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프랑스의 볼테르는 신성로마제국은 신성하지도, 로마이지도, 제국이지도 않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17세기의 신성로마제국은 무늬만 제국인 아무 실체가 없는 연방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의 지적은 충분히 타당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신성로마제국이 언제나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중세 초중기의 신성로마제국은 세습황제가 다스리는 황제국이었고, 그 황제는 막강한 권력을 지닌 정말 위대한 군주였습니다. 그리고 신성로마제국은 언제나 스스로 서로마의 위대한 후계자임을 자처했고, 실제로 그 주변국들도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신성로마제국의 가장 위대한 인물이었던 오토 3세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오토 3세는 오토2세와 동로마(비잔틴)제국의 공주 테오파누 사이에 태어난 인물로, 모국어인 독일어는 물론, 라틴어와 그리스어에도 능통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그는 동로마의 의전과 양식을 대거 차용하였고 게르만 촌놈티를 벗어던지고, 진정한 절대군주가 되고자 했습니다.
그는 동쪽 폴란드 부근의 슬라브인들을 무찌르고, 또 헝가리의 마쟈르족도 물리쳐 신성로마제국의 영토를 확대시켰고, 또 이탈리아를 확실히 손에 넣어 심지어 교황마저도 그의 의지대로 옹립하고 폐위시킬 수 있었습니다.
오토 3세는 최초로 게르만 민족 출신의 인물을 교황의 옥좌에 앉혔으며, 심지어 그가 죽자 그의 후임으로 다른 게르만인을 임명하여 그의 이름을 실베스테르 2세로 하였습니다.
이런 작명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당시 교황 실베스테르 1세에게 교회를 기증했는데, 오토3세는 이에 착안해서 본인이 제2의 콘스탄티누스 대제라고 선포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당시 20대에 불과했던 이 청년 황제는 정말 대단한 야망을 품고 있었던 것이죠.
그는 중세시대의 다른 군주들처럼 전국을 유람하면서 통치하는, 다시 말해 특정한 수도가 없는 군주가 되기를 거부하고 신성로마제국의 수도를 영원한 도시 <로마>에 두고자 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그는 실제로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기거했던 팔라티누스 언덕에 궁전을 짓고자 했습니다.
팔라티노 언덕
또한 유럽의 모든 귀족들을 로마에 초대하여, 로마를 유럽 정치의 중심지로 다시 부활시키고자 했고, 이에 따라 고대 로마의 관직을 여럿 부활시킵니다. 가령 파트리키우스 로마노룸, 프라이펙투스 등의 관직을 부활시켰고 심지어 로마 원로원을 부활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 스스로를 로마인민과 원로원의 집정관(Consul)이라고 칭했습니다.
고대 로마의 가장 위대한 관직이었던 <집정관>이라는 칭호를 부활시킨 것이죠.
그가 슬로건으로 내건 구호는 [Renovatio Imperii], 즉 <제국의 부활>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동로마에 사절을 보내 동로마제국의 황녀와 혼담을 추진했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동서제국의 통합, 그리고 기독교세계의 통합을 이룩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혼담이 성사되자마자 그는 21세라는 어린 나이에 죽었고, 제국의 꿈도 그와 함께 죽었습니다. 오토 3세 이후 그 어떤 신성로마황제도 그와 같은 스케일의 야망을 품지 않았고, 또 관심도 없었습니다.
[페르시아전쟁], [루비콘], [다이너스티]로 유명한 톰 홀랜드는 그를 두고 <마지막 로마 황제>라고 했는데, 그의 이야기에 대해 알아보니 정말 그랬던 것 같습니다.
오토3세에게 공물을 바치는 민족들 - 오른쪽부터 로마, 갈리아(프랑스), 게르마니아(독일), 스클라비아(슬라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