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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떄 여군을 성상품화 썻던 60년대
게시물ID : military_8018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겔러거형제
추천 : 0
조회수 : 60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9/03 20:5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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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5월 국방부는 ‘제1회 미스 여군 선발대회’를 육군본부 강당에서 열었다. 이 대회에는 육군 여군대대와 여군훈련소 등에서 서류심사 등을 통해 선발된 총 7명이 출전했다. 여기서 뽑힌 미스 여군 진·선·미는 같은해 6월16일 열린 미스 서울 특별예선대회에 참가했다.

미스 여군 선발대회 절차는 야외복(드레스)과 수용복 심사까지 있는 등 미스 코리아 선발대회와 비슷했다. 다만 군복 심사가 있었다는 것이 미스 코리아 대회와 다른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이었다.

당시 일간지에도 미스 여군 선발대회의 결과가 실렸다. 동아일보는 1964년 대회에서 예선을 거쳐 올라온 11명의 후보자 간운데 진에 김명자 하사, 선에 이춘자 상병, 미에 김연순 중위가 선발됐다고 이들의 사진과 함께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스 여군 선발대회가 미스 코리아 대회의 여군 예선대회처럼 운영되는 것에 대한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군 당국은 1968년 대회부터는 미스 코리아 선발대회 출전이 목표가 아닌 용모와 품행이 단정한 모범여군을 선발하는데 중점을 두겠다고 밝혔으나 결국 반대 여론에 밀려 미스 여군 선발대회는 1972년 대회를 끝으로 폐지됐다. 1, 2, 3등의 명칭을 ‘진·선·미’가 아닌 ‘용·지·미’로 바꾸는 등 나름 많은 노력을 했으나 허사였다.

군이 미스 여군 선발대회를 개최한 가장 큰 이유는 여군 모집을 위한 홍보 차원이었다. 당시만 해도 여군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는 달라도 많이 다른 시절이었기 때문이었다.




미스 여군 선발대회 사진 전시품이 퇴역 군인들에게는 어떻게 비칠까. 30년 7개월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전역한 피우진 예비역 중령은 “요즘 군대 내 성폭력 문제가 끊이지 않는 것은 군 엘리트들이 여군을 군인이 아니라 여자로, 사적 소유의 ‘보급품’쯤으로 여기기 때문”이라며 “내가 군 생활을 할 당시 여군은 계급도, 인권도 없었다. 미스 여군 선발대회는 그 산물이다. 국방부가 이런 사진들을 버젓이 전시한 걸 보니 성인지 의식이 너무 부족한 것 같아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출처 : http://mustory.khan.kr/74 [박성진의 軍 이야기]

http://www.womennews.co.kr/news/view.asp?num=81618 전쟁기념관에 여군 수영복 사진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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