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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아버지는 촌스럽다
게시물ID : readers_2941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무심한듯쉬크
추천 : 2
조회수 : 42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7/08/27 11:38:33
혜화역 4번 출구
- 이상국

딸애는 침대에서 자고
나는 바닥에서 잔다
그 애는 몸을 바꾸자고 하지만
내가 널 어떻게 낳았는데…
그냥 고향 여름 밤나무 그늘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바닥이 편하다
그럴 때 나는 아직 대지의 소작이다
내 조상은 수백 년이나 소를 길렀는데
그 애는 재벌이 운영하는 대학에서
한국의 대 유럽 경제정책을 공부하거나
일하는 것 보다는 부리는 걸 배운다
그 애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우는 저를 업고
별하늘 아래 불러준 노래나
내가 심은 아름드리 은행나무를 알겠는가
그래도 어떤 날은 서울에 눈이 온다고 문자 메시지가 온다
그러면 그거 다 애비가 만들어 보낸 거니 그리 알라고 한다
모든 아버지는 촌스럽다

나는 그전에 서울 가면 인사동 여관에서 잤다
그러나 지금은 딸애의 원룸에 가 잔다
물론 거저는 아니다 자발적으로
아침에 숙박비 얼마를 낸다
그것은 나의 마지막 농사다
그리고 헤어지는 혜화역 4번 출구 앞에서
그 애는 나를 안아준다 아빠 잘 가
 
NaverBlog_20170625_180905_1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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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좋은 아빠가 아니라
철없는 아빠를 가졌지만..

이 시를 읽고 나니
그 아빠마저 생각난다.

세살터울의 남동생이 태어나기도 전
아빠는 통근기차가 버스 정류장처럼 촘촘했던
그시절의 철도청에 다니고
우리는 섬진강 강변에서 살았다.

뒷뜰에 대나무밭이
바람이 불면
긴머리 아가씨들 머리카락 날리듯하고,
문가에는 밤나무 한그루가
대나무 기세에 위로만 웃자란
방 세칸짜리 집에 한칸 방에 살았다.

깍아놓은 밤톨같은 아빠가
꼭대기에만 열린 밤 좀 따주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대문앞을 지나다 얼핏 생각이 나는
그런 출근길이면
냅다 발차기를 밤나무에 한방 날리고는
뒤도 안돌아보고 나가버리곤 했다.

후두둑 밤들을
후다닥 줏으러..

아빠가 말했다
내가 이뻐서
엄마아빠 한이불
그 가운데다 놓고 자면
꼭 밤에 오줌을 싸서
아빠 배꼽이 축축해져 일어났다고.

겨울인디..
추운디..
말여.

그때 아빠나이가 스물 다섯
철 없음을 용서는 못해도
이해는 할 수있는  그런 나이
 
중년이 되는 건
여전히 구리지만
완전 후지지는 않다

아팠던 일들은 흐릿해지고
추억을 파먹는 걸
땅따먹기처럼 넓혀 갈 수 있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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