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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앉아 사금파리를 줍는다
게시물ID : baby_2134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엄근진
추천 : 0
조회수 : 501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7/08/19 11: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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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 이르러 털썩 다리를 펴고 앉았다. 아래로는 촘촘한 모래가 나를 받치고, 가벼운 파도가 발끝을 감돌아 하얀 거품을 남기고 사라지면 따스한 햇볕이 살랑살랑 내려앉는다. 머얼리 수평선이 아스라하다. 드넓은 하늘과 역시 드넓은 바다가 막연하게 펼쳐져있다. 

나는 그속에 앉아 사금파리를 줍는다. 파란색과 하얀색, 너는
파란곳, 너는 하얀곳에서 왔구나. 둥글고 뾰족하니, 너는 오래되었고 너는 이제 막 조각이 되었구나. 뾰족한 사금파리를 들어 하늘에 비쳐보고 반짝, 아, 눈물이 난다. 예쁘다. 너무 예뻐서 눈물이 난다. 너는 얼마나 오롯한 자기에서 왔니.

나는 그것이 깨어질만 했으니 깨어진 것을 안다. 깨어져서야 드넓은 바다를 떠돌다 아름다운 해변을 만나 정착할 수 있었음을 안다. 이 곳에서 모래밭 속에 하나가 되어 보다 넓어지고 커질 수 있었음을 안다. 조그만 자기는 깨어져서 더 큰 세상의 일부가 됨을, 이제는 안다, 머리로는 알고있다.

하지만 예쁜 자기로 선반에 놓여 있던 때가 그리울 때가 있다. 누구는 파란 자기로 보았고, 누구는 동그란 자기로 보았고, 누구는 손잡이가 달린 자기로 보았던 그 때를. 오롯했던 자기를. 그저 이름없는 사기조각으로 바다와 하늘을 이고 앉은 지금 이 순간에. 

바다에 앉아 사금파리를 줍는다. 아직 둥글어지지 않은 뾰족한 조각을 잡는다. 들어올려 바라본다. 파란 자기였던 아이야, 둥그런 자기였던 아이야, 손잡이가 아름다웠던 아이야. 언젠간 둥글어져 모래속에 파묻힐 것을 알아도, 지금만, 아주 잠시만, 그때를 그리워해줄게. 
출처 아이낳기 전, 내 자기의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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