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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나에게 다가왔다. 이제 나의 호흡은 멈출 것이고 나의 몸은 뻣뻣해져서 흙에 묻힐 것이다. 가족과 지인들 그리고 나를 아는 모든 이들은 나의 죽음을 슬퍼해 줄 것이다. 그리고 잊혀지겠지. 나를 반기는 것은 썩어가는 몸뚱이에 들러붙어 내 살을 파고 먹을 구더기와 벌레 외에는 없을 것이다. 허망한 죽음이건만, 나는 오랫 동안 그것을 기다려왔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겠다. 그러나 죽음 이후에 무엇이 남겨지든, 오랫동안 가슴 속에 담아온 이 추악한 비밀을 품고 갈 수는 없기에 이렇게 마지막 고백을 남긴다.
젊은 시절의 나는 어리석고 혈기를 주체 못하고 제 주제에 맞지 않는 짓을 저질러 왔다.
그렇지 않은 청춘이 어디 있겠냐만은, 나는 내 가문의 권력과 재산을 등에 엎고 차마 남들이 하지 못할 악행들로 내 아름다웠어야 할 청춘을 더렵혔다. 어찌 그 많은 악행들을 다 입에 담아낼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부끄럽게도, 나의 성정(性情)은 본디 그렇게 추한 것이었던지, 수없이 많은 악행에도 불구하고 그 중 어느 것 하나 나의 육신과 영혼을 좀먹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알리손을 제외하면.
알리손, 그녀는 과거 본국의 식민지였던 콜로니의 사람이었다. 당시의 본국은 기술적으로 진보되어 있었으나 문화적으로는 야만국이나 다름 없었던 군국(軍國)이었다. 졸렬한 제국주의와 애국심, 우월주의에 도취된 본국은 발달한 군대를 앞세워 빼앗은 나라의 사람들에게 가문명을 빼앗아버리는 야비한 정책을 취했었다. 때문에 알리손에게는 어떤 가문의 이름도 없으며 오직 알리손이라는 세 글자의 이름만 남아있다. 그녀 가문의 생존자가 한 사람만이라도 남아있다면, 나는 내 모든 것을 보상하는 일이 있더라도 이 추악한 비밀로부터 조금이나마 편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은 흩어진 모래알처럼 지났고 이제 더 이상 그 지방 어느 누구도 알리손에 대해 알지 못하리라.
오오, 하느님. 부디 저를 용서하시길. 그때의 저는 너무도 어리석었습니다.
나의 가문은 본국에서 보잘 것 없는 상인 가문이었으나, 60년 전 본국이 콜로니를 식민지로 삼으면서 대대적으로 본국인들을 파견하기 시작했다. 나의 조부는 가문의 부를 가져다 줄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고 나의 아버지와 나를 콜로니의 어떤 지방으로 보냈다. 그곳은 콜로니의 가장 비옥한 땅으로, 콜로니에서 나는 산물의 절반 이상을 생산할 수 있는, 그야말로 꿀과 젖이 흐르는 곳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당시 본국이 콜로니에 시행하고 있던 토지 조사 정책을 교묘히 이용하고, 콜로니 관료들에게 융숭한 대접을 하여 비겁한 유착을 반복한 결과 몇 년만에 그 지방 땅의 8할 이상을 차지하는 대지주가 되었다.
이 토지 조사 정책을 이용했다는 점을 잠시 짚고가야 겠다. 왜냐하면 이 정책을 빌미로 우리 가문은 지금의 위치에 올라선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나의 악행이자 가문의 악행이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말하자면, 이 토지 정책은 콜로니 사람들로부터 땅을 빼앗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다. 콜로니 사람들로서는 억울하고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지만, 본국에서 넘어온 본국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일확천금, 앉아서 땅이 저절로 생기는 기적 같은 일이었다.
반대로, 어제까지만 해도 자기 땅을 갖고 농사를 짓던 콜로니 사람들은 하루 아침에 자기 땅을 잃고 빈털털이가 되었다. 항의하고 열을 내보아도 콜로니 사람들에게는 일절 자비가 없었다. 총독부에서 파견된 무장 순사들이 눈을 번뜩이며 조금의 반항이라도 보일라치면 총을 꺼내들었다. 어쩔 수 없이, 수많은 콜로니 사람들이 소작농으로 전락하고야 만 것이다.
내 아버지, 우리 가문의 선대 당주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 분은 정녕 우리 가문의 초석을 다져놓은 위인이자 타고난 경영인, 그리고 무자비한 상인이었다. 하지만 인간적인 면은 차치하고서, 순전히 경영자로서의 능력만 보자면 내 아버지는 분명 나 따위와 비교도 되지 않는 능력자였다. 그 중 하나가, 본디 자기 땅에서 살던 이들을 단순 소작농으로만 부리지 않고, 거기서 더 많은 부를 얻기 위해 일을 벌였던 점이다.
가만히 있어도 농사를 지으면 알아서 곡물이 나오는데 어떤 지주가 귀찮은 일을 하겠는가. 때문에 다른 지주들은 농사 따위 적당히 말 잘 듣는 콜로니 사람을 대표로 맡겨놓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나의 아버지는 그런 사람들과 달라서 본인이 직접 그 넓은 땅을 관리하는 동시에 보다 높은 효율로 작물을 생산하기 위해 농수로를 뚫거나 버려진 야산, 돌무덤 따위를 개간하여 농사짓는 땅을 더 넓히는 사업을 벌였다. 당연히 일을 하기 위한 인부들은, 한때 자기 땅에서 농사짓던 콜로니 사람들로 채워졌다. 내게는 이 인부들을 관리하는 중임이 주어졌다.
나는 거기서 처음으로 알리손을 보았다. 오랜 농삿일로 피부는 까무잡잡했으나 건강미가 넘쳤고 엉덩이가 목이 긴 것은 사슴처럼 보였다. 얼굴은 살짝 고양이 상이었으며 눈은 에메랄드 호수마냥 산뜻한 녹색이었다. 유일한 흠이라면 결이 거친 머리칼이었는데, 오히려 나는 그 부족한 점에서 더욱 그녀의 아름다움에 빠져버렸던 건지도 모른다. 나는 알리손을 처음 본 그 순간 사랑에 빠졌다. 아니, 이런 말을 입에 담기조차 죄스럽지만, 그건 분명 사랑이었던 것이다. 나는 알리손을 보자마자 그녀를 가지고 싶다는 맹렬한 욕망에 휩싸였다. 그러나 거기에는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녀는 결혼한 몸이었다.
알리손 같은 미인이 어떻게 이런 농사꾼과 결혼을 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그녀 남편의 외모나, 경제적 능력은 평균 이하였다. 그녀의 남편은 일이 이렇게 되기 이전부터도 남의 땅에서 소작농이나 하던 인물이었다. 알리손 그녀도 부족한 집에서 태어나 평생 남의 땅에서 농사만 짓다 그녀의 남편과 결혼을 했고, 결혼을 한 다음에도 그녀 남편을 따라 남의 땅에서 일을 해주는 하루벌이 삶을 계속해 왔던 것이다. 비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본국에서도 보지 못한 미인이 이런 보잘 것 없는 나라에서 태어나 보잘 것 없는 땅에서 보잘 것 없는 일을 하며 보잘 것 없는 남자와 함께 산다니. 그때 나로서는, 마치 어떤 사명감 비슷한 감정에 이성이 마비되었던 것이 틀림 없다. 알리손 정도의 미인은 이런 대우를 받아선 안 된다고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당시의 나는 본국에 이미 내정된 부인이 있었으나 당시 본국에서는 콜로니 출신의 첩 하나 둘 정도는 두는 게 관례였다.
알리손과 그녀의 남편-그의 이름은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이 함께 일을 하고 있을 때면 나는 둘을 떨어뜨려 각자 다른 작업을 시켰다. 알리손에게는 쉽고 편한 일을, 그녀의 남편에게는 힘들고 남들이 꺼려하는 일을 시켰다. 쉬고 있는 알리손에게는, 본국 사람들조차 구경하기 힘든 메론을 주며 환심을 사려했고 한번은 본국에서 돈 깨나 있는 자들이 여행가서나 먹을 수 있는 고급 도시락을 가져다 주기도 하였다. 그런데 메론을 줄 때도, 도시락을 선물할 때도, 그녀는 늘 마지막에 자기 남편 몫을 가져가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알리손이 그녀의 남편을 무척이나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심술이 나 계속 그녀 남편에게 일부러 힘든 일을 시켰다. 그러던 어느 날, 알리손이 일찍 일을 마치는 날, 나는 하루를 끝내기 전 알리손의 얼굴을 한 번 더 보고자 작업장으로 나갔다.
그리고 나는 알리손이 그녀 남편의 작업장 앞에서 계속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일은 무려 두 시간 전부터 끝나 있었는데도 말이다.
나는 어린 아이의 치기가 늘 그렇듯, 다음 날부터 알리손에게도 험한 일을 시키게 되었다.
그런데도 힘든 작업을 마친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의 어깨를 부축하며 집으로 돌아가곤 했던 것이다. 나는 어떻게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고, 알리손을 오롯이 나만의 것으로 할 수 있을지 밤낮으로 고민했다. 그러던 와중에 어떤 일이 발생했다.
그때 당시 본국은 전쟁 중이었다. 조금 자세히 말하자면, 콜로니와 국경이 맞닿아있는 나라들과의 전쟁이었다. 본국의 영토 확장을 두려워한 몇몇 국가들은 연합군을 형성하였고, 자연히 전선이 무리하게 확대되었다. 본국으로서는 당장의 전선만으로 벅찬데 순식간에 적이 더 늘어났으며, 때문에 콜로니에 대한 가혹한 수탈정책이 이어졌다. 우리 가문이 관리하는 땅에도 평소의 배가 넘는 할당량이 주어졌다. 아버지는 콜로니 사람들에 대해 어떠한 인정도 없으셨고 그들은 문화적 정신적으로 열등한 하등한 민족이라 여기고 계셨기 때문에 본국에서 어떠한 할당량이 주어진들 말 한마디 없이 받아들이셨다. 콜로니 사람들은 위에서 하달된 정책에 반대하였으나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건달들과 콜로니 순사들을 동원하여 무참히 대응하였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그건 매우 효과적인 대책이었다. 콜로니 사람들은 아버지 말 한마디에 벌벌 떨면서 껌뻑 죽으려는 시늉까지 했었으니까. 아버지는 단순한 대지주에서 마치 그 지방의 영주, 아니 왕처럼 대우받기를 원했으며, 실로 그를 이루었다.
비옥한 땅에서 나는 대부분의 생산물이 전쟁을 위한 식량으로 차출되었고 자연히 콜로니 사람들은 배를 주리는 이가 늘었다. 전선 확대 이전에는 그래도 하루 두 끼씩 먹을 수 있던 집에서도 하루 한 끼, 더 없는 집에서는 이틀에 한두 번 부엌에 불을 피울 수 있을 지경이었다. 자연히, 알리손과 그녀의 남편도 날이 갈수록 못 먹어 수척해지는 것이 눈이 들어왔다. 나는 이것을 기회라고 여겼다. 그래서 나는 알리손의 집에만 할당량을 일부 줄여주거나 또는 과다 할당이 되었다고 하며 일부를 되돌려주기까지 했다. 그러기 곤란할 때는 직접 수탈한 식량을 챙겨놓고 사람을 시켜 알리손의 집 창고에다 몰래 넣어주고 오게 하였다.
비록 저열한 욕망에서 시작된 호의였지만, 계속 고백하듯이, 당시의 나는 너무 어리석었고 단순했다. 이렇게 하면 알리손도 금세 나에게 호감을 갖고 그녀의 남편과 정이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 정말로 어리석었다.
알리손과 그녀의 남편은 오히려 같은 콜로니 사람들에게 배척당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알리손이나 그녀의 남편이 우리와 내통하고 있다거나, 무슨 더러운 수를 써서 남들보다 조금 더 배부르게 지내고 있다 여긴 것이다. 알리손이 우물에 물을 길어갈 때면 누군가 발을 걸어 그녀를 넘어뜨렸고, 알리손의 남편이 작업을 갈 때면 그의 기구만 녹이 슨 폐품으로 바꿔치기 되었다거나 한밤중 그들의 집 창문에 돌을 던져버리고 도망가는 일들이 생겼다. 결과적으로, 알리손은 이유모를 호의를 경멸하게 되었으며 그 호의의 주체가 나라는 것을 알게 되자 오히려 나를 더욱 멀리하게 되었다.
무슨 생각으로 나는 이미 남의 아내인 알리손을 원했던 것일까.
거기서 멈추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느 날 나는 실로 추악하고 비열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엇이 부족했던 것일까. 나는 왜 내가 가진 것들로 만족하지 못하였던가. 왜 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나는 작업 중인 알리손을 데려와 얘기했다.
당신의 남편에 대한 사랑은 확인하였다. 나는 당신을 향한 내 마음을 포기하겠으며, 마지막으로 그간 폐를 끼친 것을 사과하기 위해 약간의 보상이라도 하게 해달라. 다만 마을 사람들의 눈이 있으니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만나자.
그녀는 약속한 그 날, 그 죄악의 날, 그 시간에 내가 지정한 장소로 나왔다. 뒤에 고백하겠지만,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녀로서는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그곳은 아버지가 훗날의 예기치 못한 전쟁이 닥쳐도 가문의 핵심인원만은 몸을 피할 수 있도록 지어놓은 지하의 벙커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벙커의 존재는 그 지방 사람 누구도 몰랐을 것이며 알리손도 당연히 거기가 어디인지 알 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알리손이 벙커 입구 앞에 선 것을 확인하자마자 강제로 그녀를 벙커 안에 가두고 문을 잠그었다. 안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정도로 견고하고, 또 두꺼운 벙커였다. 나는 만족하며 그 날 잠자리에 들었다. 내 추악한 계획은 이러했다. 하루 정도 사람은 먹지 않고 마시지 않아도 살 수 있다. 이틀 째 되면 정신이 붕괴되어 이성은 약해지고 본능이 우선시 되며, 물 한모금과 빵 한 조각만 먹을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하게 될 것이라고. 그러니 첫째날 알리손의 행방에 대해 어떤 소리가 들리더라도 결코 관여하지 말고 이틀째 되는 밤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마침내 이틀째 되는 날 밤, 물과 음식을 싸들고 벙커를 찾아가 굶주림과 공포에 질렸을 그녀를 꺼내주며 다시금 내 구애를 받아주길 강압하는 것이다. 그래도 안 되면 굶주림에 저항할 힘도 없는 그녀를 강제로 범하여서라도 내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가난한 콜로니 사람으로 살 바에 첩으로라도 우리 가문의 일원이 되는 게 그녀로서도 좋고 그녀 남편에게도 적당한 은전을 베풀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틀째 날 밤 일어났다. 알리손의 남편이 집을 찾아와 아내를 돌려달라며 온 집안사람을 깨워버린 것이다. 그 소동에 순사도 집으로 찾아왔다. 가문의 집사와 문지기가 알리손의 남편을 막으며 제지했지만 그는 도통 물러서질 않았다. 그런데 나도 정말 어리석었던 것이, 그런 상황 속에서는 얌전히 방 안에 있어야 했었던 것을, 왜 나는 그때 문밖을 나가 알리손의 남편과 눈이 마주쳤던 것일까.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고 괴성을 지르며 내게 덤벼들었다. 그의 우락부락한 손이 내 옷에 닿는 순간, 탕! 하는 총성과 함께 그는 바닥에 쓰러졌다. 어느 새 집밖으로 나온 아버지의 손에는 사냥용 엽총이 들려있었고, 총구에는 화약 연무가 피어올랐다.
총에 맞으면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나는 오래 전 아버지가 따라간 사냥터에서, 오발사고로 총에 맞은 개를 본 적이 있다. 그 개는 총을 맞자 뭍위에 올라온 물고기마냥 몸을 펄떡이며 제자리를 뒹굴뒹굴 구르며 온 곳에 피칠갑을 해댔는데 그렇게 숨이 끊어지기까지 몇 분이나 고통 속에서 죽어갔다. 알리손의 남편은, 그때의 그 개처럼 몇 분이나 고통스러워하며 급기야 체력이 떨어져 더 이상 움직일 기력도 잃은 채, 천천히 숨이 끊어졌다. 아버지로부터 상당한 대가를 받고 있던 순사들은 알리손의 남편이 실성하여 내게 덤벼들었고 아버지는 가문의 후계자를 지키기 위해 방어를 하였을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행동은 그 본인으로서도 전혀 예상치 못한 우발적인 것이어서, 당신은 며칠 간 어느 누구도 집에서 나가지 못하게 하였다.
그 소동의 와중에 어찌 내가 그 명을 거역할 수 있었겠는가. 일이 너무 커져버린 와중에, 나는 겁을 먹고 도저히 알리손을 가둔 벙커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째 되던 날까지 나는 알리손을 꺼내주러 가지 못하였다. 비가 오는 날이면, 땅으로 빗물이 흘러들어 벙커의 틈으로 들어가 그걸 마시며 조금이라도 더 생명을 연명해주길 바랐다. 그런데 마침내 결심이 서고 그녀를 꺼내주려하기도 전에, 급하게 그 땅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당시 본국은 전쟁 중이었음을 앞서 말한 바 있다. 승승장구하던 본국은 무리하게 전선을 확장하다, 연합군의 반격을 받게 되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본토가 기습을 받게 되었다. 콜로니에 있는 모든 본국인들에 대한 귀국 명령이 떨어졌고 아버지는 꼭 필요한 권리증서와 식솔 몇만 데리고 화급히 본토로 돌아갔다. 그 와중에 나는 알리손에 대한 고백을 끝끝내 하지 못하였다. 하다못해 메모라도 남기거나, 어느 누구에게라도 지하 벙커를 열어보라고 말을 남기고 귀국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하였다. 다시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났다. 나는 부디 알리손이 어둠과 감금의 공포로 심장마비에 걸려 그녀의 고통이 되도록 빨리 끝났기를 빌고 또 빌었다.
이후의 정세는 역사에 기록된 그대로이다. 본국은 연합국에게 패하여 정전 협정을 맺었고 그 내용 중 하나가 차지하고 있던 모든 식민지에 대한 독립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콜로니는 십수년의 식민지 신세를 벗어나 당당한 독립국의 하나가 되었다. 거기서 나는 끝내 고백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모든 건 내 비열함과 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때 죄를 고백하였더라면, 나는 본국의 법이 아니라 하나의 주권국가가 된 콜로니의 법을 적용받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더 늦기 전에라도 내 죄를 밝히고, 알리손의 시신을 찾아 정중히 화장하고 그녀의 영혼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지 않을까 했던 짧은 고민은 금세 그럴 여유가 없어져 버렸다.
콜로니에서 내전이 일어난 것이다. 내전은 콜로니의 국토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때 가서 고백해 본들, 그 나라 어디에도 내 고백에 귀기울일 사람도, 내 고백만 믿고 전화(戰火)가 엄습하는 땅을 뒤집어엎어 벙커를 찾아내 굶어죽은 여자 하나를 찾아낼 여유가 있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내 죄는 어디에도 밝히지 못하고 끝끝내 내 가슴에 묻고 갈 수 밖에 없었다.
세상 일은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콜로니에서 대규모 내전이 일어난 덕에, 막대한 전쟁무기와 군수품이 필요해졌고, 전쟁에서 진 본국은 콜로니와 위치적으로 가깝다는 이유로 연합군 관리 하의 군수공장이 들어섰다. 패망한 본국은 패전의 대가로 마땅히 피지배국에 사죄하고 피해를 보상해야 했으나, 도리어 다시 부흥의 길을 걷게 되었다. 내전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당장의 전화로 행정과 사법, 학문과 군사 등 거의 모든 분야의 인사가 유명을 달리하는 바람에 콜로니는 극심한 인재 부족 현상에 시달렸다. 운명의 장난인지, 당시 콜로니 총독부 관리였던 사람들이 다시 콜로니로 돌아가 식민지 시절보다 더 중한 자리를 맡게 되었다. 이번에는 엄연히 독립국 콜로니 정부의 공식적인 요청으로 말이다.
당장 여러 본국인들이 다시 콜로니로 돌아가서 다시금 재기의 기회를 노렸지만, 어찌된 일인지 아버지는 그 행렬에 참여하지 않으셨다. 대신 아버지는 내전 당시 일으킨 사업을 바탕으로 본국 안에서도 독보적인 위치까지 가문의 사업을 번창시켰다. 물론 그 바탕에는 콜로니에서, 그 지방에서 획득한 더러운 부가 원천이었음을 두말 할 필요가 없으리라.
세월이 지나고, 콜로니도 어느 정도 자생의 능력을 갖게 되어 조금씩 옛 식민지 시절 있었던 부당한 착취에 대한 보상을 본국에 요구했다. 그 중 하나에 우리 가문이 지니고 있던 그 지방의 땅에 대한 환수요청도 포함되어 있엇다.
하지만 아버지는 결코 그 땅을 내놓으려 하지 않았다. 비록 양심의 가책은 느낄지언정 그 땅은 엄연히 우리 가문의 토지라는 것을 증명하는 법적 증서와 권리가 있었으며 국제사법기관의 판결도 우리 가문의 소유임을 증명해 준 것이다.
이제와 생각건대, 아버지는 그때 나의 악행을 알고 계셨던 게 아닐까? 내가 알리손을 벙커에 가두던 날 아버지가 그걸 보셨던 건 아닐까? 그래서 아버지는 알리손의 남편이 더욱 깊게 파고들기 전에 그의 죽음과 함께 그 일을 덮어버리려 하셨던 게 아닐까? 그러나 이런 생각은 이미 너무 늦었고 아무 의미도 없다.
가문을 계승하게 되자마자, 나는 오랫동안 품어온 죄악감을 떨쳐버리기 위해 그 땅의 권리를 헐값에 내놓았다. 주변에서 잘못된 판단이라고 질타하였지만 나의 마음은 단호하였다. 우리 가문, 아니 내 손을 떠난 그 땅은 콜로니 사람들의 손을 몇 번 거치며 내 기억에서 잊혀졌다. 하지만 그 날의 기억과 내 죄악감은 여전히 남아 나를 괴롭혔다. 아니, 괴롭혔다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그 모든 게 내가 저지른 죄였으니, 나는 그 죄값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괴로움을 잊기 위해 밤낮 없이 일하며 자신을 채찍질 하였다.
인생이란 모순적인 것이다. 내가 죄악감을 잊기 위해 일할 수록 가문의 재산은 윤택해졌으며 과로와 불안감으로 쇠약해지는 내 육체에 비하여 가문의 지위와 크기는 더욱 융성해졌다. 그리고 내가 경영하는 모든 기업에 콜로니 출신 사람들의 채용을 우선시 했고 식민지 시절 본국이 벌였던 반인륜적인 정책에 대한 기록관을 짓거나 그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사업을 벌여, 내 악행의 좁쌀만한 일부분이라도 사죄하고자 하였다. 정말 가식적인 일인 것이다. 용서받고자 한다면 그 날의 악행을 정정당당히 밝히고 벌을 구해야 했던 것을. 그런 나의 기만을 모르는 세상은 나를 위해 제아비보다 뛰어난 경영자라며 여러 찬사를 던졌다.
하지만 가장 괴로웠던 것은, 콜로니에서도 나를 양심적이고 인간적인 사람이라 추켜세웠던 것이다. 차라리 기만자라고 욕해주면 좋았을 것을. 그렇게, 나는 누구에게도 이 비밀을 밝히지 않은 채 살아왔다. 이후로, 나는 아주 가끔씩 떠올릴 뿐, 그 날의 기억은 점점 시간의 흐름 속에 퇴색되어 갔다.
그러나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오래 전 내가 그 땅을 팔아버린 주된 이유는, 그 땅을 누가 차지한다고 한들 오랫동안 농사 지어온 땅이었기 때문에 함부로 땅을 파거나 숨겨진 벙커를 발견할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건 참으로 안일한 생각이었다. 몇몇 사람의 손을 거친 그 땅의 마지막 주인은 어떤 부호였다. 땅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그 자는 그 비옥한 땅을 모두 갈아버리고 거대한 테마파크로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오랫동안 숨겨왔던 내 죄악이 잠들어버린 양심의 흙에서 솟아나 삽시간에 자라났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나는 자리에 쓰러졌고, 그 날 이후로 지금까지 죽음만을 기다리며 간신히 살아있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그 계획을 말리거나 방해할 생각도 하지 못하였고, 그저 일이 진행되는 것을 막연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땅에서 오래된 지하 벙커가 발견되었다. 나는 체념했고, 그때까지 간신히 놓지않고 있던 생명의 끈은 허망하게 내 손을 떠났다. 발굴단의 손에 의해 벙커가 개방되었고, 안에서 말라비틀어진, 굶어죽은 알리손의 유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알리손은 글을 쓸 줄 몰랐다. 내가 알리손을 가둔 벙커의 네 벽면에 그녀는 어떤 절망의 말이나 최후의 한마디, 나와 내 가문에 대한 원망 대신 공포에 휩싸여 마구잡이로 긁어 댄 핏빛 손톱자국만 가득했다.
아아 하느님. 이제 마지막 숨이 가빠옵니다. 부디 제 영혼을 거두시고, 이 죄 많은 생을 끝내주십시오. 그러나 아직 고백이 남았습니다. 이것만 마치게 해주십시오. 그 뒤 어떤 지옥이 제앞에 배정되더라도 아무 말 없이 당신 뜻을 따르겠나이다.
이제 이야기를 마쳐야 겠다.
얼마 후, 그녀의 유해를 조사하던 과학자들은 몇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게 되자 더 이상 내가 가진 그 어떤 것으로도 내 죄를 씻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너무 뒤늦게 이 고백을 남기게 된 것이다.
과학자들이 밝혀낸 사망추정일은 내 기억 속 죄악의 그 날로부터 두 달이나 지나 있었다. 알리손은 내가 그녀를 가두고 무려 두 달이나 더 살아있었던 것이다. 내가 최후의 최후까지 고민하던, 콜로니를 떠나는 그날까지도.
그녀의 손가락은 두 개만 남았는데, 팔뚝에는 이빨 모양의 패인 자국이 듬성 듬성 나 있었다고 한다. 나로선 차마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제 몸을 갉아먹어가며 필사적으로 살아남으려 했던 알리손의 삶의 이유는
다름아닌 그녀 뱃속의 아이였다.
죄악의 그 날, 알리손은 임신 중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