데 내 눈앞에 펼쳐진 상황은 상식, 과학, 이성, 논리, 증명 따위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었다. 시간이 멈춰 있었다. 내 차가 남성으로 보이는 그의 허리에 닿아 날려버리기 직전의 순간 그대로 멈추어 있었고, 전조등에서 나오는 두 줄기의 빛에 비추어진 먼지조차 공중에 멈추어 자유를 잃고 경직되어 있었다.

그때, 멈추어 있던 시간 속에 유일한 자유를 가지고 있는 듯 그는 기억 속의 내가 앉아 있는 운전석으로 천천히 걸어서 다가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동시에 은은하고 신비한 색깔을 지닌 달빛이 그의 얼굴을 환하게 비춘다.

나는 그와 눈을 마주친다. 그러자 그가 싱긋하고 가벼운 미소를 입 가득히 머금는다. 그런데 그 미소를 바라보자 갑자기 마음속이 마치 내 방 침대에 누워서 잠들기를 기다리는 것 마냥 편안해진다. 기억 속의 나와 나의 두 눈에 힘이 풀리고 눈꺼풀이 천천히 가라앉는다. 그는 우리의 그런 모습을 즐기는 듯 조용히 바라보고만 있다가 이내 입을 연다.


“그래요. 그렇게 되지요. 그러면 망가진 그들의 수많은 선택의 길들은 그저 두 가지로 줄어들지요. 그게 뭐죠?”


나는 어느새 핸들을 주먹으로 거세게 치며 통곡하고 있다.


“자살을 택하거나 아니면 그저 사회에 순종하며 지도층 사람들을 위한 디딤돌이 되어버리고 말아!”


나는 더 이상 울 기운이 없는지 숨만 허덕거리며 힘겹게 내쉬고 있다.


“애초에, 브레이크를 고장 내고 인적이 드문 이 도로를 선택한 당신 또한 참을 수 없는 괴로움에 자살을 택하려 한 것이겠지요? 왜, 제 말이 틀렸나요?”


기억 속의 나는 대답 대신 작은 끄덕임으로 그에게 긍정한다. 그러자 그가 다가와 자동차의 창문에 손바닥을 내고 가볍게 내린 뒤, 기억 속의 나의 두 뺨을 어루만지듯 쓰다듬고 눈물을 닦아준다.


“슬퍼하지 마. 울지마. 죽어서도 안 돼. 너는 복수해야 해. 널 이렇게 만들어버린 이 썩어빠진 사회를 뒤집어 버려야 해.”


그 말을 듣자, 기억 속의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눈을 사납게 뜬다. 나는 어느새 기억 속의 나와 동화되어 있다.


“자, 보여줘. 너에게 그토록 괴로운 짐과 그저 다수의 공권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음껏 너를 농락했던 그 짐승들에게 너의 발버둥을 보여줘.”


“사회를 뒤엎어버려.”


그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눈앞이 순식간에 깜깜해지고, 잠시 후 안개에 싸여 있는 하얀 색깔의 세상이 다시금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방금 기억 속에서 만났던 그가, 내 앞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와 눈을 마주치고 말 없는 대화를 한다. 그리고 잠시 후, 그가 익숙한 미소를 띤다. 그리고는 한쪽 팔을 수직으로 들어 올린다.


“따악!”


그의 엄지와 검지가 교차하며 하나의 청명한 울림을 일으킨다. 그러자, 그토록 진한 안개가 마치 가열된 공기가 갑작스럽게 밀려 들어오는 찬 공기에 내쫓기는 듯 천천히 사라지기 시작한다. 나는 그와 같은 미소를 띠며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인가요?”


그런데, 그의 모습이 한순간 마치 홀 그램에 의해 공중에 떠 있는 스크린처럼 지지직거렸다. 그리고 그 흔들림에 나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가 곧 내 눈앞에서 사라지리란 것을. 그러나 그의 입가엔 여전히 웃음기가 가득했다.

그가 대답했다.




“저는 말이죠.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이랍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다시 한 번 지직거림이 조금 전보다 더욱 강하게 그의 온몸에 아른거리기 시작했고, 이내 그의 모습은 한순간의 번쩍임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동시에 그토록 진했던 안개가 대부분 걷혀서 주변의 모습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안개가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곧장 눈으로 익숙한 소리와 익숙한 광경이 드러났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사람들의 해맑은 표정, 행복한 분위기. 번쩍번쩍 화려한 불빛이 이곳저곳에서 감도는 세련된 도시, 빠르게 돌아다니는 고가의 자동차.


그러나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안개의 세상에서 만난 그가 알려주었기 때문에 나는 알고 있다. 이 썩어빠진 세상 속에 저 빌어먹을 자식들의 해맑은 웃음을 위해 내가 디딤돌이 돼야 한다는 그 세상의 모순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손에 힘을 꽉 쥔다. 그런데 무언가 잡힌다. 나는 낯선 감촉에 눈을 아래로 빠르게 내린다. 길쭉한 입을 앞으로 쭉 내밀고, 단단한 몸체를 지닌…… 총. 마음속에 본능이 움찔거린다. 입가에 악한 미소가 깊숙이 떠오른다.

나는 그들을 향해 천천히 총구를 올린다. 몇몇 사람들이 나를 발견하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그런데 마치 나를 향한 응원처럼 들린다. 뜨거운 환호 소리.



“개자식들……”



딱딱한 방아쇠를 힘껏 당긴다. 도시의 한가운데 섬뜩한 총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진다.







사방이 폐쇄된 어두운 방, 천장에 희미한 불빛을 내뿜는 조그만 전등이 삐걱거리며 위태하게 흔들거리고 있다. 그리고 그 밑으로 탁자 한 개를 기준으로 양쪽에 앉은 한 남자와 그를 향해 소리를 벅벅 지르고 있는 형사가 보인다. 형사가 그를 향해 공격적으로 묻는다.


“멀쩡하게 잘 살아가던 새끼가 왜 살인을, 아니지? 네가 한 짓은 살인 따윈 훌쩍 뛰어넘은 짓이지. 너는 역대에 기록될 살인마가 될 거야.”


형사의 말을 대답 없이 듣던 그가 이내 회심의 미소를 드러내며 형사를 향해 조용히 물었다.


“내가 몇 명을 죽였지?”


형사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다가 이내 욕지거리를 뱉으며 그에게 대답했다. 형사의 얼굴은 험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100명을 죽였어. 개자식아. 너는 100명의, 무려 100명의 무고한 생명을 한순간에 훔친 거다. 너는 죄책감으로 평생을 감옥에서 살게 되겠지. 아니, 너는 사형선고를 내리기에도 아까워. 평생을 골방에서 썩게……”


그런데 갑자기 그의 얼굴에서 미소기가 확 가신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가 온몸을 부들부들 흔들기 시작한다. 형사가 순간적으로 당황한 듯 흠칫해 하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는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고개를 들고 형사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친다. 그리고 빠르게 형사를 향해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고작, 고작 100명밖에 죽이지 못했다고? 하! 정말 아쉽군. 너무 아쉬워. 적어도 1,000명이 되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고 안식을 주었어야 했는데 말이야.”


“미, 미친 새끼! 넌 그들에게 안식이 아니라 괴로움과 죽음을 주었어!”


당황한 형사는 어느새 탁자에 놓인 손수건으로 이마에 흥건한 땀을 닦아내며 소리친다. 그런데 그가 다시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그럼, 이번엔 내가 묻지. 한 번 그 잘난 정의와 준법으로 대답해봐.”


형사가 그를 쳐다본다. 그리고 그는 형사를 향한 미소를 다시금 순식간에 거둔다.



“사회는, 대체 얼마만큼의 사람을 죽였지?”



형사의 두 동공이 확대된다. 형사의 입은 우물거릴 뿐, 아무런 대답도 내뱉지 못하고 있다. 그러자 그가 크게 웃음을 터트린다. 그러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형사는 그런 그를 저지하지 않는다.

큰 충격을 받은 듯, 멍하게 자리에 앉아 그와 눈을 마주칠 뿐이다. 그리고 형사는 혼미한 정신으로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너, 너 대체 정체가 뭐야……”


그가 상체를 천천히 형사 쪽으로 기울인다. 이윽고 그와 형사의 코가 부딪치기 직전까지 얼굴이 가까워진다. 형사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동시에 천천히 그의 입이 열리기 시작한다.





“너희, 아니,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이야.”





형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를 쳐다볼 뿐이었다. 마치 형사도 그의 정당한 논리에 수긍해 버린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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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web.humoruniv.com/board/humor/read.html?table=fear&pg=1&number=57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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