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에선 죄수의 딜레마에서 서로 협력을 하게되는 것과 그 과정에서 상호 확증 파괴의 등장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내일은 있기에 우리가 협력을 한다면 우리가 협력을 배반하지 않도록 강제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세상에 있는 대부분의 계약엔 계약 이행을 담보하기 위한 처벌 조항이 있습니다. 아주 사소한 계약에도 위반 시 패널티가 있을진데 핵무기를 다루는 게임에 있어선 당연한거겠죠. 협력을 강제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용서는 없다, Grim Trigger Strategy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셨다면 보셨을 오토마타입니다. 파란색은 인풋, 갈색은 아웃풋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름도 무시무시한 Grim Trigger Strategy는 용서가 없는 전략입니다. 상대가 비핵(인풋)을 하면 우리도 비핵(아웃풋)으로 반응합니다. 그러나 만약 상대가 협력을 깨고 핵(인풋)을 선택한다면 우리도 즉시 핵(아웃풋)을 선택합니다. 그 후엔 상대가 다시 비핵을 선택하든 핵을 선택하든 계속 핵으로 응수하는 전략입니다. 한 번 상대가 신뢰를 깨면 그 이후는 없습니다. 상대는 우리에게 자비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린 모두 두 번째 기회가 있다, Tit for Tat
Grim Trigger보단 좀 더 긍정적인 전략입니다. 상대가 비핵을 선택하면 우리도 비핵으로, 핵을 선택하면 핵으로 응수하는 것까진 Grim Trigger와 같습니다. 그러나 차이점은 핵을 선택한 이후에 상대가 다시 비핵을 선택하면 우리도 다시 비핵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상대의 대응에 따라 우리의 대응이 달라지는 것이죠. 국제법에서의 상호주의와도 상통합니다.
이제 북핵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상호 확증 파괴에 대해 이해하셨다면 눈치가 빠르신 분들은 이제 아셨을겁니다. 많은 이들의 우려와는 달리 북핵은 한국을 타겟으로 한 것이 아니라 미국을 타겟으로 한 것임을요. 우리는 핵이 없기에 북한과 상호 확증 파괴를 이룰 거리가 없습니다. 핵우산으로 우릴 커버해주는 미국이 그 대상이죠. 또한 북한의 가장 중요한 문제인 체제 보장을 한국은 해줄 수가 없습니다, 미국만이 해줄 수 있는 문제죠. 북핵의 목적은 서울을 불바다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LA를 불바다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북한과의 상호 확증 파괴를 인정해주자는 의견도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북핵을 인정해줘서 상호 확증 파괴를 이뤄주면 문제가 없는가? 그렇게되면 그 외에 또다른 문제가 발생합니다. 바로 핵확산 방지조약, 일명 NPT(Treaty on the Non-Proliferation of Nuclear Weapons)입니다.
북핵은 왜 '나쁠'까
국제경제의 핵심엔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브레튼 우즈 협정이 있다면, 국제정치엔 NPT가 있습니다. 핵무기는 - 더티 밤의 경우 - 고도의 기술이 필요 없이 개발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별다른 제재가 없다면 전세계가 핵으로 무장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그래서 최초로 핵을 개발한 다섯 국가이자 가장 군사력이 강한 다섯 국가, 현 UN 상임이사국인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가 만든 것이 NPT입니다. NPT에 가입하면 핵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경제적 원조 및 유사시 상임이사국이 핵 보복을 해주는 핵우산으로 보호받습니다. 조약을 어기면 그에 상응하는 제재를 받구요. 북핵이 제재 받는 이유는 북한이 독재 국가인 나쁜 나라라서가 아닙니다. 이 NPT 조약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NPT에 가입하지 않은 파키스탄이나 이스라엘은 별다른 제재없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사족으로 한국도 NPT 가입국입니다. 몇몇 정치인이 핵무장 주장을 하고 인터넷 여론에서도 핵무장이 지지 받는 걸 볼 수 있는데 우리가 핵개발 했다간 북한 꼴납니다).
북한은 85년도에 NPT에 가입하고 소련으로부터 소형 원자로를 제공 받습니다. 하지만 92년도에 핵실험을 하고 있다는 징후가 포착되고 이어 IAEA(국제 원자력 기구)에서 사찰이 나오자 이를 거부하고 NPT를 탈퇴합니다. 그 때부터가 북핵 제재의 시작이였습니다.
만약 북핵을 인정해주게된다면 NPT의 원칙이 흔들리게 됩니다. NPT를 탈퇴하고도 핵무기를 인정받게 되는 셈이니까요. 또 그렇게해서 상호 확증 파괴를 이루고 미국과의 거래에서 지랫대가 생긴다면 다른 NPT 가입국들도 비용 편익 분석을 하면서 고민을 하게되겠죠. 이 때문에 미국이 쉬이 북핵을 인정해줄 수 없는 것입니다.
북한의 입장에선 핵무기로 인한 상호 확증 파괴보다 자신의 체제를 확실하게 보장해줄 수 있는 수단은 아직까진 없습니다. 그렇기에 동북아 정세가 북한에게 험하게 돌아가고 한미일 남방 삼각이 제재를 하면 할수록 핵무기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대화와 유화라는 방법이 없다면 물리적으로 평화를 이루는 것이 제일 확실하니까요.
지금 당장 북한의 체재를 인정해줄순 없는 노릇입니다. 미국이 공식적으로 독재 체제를 보장해줄 순 없는 노릇인데다, 미국 입장에선 대북 압박이 대중 공략의 카드 중 하나이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해서 지금처럼 치킨 게임을 하면 북한에겐 직진 밖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어느 쪽이든 지금 당장 단칼에 해결할 수가 없는 문제입니다.
햇볕정책, 워 머신
언젠가 이 주제로 글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북한은 다른 공산주의 국가와도 차별될 정도로 순수 공산주의 이념에 집착하고 그 폐쇄성이 격을 달리했던 나라입니다. 그런 북한도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지 못하고 중국이나 다른 공산주의 국가처럼 변화를 겪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원인은 바로 북한의 시장화였습니다. 도저히 사회주의식 계획경제로는 일이 풀리지 않게되자 유연화라는 이름으로 시장경제를 도입하게되고 이 것이 북한 주민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북한의 분위기를 바꿨습니다. 좌우 할 것 없이 양 진영 내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만, 밖에서 물리적으로 무너뜨리는 것 밖에 답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부터 스스로 바뀌게 유도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 바로 햇볕정책이였습니다. 그래서 지원을 빌미로 개방시키고, 개방을 할수록 자연스럽게 시장화가 진행되어 스스로 바뀌게 한다는 것이었죠.
브래드 피트 주연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인 워 머신은 해방에 대한 블랙 코미디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을 재건하러 온 미군의 4성 장군이 겪는 이야기입니다. 미군이 반군을 퇴치하고 학교를 지어주고 인프라를 지어주려고 할수록 일은 꼬이고 주민의 마음을 사기 쉽지가 않습니다. 재건 임무 완수로부터 점점 멀어져만 갑니다. 미군 내에서 전설이라고 불릴 정도의 4성 장군마저도 왜 실패하고 마는걸까요? 이 영화가 말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총부리를 겨누고 도와준다고 하는 것은 모순이거든요.
마찬가지로 한반도를 전쟁터로 만들어서 북한 체제의 물리적 붕괴를 꾀하지 않는 이상, 이전 정권과 같은 방법으로 북한의 변화를 이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제 앞으로 한반도 정세는 더욱 험악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고 하게 될까요? 한 수 한 수가 조심스러운 시점입니다.
참조
Grim Trigger와 Tit for Tat에 대한 수학적 설명을 바라시는 분들에 대한 참조입니다.
Grim Trigger에서 상대가 핵을 선택할 것이냐 비핵을 선택할 것이냐는 상대의 할인률에 의해 결정됩니다. 앞의 핵 게임 도표에서 둘 다 비핵을 선택했을 시의 보상은 (3,3), 한 쪽만 핵은 (4,0), 둘 다 핵은 (1,1)로 가정했었습니다. 그리고 상대가 미래에 두는 비중을 할인률(δ)라고 했구요. 이를 토대로 계산을 해보면,
상대가 비핵을 선택할 시 얻는 이익: 3+3δ(내일의 이익은 할인률 만큼 할인됨. 즉 δ만큼 줄어듬)+3δ^2+3δ^3+...=3/1-δ
상대가 핵을 선택할 시 얻는 이익: 4+1δ+1δ^2+...=4+δ/1-δ 입니다. 즉 3/1-δ과 4+δ/1-δ의 크기를 비교하게 되니 δ의 크기가 선택을 결정하게 됩니다. δ가 크면 클 수록, 즉 내일에 대한 비중이 높을수록 비핵을 선택하게 됩니다.
Tit for Tat은 조금 다릅니다. Grime Trigger에서 상대가 핵을 선택할 시 얻는 이익은 4+1δ+1δ^2+... 이지만, Tit for Tat에서 상대가 핵을 선택할 시 얻는 이익은 4+0δ+3δ^2+...입니다. 한 번 핵을 선택했다면 그 다음 비핵 선택지를 위해 상대가 핵을 선택해도 비핵을 선택하는 소위 Play Nice를 하게되면서 해당 분기에는 0을 얻지만, 다음 분기엔 둘다 비핵을 선택함으로써 3δ^2을 얻게됩니다. 즉 Tit for Tat에서의 각 선택의 이익은
상대가 비핵을 선택할 시 얻는 이익: 3+3δ+3δ^2+3δ^3+...
상대가 핵을 선택할 시 얻는 이익: 4+0δ+3δ^2+3δ^3...
입니다. 즉 3+3δ와 4 사이에서의 크기 비교를 통해 핵이냐 비핵이냐를 선택하게 되겠죠.